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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여주옵소서! 4030

LNCK 2013. 4. 2. 18:26

◈아버지를 보여주옵소서!           요14:7~14               13.02.25.설교스크랩, 출처보기

 

 

 

 

 

 

▲서론/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아버지를 본 사람들입니다.

 

사도요한은 말씀합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계20:11

 

오늘날 신자들, 즉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 보좌를 보는 것입니다.

보좌를 보는 사람은.. 다 그의 인생과 신앙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사6장에 보면, 성전에서 주의 옷자락이 가득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에스겔도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겔1장에 나와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천상의 (어전)회의’를 본 사람입니다. 렘23:18

 

심지어는, 불신자도,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뵐 때..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난 후, 자기 총명이 되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단4:34~35,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하늘을 우러러 볼 때야, 느부갓네살 왕은, 비로소 하늘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뵈어야 하는데,

 

◑본문에, 빌립이, 당돌하게,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부탁합니다.

 

▲본문은,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제 마음에 꽂혔던 말씀입니다.

특히 이 빌립의 요청,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14:8.

 

제가 신앙에 깊이 있게 관심을 가진 게 중학교 때부터였고,

그전에는 그저 부모님 하시는 대로 따라 하는, 신앙생활이었다고 하면,

그때부터 치면,

본문의 이 빌립의 요청을,

제 자신이 얼마나 마음속에 많이 반복해서 갖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버지를 한번 본다면 족하겠나이다.’

이 족하다는 말은 ‘(제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그런 간절한 소원과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빌립과 같은 이 소원이,

너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스런 능력과 권세의 하나님아버지를 보게 되면

그때부터 바랄 것이 (예수님께 청탁할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누적되었던 나의 미해결의 문제들,

정말 마음속에서 바라다 바라다가, 이제는 한계를 알아서

어쩔 수 없이 자포자기하고 저 구석으로 내려 보냈던 그런 내 소원들,

 

아니 천지의 창조주를 아버지로 뵙게 되고, 뵈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는데,

그런 사랑 앞에서, 그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가 요청해야 될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정반대로

아버지를 보기만 하면, 그 외에는 제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됩니다.

정말 우리가,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을까요?

 

▲본문의 이 빌립의 말 속에 참 깊은 신앙적 고백이 들어있습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성도가.. 아버지를 뵈면.. 더 바랄 게 없어지는 게.. 정상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하나님아버지를 보잖아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창조주를 내 아버지로,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내가 뵙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의 성취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고 있으면서

내가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성공이.. 남아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아직 못 뵌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 하늘나라에서 보좌를 펼치고 앉아계신 하나님,

천군천사들이 찬양하는 그 하나님을 내가 아버지로 보게 될 때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소원이 없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설명 드리면,

빌게이츠가 그러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뵙게 되면

세계 제일의 마이크로소프트 회사를, 자기 마음에서 버리게 될 것입니다,

별로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자기가 컴퓨터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었으며,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별로 크거나, 중대한 유익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알게 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천국에서의 모습을 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을 보아도 그렇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초대교회에서 유무상통 하며 살았다는 얘기를 봐도 그렇고,

 

스테반이 순교하는 장면을 봐도 그렇고,

사도바울의 늘 일상적인 고백 속에서도 그렇고,

 

성도가 하나님을 진짜 뵙고 나면

이 땅 위에서, 더 이상 원하고 바랄 것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뵌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땅에 살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 가지밖에 없어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고위 관직도 중대한 의미가 없고,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어마어마한 회사도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큰 의미가 없고,

김구 선생이나 김좌진 장군에게 있어서, 나라의 독립이나 미래 같은 것도 의미가 없고,

 

오직 의미가 있는 단 한 가지,

그렇게 이 땅에서 내가 좋다고 여겨서, 성취하고 싶었던 모든 소원의 빛이 바래지고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원하시는 바

그것만이 내가 이 땅에서 경주해서 하고 싶은,

내 유일한 의미 있는 일이 된다는 얘깁니다.

 

▲‘에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빌게이츠가 되어보지 않고서, 빌게이츠의 업적이

영생의 관점에서 별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보십시오.

주님이 그렇게 사셨지 않습니까?

 

천국에서 아버지를 뵈었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사신 것 아닙니까?

 

얼마든지 임금이 되실 수 있었고,

우리가 그토록 목마르게 애타게 찾는 부귀를, 다 쥐실 수 있는 분이었는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가지시고,

오직 하신 것이라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것, 그 한 가지만을 위해서 사셨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우리 눈이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주시지를 않으십니다.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의 5감관으로 확인시켜주시지 않으세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하나님께 접근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믿으라는 얘깁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시면 좋을 텐데,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으로 믿으라’는 얘기에요.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도

그 영광스런 보좌가 펼쳐져 있는 가운데 앉아계신

스테반이 본 그 하나님은 아닙니다.

 

천군천사가 찬양하고 있는 그 하나님은 아닌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과 연합하고, 당신에게 마음을 줌으로써,

즉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접근해간다는 것을 알라,

그리고 믿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 답답한 겁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직접 보는 듯이 여기라는 겁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뵙는 것이, 하나님을 뵙는 길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14:9.

 

▲빌립이 ‘하나님을 제게 보여주세요!’ 라고, 예수님께 요청했을 때,

예수님이 선뜻,

하나님을 빌립에게 보여주시고

마찬가지로 오늘날 내게로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텐데...

그러면 하나님을 뵙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처럼.. 신앙의 위대한 조상들이 될 터인데..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은.. 구름에 가려진 채로.. 전혀 우리 눈에 안 보이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만 보고,

그것으로 하나님 본 것으로 믿어야 되니까,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보게 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아버지가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그 십자가의 하나님을.. 전혀 눈 뜨고도, 못 보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격을 보는 것,

그 예수님의 인격과 사랑을 보면서.. 하나님을 뵙는 것..

이게 바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당신은 아직 하나님 못 뵈었나요?

성경말씀을, 더욱 진지하게 읽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14:9.

 

이때 우리는,

빌립의 말대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나이다! 저는 만족합니다!’ .. 하는 그 마음이 될 것입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8~9.

 

믿음이 있는 사람만,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뵌 사람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와 같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겁니다.

 

 

◑마치는 말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아버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주님을 보면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는 족한 마음가짐,

 

더 이상 이 지구 위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

이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게..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

족하겠나이다= 더 바랄 것이 없겠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빌립아, 끝까지 나를 따라와서, 십자가에서 나와 연합해서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셨던 것처럼 네 안에도 들어가실 것이다,

끝까지 십자가에서 나와 함께 하자! 하나님이 너의 기업으로 주어질 것이다’

 

빌립이, 예수님으로부터 멋진 말이 나오도록, 유도해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아버지를 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믿음이에요, 믿음.

 

근데 주님만 보고 아버지를 본 것으로 여겨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마음이 먼저 되는 것,

이게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영생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를 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아버지를 뵙는 것 같아서,

이제 이 세상을 향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도록

우리 마음이 죽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연합해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만 의미를 두고 행해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