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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사람에게, 붕대만 감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 데렉 프린스

LNCK 2013. 4. 30. 16:47

귀신 들린 사람에게, 붕대만 감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렘6:14, 고전12:10         ☞출처

 

*부제 :  데렉 프린스를 추모하며...

 

 



 

축귀사역과 능력전도로, 미국은 물론이요,

중동과 중앙아시아, 중국, 남태평양 및 전 세계에서

큰 업적과 열매를 거두었던 데렉 프린스 Derek Prince 목사님이 2003년에 소천하셨습니다.


아래 글은, 그의 제자요, 동역자인

찰스 카린 Charles Carrin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인터넷에서 스크랩해서, 번역했습니다.


Demonized People Need More Than “Religious Bandages”  

 


▲이차대전 당시, 젊은 영국군 의무부대 군인이었던 데렉은

북아프리카의 야전병원에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전쟁 중에 부상 당한 한 동료 군인의 어깨의 상처를

아주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군의관이, 데렉을 제지했습니다.

“내가 그 환부를 한 번 자세히 봐야 되겠네!”

그러면서 의료기구를, 그 부상병의 환부에 사정없이 찔러 넣었습니다.


물론 그 부상병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지요.

그러나 군의관은, 그 환부 깊숙이 파편이 박혀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아냈습니다.


‘의무병 (데렉), 집게를 집어주게’

그러더니 채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군의관은, 살 속에 깊이 박힌, 작은 포탄 파편을 끄집어냈습니다.


이제 환부는, 소독만 하고, 붕대만 바르면.. 그만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젊은 의무병 데렉은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기는, 그 환부 밑에 깊이 숨은 파편을 보지 못하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 보고, 소독하고 붕대만 감아주려 했던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의 실수는,

그 부상병에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줄 뻔 했었습니다.


그냥 척 보면, 그 부상병의 상처는, 표면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부상병의 상처는, 피부 속 깊숙한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여기서 경험한 충격은, 데렉의 나머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데렉을 종으로 부르셔서,

말씀을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에, 그를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이때 데렉은, 신자들의 그저 표면적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들의 표면적 상처 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더 깊은 근원적 문제,

즉, 일부 신자에게 있어서, 그 깊숙한 곳의 악한 영들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축귀 사역’을 논하면,

일부 신자들은,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펴고 보십시오. 축귀 사역은 예수님이 강조하신 사역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기독교계는, 축귀 사역에 관한 데렉의 메시지를

귀담아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데렉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자기 사명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데렉은, 축귀 사역에 관해서, 성경을 통해, 그 신학적 정당성을 계속 증명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실제 현실에 있어서,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다가,

풀려나서 자유롭게 된 신자들의 삶을 예로 들면서..

그는 축귀사역이 꼭 필요하다며.. 꿋꿋이 계속해 나갔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치유함을 받으면,

그들의 삶은 완전히 드라마틱하게 변하게 됩니다.

그의 가정 식구들까지, 싹 다 구원 받는 것을 봅니다.

 

꼭 귀신에 완전히 점령된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중증 중독에 빠진 사람, 우울증, (일부) 질병, 습관적인 죄..

사람들은 그 사로잡힘에서 다 자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데렉 프린스의 메시지나 집회를 통해서,

그렇게 자유함 받는 역사들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데렉 프린스의 사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데렉은 아주 심하게 비난을 받았으며, 때때로 (교계로부터) 제지를 당했는데,

어쩌면 이것은, 참 복음사역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되는 핍박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데렉 프린스는, 그 모든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주님께 받은 축귀 사역의 사명을, 계속 꿋꿋이 감당해 나갔습니다. 


▲데렉의 축귀사역의 열매를, 한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기 전에, 헝가리에서 어떤 한 여인은

그저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자기 집에 굴러다니던

데렉 프린스의 영어설교 카세트테이프를 들어보았습니다.


당시에 그녀는 아직 크리스천도 아니었고, 크리스천이 될 생각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다만 정통 영국영어 발음을 배우기 위해서, 그녀는 카세트를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마침 그 카세트테이프 설교의 주제는, ‘더러운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기’ 이었습니다.

그 카세트테이프 설교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카세트테이프를 듣게 했고, 남편도 그 즉시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 부부는, 이제 이웃들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그 카세트테이프를 듣게 했습니다.

그 데렉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다 귀신이 떠나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아직 공산주의 아래에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때로부터, 거기서, 지하 교회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아주 작은 숫자의 무리들이었지만,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이 지하교회가 자유롭게 세워졌을 때,

이 교회는 나중에 1만 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헝가리에서 순복음 계열의 교회 중에서는, 제일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위의 이런 간증은, 데렉의 사역에 있어서,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늘 일어나는 일이니, 특별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20년 전에, Brighton, England 에서 (축귀 사역과 능력전도에 대한)

초교파적 컨퍼런스가 있었습니다.


(이 글의 필자이며, 또한 데렉과 같은 능력전도자인) 저 카린은

거기서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섬나라 등지에서 온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데렉 프린스로부터, 배웠거나, 능력을 전가 받은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뉴질랜드는,

데렉 프린스의 사역이, 곳곳에 침투했습니다.

나라의 구석구석 전 지역에서,

데렉 프린스의 (능력 전도)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데렉 프린스가, 자기 본국인 영국이나 미국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외를 돌면서, 국제적 international 사역을 아주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장한 배경을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내셔널 하게 태어났고, 성장했습니다.

그는, 인도의 뱅갈로에서, 영국인 부모로부터 출생했습니다.

그래서 5살이 되면서부터, 그는 힌두스타니 어와, 영어를 말했습니다.


그해 5살에, 그는 영국으로 보내져서, 기숙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0살 때부터는, 그 학교에서, 헬라어와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히브리어, 스와힐리어, 또 유럽언어 몇 개를 더 배웠습니다.


정말 출생과 성장과정이.. 모두 인터내셔널 했고, (국제적이었고)

그런 연유 때문인지, 데렉의 사역은, 매우 국제적이었습니다.


13살이 되자, 데렉은 공부를 잘 해서,

영국에서 유명한 이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5년 후에, 그러니 18세에 벌써,

데렉은 캠브리지 대학에, 그 해의 Senior Scholar로 초청되었습니다.

데렉은 캠브리지 킹즈칼리지에서, 역대 최연소 학자 중의 한 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지식에 배고파했습니다.

그가 주로 연구한 분야는 철학입니다.


학문적으로, 그는 뛰어난 석학이었고,

그의 가문 역시, 영국의 명문가였고,

그는 앞으로 대학교수요 학자로서, 장래가 보장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데렉 프린스에게,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당시에 세계2차대전이 발발하자, 데렉은 캠브리지 대학을 떠나서

영국군의 왕립 의무부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데렉의 가문은, 조상 적부터 군인 가문이었습니다.

그의 조부는 영국군의 장성까지 지냈고, 그의 부친은 대령까지 지냈습니다.


그는, 인생의 참 빛과 진리를 찾아 헤매는 여정가운데,

성경을, 그가 탐독하여 연구해야할 책들 중 하나 정도로만 정해 두었습니다.

그는 아직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영국 성공회 배경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성공회에서 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실망해서, 인생의 해답을 찾아보려고,

더욱더 철학을 깊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그의 노력은, 당시에 거의 미칠 정도이었습니다.


하루는 늦은 밤에, 자기 군대 막사에서,

그는 구약성경을 오래 동안 읽은 후에,

그는 부대 근처의, 어느 골목에 있는, 작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날 거기서, 그는 놀랍게도, 구원을 받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교회에서, 2주 후에는, 그가 성령의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고, 성령도 받으면서, 하나님을 대면한 체험은,

그의 나머지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철학에서 답을 발견하려 했던 것을,

이제는 성경에서, 그 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확신으로, 그는 제대 후에, 캠브리지 대학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추구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가 과거에 대학에서 연구했던

학문적 훈련도, 나중에 다 필요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쌓은 학문적 연구 능력을,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분야로, 방향을 바꾸어 쏟아 부었습니다.


후에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그가 2차대전 당시 군 의무대에서 자기 실수,

즉 깊은 파편이 박힌 부상병을, 그저 상처 표면만 치료하고 붕대로 감아주었던 그 실수가,

결국은 ‘축귀 사역, 능력 전도’에 자신의 남은 삶을 헌신하는데 있어서

어떤 큰 경험이요, 계기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데렉의 폭발적인 설교는,

수백만 부의 책으로, 카세트테이프로, 비디오로 제작되어

온 세상으로 배포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수 백 개의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데렉의 메시지를 방송으로 전파했습니다.


데렉의 메시지는 중국 방언으로도 번역되어 전달되었는데,

아모이, 광동어, 만다린(북경어), 스와토우 어로 각각 번역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 백 만의 중국인들은, 데렉의 메시지를 친근히 접할 수 있었습니다.

데렉은, 중국에서 ‘이광밍’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뜻은, ‘밝은 빛’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중국 사람들은, 그를 중국인이나 동양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름을 썼고, 중국어로 번역되어 방송되었기 때문입니다.


데렉의 방송선교는, 중국뿐만 아니라

몽고, 아랍지역, 말라가쉬, 러시아, 사모아, 통가, 스페인어, 그리고 영어로

전 세계에서 방송되었습니다.


스페인과 남미 등 스페인어를 쓰는 총 15개국에서,

1백개가 넘는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데렉의 메시지를, 방송으로 송출했습니다.


데렉의 가르침을 담은 카세트테이프, 서적들, 비디오카세트..

그 수백만 개가, 전 세계에,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배포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115개국의 방송국에서, 그의 설교를 방송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도, 그의 깊이 있는 메시지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5년에, 데렉은, 자기 선교팀을 이끌고

터키에서 목회자 컨퍼런스를 열게 되었습니다.


데렉은, 특별히 저 카린에게, 그 컨퍼런스에 강사로 와 달라고 초청했습니다만,

저는 사정상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자 데렉은 당장 제게 팩스를 보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시 기도해 보세요!”


저는 데렉의 말대로, 다시 기도했고, 결국 그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그 컨퍼런스는 터키를 중심으로, 중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총 23개국에서 온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장소와 모임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터키의 목회자들만 모여서 컨퍼런스를 가졌다가,

반응이 좋아서, 그 다음에는 그 컨퍼런스를

주변 국가들의 기독교 지도자들까지 초청해서 더 확대했는데,

제가 그 두 번째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쿠르디스탄,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또 몇 개국에서 온 목회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데렉과 다른 강사들의 메시지는, 영어로 전달되었고,

6개의 다른 언어로 동시 통역 되었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는, 터키어, 알바니아어, 히브리어, 루마니아어 등

각자 언어로 불렀습니다.


특히 어떤 찬양은, 각자 언어는 달랐지만,

모든 국가들이 다 공통적으로 부르는 찬송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언어는 달랐지만, 함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아름다운 찬양이었습니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그래서 그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은,

신원이 보호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었습니다.


터키는 인구가 약 6천5백만인데, 가장 큰 이슬람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전국에서 모두 합쳐서 1천명 이하입니다.


터키의 목회자들은, 과거에 모두 모슬렘들이었으나,

나중에 예수를 믿고 회심한 분들입니다.


그 컨퍼런스에서 가장 감동적인 시간은, 세족식 시간이었습니다.

전에 모슬렘이었던 아랍인 신자들이,

민족적으로 적대적인 유대인 크리스천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세르비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은 서로의 발을,

그렇게 서로 전쟁을 하며 적대적이었던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서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서, 서로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터져서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역사에 얼룩진 그들의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보았고,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중동과 이라크에서 전쟁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그들과 그들 가족들의 안부를 걱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두, 데렉의 해외집회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오늘날 어쩌면 이렇게 <인터내셔널 집회>와 그 사역자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교회 돌보기에만 바쁩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소천하신 데렉 프린스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데렉의 요청에 따라, 저는 그 컨퍼런스에서 첫째 날 밤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안수를 하며, 기도해 드렸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전가 받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밤에, 정말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바닥에 쓰러져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터키 지도자는, 땅바닥에서, 45분 동안이나 전신을 계속 떨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를, 데렉이 설교하는 시간에, 방 바깥 복도에 두었는데,

웨이터들이 음식을 나르면서, 식사를 차리는 동안에, 복도에서 떨고 있는 그를 지나서 다녔습니다.


이런 성령의 능력적인 나타남을 보고

그 웨이트 중에 한 명은, 회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 미국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 쉬워서

어쩌면 그 중대한 의미의 많은 부분을, 그저 모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그들 각자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데렉의 집회가, 한 해는 카자흐스탄에서 열렸던 적도 있었는데,

저 카린도, 매년 데렉의 중동권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 한 터키 형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28세였는데, 예수를 믿은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모슬렘 신앙을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자,

그의 가족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그가 죽었거나, 없는 셈 치기로 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아직 한 번도, 자기 가족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그 형제는, 컨퍼런스에서 저를 만날 때마다

“대디, 대디” 하면서 저를 따릅니다. 제가 그의 영적인 ‘아빠’가 되었던 것입니다.


데렉의 집회는, 그저 표피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 깊은 곳에 있는, 내부적 곪은 상처, 내부적 깊은 파편을 꺼내는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표피적 상처만 치유해서는,

참된 복음의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피부 속 깊숙한 곳에, 상처와 파편이 곪아가고 있는데,

표피적으로 소독만 하고, 붕대를 감아주는 것은.. 오히려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렉이 염려하고, 또한 저 카린이 염려하는 바는,

오늘날 기독교계 가운데,

이렇게 ‘표피적인 소독과 붕대 감아주기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과, 교회가 많다는 것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에, 하나님은

‘너희가 백성들의 상처를 표피만 고쳐주고, 다 괜찮다. 다 고침받았다고 말한다’

라고,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6:14. 


저 역시도, 거기에 예외가 아닙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사역을 하는 중에, 정말 그 속 깊숙한 곳에서

곪은 것과 파편을 꺼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표피만 소독해 주고, 붕대만 감아주는 사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데렉의 사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축귀사역과, 능력전도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또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더욱이 데렉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국내 사역에만 신경쓰지 말고,

인터내셔널 사역에 역량을 집중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저와 여러분이 투신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도,

특히 마약 중독, 자살 기도, 동성연애, 우울증, 그 외 강한 집착증 등,

이런 것들에 한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시달리는 사람은,

귀신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또한 이런 불쌍한 사람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거의 버림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해, 그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파편’을 꺼집어내야 합니다. 귀신의 역사를 제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케이스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약성경에서 ‘영들을 분변하다 discerning of spirits’는

말에서 사용된 헬라어가

사실은 ‘고대 의학 용어’였습니다.


고전12:10절의 ‘분변하다’는 말이, ‘그 표면을 잘라서,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저 표피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이 감추어진,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요, 찾았으면 제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역은, 인간적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받아서만,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