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시는 원래의 삶 고전2:9~12 13.05.19.설교녹취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서론/ 소명과 사명감으로 사는 인생이.. 행복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시는 원래의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고향이 시골이신 분들은, 도시에 살다가도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짐승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듯이, 사람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늘 그리워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본능이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 마음이, 우리의 본능 속에,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이영표 선수가 어릴 때, 처음에 축구공을 봤는데, 그냥 자기 기분이 살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한 번도 축구가 지겨워진 적이 없고, 축구만 하면 오히려 살 것 같고, 기분이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주님의 사명과 부르심이 특정 분야에 있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돈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영생은, 적어도 돈 보다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지난 일주일동안 살아오시면서,
혹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돈을 위해 사셨습니까?
돈벌이에 관계 없이, 자기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요,
자기 사명과는 아무 관계 없이, 돈벌이만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주일 중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보냅니다.
이영표선수처럼 자기 소명이나 사명감을 수행하는 가운데 돈을 벌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일을 하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생이 허전해 지고, 삶이 정말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허무한 것입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은, 돈보다 더 못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돈도 벌지 않고, 무위도식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돈을 버는 일도 필요하지만,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뭘까요? 그게 바로 영생에 속한 일입니다.
우리들은 언젠가 돌아갑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은 바로 하늘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아직 우리가 하늘나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살 때, 저 천국의 기쁨과 행복과 사명감으로.. 나를 의미 있게 살게 해 줍니다.
▲이영표 선수가, 처음에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축구 때문에, 처음으로 수원이란 도시로 이사를 왔습니다.
초등학교 상급생 때였습니다.
그때 자기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골 학교는, 1~6학년 전체가 한 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두메산골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원에 와 보니까, 한 학년에 여러 학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시장에 가니까 상추, 고추, 깻잎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 먹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영표 선수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릴 적부터 두메산골에 살면서,
상추, 고추, 깻잎을, 그냥 여기저기 군데군데 난 것들을 뜯어 먹었지,
한 번도 돈을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채소들은.. 공짜로 뜯어 먹는다는 개념이었지,
그걸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채소들을.. 돈을 주고 사 먹는 도시인들과,
그걸 그저 공짜로 뜯어 먹는 저 두메산골 사람들과..
주님 보시기에 누가 더 정상적인 삶일까요?
◑본론1.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는, 원래 깻잎, 고추, 상추는.. 거저 뜯어먹으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진짜 남의 집 채소를, 그저 뜯어 먹으라는 뜻이 아니고요, 예를 들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벽을 쌓고, 전기가 들어오고, 보초나 경비를 세웁니다.
세금을 냅니다. 그래서 그 세금으로 지키는 사람들을 세웁니다.
그 도시에서 물건을 팔려고 하려면, 상인들도 세금을 내야 됩니다.
옛날에 행상들이 지게나 마차에 물건을 싣고, 팔러 그 마을에 오면,
마을 입구에서 포졸들이 여기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 세를 내라고 합니다.
그 세금을 내고 들어왔으니 물건을 싸게 팔 수 있어요? 물건 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도시인의 삶이 점점 편리하면서도,
어떤 면에서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에덴동산과 같은 환경이 있는데,
인간들이 그것을 많이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삶은, 사람이 깻잎, 상추, 고추와 같은 채소, 또는 물과 공기들을
그저 그저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면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조차, 하나님이 그저 먹고 살 수 있는 것들 주신 것들을,
하나도 못 누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고전2: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찾아 먹을 수 있는지..
오늘 그것을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전에, 우리의 왜곡된 현실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추, 고추, 깻잎을 거저 먹을 수 있는 길’을 살피겠습니다.
▲경제는, 하나님이 원래 만든 것이 아니고, 도시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 인생을, 돈을 기준으로 맞추어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가치를 안 그런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의 가치로 많이 봅니다.
세상의 도시는, 돈이 많은 사람을 가치를 높게 봅니다.
뭐든지 돈으로 가치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물건에 가치를 매기기 위해서 만든 것이.. 화폐인데
이제는 사람까지 화폐로 가치를 매기는.. 타락한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저 뜯어먹는 상추, 고추, 깻잎’.. 이게 원래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그런 거 다 그저 뜯어 먹고 살았지 않습니까!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 계획이 있는데,
그것을 알 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께서 여러분께 오늘 빛을 비추어 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
“모든 것”입니다.
누가 예비하셨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셨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하시면서,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것 같은데,
모태에서 어린아기가 태어나면,
어린아기 입장에서 보면..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똑 같습니다.
아빠 엄마가 모든 것을 사전에 다 예비해 놓습니다.
옷, 신발, 기저귀, 장난감.. 가득 예비해 놓습니다.
어린아이가 준비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태초의 창세기와 똑 같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만물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고전3:21절에 “만물은 너희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만물도.. 돈 주고 사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만물은 너희 것이니라..”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돈으로 사야 된다..' 이런 사상이 머리에 박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생각이, ‘만물이 하나님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돈과 연관’됩니다.
▲제가 이스라엘 선교사로 지낼 때, 우리 집이 가난해서 가구가 없어서
라면 박스로, 책꽂이도 만들고,
물건을 담아두는 가구 대용으로 만들어 썼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한 번은 학교 친구 아이들이 한 번 우리 집에 놀러와 보고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몇 년 동안 다시는 놀러오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너무 가난하게 보이니까,
다시는 놀러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조그만 아이들도, 가난, 경제.. 이런 문제에 대단히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리니까, 그런 문제에 더 예민하고, 더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우리들의 머리속에는 돈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득 차 있고,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해 주신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믿지도 못합니다.
▲여러분, 일주일동안.. 돈보다 가치 있는 일에, 먼저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뭘까요?
기도하는 일, 이웃에게 간증하며 주님을 전도하는 일, 남을 섬기는 일 등입니다.
여러분, 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먼저 하십시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보니까, 부모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은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태어나고 보니까, 모든 것이 다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만약 에덴동산에 있으면서,
뭐든지 그저 뜯어 먹으면 혼날까봐,
채소 뜯어먹고, 과일을 따 먹으면 돈 내라 그럴까봐
못 뜯어 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 살아본 적이 없고,
도시적 생활이 너무 몸에 배여 있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도시 안에, 하나님의 에덴이 감춰져 있습니다.
돈을 따라 살면, 자기 눈에 도시만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이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그게 안 보입니다.
그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계신데,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처럼,
도시가 있지만, 이 안에 에덴동산이,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 보입니다. 내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남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느니라!’ 고전2:9↑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여러분, 구원은 죄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에 인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권은 사람에게 생명이 있다면, 그에게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 법에도 하나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뭐냐면,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서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으므로, 천국이 우리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은.. 나를 비울 때.. 내게 주어집니다.
▲여러분, 주기도문에 이렇게 나옵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주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져야 합니다.
어떻게요?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우리가 먼저 주님을 예배하고,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내가 일터에서나 가정에서 주님을 순종함으로써
나로 인하여 주님의 이름이 구별되는 것.. 그럴 때 주님의 나라가 나에게 임합니다.
즉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으로.. 내가 상추와 고추를 거저 뜯어먹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령으로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저는 이 본문 말씀을 자주 묵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예배당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이 말씀대로 되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 말씀을 의지해서 살 때에만, 이 말씀이 빛이 되어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중간 정리합니다.
이 설교의 첫 번째 논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에덴동산 같은 상황이,
우리가 사는 도시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추, 고추, 깻잎을 그저 뜯어 먹는 상황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의 두 번째 논지는,
이것은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데,
그 하나님의 모든 은총은, 내 심령을 비울 때.. 내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비울 때, 그 은총이 임하는지.. 3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드립니다.
▲1. 눅5장에,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여러분, 힘쓰고 애써서 노력해도,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노력을 안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노력해도, 세상은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가시와 엉겅퀴를 내므로.. 밤새 그물질하며 노력해도,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베드로처럼,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자녀교육만 보더라도.. 노력한 만큼 안 됩니다.
공부를 해도.. 노력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직장 일을, 내 혼신의 힘을 다 해도, 오히려 아무 결과가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내가 잘하는 음식을, 손님이 주문해야, 식당이 잘 될 터인데,
꼭 내가 못하는 음식을 손님이 주문합니다. 그래서 손님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도..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노력했는데,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베드로를 찾아가신 주님은, 처음부터 베드로를 도와주시겠다고 나서신 것은 아닙니다.
먼저는 “네 배를 빌려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면, 화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늘 돈 한 푼도 못 벌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공짜로 빌려달라고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먼저, 내가 피조물인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내가 모든 상황을 내 뜻대로 컨트롤하는 조물주가 아니라, 무능한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피조물의 겸손하게 된 상태에서,
“너는 먼저 돈을 못 벌어도, 먼저 나를 위해 살아라.” 하는 음성을 듣게 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결국은 그물에 가득 찬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철저히 낮아지고, 비워진 상태에서.. 주님이 예비하신 은총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사렙다 과부는, 먹을 게 없었습니다.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떡을 꺼냅니다. 그때 주님이 엘리야를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처음에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가 뭐 떡을 가져온 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서, 굶어서 죽게 된 자기를, 도와주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적반하장으로, 도리어 떡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떡을 쉽게 주겠습니까?
참 이상하죠? 사렙다 과부에게 하나님이 도와주시려는데,
그래서 엘리야를 보냈는데, 왜 그 떡을 먼저 달라고 말씀하실까요?
위의 베드로와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너는 피조물이야, 너희는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라..”
그 뜻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빈자리, 낮아진 자리, 자아를 포기한 자리에 임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도 얼마든지 내 인생을 살 수 있어!’ 하는 자리에는..
‘주님이 예비하신 모든 은총(고전2:9절)이’ 임하지 않습니다.
▲3. 여호사밧 왕은, 전쟁에 나가서 죽게 되었습니다.
적군이 너무 많이 몰려온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기도합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
여러분,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구원자,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은 무턱대고 “너는 무서워하고 떨리는 구나.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전쟁터 맨 앞에서 나를 예배하라.’ 먼저 주님께 뭔가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일터에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세요.
나는 대적할/감당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 먼저 이렇게 할 때..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모든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 뭐든지 먼저 주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자녀를 망치는 것입니다.
방에 전깃불을 끄지 않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엄마가 대신 꺼주었기 때문입니다.
싸인펜 쓰고, 뚜껑을 덮지 않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엄마가 대신 늘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응석받이로 키우지 않으십니다.
그게 결국은,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먼저 주님을 사랑하게 하십시오,
우리 애들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집에서 맛있는 것이 나오면, 아빠가 먼저 먹었습니다.
첫 열매를 아버지께 드리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역할을, 아버지인 제가 잠시 했습니다.
정말 그 부분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크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커서 첫 직장에서, 받은 첫 주급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거룩함이요,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렇게 베드로는, 먼저 자기 배를 드리고, 사렙다 과부는 떡을 드리고
여호사밧의 군대는 전쟁하지 않고, 예배를 먼저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이것을 ‘회사 직장인’ 예로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회사나 일터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티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일터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먼저 하고, <일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요셉처럼, ‘아 저 사람이 온 다음부터 부서가 잘 되네, 이상하네,
저 사람이 있는 파트가 일이 술술 되어지네.’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되니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일터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고,
일터만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먼저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신자들은, 직장에서 일도 안 하고, 기도만 합니다.
그러면 ‘어느 교회 다니느냐?’고 하면서.. 욕만 먹습니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해서, 정리도 안 하고 성경부터 봅니다. 그래서 욕을 먹습니다.
일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고, <일터>를 사랑해야 합니다.
두 개가 동시에 만족되는 곳이,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되려면, 이것은 우리 속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을 먼저 만족시키고, <일터>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함과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예비하신 그 모든 은총 (고전2:9절)’들이
현실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황당한 명령이라도.. 순종하십시오.
저는 새벽기도 때, 기도를 요청하는 성도님께, 예언기도를 해 드립니다.
성령님이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대로, 예언을 해 드립니다.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어, 눈에 보이는 환상.. 그러면 믿음으로 냅다 해 버립니다.
한 번은 처음 보는 부인인데,
척 보기에 매우 사나운 인상이었습니다.
제가 기도를 해 드리려고 손을 척 얹었는데, 이런 황당한 예언기도가 나왔습니다.
“스파게티에 탕수육이 부어졌나이다!”
제가 기도를 해 드리고 나서도, 즉시로
‘야, 내가 지금 왜 이러는 거야? 이거 앞으로 수습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지금 우리 교회에 전도사님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그 분은 매년, 1년 중에 10달씩, 남편과 별거를 했습니다.
합쳐지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또 서로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그 날도 별거 열달만에 남편이 돌아온지, 며칠 되지 않아서 였습니다.
이 분의 고민은, 자기가 남편과는 모든 것이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드는 생각이
‘나는 스파게티이고, 남편은 탕수육이다’라고 생각했답니다.
평소에 자기는 스파게티를 좋아하고, 남편은 탕수육을 좋아하거니와,
스파게티와 탕수육의 성향이 완전히 서로 다른 것처럼,
자기와 남편은, 그렇게 도저히 서로 맞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기도회에 와서, 기도를 받는데,
‘스파게티에 탕수육이 부어졌다’고 하니까, 그 분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즉시로 온 가족이 다 교회로 나오셨습니다.
우리가 자꾸 경험을 의지하거나, 눈치를 의지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에.. 자기 경험과 눈치를 섞기 때문에, 통계학을 섞기 때문에
주님 뜻이 분변하기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예비하신 모든 은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찾아 먹으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비우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내 상식과 이성을 뛰어넘는 순종을 할 때..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은..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정말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부족하니까요.
저는 정말 부족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가 부족하니까,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예비하신 것이 있더라니까요!
주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예비하신 은총들이 있다는 것이 ◑1번의 주제였고요, :9
그런데 내가 그렇게 몰상식적인 순종을 드리거나,
내 자신을 비울 때에
그 빈곳에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2번의 주제였고요.
그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11
◑3번은, 주님이 주신 모든 은총과 축복은
자격이 안 되는데..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12
고전2: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로 주신 것’은, 영어로 freely given 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성령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신 것들을 보여주십니다.
이 말씀을 드리려고, 서두에 이영표 선수 예화를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요,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은, 자격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아니라, 가정에서건 일터에서건 간에, 노력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청년들에게 연애특강을 하는데, 자매들에게 꼭 말합니다.
‘여러분, 너무 무거운 물건 들지 마세요. 의자 들다가 오히려 쓰러져야 돼요’
일부 자매들은, 남자들도 들기 힘들어하는 의자를.. 번쩍 들고 옵니다.
그러면, 무서워서.. 어떤 남자가 프러포즈 하겠어요?
자기가 들 수 있고, 힘도 세지만,
의자를 들다가 쓰러져야지, 그래야 남자가 달려와서 도와주는 거지요..
여러분, TV 연속극을 보면,
여자주인공은 꼭 회사에서 무슨 무거운 서류나 책을 많이 힘들게 들고 가다가,
꼭 회사 복도나 로비의 땅바닥에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상사에게 혼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장 아들이 급하게 달려와서,
그 떨어진 서류나 물건을 집어 줍니다. 그러면서 서로 눈이 맞는 것입니다.
자기가 힘이 좋다고, 건강하게 다 들고 다니다가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축복은, 자격이 안 되는데,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회사의 예를 들어서, 말씀 드리는 중입니다.
그래서 연속극에 보면, 부잣집 딸은, 결국 남자에게 차이는 것입니다.
그는 남자를, 은혜로,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으로, 자기 집 배경과 재산으로 받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잣집 딸에게 늘 구박받는 그 신입여사원이
남자들은, 한눈에 마음에 들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알기 쉬운, 선물이요, 은혜의 원리입니다.
▲여기에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은혜의 원리’만 믿고, 일터에서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은 해야 하지만,
우리 마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은혜로 예비된 것을 찾으셔야 합니다.
상추, 고추, 깻잎을.. 그저 뜯어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시장에서 사서 먹을 생각만 하지 마시고요!
그래서 주님이, 교회건 가정이건 일터에서, 우리가 안 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힘쓰고 애써서 노력하는 영역이 안 되게 하십니다.
내가 노력하는 영역을 막으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막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막히면 눈을 부라리고.. 그것을 돌파하려 합니다.
주님은.. 은혜로 받으라고 막으시는데..
우리는 내 육신의 힘으로.. 깻잎과 상추를.. 돈 주고 사서 먹으려고 합니다.
▲영의 일과 육신의 일은 반대됩니다. 영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배는, 채워진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배는, 채워지면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영은, 비워질 때 좋아합니다.
영이 압니다. 영은 비울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이 영의 일은, 예배 때만 쓰이는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쓰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나를 채우려고 하면, 그건 육신의 삶입니다.
그리고 육신을 채워주려고 하면.. 그 자녀는 망칩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 즉 성도나,
우리 가정의 육신의 자녀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을 너무 채워주려고 하면.. 그 자녀는 망칩니다.
그게 아니라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포인트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인데, 오히려 다른 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채워드리고, 내가 이웃을 채워드리면
이런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의 복이 시작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뒤돌아보면,
제가 가장 풍성한 삶을 살았을 때는,
도대체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였습니다.
왜요? 가장 낮아졌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주님을 바라본다면..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주인되는 순간, 들어오는 것이 두려움, 불안,
안 되면 어쩌지? 하면서 불안해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사역을 다 책임져야 할 것 같아서 불안해합니다.
여러분, 주님께 맡기세요. 선물로 만난 만남은 축복이 됩니다.
자격이 있어서 만난 만남은, 따지면서 불행으로 끝납니다.
자격이 안 될 때 만난 만남.. 오히려 그런 결혼이 행복합니다.
왜요? 결혼이 은총이요, 선물로 얻은 것니까요. 귀하게 여깁니다.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자기가 능력이 있어도 이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낮추는 자,
‘하나님, 나는 이런 것을 받을 자경이 없는데 왜 주십니까?’
그런 사람을 통해, 주님은 하늘의 것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가 노력한 것으로 된 것이 없습니다.
겨우 밥을 먹고는 살겠지만, 뭐 영생의 것이 이루어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할 수 없습니다.”하며 눈물만 나고, 탄식만 나는 것..
거기에서 주님을 노래하고 예배할 때,
정말 언제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왜요? 주님이 그 자리에 오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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