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준비하는 믿음은? 히11:32~40 설교녹취, 정리
◑서론/ 내일은 환란이지, 평안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언제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제보다 오늘에, 내 믿음 지키기가 더욱 힘들어 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보다 내일에, 내 믿음 지키기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지지.. 쉬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우리의 믿음은, 가면 갈수록, 더 허약해지고 있다.
악해지는 세상과 비례해서, 내 믿음도 더 강해져야 할 터인데, 반비례하고 있다.
만약 내 믿음이, ‘오늘’ 수준에 적합하다고, 만족하고 있다면,
더 힘든 ‘내일’이 되면, 오늘의 믿음 수준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해병대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는데, 제 가슴에 와 닿았다.
The only easy day is the yesterday.
‘우리에게 유일하게 쉬웠다는 날은, 어제 밖에 없다.’
즉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저는 그 구호가, 성경적 종말사상과 일치한다고 본다.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과 정반대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세상은 아무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계속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직장만 잡으면 괜찮아질 거야’
‘결혼만 하면, 다 해결될 거야’
‘집만 사면,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어’
‘경제 회복만 되면, 이제 아무 문제 없어질 거야’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서, 닥쳐올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정신 줄을 놓고서, 근거 없는 낙관론을 믿고서 살아가고 있다.
평생을 ‘앞으로 괜찮아 질거야’ 하면서 살아왔는데,
돌아보면 ‘전혀 괜찮지 않은 삶을 계속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계속 ‘앞으로는 괜찮아 질거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가면 갈수록 경제 문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부의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기근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그리고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도,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심해지고 있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더 급해지고, 더 악해지고, 사랑은 더 식어갈 것이다.
여러분, 20여 년 전의 88올림픽 때와, 지금 2012년을 한 번 비교해 보시라.
그때도 ‘돈, 돈’하며 살았지만, 지금처럼 ‘돈, 돈’하지는 않았다.
지금이 훨씬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주의 사회’가 되었다.
다른 사회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와, 앞으로 20년 후 우리 사회를
한 번 추측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의 믿음 수준으로 절대로 만족하면 안 되고,
더 어려워질 내일을 대비한, 더 견고한/진정한/본질적인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은 더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고,
거기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대비하지 않으면,
내일의 교회는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진짜 그대로 응하게 될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며, 오늘 내가 믿음으로 몸부림쳐야 한다.
믿음이나 경건의 삶도..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꾸준히 분투노력하는 삶을 때.. 그것이 미래에 내 믿음을 굳게 세워지게 할 것이다.
◑본론/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믿음
히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 여기서부터 반전 ........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앞으로 점점 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기 힘들어지는 시대에,
내가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믿음으로는.. 안 되고,
보다 강한 믿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위 본문이,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믿음이란, 前者
위 본문 33~34절에 나오는 예이다. 즉,
-중병에 걸렸을 때..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낫는 믿음이다.
-사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믿음이다.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나의 오른 팔이 되셔서, 홍해를 열어주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려 주시고, 여호수아처럼 승승장구하는 식의 믿음이다.
▲앞으로 준비해야할 믿음이란, 後者
위 본문 35~38절에 나오는 예이다. 즉,
-중병에 걸렸을 때..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낫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이다.
-사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위기가 해결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뜻과 섭리를 믿는 ‘욥 같은 믿음’이다.
-문제를 만났을 때.. 위 본문처럼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고, :37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더라도, :38
계속 자기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신실하신 뜻이, 자기 삶에 이루어질 줄을 믿는 믿음이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라고 하였다. :38
우리는 이제까지 계속 전자前者만 강조해 왔다. 성경의 일면만 강조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후자도 함께 강조해야 한다. 성경엔 반대 측면도 분명히 증거 한다.
후자後者의 믿음의 길을 먼저 가신 선구자들이 계셨다.
일례로,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순교자들이다.
그들도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빨리 석방되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온 성도들도,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외면하셨다.
나중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를 바꾸었다.
처음에는 ‘전자의 믿음’으로 기도하다가, ‘후자의 믿음’으로 바꾼 것이다.
‘전자’도 물론 믿음이지만, ‘후자’도 어쩌면 ‘전자’보다 더 큰 믿음이다.
▲성경에 보면, 전자의 믿음도 나오지만, 후자의 믿음도 나온다.
행12:7에,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성도들은 열심히 기도했을 때,
천사가 와서, 그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서, 기적적으로 그를 구해냈다. 前者
그런데 같은 장 행12:2에 보면, 사도 야고보는 그보다 앞서 옥에 갇혔는데, 後者
그는 거기서 순교하고 말았다.
왜 누구는 옥에서 구출해 주시고,
왜 누구는 옥에서 순교하게 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섭리요, 하나님의 역사운행의 경륜이다.
우리는 두 경우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는,
언제나 기적적으로 낫고/해결되고/승리하는 응답을 달라고.. 주로 기도드린다.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닥쳐올 더 힘든 미래를, 능히 이길 수 없다.
미래를 대비하는 믿음을 준비하려면,
기도해도 낫지 않고/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내가 기적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신 뜻을 믿고, 그 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믿음으로 연단된 사람만이
앞으로 닥쳐올 ‘더 힘든 미래’에 준비된, 적합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가 미래에,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앞으로 주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 길로 인도해 가실 것이다.
우리가 이런 (후자의) 믿음을 준비해야 하는 열심도 필요하지만,
주님이 강권적으로 이런 (후자의) 믿음의 길로.. 택하신 백성들을 인도해 가실 것이다.
▲성경에는 전자, 후자.. 둘 다 나온다.
33절에,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으나,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동물원에 가면, 사자나 호랑이가 늘 누워자는데, 낮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동물들은, 야행성이라서, 밤에 주로 활동한다. 그런데 동물원은 밤에 문을 닫는다.
그런데 낮에도 동물들이 활동할 때가 있는데, 먹이를 줄 때이다.
특별히 좀 굶주린 맹수들은, 먹이를 줄 때보면, 으르릉 거리며 달려드는데, 정말 무섭다.
다니엘이 ‘쉽게’ 그 시험을 통과했다는 뜻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그 시험을 통과하고 승리했다.
그래서 전자의 믿음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후자의 믿음은 더 어렵다.
그런데 37절에 ‘톱으로 켜서 죽은 분’은, 이사야 선지자이다.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구전으로, 그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때,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사야에게는 ‘기적적인 생환’이 없었던 것이다.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위 구절은, 신구약 중간기 때,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압제 밑에 있을 때,
또 심하게 핍박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때
시리아는, 유대교 신앙을 버리게 하려고,
유대인들을 가족 단위로, ‘여호와를 부인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게 했다.’
거기에 불응하면, 가족이 보는데서, 식구들을 어린 아이부터 한 명씩 차례로 처형했다.
그것도 아주 잔혹한 방식으로.
(히브리서는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인데,
유대인들은, 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들은 35절을 보면 ‘아, 그 이야기!’하고 척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때 유대인의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들들 곁에서
‘아들들아, 절대로 여호와 신앙을 부인하지 말라. 더 나은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하고,
자기 자녀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외경 마카비서에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는 설교를 듣거나, 신앙서적을 사서 읽어보면, 99% '전자'의 이야기만 듣는다.
-누가 기적적으로 불치병이 나았다더라
-누가 기적적으로 사업의 부도를 딛고, 일어났다더라.
-누가 새벽기도 했더니, 기적적으로 자녀 문제가 해결되었다더라.
물론 그것도 성경에 다 나오고, 또한 거짓말로 지어낸 간증도 아니고, 사실이다.
기적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그런데 문제는, 우리 믿음이 편향되어버리고, 우리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항상 우리는 기적적으로 낫고/성공하고/문제가 해결되는 것만 바랄 때.. 그렇다.
그러다가, 병이 낫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십중팔구 실족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 현실은, 사실 훨씬 더 많은 퍼센트%는,
-아무리 온 교회가 합심 기도해도.. 암이 낫지 않고.. 죽었더라.
-누가 금식으로 기도하고 매달려도.. 사업의 부도가 해결되지 않고, 망했다더라.
-누가 아무리 새벽기도 해도.. 자녀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더라.
이런 경우가, 우리 주변에 훨씬 더 많다. 아마 9대1 정도로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낫지 않고/해결되지 않고/아무리 기도해도,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신비한 뜻이 발견되어지고, 회개하게 되고,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런 역사가 얼마든지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가 암에 걸려서, 죽어버렸는데,
그의 아버지가, 자녀의 죽음을 통해, 크게 회개하고, 헌신하고 일어나게 된다든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쫄딱 망했는데.. 그가 이런 환란을 계기로 성령충만을 받고,
세상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업에 헌신하게 되었다든지..
-그는 감옥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통가운데 순교했는데,
하나님이 그 순교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훗날 한국교회에 부흥을 허락해 주셨다든지..
이 설교의 주제는
<전자의 믿음만 갖고는, 앞으로 미래의 더 어려운 시기를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믿음은.. 성경의 일면(한 면)만 보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만 믿고자 하는..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 기복주의적 믿음만을 갖고는, 앞으로 닥쳐올 환란/유혹의 시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의 믿음과 아울러, 후자의 믿음도 함께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미래의 환란과 유혹의 시대를.. 잘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욥과 같은 환란, 시험이 닥쳐도..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요동하지 않는다.
위 본문 히11:35~38절처럼, 그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된다.
어떤 고난이 연속적으로 닥쳐도..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절대 의심하지 않고,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 사역에는.. ‘한 알의 밀알’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왜 세례요한은 감옥에서 아깝게,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자기 목숨을 드렸는가?
왜 예수님은, 30대 초반의 한창의 나이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셨는가?
왜 사도바울은, 부귀영화를 못 누리고,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결국 순교했는가?
예수 믿고.. 병 낫고/축복받아 성공하고/문제가 해결된 사람도 있지만,
왜 예수 믿고.. 유리하며 암혈과 토굴에 거하는 사람도 있는가?
기독교의 원리, 십자가의 원리는
누군가 죽어서(또는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원리이다. 자기는 손해만 보고 죽는다.
누군가 죽거나 희생하는 일이 없이는.. 타인을 살리거나, 그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사는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생명이 역사하려면, 누군가에서 사망이 반드시 먼저 역사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충성스런 성도에게, 신실한 하나님의 종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당신에게 ‘고난’이 없는가? 그래서 즐거우신가?
당신이 의인이라서 고난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신을 통해서 나타날 ‘생명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당신의 삶이 평탄한 것이다.
오늘날 당신에게 ‘고난’이 있는가? 그래서 말할 수 없이 괴로우며, 비명이 나오시는가?
당신이 지은 죄로 인해서, 고난(연단과 징계)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당신을 통해서 나타날 ‘생명의 역사’ 때문에.. 당신의 삶이 비명의 연속인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민족사적으로,
일제 치하 36년과, 625한국전쟁을 통해, 많은 고난의 순교자들을 배출했다.
치를 떨며, 하나님을 원망했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가셨다.
그것은,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열매와 혜택을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뒤따르는’일이 반드시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런 과거를 깡그리 다 잊고서,
내가 부자 되고 성공하면.. 내가 예수를 잘 믿어서 그렇고,
그가 가난하고, 삶이 힘들고, 병들면.. 그가 예수를 잘 못 믿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부자 논리’이다. 성경적 개념이 아니다.
‘내가 부자된 것은, 예수를 잘 믿어서 그랬다’는데,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보란듯이 성공한 사람도, 귀한 사람이지만,
오늘날 그 보다 더 위대하고, 더 필요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다.
누군가 그 사명을 감당해 주어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결실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누군가의 순교와 희생의 열매를, 내가 따먹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잘 믿어서 부자되고 성공했다'고.. 자고하고, 착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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