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E-ZMKtOccM
◈사역자의 교만과 성경 약3:13, 신17:19~20 출처
Bob Jennings / Ministerial Pride / April 26, 2013
◑회심하지 못하면.. 교만합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모태요, 근원입니다.
모든 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교만이 거기에 곁들여 나타납니다.
교만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매사에 스스로 만족하는 소위 ‘자만심’,
-자기를 높이고 남을 아래로 보는 소위 ‘거만함’,
-모든 일과 말에 있어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태도’,
이런 교만은,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나타나고,
그의 (또는 나의) 생각에서.. 나타나고
그의 행동에서.. 반드시 나타납니다. 숨길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교만이고, 어디까지가 교만이 아닌지,
그 경계선이 때로는 모호하고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만,
단순히 이렇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정도보다 더 높게 여기는 것’
-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회심하지 못하면.. 특히 더 교만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교만은
세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2
그런데 이 교만은, 거듭나기 전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뚜렷한 현상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의해, 그의 교만이 납작하게 다스려지고
그가 회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회심한다는 것은.. 교만이 처리되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회심하지 못한 신자는.. 그 특징이 ‘교만’입니다.
회심하지 못한 신자에게는,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권력 투쟁 power struggle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눅9:23.
회심하지 못한 신자는, 자기 자아와 자기 교만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습니다.
그 교만이, 아직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느부갓네살 왕이 고백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단4:37
교만은.. 신자가 그리스도께 회심할 때 나타나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변화입니다.
그와 동시에 교만은, 신자가 회심한 후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회심하고 나서도, 또 금방 교만하게 되기 쉽다는 뜻입니다.
◑사역자의 교만, 그 구조적 함정.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역자들은, 자기 자신을 온통 주 예수님께 다 드린 사람들이니,
‘그들은 그래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지역 교회’라는 토양이
어쩌면 기독교 사역자들의 마음에,
교만이 쉽게 자라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그가 사역자가 되기만 하면,
오늘날의 전통적 교회 문화는,
그를 쉽게 교만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토양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살전5:12절에, 사도바울은, 너희를 다스리고 권하는 자들을
사랑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만,
교회의 구조가 너무 사역자 몇 사람에게만 집중된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사역자가 ‘교만’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지금, 그걸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으니,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부르심이 확실한 사람은, 과도한 권위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말을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사역자들은, 자기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
자기 권위나, 자기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위치의 방어를 위해서라도, 에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더 인기를 얻고, 더 존경을 받아서
그로 인해, 자기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도,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저런 인간적 생각들이, 자기 스스로를 더욱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역자는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부르셨고, 세우셨다’는 사실을 확신하므로,
누가 자기 자리를 넘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과도하게 자기 권위를 내세우거나,
자기중심적 일당 체제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만약에 그 자리에 부르지 않으셨다면,
빨리 내려오든지,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어쨌거나 자기 자리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스스로 교만하게 행세하거나, 과도하게 자기 권위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2. 사역자의 교만은, ‘주의 일을 한다는’ 가운(복장)에 가려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역자는 늘 기도하고, 늘 설교하고, 찬양을 인도하고 하니까,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자기 스스로 보기에도, 자기가 최고로 보입니다.
그 누가, 자기 말고,
그렇게 앞에 나와서, 기도를 인도하고, 설교하고, 찬양을 인도합니까?
그게 굳어져서, 일종의 문화로 정착되면,
자기 스스로 보기에도, 또한 타인들이 보기에도,
앞에 나와서 설교와 찬양을 인도하는 그들은, 좀 교만해도.. 다 옳게 보입니다.
그의 교만이, 설교나 찬양인도에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마치 그들이 입은 가운이, 그의 내부를 가려주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점점 원맨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가 원치 않아도, 원맨쇼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회중들은, 회중석에 앉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봉사를 독려해도, 원치 않는 회중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이렇게 원맨쇼 위주의 교회의 모습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14:26.
그리고 그런 교회 문화가,
사역자들을 점점 더 교만으로 몰고 간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사역자는, 성경적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양보하고, 뒤로 빠지는 것이.. 더 훌륭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3. 늘 가르치는 자일수록, 교만에 빠지기 쉬운, 구조적 함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합시다.
사역자는, 늘 상담하고, 가르치고, 설교하고, 권면하고..
어쨌거나 말을 많이 하고, 늘 가르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학교 여교사와 결혼한 남편, 또는 그를 며느리로 맞이한 시어머니는,
일반 아내, 일반 며느리보다, 며느리로부터 잔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남을 늘 가르치고, 훈계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여교사의 직업병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사역자들도,
늘 지식적이고, 지혜로운 말로 설교하고, 가르치다보면,
쉽게 도가 지나쳐서, 어디를 가든지 선생이 되려하고, 스스로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늘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 보면,
‘나는 참 똑똑한 사람이야’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안 가지기 힘듭니다.
그 직업병을 이기고, 겸손할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가지기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정된 공간인 비행기를 타면, 목회자는 금방 표가 납니다.
남보다 교만한 티가 나는 사람이 있는데.. 십중팔구입니다. (이 문장 삽입)
특히 집사님과 함께 동승한 목회자는.. 그 티가 확 납니다.
고전8:1~2, 지식은 교만하게 puff up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puff up: 불룩해지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전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말씀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약3:13
그러므로 말로 가르치기를 잘하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기 쉬운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선행으로 말미암아,
즉 자기 가르침의 열매들을, 스스로 먼저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에 속기 쉽다는 뜻입니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오바댜1:3.
◑교만의 폐해와 그 처방
▲교만은, 리더십의 판단력을 흐려 놓습니다.
예수님은, 늘 겸손하신 가운데서, 아버지의 판단을 따랐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5:30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가 교만에 빠지면,
늘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교회 전체가, 진리에서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도자가, 자기를 과도히 방어하려 하고,
자기를 따르는 소위 ‘자기 부대’를 지키려 할 때는.. 더욱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하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쓴 열매를 결국 거두게 됩니다.
행20: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교만은, 반드시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는 곧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지도자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가장 큰 방편임을, 명심하십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잠16:18, 11:2, 18:12, 29:23.
성경 속에도, 지도자들이 교만해서 패망한 경우가, 너무 많이 나옵니다.
성경만 그렇습니까? 우리 개인 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조금 잘 될 때, 우쭐하고 교만하게 되어서, 얼마 못 가서 망하는 사람들을
우리 삶속에서, 또는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 중에 일부는, 교만해져서 ‘이상한 교훈’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교만한 지도자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딤전1:3
자기를 돋보이기 위해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은,
반짝 자기를 나타낼지 모르나,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쓸모없는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도.. 교만한 것입니다.
천사장 루시퍼를 타락시킨 이유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사14:12ff, 겔28:12ff.
루시퍼는 자기 은사,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아지기 원했습니다.
그는 ‘내가 더 높아지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
그러자 하나님은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사14:15’
하시면서, 그를 추락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새로 입교한 자를, 지도자로 세우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딤전3:6.
왜 그렇습니까?
새로 입교한 자일수록,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교만해지기 쉬우며, 스스로 높이다가, 루시퍼처럼, 타락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새로 입교한 자는, 실패한 경험도 없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 하다가, 벽에 부딪혀서 탄식, 실망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럴 경우, 교만해져서,
지도자가 되지 않았으면, 차라리 타락하지 않았을 터인데,
지도자가 되었을 경우, 더욱 교만해져서, 그로 인해 타락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교만해지지 않으려면, 늘 성경을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합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17:19~20
▲하나님은 겸손하고 통회하는 신자를, 항상 찾으시고, 가까이 하십니다. 사66:2, 57:15.
어느 누가, 기도 응답 잘 받기로 유명한 리즈 하월즈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 능력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으니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능력있는 지도자가 되기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 늘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시는데,
목회자가 겸손해져야, 하나님과 거리가 좁혀져서, 주님과 친밀해져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능력, 권세, 은혜, 말씀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소제목만 읽어도, 내용을 알 수 있으므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왕 히스기야의 교만
선한 지도자도, 교만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왕 웃시야의 교만
성공한 지도자도.. 교만으로 실패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한 번 승리했다고, 교만해서는.. 패합니다. - 아마샤 왕,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
▲고라는, 조력자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지도자 자리를 넘보다가, 망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교만해서, 사도요한에게 책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항상 첫째가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내가 두어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요삼1:9~10
디오드레베가 너무 교만한 나머지,
다른 형제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가시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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