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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46편, 헛된 소망, 참된 소망

LNCK 2012. 8. 13. 12:42

◈시146편, 헛된 소망, 참된 소망      시146편     여러 설교 편집

 

시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섯 편의 모든 시(146~150편)들은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그 중에서 본문 146편은, 하나님만이 인간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1~2절, 찬양을 결단하십시오!      

 

1절,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절,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1~2절 말씀을 보면 이 시편 기록자는 평생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결단합니다.

희망은 선한 결단의 열매입니다.

믿음이란 고통과 시련이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면 반드시 희망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항상 찬송을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사람이 만든 모든 물건에는 그 물건을 만든 목적이 있듯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제일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사43:21

그러므로 항상 찬송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멋지게 이루십시오.

 

 

◑3~4절, 헛된 소망

 

3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호모 에스페란스 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직역하면 ‘희망의 존재’라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밥을 안 먹고도 여러 날 버틸 수 있지만

희망이 사라지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희망이란 말보다 소망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희망 이란 말 대신 소망이란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이 있으면 삽니다. 반대로 소망이 없으면 금세 죽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찬가>로 유명한 시인 롱펠로는 지독한 고통 속에 인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는 두 번이나 부인과 사별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두 번째 부인은 끔찍한 화재로 사별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생을 예찬하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말년에 기자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극한 고난 가운데 인생을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는 정원의 늙은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늙은 나무지만 언제나 봄에는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죠.”

그는 다 죽어가는 고목나무에서, 생명의 소망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운 환경이나 조건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환경이나 조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우리 마음에 소망을 상실하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동일한 악조건 하에서도, 소망을 품는 사람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정신자원이 메말라가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자살자가 무려 8천명이 넘었고, (하루 약 3백명 꼴)

지난 10년 동안 두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놀랄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빚 때문에 혹은 가정불화 때문에, 실직해서,

청소년들 중에는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다양한 이유로 자기 목숨을 끊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럴까' 이해는 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자살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 이유들보다, 사실은 그들의 마음속에 엄습한 절망 때문입니다.

 

조그마한 소망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결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소망이 있으면 ‘자살’이 아니라 ‘살자!’가 되는 법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는 소망입니다.

비유하면 소망은 산소와 같은 것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하는 것처럼, 소망이 없으면 인생은 질식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소망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려운 세상이지만.. 얼마든지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붙드는 소망 중에는, 헛된 소망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소망은, 당장은 잠시 동안은 살아갈 용기를 주고, 삶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헛된 것으로 밝혀지면, 더 큰 절망의 수렁에 빠집니다.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헛된 소망참된 소망을 대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헛된 소망이란 어떤 것일까요?

하나는 막연한 소망이요, 또 하나는 ‘세속적인 소망’입니다.

 

막연한 소망: 근거도 없고, 불확실한데 그냥 기대를 걸어보는 것입니다.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후일 기대에 어긋나면 크게 실망하고 비관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한 경우는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도박장에서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요즘도 대박이 터질 것 같은 막연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 그러다가 오히려 그 소망이 좌절되고

쪽박을 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적 소망 : 세상의 재물, 권세, 건강, 향락 등에 관해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소망과 기대가 있기에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게 사실입니다.

만일 이런 것조차 없다면 사람들이 노력도 안하고, 세상은 정지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종류의 소망은 이루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실망하고,

이룬다 해도 언젠가 실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종내는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게 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보았던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전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여러분,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성경은 곳곳에서 이를 경계합니다.

시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잠11 :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잠23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딤전6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세상 권세에도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벧전1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그래서 야보고는 우리 인생을 가리켜 안개라고 표현합니다.

약4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여러분! 우리는 꼭 기억합시다. 재물이든 권세든 영원한 가치,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얻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고,

후회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도구일 뿐 우리 인생의 목적도 아니고, 소망도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3~4절.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여러분, 믿는 도끼(헛된 소망)에 발등 찍히지 마십시다!

 

 

◑5절, 참된 소망

 

5절,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요,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자녀들에게 결코 실망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 동안에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러실만한 분입니다.

 

시146:6 말씀대로,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이요 전능자이십니다.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진실한 분입니다. 약속을 꼭 지키십니다.

 

그리고 시146:7~9 말씀대로 사랑과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불쌍히 여기시기에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도 중요한 말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분은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배신했을 뿐입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십니다. 주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생토록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고난이 닥쳐와도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이길 힘을 주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이 닥쳐와도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잠14:32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나의 주님이 되시기에, 죽음이 닥쳐와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천국과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6절, 여호와는 진실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참된 소망이신 이유1

 

6절,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새번역에서는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공동번역에서는 "언제나 신의를 지키시고" 라고 했습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거짓이 없고, 속임수가 없고

사람의 신분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편파성이 없고,

공정함을 말합니다.

 

이 본문 6절에서 말하는 '진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말로, '에메트'입니다

이 '에메트'란 말은 '아멘'이란 말과 같은 어근에서 온 명사입니다.

 

우리가 아멘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쓰고 있습니까?

아멘이라는 말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146:6절,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어느 하나라도 '진실하며'

그래서 '아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은 인간과 다른 점이기에, 하나님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소망>인 것입니다.

 

◑7절, 여호와께서 관심을 가져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참된 소망이신 이유2

 

7절,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 사랑을 가지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내인 엘레나 루스벨트 여사는

결혼 후 남편이 소아마비 중세로 절름발이가 되어 고생하는 동안

꿋꿋이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남편 대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애자가 된 남편의 사기를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강인한 의지와 총명한 지혜를 가지고

남편을 밀어준 결과, 그 남편은 고난의 병석을 박차고 일어나서

마침내 1932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루스벨트 여사는 불구의 남편에게 팔과 다리가 되는 것은 물론

백악관의 안주인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불운했던 자신뿐 아니라

남편까지 희망찬 인생을 살게 한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남편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문제는 관심입니다.

요즘 늙은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이 늘어나는 탄식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관심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부모의 관심은 자녀를 훌륭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일에 관심을 가질 때 훌륭한 내조를 할 수 있고,

누군가 누구에게 관심을 가질 때, 훌륭한 협력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시편 저자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8~9절에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8~9절, 낮은 자를 보호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참된 소망이신 이유3

 

8절.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절.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소경의 눈을 여십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기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감겼던 우리 영안을 열어주십니다.

 

자기의 죄와 욕심으로 볼 것을 못 보는 사람들,

또한 자리가 높아질수록, 마땅히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감긴 눈을 열어주십니다. 진리는 항상 밝은 것입니다.

 

경건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는 야고보서 1장 2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본문 9절 참조)

 

우리는 경건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신앙인들이 되십시다.

 

 

◑10절,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십니다

 

10절,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세상이 불의하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내 인간적인 판단이고요,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세상이 엉망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건 내 좁은 소견이고요,

하나님이 영원히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기에

우리가 전심으로 그분을 경외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예배하며, 찬송합니다.

그분을 의지하며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소망>관련글 모음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5

오직 하나님께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삽시다.

당신은 오늘 무슨 소망에, 삶의 이유와 의욕을 걸고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