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되어지려면 눅10:38~11:1 출처보기
눅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되는 기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기도를 시키셔서, 기도가 저절로 술술 잘 되어질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매우 희박하고요..
우리 삶의 현실은, 억지로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잘 안 나옵니다.
좀처럼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문제 제기
▶본문은 눅10:38~42의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연이어서, 기도에 관한 내용이 연속적으로 계속 나옵니다.
눅11:1~4에, 주기도문이 나오고,
이어지는 11:5~8에, 강청기도가 나오고,
이어지는 11:9~13에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역시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와
‘기도’에 관한 주제를.. 한번 오버랩 해서 (겹쳐서).. 이 시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을 즐겨 하는 마리아를 향하여
‘네가 좋은 편을 택했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마르다는 지금 빼앗긴 상태입니다.
왜 빼앗겼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많은 일에 분주하여 염려하고 근심하여 빼앗겼다’
마르다의 마음이, 이 땅 위에 있는 일들에 빠져서, 흐트러져 버렸다는 얘깁니다.
마르다는 지금 현재 연결되어야 되는 천국을 빼앗겨버린 상태라는 겁니다.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식사 준비 등)에
마음이 다 흐트러져서.. 천국을 빼앗겨버렸습니다.
▶‘드라마 폐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드라마 보는 일에 너무 열중해서, 밤새도록 보고,
직장생활/학교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거기에 푹 빠져듭니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드라마에 빠져버리게 되면
실제로 내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실보다도
드라마를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실제 자기 현실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될 경우,
이걸 ‘드라마 폐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 설교문의 주제는
‘기도할 때는, 내 마음이.. 현실 세상을 멀리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예에서 보듯이,
현실 세상의 염려와 분주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천국에서 멀어집니다.
‘드라마 폐인’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마치 드라마에 열중한 사람이.. 세상일에서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처럼,
기도할 때는 마치 ‘세상 폐인’처럼..
세상의 분주함, 염려에서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가 되어집니다.
이 주제를 염두에 두시면서, 계속 읽어보십시다.
▶실제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
천국이.. 제1현실이고,
우리의 일상의 삶은.. 제2현실입니다.
‘아,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고 있는, 이 지구의 현실의 상황은
2차 현실일 뿐이고, 내가 이렇게 마음을 쏟을 대상이 아니구나!’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즐겨 듣던 삶의 자세입니다.
천국이 중요하고, 영생이 중요하니까.. 이게 제1순위고,
현실은 제2순위로 자연히 밀려나는 것이죠.
현실도피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현실을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1순위는 아닙니다.
이게 내게 좋든지/싫든지.. 엄연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항상 <현실을 1순위>로 살고, <천국을 2순위>로 사니까,
신앙생활을 수 십 년 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입니다. ☞<현실> 관련글 모음
▶예를 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서 전력질주 합니다.
근데 주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말을 딱 해버립니다.
천국을 1순위로, 현실을 2순위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이걸, 본문의 주제인 <기도>와 연관시키면,
기도할 때.. 마치 마리아처럼
‘현실을 좀 떠나서, 천국을 1순위로 사는 가운데.. 기도해야.. 비로소 기도가 된다’
는 것입니다. 주제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내 마음이, 마르다처럼, 세상 분주함과 염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의 현실’이 언제나 나의 삶의 1순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마음 바탕>이, 아예 준비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 내가 기도하는 제목들도 ‘삶의 현실’ 위주입니다.
이것 주시옵소서, 저것도 주시옵소서..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거의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제/태목사의 어머니가 여든 셋이 되셨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자주 전화를 하십니다.
제가 하는 인터넷 설교방송을 듣고 계세요.
들으시면서, ‘애쓴다, 고생한다, 요즘 교회가 흘러가는 그런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교하고 있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네 모습이 참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언제나 반복해서 하시는 조언이 있습니다.
‘다 좋은데 설교시간마다 기도를 강조해라’
‘설교시간마다 기도를 강조해야지, 사람들은 기도하라고 강조하지 않으면, 기도를 안 한다.
그러니 기도하라고, 반드시 설교시간마다 이야기를 해라!’
제가 맨날 조언을 듣는데도.. 그게 잘 안 돼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참 재밌어요.
눅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을 알고, 예수님에게 간청합니다.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저희 어머니 말씀대로라면,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예수님이 미리 알아서, 가르쳐주셨어야지요.
예수님 당신은 기도하십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이렇게 늘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잠잘 때 몰래 일어나서 새벽미명에 이슬 맞으면서 기도하시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할 때까지
왜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고 계셨느냐? .. 이겁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하기도 전에,
그 좋은 기도.. 예수님이 먼저 강조하시고, 가르쳐 주셨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기도라는 것은, 하라고 가르쳐서 될 일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근본적으로 기도라는 것은, 마치 이것과도 같아요.
소개팅을 시켜주었더니, 두 젊은 남녀가 아주 좋아죽고 못 삽니다.
그 사람들에게 ‘데이트해라, 데이트해라!’ 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 하지 않아도, 회사 근무 때문에 애인을 못 만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고,
이들이 24시간 원하는 게 데이트입니다.
둘이 만나서, 함께 같이 시간 보내는 거예요.
기도라는 게 바로 하나님과의 데이트입니다.
이것은 권면해서 될 일이 아닌 거라서,
그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되어지고,
천국을 나의 제1현실로 사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남녀가 데이트 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기도를 잘 못 하는가 하면,
마르다처럼.. 세상일에 마음이 너무 분주하고, 빠져 있습니다.
세상 일이, 내 삶의 제1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데이트’ 예를 들어볼까요?
철수와 영이가 데이트를 합니다.
그런데 영이의 마음이 ‘직장 일, 친구 일, 명품 액세서리’에 빠져 있습니다.
철수는 영이와 만나기는 했는데, 서로 동상이몽입니다.
전혀 대화나 교제가 진전되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멀뚱멀뚱 합니다.
지금 우리들의 기도가.. 대부분 이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러, 교회의 기도실에 가서 앉아도, 기도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설교자가 해야 될 중요한 포인트는
무작정 ‘기도를 하라’고 강조할 게 아니라는 거예요,
먼저 이 지구(현실의 삶)를 탈출해서
내가 천국을 나의 제1현실로 살지 않고는,
즉 내가 현실의 늪(또는 밀림)에 빠진 상태로는
거기서부터 탈출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고는,
기도가 아예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 잘 되게, 돈 잘 벌게’ 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떤 자아도취, 자기최면(말이 심하다면 양해 바랍니다.) 상태에서
일정기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기도.. 억지로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마 길지 않을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데이트’이지.. 상호교감 하는 ‘데이트’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실제 현실에,
‘자기 현실적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시작했다가,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마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낫게 해 달라고..
사업이 실패해서, 도와 달라고..
그런 목적으로 기도를 시작했다가..
성령충만을 받고, 회개하게 되고, 기도의 용사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다행이지요.)
그런데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기도의 기본적 개념>에 있어서, 올바른 성경적 지식이 없어서,
처음에는 성령받고 기도의 용사가 되었으나, 그 후에
‘자기 현실적/기복적 기도 제목’으로 계속 일관하다가는
그의 기도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기도생활을 흐지부지하게 될 것입니다.
초신자가, 처음에 멋도 모르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은혜로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오래 다닌 신자가, 계속 ‘현실 위주’로 기도할 때는.. 기도가 막힙니다.
▶마치는 말
기도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은
데이트하고 싶어서 미치는 두 남녀에게
‘데이트 하라’고 굳이 권면할 필요가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기도가 막혀있다면’
그 이유는,
마르다처럼.. 너무 현실의 분주함, 염려의 정글 속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많은 이들의 기도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마6:31~32
그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기도를 통해 천국기운을 받게 되고, 그러면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므로..
그는 기도가 더 잘 되는.. 어떤 선순환이 이루어지겠지요.
그러므로 말씀은 하늘(천국)을 드러내주는 것이고,
지금 내가 지구에 함몰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각성시켜주는 것이고,
그러면 그 말씀으로 각성되어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 내 마음이 지구의 상황을 탈출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 현실의 삶의 정글에 갇힌 상태로부터
말씀에 의해 각성되어서,
날마다 천국과 그곳에 계신 아버지를 향하여 탈출하는 기도를
날마다 드림으로써
그 천국을 갖고, 천국으로부터 다시 이 땅에 내려와 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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