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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갈망 / Ravenhill

LNCK 2013. 5. 9. 14:24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갈망              요일2:17                    출처보기

The Lost by Leonard Ravenhill

 

◑부흥을 모르는 세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 시대의 교회에 있습니다.

진부한 것은, 이제 질렸습니다.

 

저 레이븐 힐은, 요즘 목회자들이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우는 것을, 통 보지 못했습니다.

 

목회자들이여, 깨어나십시오.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 길로 달려가고 있는, 이웃의 피 값에 대해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라고 말할 만큼

영혼구원을 열심히 한 목회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행18:6참조.

 

저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진정한 기독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너무 세속적이고, 육신의 감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증거는, 신자들이 너무 세상의 오락을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에는 왕과 왕비가 없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미국에는 왕이 있는데,

그 왕의 이름은, 스포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왕비의 이름은, 오락, 즉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성경적인 기쁨,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오늘날 신자들은, ‘세상 오락’으로 대체해 버렸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 오락에서, 자기 삶의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세속화’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신앙적으로, 더 경건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고 있고, 즉 유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레이븐힐 목사님이 살았던 20~30년 전 당시에는,

성도들이, 잘못 살고 있으면서도, 잘못 살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지만,

지금 21세기의 교회는, 잘못 살고 있어도, 자기가 잘못 살고 있다는, 가책도 없습니다.

 

백 년 전, 스코틀랜드의 찬양 작사가인 앤드류 보나르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교회를 찾았는데, 세상 속에 있었네.

세상을 찾았는데, 교회 안에 있었네.”

 

제가 만약 교황이라면,

한 달 동안, 이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교회의 문을 닫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의 설교도, 들을 수 없게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빛 (즉, 하나님의 말씀)도 감당치 못하는데,

즉 제대로 실천도 못하는데,

 

주일마다 좋은 설교만 계속 듣고만 있는다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받을 정죄만 더하는 셈이 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라, 하셨잖아요. 눅12:48.

그래서 차라리, 교회 문을 한 동안 닫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제게 드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우리 미국에는,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의 숫자가, 아주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세대는, 부흥이 뭔지도 모르는.. 그런 세대인 것입니다.

(마치 과거 세대의 사람들이, 컴퓨터가 뭔지 몰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부흥에는 대가가 따르지만, 부흥이 일어나야, 사회가 회복됩니다.

 

부흥은.. 영적인 재탄생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앞으로 일어날 부흥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역 교회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산다고 할 때,

그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거룩한 삶’입니다.

 

여러분, 사역이 큰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크다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한 성도들이, 그저 헌금만 듬뿍 내서, 큰 사역을 진행하는 것 보다는,

 

사역이 크든지, 작든지에 관계없이

성령님과 동행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모인 그 사역을

하나님은 크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역의 규모가 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역을 수행하는 성도들의, 평소의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 성도들이 모여서 사역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사역이 될 것입니다.

 

저 레이븐 힐은, 데이빗 월커슨 목사에게

‘미국 나라의 죄 때문에, 미국 교회가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의 죄 때문에, 미국이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성도들 가운데는,

진정으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고,

옛 자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을 입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이 담배, 술, 음란, 기타 죄를 끊어 내고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한다면.. 미국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도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자칭 기독교인들이, 정말 단 하루만이라도,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을 산다면,

이 나라는 반드시 바뀌어 질 것이고,

하나님의 은총은, 이 나라 위에, 다시 회복되고, 다시 부어질 것입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받았다면,

바꾸어 말하면, 의인이 많아질수록, 그들이 사는 성읍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왜 지금 우리 가운데는, 과거 세대에 있었던 것과 같은

부흥이 없고, 신앙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없습니까?

 

과거 세대에, 미국에, 놀라운 신앙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진심으로 신앙부흥을 바랬던,

몇몇 소수의 선각자들이, 과거 세대에는,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세대에는, 그런 신앙의 선각자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좋은 게 다 좋은 거지. 다 잘 되고 있는데, 무슨 호들갑이냐?’

하는 식으로,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데 급급 한다면,

 

그에 따르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는,

우리가 사는 환경인 이 세상이, 가시와 엉겅퀴를.. 계속 낸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니까, 우리가 사는 환경에, 하나님의 은총이 거두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경의 어려움과 재난을, 지금 실제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목회자이건, 아니건 간에

 

만약 당신의 교회에,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그것은 <기꺼이 부흥 없이 살려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천칭 저울에 달아 제대로 평가해 보지 않았기에

이렇게 부족함이 많은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 말의 뜻은,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가 뭔지를 몰라서..

기독교 신앙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서.. 지금 이렇게 초라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 더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우리 각자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훤히 압니다.

신앙의 길은.. 계산해 보았더니.. 영생을 얻어서 좋긴 하지만.. 힘든 길이라는 게 밝혀졌고,

즉,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거절을 당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의) 길을 똑바로 가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못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니까요!

대가를 치르려고 보니, 엄청난 큰 대가라서.. 아무도 그것을 쉽게 치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일으킬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부흥은, 사람이 기획할 수 없습니다.

 

부흥이 저기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 사람은 어디 출신이니까, 부흥사야!’ 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부흥을 일으킬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해산의 고통을 각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해산의 수고도 없이, 해산하려고 합니다.

역사상, 해산의 수고를 치르지 않고, 부흥이 일어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정리하면,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두 가지 이유는,

첫째, 우리는 부흥이 없어도, 지금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고,

둘째,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대가가 아주 큰데, 치르려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발 현재의 그럭저럭 편안한 상태를

방해하지 말아주시기를, 우리는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부흥을 막는지 아십니까?

지금 부흥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미국에서는 가벼운 <복음전도> 입니다.

 

언제 우리가, 부흥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취할 만큼

신앙적으로 진지해지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신앙적으로도 진지하지도 않고,

또한 부흥에 대해서도, 진지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복음 전도는, 기획할 수 있지만,

사람이, 부흥을, 기획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고통이란 대가 지불도 안 하면서,

오순절의 부흥이 오기를,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흥이 왜 일어나지 않지?’하며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반쪽짜리 헌신, 그런 헌신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도 감동하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목회자 안에 불이 타지 않는데, 어떻게 성도 안에서, 불이 일어나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에는,

죽은 사람들에게, 죽은 설교를 하는

죽은 목회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셋 다 죽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기도회,

즉 사람들이, 죄상에 만연하는 죄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해 하거나

세상에 가득한 마귀의 역사를 보며 분노하며 부르짖는,

그런 기도모임에 마지막으로 참석해 본 적이 언제입니까?

 

저는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아기 요람 (그네)에서 빨리 빠져나오라고요.

 

목회자들이, 찬양대를 가르친 열성으로, 만약 기도를 가르쳤다면,

지금 세상을 불로 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십시다.

 

“주님, 오늘 이 성전 안에, 우리에게로 쳐들어 와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안에 영적이 혁명 revolution 을 일으켜 주십시오!

 

주님 기도합니다. 우리 중에, 오늘 밤에

자기 자아가 죽어서,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해 주십시오.

자신에 대해 죽어서, 자기 모든 실패와 연약함이 종결되기 (해결되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몸 담은 교회는, 공허하고, 예배는 형식적, 의식적 ritual 하고,

겉보기에는 너무 깔끔하기만 합니다. (여기서는 안 좋은 의미로 ‘깔끔 neat’입니다.)

 

주님 기도합니다.

빨리 오래 된 가죽부대를 터트려 주십시오.

우리에게 쉼 없이 주님을 경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 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 교회당 안에 있는 모두가,

저기 앉은 자매가 품에 안은 아기까지도, 신앙이 성숙하게 자라게 하시길,

그래서 아무도, 미숙한 가운데, 자기 인생을 마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단 한 걸음도, 당신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게 이끌어 주십시오.

왜냐하면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흥을 주시려는데,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 어려서, 못 받고 있습니다.

 

오직 주의 뜻을 행하는 자들만이, 영원히 진정으로 성공한 신자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7

 

주님은, 최고의 신학을 가진 자들이, 영원히 주님 곁에 머물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가장 큰 사역을 이끄는 지도자가, 영원히 주님 곁에 머물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오직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일2:17.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예를, 히11장의 믿음의 영웅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시대에 행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의 영웅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에 행하기 원합니다.

 

‘주여,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정말 주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을, 우리가 사는 시대에, 올바로 행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대.. 를 보며 애통해 하고,

하나님을 모르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믿음과 사랑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제발 저를 지목하시며, 이렇게 하시는 말씀만은, 듣지 않게 해 주십시오.

 

“레이븐힐, 네가 텍사스에 있을 그때, 내가 너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네가 감당할 수가 없었단다.

 

네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내가 비밀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네가 너무 어렸기에, 내 슬픔을 알 수 없었단다.

네가 너무 미숙했기 때문에, 내 계시를 받을 수 없었단다.”

 

주님,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보다

커다란 갈망을 제 안에 심어 주십시오.

 

오늘날,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순절의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찾아보기 정말 힘듭니다.)

계시가 어디 있습니까?

선지자적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찾아보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강한 군대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움직였네” 라는 찬양을

진심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그건, 지금,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이상할 만큼, 지금 우리에게, 희미해지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영원으로 들어가면, 세상은 이상하게도 불쾌해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이 너무 편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좀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충만한 성도의 정상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 희미하게, 많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우리의 무능력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세상에는,

과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특별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배시간에 앉아 있다가

설교자의 시시한 질문에, 가끔 반응을 하고는 합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 때문에

놀라 비틀거리며, 성전을 빠져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엄함을 보고, 놀라 비틀거린 적이 없습니다.

 

만입이 있어도 모자랄 터인데

천개의 어휘로도 부족할 터인데

우리를 십자가에 천 번을 못 박아도

주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과 그 사랑을, 다 갚을 수는 없을 터인데..

 

주님! 우리의 발바닥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우리가 막 진동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도록! .. 주님, 오늘 지금,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소서.

 

성경을 펼 때, 우리의 마음도 펴 주시고,

주님 뜻을 이해하는 명철함도 열어 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구하는 믿음이, 오늘밤 이 자리에서 불붙게 해 주십시오.”

 

주님, 2백 년 전, 웨슬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웨슬리처럼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웨슬리의 기도입니다.)

“산을 옮기고, 산을 낮추어, 평지가 되게 하는 믿음을 주십시오. 사40:4.

 

주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갈망으로

어린아이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십시오.

당신의 사랑으로 제 마음을 정복하시고,

당신의 사랑이, 저의 단순한 영혼을 삼켜 주십시오.

 

제 마음을 넓히시고, 불타오르게 하시고,

끝없는 긍휼로 채우셔서

저의 모든 힘을 다해, 주님과 같은 열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셔서

그들을 용서의 하나님께 돌아서게 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침 받게 해주십시오.”

 

웨슬리는 이렇게 덧붙여 기도했습니다.

“오, 예수님! 사랑스러운 주님!

제가 이와 같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하루에 천 번밖에 부르지 않는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천 번에 그친다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듣기 원합니다.

아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경청하고, 순종하고, 주의 뜻을 행하길 원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가르치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만이

주 앞에 영원히 거하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일2:17.

 

우리의 열망을 바꿔 주십시오.

우리의 갈망을 바꿔 주십시오.

우리를 사로잡아 주십시오.

 

▲과거 영국의 성인, George Mathe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저를 포로로 사로잡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제가 든 칼을 내려 놓게 해 주세요. 저는 비로소 정복자가 될 것입니다.”

 

나 홀로 서려고 한다면, 삶의 역경 속에 저는,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의 강한 팔에 포로가 된다면, 제 손은 강해질 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송축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꿈꾸는 것보다, 훨씬 더 넘치는 분이십니다.

주님, 우리 중 어떤 사람을,

오늘 저녁, 우리들의 생명을 단축시키셔서 영원으로 데려 가신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발목만 담그다 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닫고 한탄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발목도 허벅지도 아닙니다.

우리는 넘치는 은혜의 바다 끝에서

겨우 아기장 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면서도,

그것을 지금 우리에게 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당할만한 그릇으로, 아직 준비되지 못하고,

그저 아기처럼 아장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누가, 우리 가운데, 영적으로 진정 성숙해서,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그 부흥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그 불을 나누어 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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