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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축복을 받을 때까지 떠나지 않기 / 토저

LNCK 2013. 5. 4. 16:52

www.youtube.com/watch?v=tuFGpbfNexI

◈축복을 받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기             시130:6                       출처보기

Praying Till We Pray                   by A. W. Tozer/ 편역           Russian         Chinese

    

▲무디 스튜어트 박사는, 과거 세대를 살다 가신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자기 기도생활에 집중하기 위해서, 기도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 원칙 중에 한 가지가 ‘기도에 몰입될 때까지 기도하기’ 이었습니다.

 

‘기도를 어느 정도 하고 끝내기’와 ‘

기도에 몰입하고, 주님의 축복을 받고 기도를 끝내기’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종종 교회에서 기도회를 가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 둘씩 일찍 자리를 떠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존 리’ 목사님도, 평소에 기도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존 리 목사는, 기도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빠짐없이 참석하였는데,

하루는 그날 저녁에, 기도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날 그는, 자기가 몇 가지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기도 중에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남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시간에,

자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서, 그리 멀리 가지도 않았는데,

자기 내면에서, 자기를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아, 너는 목사로서, 예배가 다 마치기도 전에, 축도를 하지는 않지?’

 

존 리 목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깨달았습니다.

(기도를 끝까지 마쳐야, 하나님의 축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기도회를 하고 있는 장소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기 마음의 기도의 부담과 짐이, 다 벗어질 때까지,

충분히 기도했다고 느껴질 때까지.. 진지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으로부터 은총이 임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주님의 축도를 듬뿍 받는 기분이었지요.

 

▲불행하게도, 충분히 기도에 몰입해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서둘러 기도를 중단하고 끝내버리는 ‘기도의 습관’이

우리 가운데,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과 생각에는,

기도의 마지막 10분이, 처음 30분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에 몰입되고, 하나님과 만나서, 진짜 대화하며 기도하려면,

처음에 기도해서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도달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기도를 끝내버린 다면.. 기도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효과적인 기도, 진지한 기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드릴 때, 산만한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분주한 세상에 살다가, 기도를 드리려 할 때, 처음부터 기도에 깊이 몰입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딴 생각도 나고,

실제로 주님과 대면하지도 못한 가운데서, 내 혼자소리를 독백하듯이 말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내가 말한다고, 주님이 다 들으시면 좋겠지만,

때로는 내가 산만한 가운데 있으면, 주님도 안 만나 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론적으로나 신학적으로는

우리 신자가,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24시간 교제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또한 그렇게 배웁니다.

 

그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기도할 때,

또 기도가 아니더라도 찬양할 때, 설교할 때,

완전히 주님의 임재 가운데서, 주님과 대면하여 만난 가운데서

기도하고/ 찬양 드리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개념으로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한다, 주님을 만난다’ 그런 거 말고,

지금 실제적으로, 내가 주님과 친밀히 만나는 시간.. 그 대화..

그게 진짜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기도할 때, 그 시간까지 도달해서, 주님의 축복을 받고서,

기도의 자리를 떠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가, 그 시간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그냥 자기가 알아서, 혼자 기도를 끝내버리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쉽게 기도에 집중되고,

앉아마자 즉시로 주님과 대면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은 기도가 안 되어지니까, 못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몰입되고, 기도만 하면 즉시로 주님과 대면된다면,

우리 중에 누가 기도를 못 하겠습니까? 다 기도를 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 된다고, 그저 굴복하고 체념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축복(또는 축도)를 받을 때까지, 나는 기도의 장소를 떠나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꼭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심과 마음으로, 기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기도의 경험자들이 말합니다.

평소에 구별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기도가 잘 된다고요.

성결한 언어생활, 차분하고 정직한 성품의 삶을 살아야.. 주님도 쉽게 만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이 무디고 영적이지 못할 때,

그런 상태를 스스로 벗어나려고 너무 몸부림치지 마시고,

그런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주님께 시인하고, 인정하고,

또한 그러면 그런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언어가 거칠고, 격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에 기도한 사람들의 언어와 표현을 보십시오.

때로는 얼마나 격정적이며, 격앙적입니까?

차분하고 조용하게 주님을 대면할 수도 있고, 격렬한 상태에서 주님을 대면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기도에 몰입되고, 주님을 만나, 주님의 축복을 받을 때까지,

이 장면에서 야곱이, 다니엘이, 예레미야가, 에스겔이 생각납니다.

서둘러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배드릴 때, 목회자의 축도를 꼭 받고서, 예배당을 떠난다면,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축도를 꼭 받고서,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떠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위 내용은, 중국어,

 

러시아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색칠 위에 클릭)

 

 

◑세멘트로 발라져 있는 교회  A Church Cemented in the Routine           출처보기, 편역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대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곳에 있고,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가 식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혹자는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의 가장 큰 적이다' 라고 말하지만,

보통 일반 신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즉, 큰 적은 아닙니다.

모세오경이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창세기는 창조 설화에 불과하다는 신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물 위로 걸으심, 사흘만에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 신자도.. 거의 없습니다.

성경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심하는 신자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우리의 최대의 적이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진짜 적을 외면하고, 자유주의가 마치 진짜 적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는, 진리를 굳게 붙잡고 있으며, 조상적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갖고 있으므로,

자유주의는 사실상, 교회의 가장 큰 대적이 아닙니다.

 

▲그럼 오늘날 교회의 가장 무시무시한 대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즉, 일상성이 교회와 신자들을 강력히 압제하고 있습니다.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 하는 매너리즘이, 폭군처럼 오늘날 교회를 강력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과거에 잘 했던 방식 그대로 그냥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주일날 예배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다 예측할 수 있습니다.

뻔한 일들이 또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상성, 이 매너리즘, 자유주의가 아니라,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 가능하게 되고,

그래서 주님이 행하실 그 어떤 새 일도 기대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입니다. 일상성routine이란 가장 큰 난관에 직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음 주일, 심지어 다음 달에 대해서도.. 아무런 심령 부흥에 대한 기대도 없고,

그저 다를게 뭐가 있겠어? 하면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살아간다면, 다음 해에도 영적 침체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보면서, 저 토저는 A Church Cemented in the Routine, (이 글의 제목)

교회가 '일상성이란 세멘트로 발라져 버렸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도배한다'는 말을 잘 쓰는데, '세멘트가 발라져 버렸다'는 더 강력한 표현이네요.

 

그러므로 적을 올바로 분변합시다. 진짜 적을 놔두고, 엉뚱한 적을 적으로 몰지 맙시다.

(지금 한국교회도, 엉뚱한 적을 타령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 그게 적이지만, 가장 큰 적은 아닙니다.)

 

우리가 미래의 부흥에 대해, 아무런 기대와 소망이 없는데, 어떻게 미래에 심령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의 매너리즘, 일상성을 탈피하고, 신앙의 부흥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발라진 세멘트를 까 부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독후기) 보통 ‘축도가 마치기 전에,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 내용을, 각자 개인기도 시간에 한 번 적용해 보십시다.

 

각자가,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즉 하나님의 축도를 받으며 기도를 마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집에서나 교회에 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드리지만,

주님의 축복을 받기도 전에, 서둘러 기도를 끝내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급적, 매일은 그렇게 주님의 축도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 꼴이라도, 내 개인 기도시간에

기도에 깊이 몰입되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축복까지 받고서,

기도를 마치면 좋겠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기도에 몰입할 때까지, 기도하라.. Praying Till We Pray’ 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이런 글을 읽고서,

‘그래 맞다. 나도 주님의 축복을 받을 때까지, 몰입해서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