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막1:15, 렘12:5 인터넷설교 일부녹취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본질로 돌아가야!
형광등 아래서 선택한 옷을 입고, 햇볕에 나가면, 오늘 옷 잘못 입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집안의 형광등 아래서 선택한 넥타이가, 햇볕 아래 나가니까,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우리가 “오늘, 이 시대”라는 기준에,
내 영성과 내 경건을 맞추고 살다가, 즉, 형광등 아래서 살다가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날,
그 밝은 햇빛 아래, 모든 감춰진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될 때,
나는 과연 ‘안전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들이 다 가는 길, 그 ‘형광등’ 아래서, 지금 내가 가고 있다고 만족하다가는,
‘햇빛’을 만나면..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부터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시대는 점점 더 악해지고 wicked 있는데,
성도인 우리 각자는, 우리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도
점점 더 약해지고 weak 있다는 점이다.
시대와, 우리 기독교가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시대는,
우리 이전에 있었던 어떤 시대보다도, 영적으로 더 힘든 시대로 우리 앞에 다가왔는데,
지금 우리 상태는, 우리 전에 있었던 그 어떤 시대보다도, 영적으로 더 약해져 버렸다.
◑강한 신앙인이 되려면
▲1. 무엇보다 ‘믿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수님 믿어서 내가 잘 되고
죽을 뻔 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망할 뻔 하다가,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건져주시는.. 그것도 믿음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죽을 뻔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지 못하고.. 그냥 죽어버린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취해 가셨어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자기 믿음의 길을 당당히 나아간다.
제일 안타깝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왜 순교자 주기철, 손양원, 주영진 등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 주변의 교우들까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환란을 이기고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응답은,
거기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죽고, 순교하는 것이었다.
이게 남의 얘기처럼 들려서 그렇지.. 내 얘기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예수 안 믿었으면 편하게는 살았을 터인데.. 예수 잘 믿고서, 엄청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믿음이란.. 위기의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니다.
믿음이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심이 변하지 않을 줄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까 병에 걸려서.. 낫지 않고 죽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선하심을 믿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기적적으로 낫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지금 이 위기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결국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내게 주실 줄 믿는 것’은
그것은 ‘기적적으로 위기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이다.
나에게 모든 것이, 오늘날 무너져 내린다 할지라도
‘아직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은 분명 해!’ 하며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것을 우리가 확신한다면,
‘이 세상에서 어떤 성공을, 우리는 필요로 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성공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신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성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성공이 좋지만, 우상이 되면 안 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2.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고대 문화적 상황에서 보면, 스승이 제자를 찾아다닌 경우는 없다.
언제나 제자가 스승에게 찾아갔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희한한 것을 목격한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찾아다니시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지 않는 한, 나와 주님과의 관계는 시작되지 않는다..
는 사실이다.
▲부르심만큼 일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는.. 내가 웬만큼 원하면..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내가 아무리 주님을 알고 싶어도
주님이 나를 부르시지 않는 한, 그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구원도 그렇지만, 사역으로의 부르심은 더욱 그렇다.
반드시 주님이 불러주셔야(콜링이 있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구원의 부르심과, 사역으로의 부르심은, 궁극적으로 하나이다.
구원으로 부르신 자들은, 구원만 주시지 않고, 반드시 사명을 함께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는,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고, 일을 할 수 있다. ☞ 부르심만큼 일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내 개인의 삶 속에 개입하기 시작하셨다는 증거요,
나를 어떤 주님의 목적을 향해서 인도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인생이 뒤집어졌다.
그 부르심을 입은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개인적인 인생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과, 공동체와,
나아가 시대 역사가.. 그들을 통해 새롭게 바뀌어졌다.
대표적으로 사무엘이다. 그는 자기 시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이었다.
주님의 부르심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국한된 부르심 정도가 아니라,
즉 한 사람의 인생을 뒤집어놓을 뿐만 아니라,
시대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는.. 위대한 부르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부르심을 입은 크리스천이
강한 크리스천이 된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같은 부르심을 입은 자로서,
<내가 받은 부르심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속 살펴보고자 한다.>
▲3. 주님의 과격한 radical 부르심에.. 내가 응답해야 한다.
주님의 부르심은 ‘회개하라’고 부르신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부르심은 과격radical 하다.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전파하신 전도의 첫 마디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선포하신 시점보다
지금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본문 말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를 미래 천국 관점에서 볼 때, *현재+미래, 둘 다 볼 수 있음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가, 2천년전보다 지금 훨씬 더 가까이 와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여러분, 더 과격한radical 회개가 요구될 것이고,
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우리 시대에서, 우리가 사모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오늘 우리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를 농담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경각심과 서두름을 당연히 느껴야 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재림)가 어느 정도 가까이 왔는지
내 가슴에 되새기며,
이제는 그 시대에 맞는 회개와 하나님의 나라를 붙들어야 하겠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형광등’이 아니라, ‘햇빛’ 아래서 신앙생활 해야 한다.
우리가 강해지려면, 더 강력하게 회개해야 한다.
물론 내가 회개하고 싶다고, 그게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이 회개의 은혜를 주셔야 회개하게 되지만,
나와 주님 사이에, 은혜의 선순환과 상승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회개하려고, 기도하고, 신앙생활의 초점을 거기에 맞추고 노력할 때,
주님이 ‘회개하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평소에 늘 회개하는 크리스천이.. 오늘날 시대에 사명을 감당하는 강한 크리스천이 된다.
▲점점 약해져 가는 우리 세대
지금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시대는 점점 더 악惡해지고 있는데,
성도인 우리는, 우리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도
점점 더 약弱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시대와..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 전에 있었던 어떤 시대보다도, 영적으로 더 힘든 시대가 우리 앞에 왔는데,
지금 우리는, 우리 전에 있었던 그 어떤 시대보다도, 영적으로 더 약해져 버렸다.
여러분, <중고등부 수련회> 한 번 해 보면.. 놀라게 된다.
제가 <중고등부 수련회>의 책임자로 섬길 때,
우리는 방침 상, 캠프에 입소하자마자,
캠프기간 3박4일 동안, 핸드폰, MP3, 아이패드 등을 다 수거 보관한다.
그러면 개회예배 한 시간 마치고 나면, 딱 한 시간 지났는데,
남자 애들 몇 명이 ‘항상’ 저를 찾아온다. '항상'이란.. 모든 캠프 팀마다 똑같은 현상
‘저기요, 우리는 집에 갈래요. 여기가 우리에게 안 맞아요.’
‘왜 안 맞아? 이유가 뭐야?’
‘아이, 무조건 싫어요. 우리 핸드폰하고, 지갑 돌려주세요.’
그런 아이들을 붙들고, 오래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진심을 이야기하는데,
숙소가 불편한 것도 아니고, 음식도 입에 안 맞는 것도 아닌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핸드폰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과 온 세계가, 그런 흐름으로 변해 가는 것 같다.
우리 이전보다 더 힘든 시대가, 우리 앞에 당도했는데,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더 약해져 가고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눅18:8
여러분, 그 전의 어떤 시대보다도, 우리 자녀 세대를 더 신앙으로 강하게 양육해야
지금 이 시대에서,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전의 어떤 시대보다도, 지금이 더 악해져 있기 때문이다.
▲4. 제/설교자가 강하게 되기로 결심한 간증
제가 솔직히 고백드리면, 제가 처음에 선교지에 나갔을 때,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 힘들었다.
덮거나/ 추운 날씨에 걸어 다니는 일도 많고, 이동하는 일도 잦아서,
어느 때부턴가 발바닥에 송곳처럼 뭐가 콕콕 찌르는 것 같아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기도만 하면, 하소연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낯선 분이 저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저를 당신에게 보내셔서, 제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혹시 신천지는 아닐까?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잔뜩 경계심을 가지고 그를 대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꼭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목사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 중에,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으로부터 듣기 싫은 한 마디가 있으시답니다.
목사님께서 아이고 힘들다고 하는 말, 하나님이 그 말을 듣기 싫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나를 떠나갔다. 모두 다해서 5분이 안 걸렸다.
저는 그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 날 이후로, 저는 하나님께 한 가지 약속을 드렸다.
‘하나님, 앞으로 남은 제 평생에,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지쳤습니다.. 이런 말은,
제가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 즈음에 이런 말씀을 읽게 되었다.
렘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너는 지금 사람과 함께 달려도, 피곤하다고 불평하면,
네가 장차 말과 함께 경주할 때는.. 어떻게 하려느냐?
너는 지금 평탄한 길을 걸어가면서도, 힘들다고 투정부리면,
장차 요단강물이 넘칠 때는,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느냐?’ 라는 뜻이다.
이때 이런 내적 음성이 들렸다.
‘오늘이라는 날은, 네 삶 속에 있어서 가장 쉬운 날이다.
장차 더 어려운 날이 닥칠 것이다.
앞으로 네가 더 큰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더 큰 어려움이 반드시 닥칠 것이다!’
(그런데 네가 오늘 불평하고 있으면, 장차 앞으로는 어쩔 셈이냐?)
▲5. 복음을 분명히 알아야.. 강해진다.
이 세상의 모든 가르침과 교훈, 공식이 있는데, give and take이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행복하고,
저렇게 저렇게 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의 부르심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살면.. 네가 복 받고.. 저렇게 살면.. 네가 벌 받는다’ 가 아니다. 이건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다.
복음은 이렇다.
‘너는 아무리 잘 살려고 노력해도, 네 힘과 결심으로는, 결코 잘 살 수 없어.
하지만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못 사는 그 인생을
네 대신 온전히 살아주신 주님이 계셔.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죽지 못하는 그 인생을, 네 대신 죽어주신 그 분이 계셔.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히12:2
보라.(바라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이로다!’ 요1:29
여러분, 결국 우리의 믿음은, 엄격하게 말씀드리는 ‘바라보는 믿음’이다.
바라보면서 우리는 변화된다. ☞날마다 십자가를 보라 (강추)
‘나는 무능력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정답이 아닙니다.’
(이걸 ‘자기 부인’이라고 그런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볼 때,
예수님의 능력과, 의로움과, 은혜와, 동기(모티브)를 내가 덧입어서
내가 삶과 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나는 죽고,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도 모두 주님께 돌리고, 자고 하지 않는다.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를 들면, 제가 아는 형제가 한 명 있는데,
그는 한 때, 인터넷 음란 중독에 빠져서 매우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다.
더욱이 자기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정결한 자매를 만났는데,
자기가 그런 음란 중독에 걸린 것이, 양심에 무척 괴롭다는 것이었다.
‘나같이 더럽고 음란한 것이, 어떻게 그 정결한 자매에게 가서 교제해 주세요’
말할 수 있느냐는 양심의 가책이었다.
‘끊으려고, 끊으려고, 결심하는데도.. 되지 않더라’는 솔직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밤새워 갈등하고, 힘들어한다고 했다.
끊으려는 의지와, 유혹하는 유혹의 갈등 사이에서. 그는 번민했던 것이다.
그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기 사정을 다 털어놓고 얘기했다.
그 목사님은 ‘끊으려고 하는 것보다, 그 자매를 더 사랑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자매에게 꽃을 사다주고,
노래를 작사 작곡해서 불러주고,
기타 치며 노래도 불러주고,
퇴근시간에 길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동행해주고..
네가 그 자매를 더욱 더 열렬히 사랑할 때, 그보다 못한 것들은 다 잊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매에 대한 사랑은.. 점점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열렬히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주님보다 못한 세상 것들에 대한 사랑과 열망은.. 접을 수 있다고.. 조언해 주셨다.
일년 후에, 제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년 전에, 그가 고민하던 중독 문제가, 다 해결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신기하게 친구는 ‘자기가 끊은’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매를 미치게 사랑하는 사이에, 다른 잡다한 것이 다 끊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이제는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그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제가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을 잠깐 설명 드린 것이다.
율법은.. 자기 의지로 뭘 끊고, 안 해 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이라면,
복음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기에.. 내가 점점 변화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교육은
‘똑바로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니까, 책임감 있게 살아라!
네가 잘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실패해! 내 팽개침을 당해!’ 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대신에 이렇게 말씀한다.
‘넌 할래야 할 수 없어! 안 돼잖아!
하지만 네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을, 믿음으로 한 번 바라봐!’ 5~10~20분
2천년 전 그 분의 죽음이, 나에게 실상으로 다가올 때,
내 가슴은 터질 수밖에 없다. ☞ 신앙의 본질, 십자가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그 분을 사랑하는 삶의 변화가 내 삶 속에서 타나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경건하게 되고, 성화의 삶을 살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해야지!’ 하는 자기 의지적 결심도..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복음의 본질은 아니다.
그 보다는,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께 우리가 올인 해야 한다.
그때 그 위대한 부르심에, 내가 응답하는,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강해지려면, 본질을 회복해야 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먼저 복음에 합당하게 살 때.. 다른 사람을 복음으로 인도하게 되고,
나와 그들이 함께 강해질 것이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니까!
▲6.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 교훈, 가르침은 공통점이 있는데
‘네가 네 인생의 대장이야, 네가 주인이야, 네가 네 인생을 책임져야 해’ 한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부르신다.
‘너는 왕이 될 수 없어. 네가 왕이 된 게 문제야!
네가 네 가정에 주인이 된 것이 문제야. 그걸 내려놓아야 해
네가 네 인생에 주인이 된 게 문제야. 그래서 네가 지금 힘들어 하잖아.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왕이시고, 나는 왕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내 가정의 주인만 아니었더라도, 내 가정은 산산조각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왕만 아니었더라도, 내 인생은 지금처럼 뒤죽박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다른 왕(예수님)이
내 삶 가운데로 오시도록, 끊임없이 초청하고, 모셔야 한다.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초막이나 궁궐이나 거기가 하늘나라(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 내가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통치)를 선택하고,
그 다스림 아래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장차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간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오늘 현실부터 천국의 삶(주님의 다스림과 나의 순종)시작된다.
오늘 현실에 천국을 사는 사람은..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되고
장차 지옥에 갈 사람은, 오늘 현실부터 지옥의 삶(내가 왕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가 죽어서..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왕이 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요, 그것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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