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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이를 사랑하고 저를 미워함이라 / 잭 푸닌

LNCK 2013. 8. 6. 11:37

www.youtube.com/watch?v=T9NUSZOZl0I&feature=youtu.be

◈이를 사랑하고 저를 미워함이라          눅16:13                설교 번역, 출처

 

Zac Poonen / Love of Money   ※출처의 원문을 참고하세요.     

◑3. 단락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서론/ 종교기관은, 물질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오늘 저는 ‘주님이 돈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셨는가?’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난 기독교역사 내내, 특히 ‘기독교 왕국’을 지내왔던 나라에서는

교회에서 ‘물질’에 대한 강조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그게 도를 넘어서 압력이나 스트레스를 준 적도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미국에서는, 방송을 통해서까지 헌금을 끊임없이 모금합니다.

그런 방식들이, 제가 보기에는, 성경과 합치되기 보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된다고 보기에.. 제가 오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압력을 행사해서 헌금을 모금하는 방식은,

만약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두 번이나 성전을 정결케 하신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전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에 대한.. 격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예수님의 ‘성전 청결’을 꼭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방심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성전’이란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하고, 또한 거둔 헌금을 아무렇게나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돈’에 대한 예수님의 일반적인 태도

 

▲예수님은 항상 먼저 행하시고, 그 다음에 가르치셨습니다.

자기가 행하지 않으신 일은, 예수님은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행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위 구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분명히 ‘행하시며 가르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점이 오늘날 우리들과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먼저 행하시지 않으신 일은, 가르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가 있었던 것은,

자신이 먼저 행하시고, 그 다음에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로써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먼저 행실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증인’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들인데요...

‘증인’이란 말은, 그저 입으로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자기 몸으로 증거로 보여준다.. 는 뜻입니다.

 

오늘날 만약 우리가, 자기가 행하지도 않은 일들을, 가르치려 한다면

그야말로 외식자가 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크리스천의 물질생활>에 대해서 가장 잘 가르칠 수 있고,

가장 권세 있게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가 먼저 물질의 선한 청지기로 살 때..

자기에게서 힘있는 메시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다같이 눅16:13절을 보시겠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이, 물질에 관한, 예수님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

마치 ‘건물의 기초’와 같은 교훈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재물’이란 단어는, 예수님이 특별히 ‘맘몬’이란 용어를 쓰셨습니다.

이 말은 그저 ‘재물, 재산, 물질’을 뜻하지만, 또 한편으론 ‘물질의 신 (즉 맘몬)’을 뜻합니다.

'맘몬'은, 구약의 ‘바알 우상’에 대한 신약적 표현으로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눅16:13절을, 요절처럼 항상 암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만큼 ‘물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요..

 

먼저 여기서 예수님이 ‘물질을 주인 master 으로’ 묘사하십니다.

‘주인 master’은 다스리는 자, 주관하는 자입니다. 물질이,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이 ‘주인’을

하나님과 대응하는 개념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물질의 신’으로 말입니다.

 

 

◑2. 그래서 ‘종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잘라서,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은 제 푸닌의 추측인데요,

약 90%의 크리스천들이, 두 주인을, 하나님과 사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눅16:13절에 의한 정확한 표현은, 크리스천들에게 도전 하는 ‘두 주인’은

하나님과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과 맘몬입니다.

그만큼 맘몬이 영향이 강력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만약 당시에 종이 두 주인을 섬겼다가는.. 아마 큰 형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한 종이, 이 집, 저 집.. 두 주인을 섬겼다가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맘몬, 두 주인을, 별 거리낌 없이, 둘 다 잘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사탄의 미혹입니다.

맘몬, 물질을 섬기는 동안에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물질의 신을 섬기면서, 아무런 불편함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즉 교회 생활을 잘 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그걸 두고서 ‘내가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마귀의 미혹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탄은 ‘이 세상의 신’이요, ‘이 세상의 지배자’입니다.

그 사탄이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자기 뜻대로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방식이.. <돈으로> 사람을 조정합니다.

 

그래서 정계, 경제계 등 (모든 분야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일부 분야는 그렇습니다.)

그 밑바닥에는 거대한 돈의 흐름이 있습니다.

인도에는, 심지어 가장 신성한 결혼도, 돈에 따라서,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은혜’가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사탄의 나라, 세상 나라에서는 ‘물질’이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 옆에, ‘물질의 신’을 나란히 세워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물질의 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도전하십니다.

‘꿩 먹고 알 먹기’식, 둘 다 취하는 식은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슷하게 도전했던 적이 있지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왕상18:21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면 대단히 신기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바알 우상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한데..

사람들은 바알에게 혹해서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완전히 등 돌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눅16:13절은, 갈멜산의 엘리야의 도전과 흡사합니다.

엘리야가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고 도전한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과 맘몬,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오직 한 하나님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것은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것임이니라.” 눅16:33

 

▲만약 내가 돈을 사랑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만약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돈을 미워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하라.. 는 것은,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간판을 내 걸었지만, 근본 속성은 ‘바알(풍요의 신)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인간 본성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은, 돈을 좋아합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돈을 좋아하다 보니..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을 그런 식으로

‘자기 구미에 맞게 끼워 맞추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그런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에 혹해서,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정상일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를 따르는 군중들이, 언제나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돈을 미워하게 된다.’ - 이것은 인간본성에 위배되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돈을 미워하게 된다.’는 본문의 말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가만히 보면,

대부분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의 삶이, 대단히 얄팍하고, 깊이가 없습니다.

무늬만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날 그게 대세입니다.

 

왜 우리 크리스천의 삶이, 얄팍하고 깊이가 없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게 hold하게 되면,

물질 우상은 경멸 despise 하게 된다’는.. 본문 13절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he will hol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위 구절을 현실적으로 한 번 살펴봅시다.

우리 가운데 ‘나는 돈이 싫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 본능 근본 밑바탕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자만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돈을 사랑하며,

돈과는 어느 정도 자유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도, 히피도, 돈을 사랑합니다.

그가 아담의 후손인 이상,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돈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은,

그런 ‘돈을 사랑하는 우리 육신적 욕망’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은둔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요,

‘최소한의 물질로 살아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건 표적을 벗어난 이야기이고요,

핵심은 <돈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돈으로부터 구원 받는 것>입니다.

돈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돈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돈의 지배력, 돈의 컨트롤.. 돈의 우상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고, 진정 구원을 받으면.. 여러 혜택이 뒤따르지만,

그 중 한 가지 혜택은,

부자가 된다기 보다는, 가난하게 된다기 보다는 (둘 다 아니고)

<돈의 지배에 대해서 자유하게 된다> .. 입니다.

 

돈은 신입니다. 맘몬, 물질의 신 master 입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컨트롤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속사람이 변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의 지배만 받습니다.

돈을 섬기지 않고, 돈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돈에 대해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사람이 갖는, 여러 가지 혜택 중의 하나입니다.

‘돈이 나의 master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을 미워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미워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눅14:26장에 보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고 하셨는데요..

성경의 다른 구절에 보면..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모, 처자,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 할 때, ‘미워하다’는 말의 의미는

‘죄를 미워하라’ 할 때의 의미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본문 눅16:33절에서, 예수님이 ‘혹 이를 사랑하고 저를 미워함이라는 말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진짜 돈을 다 미워하고, 다 길바닥에 버리고, 은둔자가 되든지, 거지처럼 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돈의 지배를 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크면, 돈을 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즉 돈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돈을 미워하는 것이 .. 인간의 본성을 거스리는 일이므로 ..

도저히 실천하기 불가능한 말씀인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뜨겁게 불 타 오를 때는

돈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뜨거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연애를 예로 든다면, 만약 A를 열렬히 사랑한다 하면서도

동시에 B도 사랑하고, C에게도 곁눈질 하는 것은..

사실은 A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이요, 기만적인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 한 분만 진정 뜨겁게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돈도 사랑하고,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약 돈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데,

그것이 ‘아내를 사랑함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자녀를 사랑함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아내나 자녀를 우상처럼, 하나님과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요,

아내, 자녀, 부모를 ‘미워하지만’ 눅14:26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신앙심, 그 경건에서 나오는 ‘가족 사랑’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가족 사랑이요, 이웃 사랑입니다.

 

가족을 예로 들었는데, 물질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을 다 버리고, 히피처럼 살아라는 뜻이 아니라,

‘물질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내 사랑, 내 경건, 내 헌신이

내 물질 사용을 통해서, 내 물질의 청지기 됨을 통해서, 그것이 증거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물질을 미워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즉 물질에 대한 성실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 우리가 물질을 다 없애버리고,

마치 히피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사하라 사막 같은데 가서 보십시오. 하늘의 별도, 밤에 대단히 밝습니다.

매우 총명한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낮에도, 하늘에 별은 떠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태양 빛이 너무 밝기 때문입니다. 별빛이 태양 빛에 가리워서, 안 보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한 분만 뜨겁게 사랑할 때,

‘물질을 미워한다’는 뜻은

물질이 있기는 있지만, 그게 중요하게 눈에 선명하게 띄지 않습니다.

 

물질이 예수님의 밝은 빛에 가려져서.. 중요하거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삶!

그게 ‘물질을 미워한다’는 본문의 뜻이라고, 저는 그렇게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