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바래야 하는가요? 삼상2:18
2013.05.04. 김영준 목사님 칼럼 스크랩
요즘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의 미래에 대하여
어떤 <성공>을 바라기 보다는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지나쳤던 교육열에 대한 반성이 담겨져 있는
좀 더 합리적이고 타당성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식에게 물어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저는 궁금합니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나를 키우실 때
내가 행복하기를 목표로 삼으셨던 것 같지 않고,
내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내 인생의 목적을 행복해지는데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생에 행복 이상의 더 큰 목적과 과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대의를 이루기 위하여 행복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부터 가졌던 생각입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무지개와 같은 것이며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을 이루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넌 행복하게 되거라"고 말한들
그들은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물론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가 불행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것처럼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은 각자가 찾아야 될 부분이지만,
뜻이 있는 부모가 자녀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은
"너는 잘 할 수 있다"는 긍지와, "이것이 지향해야 될 선한 목적이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행복하기를 바란 것 같지는 않고,
하나님과 나라 앞에서의 책임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만일 한나가 아들 사무엘이 행복하기를 바랐다면
그 어린 나이에 성전에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가랴와 엘리자벳이, 그들의 아들 세례요한이, 그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령에 충만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면
남처럼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기를 바라지
어떻게 어머니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것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행복은 각자가 찾아야 할 부분이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바랄 것은
더 분명한 실체가 있는 목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코리아의 브랜드
나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15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고
북미의 문화에 많이 동화된 삶을 살았지만
31세의 나이에 한국에 돌아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를 외국인처럼 키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굳이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완벽하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영어가 한국말보다 편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강행했다든가, 영어책을 읽어주었다면
영어 교육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마음 속에 그럴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기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면, 하나님이 그럴 마음을 주셨겠지만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가 생각하는 바는, 언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무엇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미국에서는 길에서 구걸하는 걸인도 영어를 합니다.
그러므로 영어를 잘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나는
오히려 신앙과 정신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그 시간은 신앙과 가치관을 가르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한국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에 의외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지만,
오히려 세계화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 분명한 정체성과 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코리아라는 브랜드에 장기투자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직감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인도가 세계적인 파워로 부상하고 있듯이
미래의 일은 모르는 것이고,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장차 한국의 브랜드가 더 커지게 될 때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고 있으면서
국제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 더 귀중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인들을 보면, 여러 언어를 손쉽게 구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리고 악센트가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미국인처럼 미국식 영어를 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유럽인이나 아프리카인이나 싱가포르인이 미국식 영어를 구사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캐나다의 총리를 지냈던 피에르 트루도는 퀘벡 출신의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서
프랑스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지만
영어를 할 때 약간의 프랑스 악센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매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여러 언어와 여러 문화권을 소화하게 하는 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요?
왜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려 하지 않고, 외국 문화(조기 유학)에만 몰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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