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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0 느헤미야의 영적전쟁1

LNCK 2013. 9. 8. 19:19

느헤미야의 영적전쟁1                       4:1-8                     출처보기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시는데 있어서, 엄청난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영적 정쟁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전례 없이 주를 깊이 아는 교회, 전례 없이 주를 깊이 사랑하는 교회,

전례 없이 하나 된 교회, 전례 없이 거룩한 교회,

전례 없이 강한 능력의 교회를 세우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는 큰 대가가 따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큰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삶을 보더라도 이 길은 목숨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으면 갈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하기는 참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를 하고 주님을 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큰 대가가 따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세워지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한편으로 사단은 그런 교회가 세워지는데 있어서, 얼마나 방해를 하겠습니까.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뻔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엄청난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느헤미야서를 <영적전쟁의 교과서>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느헤미야서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통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시는 일을 하는데,

거기에 산발랏과 그 무리들이 그 일을 아주 강력하게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4:1

 

여기에 산발랏과 그 일당들은 사단의 세력들을 대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보듯이,

말세지말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켜 가시는데 있어서

사단의 세력들이 강력하게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을 보고

순종하고 따라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영적 전쟁차원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너무나 큰 어려움도 많이 당했고, 너무나 큰 아픔이었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그것이 엄청난 영적 전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교회가 세워지는 초기일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분 사단은 여러분이 주님을 따라가는 초기에 더 강하게 역사합니다.

왜냐면 세워지기 전에 그 싹을 밟아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성이 다 세워지고 나면, 무너뜨리기 힘듭니다. 튼튼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이 세워지기 전에는, 무너뜨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성을 세우는 과정에서, 공격하는 겁니다.  

 

싹이 나려고할 때가 가장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싹이 자나지 못하게 그냥 밟아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가 가장 영적전쟁이 심합니다.

 

그런데 일단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가기 시작하면

거기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뒷받침과 아울러 성도들이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에

사단이 예전처럼 강하게 틈타지 못합니다.

 

때로는 가끔 틈타기도 하지만 초기처럼 공격이 심하지는 못합니다.

전도서 412절 말씀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세워져서 연합되기 시작하면

사단이 쉬게 틈타지 못합니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일반 성도들에게는 이런 말이 피부에 안와 닿을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러한 영적전쟁의 형태들이 오늘날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답변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들은..

 

1. 조롱과 경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져가는 과정에서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그 일을 시작할 때,

거기에 산발랏과 그 무리들이 대적하게 되는데,

그 대적하는 것 중에 한 가지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느헤미야 219절과 41-3절을 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려고 하니까 산발랏이 대단히 분을 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성벽이 세워지는 것,

이건 사단이 대단히 분을 낼 일입니다.

 

지금은 <사단의 가치관과 사단의 영향력>이 교회를 마음껏 드나듭니다.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의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관과 태도와 자세가 너무나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영향력이 오늘날 교회 가운데 마음껏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운데 분별의 벽이 세워져서 하나님에게 선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에게 악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이고,

그릇된 신앙 체계가 무엇인가가 교회 가운데 발견되어지고,

분별의 벽이 세워질 뿐만 아니라, 구별의 벽이 세워져서

 

세상적인 가치관과 삶에 태도, 자세, 방법, 그릇된 신앙관과 그릇된 신앙에 대한

이해, 이러한 것들이 철저하게 교회 가운데 비춰져서 방어의 벽이 세워지면,

절대로 사단이 교회 가운데 함부로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틈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성벽이 세워지는 것을 사단은 방해하고, 대적하고, 분을 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일의 크기가 엄청난 일인데,

그것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실망하고 좌절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크기의 사이즈와 현실적인 갭을 지적하면서

실망시켜 포기하도로 하기위한 것이 사단에 수법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때는 목회자들은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진실로 세상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에 서길 원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노회에 가서 이런 설교를 했더니 후배 목사가 다가와 묻기를

목사님 요즘 성도가 몇 명이나 모이십니까?’

이말 한마디에 아무 말도 못하고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방금 전까지 교회 회복이 어떻고, 성벽이 어떻고 했는데,

지금 몇 명이나 모이냐는 그 한마디에 완전히 흔들리고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기를, 자기보다 늦게 목회를 시작한 사람은

벌써 교회 건축도하고 이렇게 저렇게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성도도 많이 모이고 예산도 빵빵하고, 차도 좋은 것 타는데,

 

나는 지금까지 겨우 성도 몇 명 앉혀놓고 이러고 있으니

내가 내 모습을 봐도 한심하고, 성도들 모습을 봐도

하나님 앞에서 진짜 변변한 사람 한사람도 없는데, 무슨 교회 회복이 어떻고,

무슨 하나님의 부흥이 어떻고 하는 자신이 너무나 우습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이게 사단의 대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목회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집에 사는 다른 교회에 나가는 성도에게

우리교회는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을 따라간다고 하면

그분이 말하기를 그래가지고 지금 몇 명이나 모이고 몇 년 되었는데,

그러면 또 코가 쑥 빠져가지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단에 수법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 분을 냅니다.

그리고 사단은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대적하는데,

그 대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사이즈와 우리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시작도 하기 전에 실망시켜 포기하게 합니다.

 

때로는 친구를 통해서도 하게하고, 때로는 동료 목회자들을 통해서 하게하고,

때로는 이웃집 성도나 가족들을 통해서 실망과 좌절하게해서 포기하게 합니다.

잘 따라가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겁나는 겁니다.

 

그럼 다 때려치우고 옛날로 돌아갈까.

그래도 교회가 우선 성도라도 많이 모여야 되지 그러면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어떻게 할 것인가요? 답은, 조롱은 하나님께 맞기고

여러분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44절에서 6절을 보면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조롱은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들은 부지런히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느헤미야만 나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이 같이 나갔습니다.

 

여러분 사단이 지도자에게만 조롱과 경멸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합니다.

이때 조롱과 멸시는 하나님께 그대로 맡겨놓고 여러분들은

부지런히 앞을 향해서 나가야 됩니다.

 

제가 하나님을 따라 오면서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지방회에 갔는데 누가 얘기하면 돌아와서 진짜 힘듭니다. 그러니까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 지금 몇 명 모여? 교회가 몇 년 됐어?’

그 말 한마디에 잘 따라가다가도 그냥 순식간에 마음이 낙심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정신 차리게 만들고,

옛날로 돌아가야 되는 것 아냐! 이렇게 만듭니다.

 

한번은 저한테 어떤 목사님이 유학 갔다 왔다고 그러던데, 뭐 도움 좀 되나?’

그때만 해도 저는 순진해서 그 말이 무슨 말이지 잘 몰랐는데,

그게 바로 조롱과 경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더 그럽니다.

초기가 언제냐면 아직 전체 그림이 안보일 때입니다.

 

초기일수록 전체 그림이 안보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길이 분명히 맞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따라는 가는데,

아직 그 앞에 뭐가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이 안보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면 그때는 쉽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씨앗의 열매)을 보면 쉽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손안에 있는 작은 씨앗 하나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하찮게 보이니까, 지금 몇 명이나 모이는데 그러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살고,

그야말로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어지고

나라가 살 수 있는 그 씨앗이 들어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전체가 보이니까 쉬습니다.

 

이처럼 씨앗 하나라도 그 씨앗 속에서 그 뒤에 있는 열매를 보면 문제가 안 됩니다.

누가 뭐라고 조롱하고 경멸해도 절대로 문제가 안 됩니다. ! 씨앗이 보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씨앗의 열매들을 조금씩 더 봅니다.

이처럼 열매가 전혀 나타나기 전이라도 그 씨앗에서 열매가 보이면

사단이 사람들을 통해 조롱과 경멸을 해도 앞으로 계속 나갈 수 있습니다.

 

스가랴 410절 말씀입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처음에는 작은 일 일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지런히 주님을 향해서 그 뒤를 따라 갈 때,

때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조롱과 경멸은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부지런히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2. 화를 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사단은 심하게 분을 냅니다.

성벽의 구멍이 막아지는 것 세워지는 것을 정말로 싫어합니다.

벽이 세워지면 사단의 그 영향력이 교회가운데서 파괴됩니다.

 

지금 저희 교회만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상당부분은 사단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얘기는 한번 그러게 되면 항상 자동적으로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부분에서 사단이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자리들이 없습니다.

 

이제는 거짓신앙체계 가지고 통하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그러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누가 카리스마적인 뭐를 가져와가지고 자기의 신앙체계를 휘두르려고 한다.

아무도 동조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맥을 모춥니다.

세속적인 방법을 가져다가 성도들을 속이려고 해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뒤에서 소수의 몇 사람들이 사바사바 해가지고

교회를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게 하려고요? .. 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회자인 제가 어떤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교회를 잘못 인도하려고 하면

금방 성도들을 통해서 들추십니다. 하나님이 금방 들추십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 상황을 볼 때,

사단이 교회 가운데 그 가치관과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 영향력을 미치고 신앙이 왜곡되게 하고,

그릇된 신앙의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이러한 것들의 상당수가 더 이상 틈타지 못합니다.

 

왜냐면 이제는 상당부분 분별에 벽이 세워져있고

구별의 벽이 세워져있기 때문에 틈탈 자리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 가운데 앞으로 근본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죄가 있으면 들추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우리의 죄들을 하나하나 다 들추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지금도 제 속에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부분이 아마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 얘기는 어떤 부분에서는 죄가 근본적으로 틈타서 성도들을 오염시키고

교회에 근본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들추십니다.

 

들추시는 방법 중에 하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방법은 찬양과 경배를 하는데, 하나님이 임재를 거둬버리십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찬양 리더가 문제가 있거나, 내가 문제가 있거나,

성도들이 문제가 있다... 한번은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반복되어져요

그럼 그때는 경각심이 올라갑니다. 왜 이건 절대로 가만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걷히는 것은 우리가 다 실수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어요.

부족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한번 되고 두 번 되고 세 번 반복된다...

그때는 절대로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이건 심각한 문제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그렇게 하나님이 임재를 거두세요. 그럼 어떤 때는 설교를 못해요.

지금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 가운데 걷혔는데 설교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럼 설교를 안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지금 합당치 못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앞에 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길을 알려줍니다. 어떤 때는 그럴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요.

얼마 전에도 그런 일도 하나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다루고 나면

하나님이 다시 임재를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사단이 틈탈 자리가 점점 잃어져가고 있어요.

 

물론 아직도 ()벽이 다 막히지 않았어요. 그러나 상당히 많은 부분은 막혀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올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안보여서 그렇지 사단이 얼마나 분을 내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 성전으로서 삶이 회복되어지고,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성벽이 회복되어질 때, 사단이 얼마나 화를 내겠느냐고요.

 

산발랏이 분을 크게 냈다고 그랬어요. 사단이 분을 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대한 거룩한 열심으로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 죽였으니까요.

또한 요한복음162절에 보면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4:7-8

이들이 조롱하고 멸시 합니다. 그런데 듣지 않아요. 분을 내도 듣지 않아요.

그랬더니 어떻게 하냐면 저들을 공격하자위 본문에는 쳐서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제 난리가 났어요.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시면 새마을운동처럼

한손에 무기 들고 한손에 삽을 들고 일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사단이 대규모적으로 공격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뭐냐면 말을 가지고 공격 합니다. 진짜 참기 힘듭니다.

이 세치에 혀를 가지고,

 

여러분 릭 조이너가 쓴 빛과 어둠의 전쟁을 보면,

말세지말에 있을 사단과 교회와의 영적전쟁 대해서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서

혹은 이상을 통해서 쫙 보여주신 것을 기록 해놓은 겁니다.

 

그런데 거기 보시면 사단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성도들을 공격 하는데,

그 타고 다니는 말들이 성도들입니다. 사단이 성도들의 등을 말처럼 타고 다니면서

불화살을 막 쏴대는데 그 불화살이 또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하려고 하나님 길을 따라갈 때, 막 불화살을 쏴댑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안타까워요

지금 성도들은 자신들이 사단의 도구로 사용 되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겁니다.

 

성도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저와 여러분입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저와 여러분이 성도입니다. 사단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불화살을 집중적으로 쏘아대는데,

불화살이 뭐냐면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여러분 말세지말에 사단이 대규모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런데 그 공격 중에 하나가 성도들의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 어떤 때는 이런 경우까지 있었어요.

물론 제가 부족한 면이 있었어요. 그러나 저에 부족함만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분명히 영적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면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어떤 때는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이 한집에 모여서 집중적으로 저를 후욕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전화해가지고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한다고 하는데,

제 아내가 받았기에 망정이지 제가 받았으면 살아남지 못할 별말을 거침없이 합니다.

 

거짓선지자는 둘째 치고, 사기꾼, 도둑놈, 하여튼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아내에게 은혜를 주셔가지고 그런 말을 듣는데도

그게 마음에 상처가 전혀 안되도록 그렇게 딱 막아 주셨어요.

 

여러분 율법주의는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교회가 율법주의 가운데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는 걷히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걷히게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소멸되게 됩니다. 그럼 교회가 영적으로 죽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율법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가운데 너무나 팽배한데

제가 말씀의 검을 통해 그 율법주의를 들춰내고 다니니까 얼마나 영정전쟁입니까.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후욕하는 문화가 조상대대로 내려오고 있어요. 이건 저주입니다.

제가 3년 전에 미국에 세미나 때문에 갔었는데, 그전에 제가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에 한 7년 살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도 진짜 그랬습니다. 신학교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모이기만하면

한 두 사람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 사람을 그냥 이렇게 비판하고 저렇게 비판하고

그랬는데, 참 잘못했더라고요.

 

미국은 넓어도 그중에 한인사회는 좁으니까 더 심합니다.

이게 우리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입니다. 심각한 저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리더가 절대 안 세워집니다.

하다못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반장만 되어도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저줍니다. 그래서 리더가 안 세워져요.

어느 한사람이 세워지려고 하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끌어내리지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영적인 것까지 더해지니까

이것은 진짜 릭 조이너가 말한 것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난도질합니다.

이게 사단의 공격입니다. 대규모 공격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