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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관원과 삭게오 눅18:18~23 출처보기 Part2 번역
Zac Poonen
◑돈이 나의 master인가, slave인가?
그러므로 돈에 대한 우리 크리스천의 태도는
돈이 나를 지배하는 master이냐?
아니면 내가 돈을 slave처럼 부리고 사느냐... 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기도하며,
성령님께서 나를 정직하게 판단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노예처럼 잘 부리기만 하면,
돈은 아주 충실한 노예입니다. 돈이 많은 일을 합니다.
물론 돈으로 manipulation, 즉 자기 구미에 맞게 상황을 조종을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성실한 청지기로서, 돈을 잘 관리해서 쓸 때,
돈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은 쉽게 ‘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돈을 제대로 잘 쓰기만 하면, 불이 여러 가지 일을 하듯이, 좋은 결과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돈을 잘 못 쓰면, 불이 나서 위험한 것처럼, 파괴적 상황이 초래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돈이 여러분에게
wonderful servant입니까, 아니면 terrible master입니까?
돈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종입니까, 아니면 끔찍한 주인입니까?
여러분, 천국에는 ‘황금길’이 있듯이,
오늘날 현재 천국을 사는 여러분들은, 황금을 돌처럼 여기고
발로 밟고 지나가듯이, 그것을 다스릴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도,
진정 현재 천국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황금 길’을 걷습니다.
황금을 돌처럼 여기며, 황금을 다스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운데, 현재 천국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황금을 자기 머리에 이고 삽니다. 마치 왕관처럼 이고 사는데,
늘 돈을 생각하며, 그렇게 황금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요, 장차 미래 천국에 들어갈 거듭난 자녀들은
황금을, 뱀과 전갈을 밟듯이, 발로 밟으며 다스리며 사시게 되실 줄 믿습니다.
◑돈은 버는 것 보다,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 ‘돈을 많이 벌어라. 돈을 작게 버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돈을 얼마를 벌든지, 돈을 잘 관리하라’는 구절은, 몇 군데 나옵니다.
1백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세시절에는, 사실상 상인이나 금융업자들은 아주 천하게 취급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직하게 살아서는 돈 벌기가 힘들고,
남을 속이고, 높은 이자를 매겨야 상업이나 금융업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치 신약시대의 세리처럼, 중세시대에 아주 죄인으로 홀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순절 계통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처럼 부자로 사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물질관’은
마치 시계추처럼, 좌우로 극단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저 푸닌은, 성경에서 예수님은
가난이 미덕이라고도 하지 않으셨고, 부자가 미덕이라고도 하지 않으셨다고 봅니다.
당신의 연봉이 많든지/ 작든지
지금 당신이 소유한 재산 총액이 크든지 / 작든지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로 살라’, 반대로 ‘가난하게 살라’는 강조는, 다 핵심을 빗나간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핵심은,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물질의 지배를 받는 자가 되지 말고, 대신에 물질을 종으로 부리는 자가 되라>입니다.
늘 돈만 생각하는, 돈에 지배를 받는 신자가 되지 말고,
늘 하나님만 생각하고, 돈은 자기 발 아래로 다스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부자 관원과 삭게오의 비교
▲예수님께 찾아왔던 부자 관원을 먼저 살펴봅시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눅18:18
그런데 이 사람은, 참으로 반듯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으로서, 평균 이상의 도덕적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간음도 안 하고, 살인, 도적질, 거짓 증거도 하지 않았습니다.’ :21
만약 오늘날 교회에, 이런 신자가 다닌다면,
그는 아마 대단히 모범적 신자로 칭송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목회하시는 교회에 있어서는, 이런 사람은 자격 미달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에도 못 들어가고, 영생도 못 얻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들에서는,
이런 사람을 두고서 ‘당신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라고 말할 교회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고 칭송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18:22
오늘날 교회들이라면, 그 부자관원에게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많은 재산을 우리 교회에 헌납하고,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 좇으시오.”
(다른 교회는 안 됩니다. 반드시 우리 교회에 내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시오.”
예수님은, 부자의 가진 재물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부자의 영혼에 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수님은 돈을 발 아래에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다른 데 헌금하라고, 당당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 푸닌은, 우리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이런 예수님의 자세를 좀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에게 “당신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교회에, 가난한 자에게 헌금하시오.”
예수님이야말로, (부자는 아니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발아래 돌처럼 다스리는 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모범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셨지, 그들이 가진 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위에, 부자를 보고서, 그 영혼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물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치 우리 몸속의 암과 같습니다.
그것은 암처럼, 우리 몸 속 깊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암세포를 제거하려면, 암이 발견된 부위 주변을
아주 넓게, 아니면 아주 통째로, 그 장기를 잘라내고, 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야 몸의 다른 부위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하면,
조직이나 기관을 다 잘라내지 않아도, 항암요법으로
그 기관을 살려둔 채로,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 그러니까 상태가 너무 심해서 다 잘라내야 하는 경우는.. 부자관원의 경우이고,
후자.. 암의 상태가 크게 심하지 않아서, 조직을 잘라내지 않아도 치료가 되는 경우가..
아래에서 살펴볼 삭게오의 경우입니다.
▲삭게오의 경우
예수님은 부자관원을 보고, ‘네 재산을 다 팔아..’ 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물질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기관을 통째로 제거하는 것처럼
큰 수술이 그에게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삭게오의 경우는, ‘네 재산을 다 팔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1
그런데 삭게오는 자기가 알아서
‘내 재산을 절반,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눅19:8
삭게오는, 그저 항암요법처럼, 작은 치료로 족했습니다.
(정황상 이 일 후에) 예수님은 베다니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들에게는 ‘네 재산을 조금이라도 팔아서 나눠주라’는 말씀 자체를
예수님은 아예 꺼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암 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을 사랑하는 암 병’은, 크거나 작게 우리 모두에게 퍼져 있을 수 있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예수님이 수술을 단행하지 않으시겠지만,
천국에 데려갈 사람들은, 예수님은 수술을 단행하실 것입니다.
부자관원처럼, 큰 수술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재산을 다 잃게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삭게오처럼, 작은 수술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절반만 나눠줘도, 치료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아예 그런 수술 자체가 필요 없는 ‘마리아와 마르다’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넉넉하지 않는 가산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제자들을 먹이고 도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혹자는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는 눅18:22절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괄 적용하려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길의 정석(모범)은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다 버리고.. 그 다음에 예수를 따르는 것이야’
자기 스스로 그렇게 이해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제 푸닌은,
예수님은, 사람마다, case by case로
그들이 가진 ‘물질의 암 병’을 치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좇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런 성경해석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주1)
▲그리고 부자관원의 경우를,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십시다.
부자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단순히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을 넘어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처럼, 사도의 일원으로 가입하고 싶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이 ‘그러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22
그러고 나서.. 사도들처럼..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사도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자기들의 모든 재산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네 재산을 다 팔고, 나를 좇으라’ 하신 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예수님이 그를 ‘사도급 제자’로 초청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부자관원은, 어쩌면 ‘사도급의 제자’도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파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순종했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부자관원은, 그 자기 우상처럼 여기는 물질 때문에,
소중한 자기 영혼을 낭비했고,
자기의 영적 유산(사도급 제자직)을 제발로 걷어 차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부자관원이 지금 천국에 있을까요, 지옥에 있을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만, 백 번 좋게 생각해 보십시다.
그가 당장은 예수님을 등지고 불순종하고 떠나갔지만,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나중에 회개하고 돌이켰든지,
죽음을 앞둔 최후의 순간에라도 회개했든지.. 그래서 천국에 갔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순간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돌아갔지만,
나중에 어떻게 회개하고 돌이켰다고 칩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 재산을 처분하고, 암 병을 고침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칩시다.
그래도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귀한 젊음과 인생을.. 허비한 것입니다.
자기 젊음으로, 자기 가진 물질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나중에 죽기 전에, 아니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켰다고 할 때,
그것이 결코, 젊은 순간부터, 하나님께 헌신한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죠?
오늘날 우리가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헌신하면 되지 않겠나..’
예, 나중에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까지는, 당신의 소중한 삶이 허비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 가더라도
우리는 천국에서 ‘후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헌신할 수 있는 기회에,
부자 관원처럼.. 헌신의 기회를 헌신짝처럼 제 발로 차서 버린 일입니다.
그러면 만약 운 좋게 천국에 가더라도, 거기서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급의 제자가 될 수도 있었고,
-젊음과 인생과 모든 것을 드려서, 후회 없이 주님을 위해 섬길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제 천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도 못하니
얼마나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겠습니까!
▲다시 주제를 말씀드립니다. 물질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는,
많이 가지는 것이 정답이다/ 반대로 가난한 것이 정답이다.. 하는 그런 극단적 원리에 있지 않고,
‘물질을 상전처럼 머리에 이고 사느냐?’
아니면 ‘물질을 발 아래 하인처럼 부리고/다스리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우상처럼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에게는
‘부자 관원의 예’가 적용됩니다.
그러나 ‘물질을 발 아래 종으로 다스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아무런 수술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
주1)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서, 사람들이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도들을 제외하면,
자기 별장, 자기 잉여 재산을 팔아서 가져왔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각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가져왔다면, 그들은 집도 없어서, (교회당은 당연히 없었던 시절에)
그들은 길바닥이나, 산에 가서 예배로 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집에서 예배와 성찬으로 모인 것을 보면,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가져왔다는 얘기는, 두 채 있는 사람이 한 채를 팔았다..
즉 ‘자기 잉여 재산을 팔았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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