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2

생명의 계보 / 허운석

LNCK 2013. 1. 16. 21:50

 

생명의 계보              롬8:35~39                    12.11.08.설교녹취 출처보기

 

이 시간 저는, 제 연약함과 제 어리석음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것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 한번은 서울에 오셔서 설교하실 때,

 

제가 듣고서, 굉장히 큰 은혜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요한의 일생에 대해 설교하셨는데요,

 

‘사도요한은 사도행전3장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다음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중에 요한계시록과 요한서신서에서 재등장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다니시면서, 사도요한은 어떠셨을까요?’ 

 

 

 

 

 

제가 그 설교에 큰 은혜를 받고서,

 

그 후로도 제 가슴 깊이 그 말씀을 새겼습니다.

 

 

 

 

 

왜 그 말씀이 제 가슴속에 새겨졌느냐 하면,

 

이것이 오늘 제 설교의 주제와도 일치하는 내용인데요.

 

 

 

 

 

그 당시에 젊은 사도요한은, 자신이 아마 크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에게 맡기신 사명은, 늙은 여인을 돌보는 일(사명)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우리가 사명 감당하고, 주의 일을 힘껏 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면서,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도.. 무슨 큰 업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도, 그렇게 사도요한처럼 사라지라고... ‘제발 네가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온전히 네 육신이 죽은 후에, 내가 네 삶을 통해 나타났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통해서 나타났으면 좋겠으니까, 네가 조금 물러나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느낍니다.

 

 

 

 

 

그런데 처음에 저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죠. 어떻게 제가 망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제 목을 길게 빼서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사람들도 나를 알아주고.. 그런 삶을 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것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 한동안 그런 완고한 자세로 살았으니,

 

하나님이 저를 성숙시키시기 위해서, 저를 얼마나 징계하시고, 막대기로 연단하셨겠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길을 가다가 문구점 앞에 있는 ‘두더지 잡기’ 게임을 보면서, 참 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저게 꼭 내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두더지 잡기’ 게임은, 

 

동전을 넣으면, 여러 개의 구멍에서 두더지가 불쑥 불쑥 올라옵니다.

 

그러면 사람이 그 두더지 머리를, 몽둥이로 사정없이 마구 두들겨 팹니다.

 

두더지가 구멍 속으로 다시 들어가라고요.

 

 

 

 

 

그 두더지의 모습이, 꼭 제 모습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는 들어가라. 너는 죽으라’고

 

하나님이 저를,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시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저뿐만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자기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막대기와 몽둥이로 징계하십니다.

 

 

 

 

 

오늘도 제가 잘못하다가, 두더지 방망이 또 한 대 맞았습니다.

 

그 맞는 즐거움처럼 행복한 것이 제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를 두들겨 패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만들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본심을, 제가 깨닫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 바랍니다. ‘이거 밖에는 없어!’ 하십시오.

 

주님께 연단과 징계를 받는 즐거움입니다.

 

 

 

 

 

내가 가짜라는 것. 내가 주님 뜻에 거스르는 본성이 내 속에 있다는 것!

 

그렇게 내가 벌거벗겨지듯이 적나라하게 발각되는 것처럼

 

제게 행복한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약 제가 주님께 제 본성이 들키지 않고, 제 죄성이 발각되지 않으면,

 

제가 철저하게 회개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러면 주님께 존귀하게 쓰임 받지도 못할 것이나...

 

 

 

 

 

그러나 제가 발각되어지고, 들켜지면서.. 제가 또 돌이키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두더지처럼 주님께 얻어맞는 것이 한편으론 즐겁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러면 여러분과 저는, 대단히 고단수의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을 여셔서, 우리의 실상을 보게 하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인지...

 

저는,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항상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야곱의 얍복강 씨름을 아시죠? 야곱은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서 늘 대적하고 투쟁하고 싸우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결국은 환도뼈가 부러지고나서야, 비로소 항복하고,

 

그 가운데서 평안을 되찾는 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겪게 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새벽에, 교회에 기도하러 나오셨지만, 여러분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어떤 분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기도를 안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않을 것인데,

 

새벽에 차를 몰고 교회까지 나와서, 밖에 눈도 오네요.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뜻대로,

 

‘이것을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기도할 때, 그렇게 됩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혜로, 자신의 대적하는 본성을 깨닫고,

 

‘주님, 잘못했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렐루야!’ 하며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러 새벽에 나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러 나오는 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신의 뜻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환란과 질고로, 우리에게 깨우쳐 주십니다.

 

그 환란과 질고 가운데서 신음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기 죄성과, 죄악을 발견하게 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주께서 돌봐 주시는 은혜가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 하셨지요?

 

 

 

 

 

우리가 뭘 얻기 위해서, 뭘 타내기 위해서.. 그래서 기도를 드리지만,

 

하나님은, 뭘 응답해 주시기보다는,

 

그 기도하는 사람을 도리어 두들겨 패서,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로 기도를 마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기도 조심해서 하세요!

 

 

 

 

 

혹시 이 자리에 ‘내가 주님을 철저히 대적하는 사람인 것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왕바리새인입니다.

 

진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때려죽일 수 있는 혈기가 충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물론 안 되지만) 때때로 우리가 주님을 죽여 봐야 됩니다.

 

그래야 ‘아 내가 그렇게 죄를 지었구나..’ 하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죄를.. 여러분이 지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즉, 여러분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처절하게 깨달으시나요?

 

 

 

 

 

내가 가인이고, 내가 라멕이고, 내가 바벨탑을 쌓은 사람이고,

 

내가 예수님을 판 유다이고, 내가 바리새인이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발견 되셨습니까, 아직 안되셨습니까? 어떠십니까?

 

 

 

 

 

그것이 발견되어지는 것은, 일생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주님, 제가 가인이고, 제가 바벨탑을 쌓은 인간이고,

 

하나님, 제가 라멕이고, 하나님, 제가 가룟유다입니다.

 

제가 바리새인 중에 왕바리새인입니다.’

 

 

 

 

 

일생에 걸쳐서, 내 본성이 점점 더 들통 나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회개하는 겁니다.

 

그래서 양파 껍질을 벗겨 나가듯이, 일생에 걸쳐서,

 

속이 남지 않을 때까지, 나를 계속 벗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의 일생을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성공과 업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잘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는 죽음을 몇 번이나 통과하고서야,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저처럼 그런 고통의 경지를 경험하지 않으시고도,

 

깨달으실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암으로, 죽음의 고통을 몇 고비나 넘기는, 그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 매를 연거푸 맞지 않았다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며, 우리는 일평생 회개하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업적과 성취가 먼저가 아니란 사실..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말기암으로 고생하는 저를 보시고, 그냥 헛수고를 하지 마세요.

 

그냥 일찌감치 ‘주님, 제가 왕바리새인입니다..’ 라고 고백해 보세요,

 

 

 

 

 

그럼 주님이 ‘그래, 맞아!’ 하시며, 1초도 안 걸리고,

 

주님이 즉시 우리 귓가에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제가 바로 가인입니다.’

 

제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제가 압니다.

 

그것이 바로 가인의 마음 아닙니까! 예수님의 마음과 반대되죠.

 

 

 

 

 

하나님은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어떠한 성취를 이루었고, 내가 얼마나 의롭고,

 

내가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기 이전에,

 

 

 

 

 

오직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서,

 

내 마음이 상해지고, 아파질 때,

 

그제야 주님께서 내게로 다가오십니다.

 

 

 

 

 

얼마 전에 제가 강나루 장로회 신학대학교 채플에 가서,

 

그 신학생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이상해 졌는가요? 왜 이렇게 타락했는가요?

 

그것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설교를 하니까,

 

거기에 모인 분들이, 술렁거렸습니다.

 

‘저 선교사가 말기암에 걸리더니, 정신이 이상해져서, 헛소리를 하는 거냐?’

 

하는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 말 뜻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다 주야로, 욕심으로, 자기 자식만 잘 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사탄이 그 틈을 타서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이 있는 자리에, 사탄이 반드시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틈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탄도 말씀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용기와 담력을 준다는 것 아세요?

 

하나님을 더 많이 대적하라고, 우리에게 용기와 담력을 준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탐욕으로,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때 그렇습니다. 오히려 마귀가 틈타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기도하면,

 

즉 자기 욕심과 야망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면,

 

마귀도 거기에 ‘마귀의 기름’을 붓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못된 확신을 강하게 심어줍니다.

 

 

 

이 (마귀가 주는) 확신 속에 우리가 걸려들면, 우리는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하고 나면,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숙과 성화에 있음을 깨닫고,

 

비로소 기도제목을 변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욕심과 야망은.. ‘주님의 뜻대로’에 맡겨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 일생에 일어나는 성화와 성숙의 과정입니다.

 

 

 

제가 아마존에 선교사로 가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많은 징계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새벽 3시반에 일어나서 기도했습니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오도록 강력히 부르짖었습니다.

 

선교지에서도, 얼마나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까.

 

그러니 새벽마다 내 뜻대로, 목이 쉬도록, 강력히 기도를 드렸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제가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것을 분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단과 징계를, 그 영혼의 그 고통을 겪게 하셨는지요.

 

(여러분은 제발 이런 고통 없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게 암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늘 제 가슴속에 ‘오, 복된 암이여! 정말 그대가 아니었으면,

 

내가 예수님이 진정 누군지도 모르고, 저는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라고 독백처럼 말합니다.

 

 

 

너무나 두렵고 떨리고 무서운 것입니다.

 

글쎄 암이 안 걸렸다고 가정한다면,

 

제가 복음과 기독교의 진리를, 아마 깨닫지 못하며 살다가,

 

그렇게 제 인생을 허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계보(남은 자, 구속사)를 일으키시는데, 굉장한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거나, 원하는 것은,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내 가정이 잘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 위주로 신앙생활하는 것은 굉장히 초보적이고, 미숙한 것이며,

 

어쩌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초보적 신앙을 가진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삶의 기초를 흔드셔가지고, 다시 기초를 새로 쌓게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기초를, 내 인생을 무너뜨리는 지진을 일으켜서라도, 완전히 허물어 버리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초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생명의 계보로 들어가도록! 여기에 하나님은 너무 너무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렇게 허물어뜨리고, 새로 세워 가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너무 지독하시다 할 정도로,

 

제가 만난 하나님은.. 우리가 아파하는 것에.. 꿈쩍도 안 하십니다.

 

아주 뭐 요지부동이십니다.

 

 

 

당신을 그리스도(내 인생의 주권자)로 계시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인정 사정 봐 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만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누가 이기겠습니까. 우리는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고통을 받아보십시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흙입니다. 흙먼지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상황(흙먼지, 죽음의 고비)까지 안 가보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가 봐서 압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최근에도, 하나님 때문에, 우리 가정에 시험 든 일이 있었습니다.

 

제 딸이 30대 초반이 되었는데, 아직 시집을 못 갔습니다.

 

 

 

아니 자기 친구들은, 대부분 다 시집을 가서,

 

애도 낳고, 오순도순 재미있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우리 부부가 이렇게 아마존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고 그러면,

 

주님이 특별히 큰 혜택은 아니더라도,

 

남들 집 딸들처럼, 시집도 좀 잘 가야 될 것 같은 것이.. 제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제가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은, 먼저 우리 남편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딸이 시집을 못 간 것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해서, 집에서 날마다 투덜거리는 겁니다.

 

‘아니 내 딸이 얼굴이 못 생겼나, 학력이 모자라나..

 

이놈의 남자 자식들은, 다 눈이 멀었나, 왜 우리 딸을 안 데려갈까..’

 

 

 

그러니까 우리 식구 모두가, 하나님께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하나님이, 딸의 시집 문제에 대해, 전혀 안 도와 주시는 것 같으니까요!

 

 

 

사실 딸은, 엄마 때문에 시집을 아직 못간 이유도 있습니다.

 

암환자인 엄마를 돌보고, 밥해서 먹이고, 병원에 데리고 다니느라..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친구들은, 버젓이 다 시집가서, 애기 낳고 잘 산다 말이에요.

 

그걸 보면, 한편으로 심기가 불편해 집니다.

 

 

 

남편은 막 신경질을 내면서, 하나님께 짜증을 내듯이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아내인 저도 그 영향을 입어서, 시험에 들었고,

 

우리 딸도 아주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는 남자청년이 보이기만 하면, ‘혹시 이 형제가 우리 사위가 아닐까?’ 싶어서,

 

저도 막 헛물을 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막 걱정이 되면서.. 저도 이렇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제게, 하나도 보탬이 안 되니까, 당분간 결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험에 들어서 야단법썩이었는데,

 

그 즈음에 제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 주님 용서해 주세요, 우리 딸의 심령 가운데, 주님이 진정 주가 되실 때까지,

 

주님께서 양보하지 않으신 것을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회개 및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딸이, 아직 성숙한 신앙으로, 진정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신앙심이

 

부족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아직 시집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시고,

 

그걸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딸의 생애에, 반석이 되시기 위해서,

 

딸하고 격투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시집을 안 보내고..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라면.. 체면이고 뭐고, 사정을 안 봐 주십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가, 주님을 조금 멀리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제 경험상 그렇게 했다가는.. 더 많이 얻어맞습니다.

 

 

 

학교에서나 군대에서도 그렇다고 하지요?

 

혼이 날 때는, 순순히 그걸 받아야지.. 반항하면.. 더 가중 처벌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꼴 보기도 싫어요’ 라고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더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딸이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서 잘 살고,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주님은 우리 딸을 다루시고, 연단시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를 만들기 원하시니까,

 

딸의 생애를 비비꼬이게 만드시고, 고통을 주시는 겁니다.

 

 

 

제가 그 섭리를 깨닫고, 주님께 항복하고,

 

그 주님의 섭리를 고스란히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제가 다시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지독하게 우리를 성숙시키시는 분이신줄 알면서도,

 

또 깜박 잊어버린 것이죠.

 

 

 

하나님은, <생명의 계보>에 내 생명이 들어가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은 내 체면이고 뭐고.. 아무 것도 봐 주지 않으십니다.

 

 

 

기어코 환도뼈(우리의 가장 귀한 것)를 쳐서라도, 우리를 ‘내 자아의 죽음’으로 몰아가십니다.

 

 

 

우리 옛사람에 대해서! 내 뜻에 대해서, 죽음으로 몰아가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싸움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 손길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은 평생, 하나님보고 뭐 달라고 조르는 것.. 그만 하세요.

 

그거 하나님이 안 들어주세요. 제 말을 믿으세요.

 

 

 

‘뭐 해결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초신자 때나 하는 것이지..) 빨리 포기하세요.

 

아예 그분은, 그런 것 안 들어 주시더라고요.

 

 

 

아주 제가 쎄빠지게 기도하고, 금식, 철야.. 그런 것 예전에 밥 먹듯이 했습니다.

 

제가 그런 분야에 아주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것은, 그런 나의 이기적 요구를.. 주님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생명의 계보>에 나를 포함시키기 위해서,

 

무지막지한 연단과 고난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이 설교를 들으시고, 제가 당한 것과 같은 연단과 고난을 겪지 마시고,

 

이 진리를 깨달으시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부름에, 순순히 따라나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실 때는, 그만한 은사를 안 받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든지, 물질적 축복, 승진 이런 은사/선물을 받을 때는,

 

여러분, 한 편으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은사/선물을 왜 주시는지 아십니까?

 

이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런 이유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영적 성숙을 위해, 어려움이 닥치고, 환란이 닥치면,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아주 주님이 꼴 보기가 싫어집니다.

 

주님이 전혀 내게 보태주시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채찍과 당근같이.. 너무 채찍만 주시면 힘들어 포기하니까,

 

당근(은사)을 곁들여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그거(은사/선물) 받았다고, 너무 좋아만 할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좇아 다니면서, 우리를 망하게만 하시지, 우리에게 보탬이 안 되십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하셨죠?

 

 

 

그러니까 ‘주님 뭘 해결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는 일찍 포기하십시오.

 

포기하시고, ‘주님 빨리 그러면 제 속에서 나타나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옵소서.’

 

그런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 주님의 뜻은, <나를 주님의 거룩한 계보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즉, 남은 자로 택하시기 위해서, 제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환란과 연단을 줘서, 저를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해 볼 테면 해 보세요!’ 그렇게 대들지 마세요.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렇게 대들다가

 

주님이 저를 말기암에 걸려서 날마다 허덕거리게 하시고,

 

아주 제 육적 자가 조금만 좀 살아서 움직이고 그러면.. 또 확 죽여 놓으십니다.

 

저를 죽음(암)하고 딱 묶어놓아서, 오도 가도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제 같이 머리가 둔한 사람은, 몸으로 겪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설교를 듣고 깨달으시고, 시간과 고생을 많이 절약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죽음의 선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섭리에 순복하는 완고한 사람이니까, 그런 극심한 고생을 겪게 하셨지만,

 

 

 

여러분은 제발 이 설교를 들으시고, 순순히 주님께 순복해서,

 

쉽게 그 <생명의 계보>에 포함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끝까지 코너에 몰려서 깨닫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발!

 

여러분은, 저를 보시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실 얘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제가 깨닫기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줄 알았는데,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이 더욱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입니다.

오직 거기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말기암이라는 이 엄청난 고통을 겪어오면서,

 

또 성경을 주님이 제게 열어주시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까지 누구만 계시하고 계시느냐 하면

 

예수님만 계시하고 계십니다. 여기에만 열심히 있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땅히, 예수님의 고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는, 한편으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좀 내 인생이 풀리고 잘 되어보려 했는데, 오히려 쫄딱 더 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복과 성공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솔직히 과거에 저는 ‘어떻게 좀 하나님 믿어서 한 자리 차지할까?’ 하는 것이

 

제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셨죠?

 

 

 

그런데 여러분이 좀 더 주님과 가까워지고, 적극 헌신을 하려고 하면,

 

그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각자가 미숙해서, 탐심을 갖고 있으니까,

 

그 탐심을 자극해서 이루게 하려고, 사탄이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우리를 자극해서, 자꾸 탐심을 더 갖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이 아니라, 자꾸 다른 것을 구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성공을 구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뭇매를 맞는다니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성화시켜서, <거룩한 계보>에 포함시켜서 천국에 데려가셔야 하니까요.

 

 

 

여러분이 어서 빨리 성숙해서,

 

사탄의 역사를 좀 더 잘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탄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십자가와 고난>에 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세요!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어린양 예수 밖에는!

다른 포커스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아가 절대로 잘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과 불을 통과하는, 극심한 시련을 지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은, 은혜로, 그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려고 버둥거리면, 그때는 더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에 던지실 때는, 그저 빨리빨리 내 자아가 스스로 죽는 것이..

 

가장 빨리 살아나는 길입니다.

 

 

 

벌써 암으로 사경을 몇 번 넘긴 경험이 있는 저는,

 

제 육신이 죽는데도 관심이 없고, 사는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툭툭 저를 건드리시면,

 

또 내 죄성과 연약함이 들키면서, 주님께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아이고 주님, 제가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네요!

 

주님, 또 연약한 제 모습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 선교사는, 장신대에서 수여하는 <언더우드 상>을 받으러, 한국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 연약한 점을 가르쳐 주고 가셨어요.

 

 

 

제가 확 짜증을 내니까, 남편이 제게 그러셔요.

 

 

 

여러분, 제가 보니까, 성질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변하는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면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냥 그 성질 나쁜 것 때문에, 겸손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남보다 나은 게 없으니까요.

 

그 성질로 인해서, 내 꼬라지를 알고, 남을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아는 것만큼, 남을 정죄하지 않는 수준으로 가는 것이,

 

어쩌면 변하지 않는 내 성격이 주는, 한 가지 유익입니다.

 

 

 

저도 성질 좀 꽤나 있는 사람인데, 그걸 고쳐보려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너무 많이 해서 과거에 골다공증에 걸리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은, 노력은 하시되, 실상을 깨달으시고, 골다공증에 걸리기까지는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섭리라고 생각하십시오.

 

 

 

제가 무슨 일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막 화를 냈더니

 

남편이 저를 보고, ‘말기암까지 걸려가지고, 자기 성질 하나 변화되지 못했구먼!’

 

 

 

저는 그 말을 듣고, 배꼽을 쥐고 웃었습니다.

 

그 사경을 헤매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제 성질 하나 변화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개입이 되셔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해 주셔서,

 

그 겸손함 때문에, 우리가 남에게 은혜를 끼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추적하시고, (징계와 환란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가시는 그 손길에서,

 

절대 못 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뿌리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냥 빨리빨리 알아차리면, 덜 고생하는 것이고,

 

빨리 알아차리고 '예 알았습니다. 주님', 그러면 쉼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제가 암으로 투병할 때, 지금도 투병중입니다만,

 

암으로 통증이 올 때는, 제가 분초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제 목숨을 제발 거두어 가시옵소서!’

 

 

 

그때는 예수님과, 고통이란.. 두 단어 밖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은혜도, 아무런 다른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불타는 그 고통 속에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손을 칼에 베시면, 에리고 쓰라린 것 느끼시죠?

 

암으로 인해, 그런 고통이 며칠 계속 될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그 암을 통과하면서, 주님께서 말씀을 이렇게 열어주시면서

 

나의 진면목, 나의 죄인됨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리로 향해 나아갈 때는, 우리의 모든 것이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헌신하려고 하고,

 

우리가 주의 종으로 제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어서 쓰십니다. 징계와 연단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안 만드시는 사람은, 즉 징계와 연단이 없는 사람은,

 

천국과 영생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아마 '바깥 어두운 곳'에 가서 징계와 연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서에도,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되었은즉 우리에게 먼저 하시면..’  벧전4:17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진리가 아닌 것은, 날마다 심판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징계와 연단을 통해서

 

우리가 진리로 가도록, 그렇게 우리가 진리의 사람이 되어가는 겁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들은 생각하시고, 미리미리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최근에 어느 분을 만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뉴저지에 사시는 분인데, 그분도 사업으로, 교회 충성으로, 굉장히 이름을 날리셨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최근에 모든 상황이 많이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제가 그 분께 말했습니다.

 

‘(남자) 권사님,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는 사람치고

 

안 망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그 망하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남자 권사님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계속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자신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못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 내 탐심과, 너무나 내 얼굴을 내세우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한 몫 챙기겠다는 것이 우리이지,

 

우리는 본래가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없습니다.

 

 

 

권사님도 최근에 어려워지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왜 그렇게 하셨어요?' 라고 따질 수 없습니다.”

 

 

 

아주 스마트하신 분이라서, 제 말귀를 잘 알아들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얘기를 계속 드렸습니다.

 

 

 

“그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그 십자가 안에서

 

드러나는 나를 보면서, 들켜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회개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거늘

 

뭐 우리가 펄펄거리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뭘 한다고 설치다가는..

 

오히려 우리는 망하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점점 더 그 하나님의 영적 계보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교회에서 무슨 거창한 직책을 갖고서,

 

무슨 폼나는 사역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게 일생을 통해서, 제가 제 안에서 마귀가 그렇게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늦게나마 깨달았습니다. 이 수많은 시련을 통해서요!

 

 

 

그런데 성경에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는 이 말씀을,

바울 사도가 인용합니다.  시44:22, 롬8:36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누가 끊겠느냐’ 라고 말씀하면서,

 

‘환란이겠느냐, 환란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여러분, 환란을 당하실 때, 주님을 버리고 싶은 생각 안 드세요?

 

드실 수도 있습니다. 왜 주님이 저를 안 도와주십니까? 하며 원망하게 됩니다.

 

 

 

어느 분이, 그 분도 한 때, 아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신다고 헌신했습니다.

 

굉장히 어마어마한 부자였는데, 그 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신다고

 

하와이 열방대학에도 들어가고... 그런데 지금은 너무너무 힘겨워하며 사십니다.

 

 

 

제가 작년엔가 LA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그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집안이 엉망이 되었고, 자녀도 아주 엉망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헌신하겠다고 나섰다가, 엄청난 징계와 환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 제 입에서 주님께 막 욕이 나오는 거 있죠?’

 

 

 

제가 그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잘 하셨어요. 그렇게 우리 본성이 들켜야 합니다.

 

그 죄성과 반역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하고, 새 사람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님은, 그렇게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 원하는 그를 고쳐서

 

새사람 만드시려고,

 

그 재물을 다 빼앗아 가시고, 그 가정까지 풍비박산이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헌신하게 하십니다. 그의 헌신을 받으십니다.

 

 

저는 암으로, 그 고통을 통과하면서, 그 주님의 손길을 깨달았다면,

 

그 분은, 사업과 가정의 풍비박산을 통해서, 그 주님의 손길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본색이 나왔구만요!’ 하면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쓰시려고 하실 때, 여러분의 목을 누르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연단과 징계가 시작된 것이죠.

 

 

 

그러면, 우리 속에 있는 반역과 패역과 죄성들이

 

모든 밑바닥부터 다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경악을 하면서, 회개하고,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그 때 임하는 것입니다.

 

 

 

‘예 주님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주 더 긁어내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더 처참한 일을 허락하실 때, 내 속에서 진짜 본색이 나옵니다.

 

뭐가 나오는가 하면, 마귀가 포장을 해서 앉아 있다가, 탁탁 털어져서 나오는 것입니다.

 

‘야, 내 속에 이런 마귀적 속성이 있었네? 내 속에 이런 마귀적 반역, 패역이 있었네?’

 

하며 자기 스스로 놀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말기암을 주셨을까요?

 

내 상급을 보호하시려고... 저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존경하는 선교사님!’ 그러면,

 

제가 정말 뭐가 된 줄 알고, 깝죽거리며 살았을 것 아닙니까.

 

 

 

제가 느낀 것은, 우리의 혼은, 마치 미치광이와 같습니다.

 

누가 칭찬을 해 주면 그냥 미쳐 버립니다. 자기가 정말 그런줄 알고요.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우리 혼을 다스리기 위해서, 엄청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과한 우리 부부는, <언더우드 상>을 받으면서도, 벌벌 떨면서 서 있었습니다.

 

주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야, 이 땅에 복음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 주제에, 네가 무슨 상을 받는다고 그렇게 우쭐거릴 수 있느냐..?’

 

 

 

주님 맞습니다.

 

이게 주님이 제 믿음을 지켜주시는 모습입니다.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교만해 지지 말라고,

 

더 얻어터지기 전에 사람되라고, 고난과 역경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암을 주셔서, 저를 이렇게 아주 누추하게 만들어버리셨습니다.

 

아주 어리석고 죄인 같이 만들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선교사는 일은 잘 하는데, 무슨 큰 죄를 지었나? (그래서 암에 걸렸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저를 강대상에 안 세웁니다. 은혜 떨어지고 교인들이 시험 든다고 합니다.

 

아니 아마존에까지 가서 선교하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야 되는데,

 

보통 사람도 안 걸리는 말기암에 걸려서, 저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나..

 

 

 

그래서 시험 들까봐.. 저를 못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땅에서 그렇게 천대받게 하심으로써

 

제 영혼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어떻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 때문에, 눈물이 강같이 흐르는 것입니다.

 

주님! 뭣 때문에 제 영혼을 이렇게 간수하시는 것입니까.

 

그 분의 그 끔찍하신 사랑, 인간적으로 볼 때는 잔인한 사랑이지만,

 

그러나 주님과 나와의 그 비밀스런 사랑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롬8:36

 

이것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떡과 포도주를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제물처럼 우리가 바쳐진다는 것,

 

순간순간마다 하루하루마다 내가 받는 이 괴로움과 고통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주와 떡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권사님이 제게 그랬습니다.

 

“아 그 쪽도 나를 고소했는데, 선교사님, 나도 그 사람을 맞고소 할까 봐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쪽(사람)이 못된 것은, 다 알거든요?

 

그 뉴저지 사람들이, 그 사람이 못된 것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권사님이 꾹 참고 있는 것.. 사람들이 알잖아요.

 

그러면 권사님 때문에, 그 모습을 보면서 은혜 받고 있는 사람들은,

 

(권사님이 맞고소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난들은, 다른 형제들에게 양식이 되고, 은혜가 되고,

 

힘이 되고, 그들이 좁은 길을 가는데 있어서, 믿음을 돕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내가 받는 이 고난과 고통들을,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내 고난으로 돕는 이 믿음 때문에, 다른 형제가 믿음이 더 순결해지고,

 

그가 주님을 따라가는데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