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고소공포증, 참 신앙의 증표

LNCK 2013. 5. 27. 20:50

◈고소공포증, 귀신의 덫      행16:16~25       출처보기, 축약

 

▲고소공포증! 이게 좀 심하면 공황발작의 단계까지 갑니다.

공황발작이라는 것은 높은데 올라갔을 때, 불안감과 공포감이 너무 커져가지고

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는 거예요.

 

높은 곳에 올랐다는 그 단 하나만의 이유를 가지고,

이렇게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게 되는 게 고소공포증인데,

신앙인들은, 비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런 ‘고소공포증’이 참 신앙의 증표가 됩니다.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심장이 뛰고,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 하고,

스스로 땅바닥에 주저 앉아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본문의 사도바울의 행적에서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여러 가지 질문을 갖게 합니다.

 

▲1.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이렇게 전도하러 다닐 때,

쫓아다니면서 뭐라 그러냐 하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다’

라고 외치게 되요.

 

이렇게 따라다니는데,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그럽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의문점이 생기는 겁니다.

 

우선 심히 괴로워했다고 그러는데,

왜 그렇게 몇 날이고 며칠이고 따라 다니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괴로워하면서요.

 

그냥 처음에 따라 다니면서 귀신이 말할 때,

즉시로 귀신을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왜 놔두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축사의 권능,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이 바울의 소지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바울 안에서 동행하시면서,

그때그때 성령님이 당신의 뜻을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지,

바울이 자의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몇 날 며칠 그 귀신이 쫓아 다녔던 것은,

성령님께서 몇날 며칠을 쫓아다니게 하신 것이지요. 쫓아낼 능력을 안 주신 것이지요.

 

 

▲2. 두 번째 질문은, 왜 귀신은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바른 말을 했을까요?

귀신이, 바울 일행을 위해서, 홍보를 해주고, 무료로 전도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게 빌립보 선교사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 상황은, 앞서 1차선교여행 때,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헤르메스신이다, 제우스신이다’ 하며 높인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랄까, 아니면 아이러니랄까,

그렇게 -본의 아니게- 높임을 받은 직후로

바울은, 인근 도시에서 온 유대인 대적자들에 의해,

돌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루스드라 성밖에 내다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죠. 행14:19

 

▶그런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아닌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 빌립보에서 바울은, 귀신이 칭송하는 소리를 듣고 ‘심히 괴로워’ 합니다.

이 설교의 제목처럼 <고소공포증>을 느낀 것입니다.

 

이 귀신이 증언한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간계가 들어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너희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들이다’ :17

 

이 사람들’ .. 즉 귀신들의 증언 속에서 바울이 주어가 될 때,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라는 말도, '구원의 길'이라는 말도 전부,

주어인 바울을 수식하는 수식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바울을 잔뜩 교만하게 해서, 넘어뜨리려는 궤계였던 것입니다.

이게 귀신도 곡할 귀신의 간계라는 거예요.

 

잠시 적용을 해 볼까요?

신자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오고갈 수 있습니다.

‘아무개 목사가 떴다, 아무개 목사가 후발주자로 지금 계속 치고 올라온다’

 

물론 말하는 사람들은, 큰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듣는 당사자는, <고소공포증>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루스드라의 바울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3. 바울이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즉 바울이 높은 곳에서 고소공포증을 느끼고

스스로 내려왔는데도..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개입하십니다.

 

결국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게 되자,

이제 점을 칠 수 없게 되니까 수입원이 끊긴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빌립보 성의 로마관리들에게 고소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찢어서 벗기고 매를 치게 됩니다.

그렇게 하고 감옥에 가두었는데요..

 

자, 여기서 이 본문을 대하면서 우리에게 거세게 밀려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바울은 자기가 로마시민권자라는 사실을, 감옥에서 매 맞기 전에 말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경황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태 속에서

서로 간에 뭘 정확히 확인할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인간적으로 볼 때, 비참하고 불행한 결과가 나타났고, 즉 채찍질을 당했고,

성령님은 나중에 지진을 일으켜 주셨는데...

 

▲4. 또 한 가지 의문이, ‘지진의 타이밍’입니다.

만약에 형장에서 옷이 벗겨 찢겨지고 매를 맞기 직전에

지진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귀신들린 점쟁이가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고,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한껏 높여놓은 상태입니다.

 

그렇게 높이고 있는 상태에서, 형장에서 형을 집행하려고 하는데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완전히 끝난 거죠,

바울과 실라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되는 것입니다. 신으로 추앙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진은,

채찍질을 다 당한 후에, 한 밤 중에, 뒤늦게 일어났느냐는 의문입니다.

이게 다 ‘고소공포증’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위 3번과 4번의 의문에 대해, 답을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보겠습니다.

이런 일화가 사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것을 보는데요...

 

한국교회에 사도바울에 필적할만한 존경받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한경직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한 가지 불상사는, 교인들은 예수님을 잊어버립니다.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분께 주례 받고 결혼하신 부부들은, 평생 그것이 자부심입니다.

한목사님께 세례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또 한목사님을 보필한 부목사, 권사님도 다 입만 열면

예수님 얘기는 뜸하고.. 존경하는 한목사님 얘기만 하게 됩니다.

 

지금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이 사도바울과 실라를.. 강권적으로 확 낮추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높아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뚜렷이 보이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은.. 바울 일행을.. 확 낮추어, 만물의 찌끼와 세상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리시고,

귀신들린 여종은.. 바울 일행을.. 확 높여서, 고소공포증을 느끼게끔 만듭니다.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성령님이 바울 일행을 높이셔야 하고,

귀신이 바울 일행을 낮춰야 하는데..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령님은 늑장을 부리신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이, 채찍에 맞도록.. 다 방관하시고,

 

지진이 일어나기는 하되, 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 뒤늦게 지진을 일으키셔서

뒤늦게..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나 완전히 세상의 찌꺼기 대접을 받은 후에, 뒤늦게 높여 주십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본문에서 ‘귀신의 덫’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귀신은, 바울과 실라를 잔뜩 높이는 발언을,

계속 뒤따라 다니면서, 쉴새 없이 했습니다.

 

그 결과, 높으신 하나님과 구원과 복음의 길이

다 바울과 실라를 높이는 수식어가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바울 일행을 높였을 때에,

바울과 실라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행하든지 간에,

그 모든 역사의 결과로 주어지는 영광은 다 바울과 실라에게 돌아갑니다.

 

이게 바로 <귀신의 덫>이라는 거예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한껏 높여놓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어떤 역사를 하시든지

모든 영광은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로 다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귀신은 성공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로부터의 영광이, 그 사람에게로 다 집중되니까,

그래서 그게 바로 <귀신의 덫>이라는 거예요.

 

이 <귀신의 덫>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바울은 로마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꼬여서 채찍을 맞게 하시고,

이왕에 일으키실 지진을, 뒤늦게 늑장부리시며 일으키십니다.

 

바울과 실라는, 채찍에 맞을 때, 먼저 옷이 벗겨져 굴욕을 당합니다.

또한 매를 맞아서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쓰러집니다.

 

그 비참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면서

아무도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다운 권세와 위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때 잔뜩 늑장을 부리고,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제 간수의 마음은 어디로 향합니까?

비참했었던 그 인간 바울 일행을 보지 않습니다,

 

간수의 관심은,

그 비참한 모습을 띠고 감옥에 갇힌 인간의 배후에, 누가 있는데?

도대체 이런 지진이 일어나는가 하는 쪽으로 관심이 향한 거예요.

그리고 그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아니면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숭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치는 말

성도는.. 영적인 고소공포증을 느껴야 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어지럼증을 느껴야 하고, 제 발로 속히 내려와야 합니다.

아니면.. 크게 ‘돌로 침’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도와주실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세상의 찌끼와, 구경거리 스펙터클이 되게 하십니다.

 

이게 다 사람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오늘날 ‘스타 OO’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설교를 잘하는 목사, 떠오르는 별, 그 외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은 착각합니다.

유명세가 있고, 그 사람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야.. 사람들이 모여든다고요!

 

TV연예인은,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을지 모르나,

기독교 복음은, 사람이 부인되고, 예수만 뚜렷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급적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국내외에, 한 때 큰 영향을 끼쳤던 큰 종들이

나중에 수세에 몰려, 어려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섭리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 주님의 섭리는,

이 설교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게 다 사람을 주목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님의 섭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