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원하면 나머지는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마26:41 출처보기
The spirit is willing... by Eric Ludy *해석이 어려워서 의역을 많이 했으므로, 출처의 영문을 보세요.
▲당신은 매일을 살아갈 때,
당신이 구조 받아야 하고, 풀려나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날마다 하루에도 천 번이나 더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심하게 옥죄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루에도 천 번이나 더,
그것으로부터 풀려나고, 해방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를 그렇게 심하게 구속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질문의 답은,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당신에게는 강렬한 열망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왕의 보좌에 앉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을, 당신이 모두 다, 마치 왕처럼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모든 일들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처리하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런 당신이, 바로 문제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매일의 삶의 환경 가운데서, 끊임없이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당신은,
오늘도 이 땅에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진행되는 사역 가운데서,
당신이 바로 걸림돌이요, 하나님 나라의 반역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당신은, 구원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반역자에서,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복음을 자꾸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원래 복음은, 살아있고, 운동적이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래서 불같은 능력으로 살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복음이 희석된 나머지 *희석이란.. 물이 타져서, 묽어졌다는 뜻.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산다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지도 않고,
주님과 동행하며 거룩한 삶을 살지도 않고 있습니다.
교회로서, 기독교인으로서, 그가 흔드는 깃발은 뭐가 거창하게 펄럭거리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마치 빛 좋은 개살구처럼
그 속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복음의 능력도.. 전혀 없고,
복음의 열매도..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복음으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제는 기독교를 아예 무시해 버립니다.
마치 화장실 물 내리듯이, 기독교를 물로 씻어내려버리고, 그 실체를 인정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말은 뭐가 거창하게 나오는데, 그 삶을 들여다보면, 형편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실패한 기독교인의 소식을 듣는데,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또 내 삶속에서도, 그런 실패를 발견할 때도 간혹 있습니다.
이런 삶이 계속되다보니..
기독교 신앙의 승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건 원래 없는 것은 아닌가? .. 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반대로 우리는, 사탄의 능력에 대해선, 더욱 확실히 믿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능력,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점점 더 믿음이 식어지고,
반대로,
우리를 범죄하게 만들고, 패배시키는 사탄의 능력에 대해서는
더욱더 견고히 믿게 되니..
이거 뭐가 크게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해서는, 점점 믿음과 신뢰가 식어지고,
사탄과 어둠의 왕국의 활동에 대해서는, 점점 더 확실히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복음의 능력, 죄를 이기는 성령의 능력.. 이런 것에 대해선, 점점 더 신뢰가 떨어지고,
‘나는 안 돼, 인간은 어쩔 수 없어!’ 하는 패배주의에 더욱 더 신뢰가 깊어지니..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점점 식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 거론하기 전에, 우리 각자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많은 사람들은
‘내 죄는 너무 특별해. 내 문제는 너무 심각해. 그래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이렇게 절대로 고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해버리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우리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서두에서 지적했지만,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셨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사람과 화목하지 못한 책임을, 하나님께 슬쩍 원인제공자로 돌려버립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셨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그와 화목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내 책임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해결하지 못할 내 죄 문제는.. 없습니다.
‘내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해결할 수 없는 죄..
이걸 내게 지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야!’ 우리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라도,
이 죄 문제를 내가 반드시 극복하도록.. 하나님이 뭔가를 해 주셨어야지!’
하면서, 내 실족의 책임을, 우리는 하나님께 전가해서도 안 됩니다. *주권을 너무 극단적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왕이고,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가 죄 짓는 것도, 남 탓이요, 하나님 탓으로 돌려버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처리 못한 죄는 없습니다.
그 죄의 속박이 아무리 강하게 나를 옥죄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거기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기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자기가 왕이고, 자기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못 되는 것은 모두 남 탓이나, 하나님 탓으로 돌려버리는 태도,
또한 나는 결코 바뀔 수 없다고 하는 패배주의적 마음가짐..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산다고 말은 하지만,
말뿐이고, 그 속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는 신자들이.. 허다합니다.
▲예, 우리는 죄를 짓고 삽니다.
예,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께 반역합니다.
예, 우리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루실 수 있고,
나의 모든 고질적인 것들을 다 변화시키실 수 있는 전문가가 되심을..
우리는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내 속의 그 어떤 죄와 고질적 악이라도,
반드시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능력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전문가이신 하나님을, 잘 안 따라 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는 어쩔 수 없어!’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담금질에 들어가십니다.
풀무 불에 넣고 빼고, 망치로 두들기고.. 담금질을 하면, 그 때는.. 됩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담금질을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쓰시려면, 먼저 사람을 만들어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를 정결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쓰십니다.
그 과정에 대장간의 담금질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택한 백성은, 그 환란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주님이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그 인격까지 성장하도록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고 전진하되,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시겠지..’ 하면 안 되고,
그 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 방해가 되는 요인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고, 또한 내 패배주의적 사고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주님이 그 일을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쉽게 가는 신자가 있을 것이고,
이 사실을 등한시 여기고, 어렵게, 어렵게.. 환란 가운데.. 살아가는 신자가 있습니다.)
▲저는 그저 이론적인 것을, 지금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경험했던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내 삶에 그 어떤 어두운 부분도, 내가 허락해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금 제가 목청 돋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어두운 부분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담금질과 환란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은 늦게 늦게라도, 그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사실 말하면 치열한 영적 전쟁의 한 복판에 놓이는 것입니다.
어두움, 즉 내가 숨길 수 있을 만한 죄는,
이 죄는 숨길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면서
언제든지 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가 이 죄를 짓게 된 것도, 하나님이 허용해 주신 환경 때문이라고,
하나님 주권에 핑계를 대지 말고,
내가 그것을 허용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빛을, 제게 비추어 주셔서,
제 어두움이 드러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깨닫게 해 주십시오.
제 속에, 그 어떤 제 고의적인 어두움도, 남아있지 말게 하옵소서.’
이때,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의 어두움을 드러내 주실 수 있고,
여러분에게 ‘나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그 어두움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하고, 새 사람이 되어지는,
그리고 그 죄가, 아름다움이 아니라 끔찍하게 여겨지는,
그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역사를, 오늘도 일으키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주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두움에서 해방되고,
아버지의 잔치자리에 나아오도록,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 성품의 아름다움, 그 성품의 권세와 능력을 맛보아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모든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성화된 우리와, 친밀히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늘나라의 모든 유산을, 우리 영안이 열려 발견하기 원하고,
그 모든 능력, 그 모든 은혜, 그 모든 영광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참예하고,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잠시 죄악의 낙과 기쁨을 누리는 것 같지만,
그 누림은 잠깐이요, 그 후에는 기나긴 쓰디쓴 삶을 사는 결과가 따릅니다만,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잠깐 어두움을 청산하는 괴로움과 결단이 필요하지만,
주님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모든 천국의 은총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주저하고 있겠습니까?
왜 그 어두움 가운데서, 계속 괴로워하며 살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 복음을 접할 때부터.. 너무 쉬운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듣지도 못 했고, 알지도 못합니다.
자기 욕망, 자아, 야망, 죄성과 욕심을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 대가를 지불하지를 않으니,
복음의 영광, 복음의 능력, 복음의 은총을.. 상속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너무 쉬운 복음이..
얼핏 보면 쉬워서 좋은 것 같은데.. 결국은 혜택이 아무 것도 없네요.
회개도 없고, 죄에 대한 승리도 없고, 욕심을 버림도 없으니,
하나님 나라에서 허락된 모든 은총을 전혀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가 받았다는 구원도.. 짝퉁일수도 있습니다. 그건 정말 낭패입니다.
참 복음은, 당신의 육신에게.. 죽음을, 요구합니다.
참 복음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자기 자신의 물질은 물론이고)
자신의 전 존재를 다 팔아서, 천국과 복음을 매입하라고 가르칩니다.
진주의 비유, 밭의 보화를 발견한 농부의 비유.. 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정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자기의 전 존재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며, 오히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이익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전 존재를 버려서, 하나님의 전 존재를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잠시 살다가, 결국은 자기의 전 존재를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멸망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유한한 자기의 전 존재를 버려서,
영생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 존재를 다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크게 남는 거래인 것입니다.
이것 뭐 긴가민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수표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 구원의 길을, 과거에, 십자가에서 다 열어 놓으셨습니다.
미래의 불확실한 공수표가 아니라, 과거에 다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이 먼저 당신 자신을, 전부 나를 위해 내어놓으셨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미적거린다면,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그 문제와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내가 내 삶에 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알면서도,
복음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복음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자만심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말 내게 이익이 되는가?..
그것을 저울질 하면서, 멀찍이 뒤로 물러서 있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대가를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미적거리며 주저하고 있겠다고요?
정말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믿는 복음이라는 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사로잡지 못하고, 여러분의 삶을 전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지금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고요,
여러분이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가 큰 문제냐? .. 할지 모르지만,
그 잘못된 복음을 믿고 따라가다가는..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복음을 들어서 알고 있고,
내가 그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복음을 그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그 복음을 믿고, 자기가 소유하고, 그대로 사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진짜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 삶에, ‘어두운 부분’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혹시 어두운 부분이 침투해 들어왔다 할지라도,
속히 회개하고, 그곳을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런데 물론, 속히 그게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해서, 징계를 보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는, 그 징계를 받고, 속히 돌이키게 됩니다.
그래서 큰 멸망, 영원한 멸망을 피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웰빙한 삶을 살게 하는.. 그런 행복 창조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자기 삶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어두운 부분’을 발견해 내고,
그것과 싸우고, 그것을 내쫓는.. 그런 성화의 과정을 일평생 계속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두운 부분을 우리가 오래 용납했다가는,
나중에 말할 수 없는 쓴 열매를.. 거기로부터 거두게 될 것이고,
그 어두운 부분을 속히 몰아내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축복, 은총, 만족, 평안 가운데
계속 천국생활을 이 땅에서 누리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두운 부분’을 반드시 몰아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복음, 보혈의 공로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승리한 후에도, 또 잠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완전히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을 ‘일생의 어느 순간에 한 번 받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매일”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 salvation 이란 말은, 구해지다. 곤경에서 벗어나다는 뜻인데,
순간순간, 우리가 죄로부터, 욕심으로부터, 나쁜 습관으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부터, 나쁜 습관으로부터 구원되지 않는 것은, 참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완성을 향해, “매일” 점점 성화되어지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마26:41,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우리가 말하는데,
‘진짜 내 마음이, 나의 성화를 원하면’ .. 나머지는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물론 우리 육신이 약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정말 원하면.. 주님이 도와주셔서 .. 우리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쉽게 쉽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성령이 원하시므로, 해도 해도 안 되면, 징계가 연속적으로 따릅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종국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설교의 서두에, ‘결국은 내가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이 나를 성화의 길로 인도해 가시지만,
결국은 내가 따라가지 않고, 내가 불순종해서,
그 성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 설교의 막바지에, 그렇다고 이 성화의 문제의 키를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의 성화를 원하시고, 나를 그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다만 우리의 협조가 필요한데,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요.
그것은, 내가 성화를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성령님께 부탁하고, 그 은혜에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제 육신은 너무 약합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간단한 것 같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과,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형상처럼 변하도록, 성령님도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기 원하십니다.
‘나는 네 연약한 점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은혜로, 너의 연약한 점을 도와주기를.. 내가 진심으로 원한다.
이 성화의 길이, 네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거라.
나는 네가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알고 있다.
네가 할 일은, 오직 네 연약한 점을 인정하면서, 나를 찾고, 부르짖는 것이다.
내 은혜를 구하고, 내 도움을 구할 때,
나는 네가, 네 어두운 그늘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도록, 내가 기꺼이 도와주마!’
그래서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길로 접어들기만 하면,
하나님은 멀리 가장 떨어진 별을 부르고, 가장 작은 모래를 명해서라도
(즉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하나님의 모든 능력으로, 그것들이 우리의 성화를 도우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내가 단순히 순종하고, (내 어두움에서) 내가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설교 서두에, 불순종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설교 후반부에, 내가 성화의 길을 가는데, <주님의 은혜에>에
부탁드려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설교 마지막에, 그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서,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내 발로,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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