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게 한다. 벧전1:18~22 13.07.28.설교녹취
<외모를 보시지 않지만, 행위를 보신다>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中國語
1:22절이 하이라이트입니다.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너희 조상으로부터 유전한 망령된 행실’
조상으로부터 죄의 습관을 유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나쁜 죄의 습관이 있으면, 그것이 자녀 세대에 유전되는 것은 현실입니다.
자녀 셋에 다 유전될 수도 있고, 한 둘에게만 유전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천대까지 간다고 되어 있지만,
가문의 저주는 3대까지 갑니다. 출20:5~6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못된 짓 한 것에 대해서 그 아들이 몰려 받고,
그 손자까지, 3대까지 물려받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삼대 조상으로부터 엄청난, 본문 성경에 보니까,
조상의 유전을 그 망령된 행실을 우리가 답습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구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망령된 것, 가문의 저주, 이런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이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모든 조상의 죄의 저주에서 해방되지만,
법적으로 해방되는 것이고,
예수를 믿은 후에도, 원죄의 속성까지도 완전히 처리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처럼,
예수를 믿어도, 조상의 죄의 영향력을, 계속 대적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벧전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그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시고 아신바 되었습니다.
예정에 대해서 꼭 깨달아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께 미리 아신바 되시고 예정되셨습니다. ↖
예수님이 예정되셨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예정이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옥 갈 사람, 천국 갈 사람이 정해졌다는 것이 예정론이지만,
누가 예정되어 있느냐 하면, 예수님이 예정되어 있고,
또한 이스라엘이 예정되어 있고
교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스라엘을 버리고 교회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습니다.
예정은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해당됩니다. 교회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은, 예수님이 예정되어 있는 그 예정에,
내가 그 안에 들어가면, 나도 그 예정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예정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예정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빼 버리고, 나는 예정 받았다고 해석하면..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를 빼 버리면, 예정은 유효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벧전1: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가짜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망도 가짜 소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자기 신념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믿음의 대상을 나 자신에게 두는 것은, 신념이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음으로써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랍니다.
구원의 주체를 자기에게 두고 있습니다.
소위 자기가 믿기로 결단만 하면, 자기가 구원 받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 회사에 들어가기로 내가 결심만 하면, 다 들어갈 수 있습니까?
자기 결심도 물론 필요하지만, 천국에서 받아 주어야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나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구원을 날마다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 소망의 반대말은, 세상의 소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소망입니다.
세상 것을 구하는 소망은, 성경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올바른 소망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설교를 통해, 지치고 힘든 신자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 ‘소망’의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참 소망이 아닙니다.
본문처럼 ‘하나님께 둔 소망’이 아니고, 부자되는 소망, 성공하는 소망을 전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의 주로 오시고, 우리가 들림을 받고,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하늘나라의 영광과 그 하늘나라의 소망,
그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소망이고,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 것 구하고 세상 것 좇아가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소망과, 잘못된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하나님께 두는 소망,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늘의 것을 따르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소망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의 일환으로
아브라함의 축복, 세상 물질적 풍요함도.. 거론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하늘에 대한 소망, 하나님 나라의 소망, 하나님께 대한 소망’은 완전히 접어 두고서
‘아브라함의 축복의 소망, 세상 물질적 풍성함의 소망’만 거론하는 것은,
‘거짓소망’입니다. 그렇게 부유하게 살다가.. 다 망하고, 엉뚱한 데 가는 것입니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위 22절에 너무너무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신자 각자가 어떻게 하면 거룩해 집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진정으로 뜨겁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위 말씀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결과가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거꾸로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 왔습니다 .
내 영혼이 잘 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진리를 알게 되면
나의 삶 가운데 거룩함이나 순종함이 따라나온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글리 크리스천들이 엄청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쳐주는대로 믿어야 합니다.
내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내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깨끗해진다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영혼이 잘 되면
나의 삶 가운데 거룩함이 나타나고, 순종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점도 없지 않아 있겠지요. 은혜로 이끌어주시는 측면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인간의 책임을 엄격히 강조합니다.
‘내가 진리에 순종할 때..’
내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장로교 신앙은, 은혜와 예정을 강조하다보니
신앙생활에 있어서, 인간의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만
우리는 성경을 두루두루 봐야 합니다.
물론 은혜와 예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자기 책임, 자기 타락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은혜라는 것도
‘하나님을 믿게 해 주시는’ 영역에 있어서 ‘은혜’입니다. 소위 ‘불가항력적인 은혜’
또한 더 넓은 영역에서 은혜를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하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시는.. 은혜입니다. ☞은혜
그 일을 하는 것은.. 결국은 내 책임이며
그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내 책임입니다.
본문에서처럼, 말씀에 순종하도록, 은혜로 도와주시지만,
결국 말씀에 순종하고 안 하고는.. 내 책임으로 돌려야지
은혜의 책임으로 떠넘겨 버릴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내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은혜의 측면도 고려해야 하지만, 책임은 내게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결과적으로 여러분이 순종하고, 정결하게 살고,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 각 사람의 행위를 보시는데,
우리가 정말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순종한 것만큼
내 영혼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주님 앞에서,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내 생명까지도 바치겠다..
그런 결단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자기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 22절은, 2천 년 전에,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 <행동심리학>에서 발견한 것은,
여러분, 이 말씀이 맞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행동심리학>은, 내가 바르게 행동하면.. 비로소 내가 바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내가 결심하고, 내가 거룩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가져야
거룩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먼저이고, 행동은 마음을 따라온다고..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과 각오를 새롭게 갖고, 또 결심을 하고
그렇게 마음을 새롭게 결단하면.. 그렇게 마음에 치중하면..
그러면 삶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그런 면도 맞지만, 그러나 대부분 다 실패했습니다.
행동심리학은, 거꾸로, 행동이 먼저이고, 마음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성경은, 행동심리학이 나오기 2천 년 전에, 이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동하면.. 내 마음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가는 순간순간만큼
그 걸음걸음만큼.. 즉 내가 행동하는 만큼.. 내가 성화되어지는 겁니다.
내가 진리에 순종한 것 만큼, 내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22
내가 진리의 말씀에 실제 삶으로 굴복하는 것만큼,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우리 각자는, 진리에 얼마만큼 순종하십니까?
목숨 바칠 각오로, 정말 진리가 진리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그렇게 순간순간 날마다 순간순간, 정직하고 정결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만큼, 그렇게 죄를 짓지 않는 것만큼,
내 영혼도 그렇게 순수해지고, 깨끗해지고, 거룩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영혼이 잘 되고, 내가 주님과 깊은 관계가 이루어진 후에,
나의 삶이 따라온다고, 행위가 따라온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한쪽 면만 보시면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한쪽 면만 바라본 결과,
생각과 마음으로는 믿는데, 자기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 질 줄 모르는
그런 ‘삶의 열매가 없는 크리스천’이 많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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