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서론1 역대하1장-2장 출처보기
김강호 목사 *역대기 배경으로 탁월합니다/편.
◑역대하1장
▲역대 하에서 주로 기록된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9장까지 기록됩니다.
(역대상도 9장 까지지요) 그리고 나머지 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대기에서 중요한 왕은 누굽니까? 다윗과 솔로몬이지요.
다른 왕들은 그렇게 길게 기록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왕들의 행적도, 이제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그 행적들을 말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을 때도, 다윗에게 한 등불을 남겼기 때문에
다윗의 왕통은 곧 여호와의 보좌입니다.
그래서 열왕기를 보면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때도
여호와의 성전에 대한 내부의 대한 것을 다하고
그 다음에 솔로몬의 집을 짓고,
그 다음에 또 놋으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것이 그 다음에 나와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소에서 왕이 나와서 솔로몬 보좌에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어요.
왜냐하면 다윗의 보좌는 곧 여호와의 보좌이기 때문에
거기에 다윗의 후손들이 앉아서 다스리고 있거든요.
어느 날엔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영원한 보좌를 이루실 그분의 영이
다윗의 후손의 영 안에 거하셔서 이루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의 보좌는 여호와의 보좌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에서 전쟁을 설명할 때에는
‘왜 너희들이 여호와와 싸우는가?’
이스라엘이 유다 와 싸울 때 ‘왜 너희들이 여호와와 싸우는가?’
이제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이 이스라엘 안에 거하심은
그것이 하나님 나라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요
이스라엘 왕의 보좌는 곧 여호와의 보좌이에요.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땅에 나타났어요.
그러기 때문에 전쟁의 의미들을 다 그렇게 여호와의 전쟁으로
그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솔로몬이 왕위에 등장해서, 그 나라가 어떻게 우주적인 평화를 이루는
그런 나라가 되는가 하는 그런 문제를 먼저 말하고
솔로몬이 성전 짓는 이야기를 그렇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 대하1:1절에 보면 다윗 대신에 솔로몬이 왕이 되었는데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즉 하늘의 별처럼 땅에 모래처럼 번성했다. 그 말이지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약속이 이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때 이루어져다.. 이말입니다.
“너를 심히 창대케 하리라”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지요.
그렇게 해서 그 나라가 여기서 설립이 되었을 때
다윗이 여러 장관들을 불러서, 이제 하나님의 집 짓는 문제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6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기브온 산당에 있는 놋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지요.
그 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열왕기에도 있는 말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솔로몬이 얼마큼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 지혜를 주셨는가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이 왕국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 왕국은 제사적 의미로는 일천 번제에 나타난 것처럼
온전한 헌신의 나라요,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왕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가 인격화되어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지요.
특별히 열왕기를 보면 잘 나타나지요, 그가 두 여자를 재판했을 때
사람의 사랑의 본성, 즉 사랑을 알 고 있고
그리고 모든 만물 즉 아담이 모든 만물에 이름을 지었던 것처럼
솔로몬이 거기 보면 백향목으로 부터 우슬초까지 그가 다 통달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아담이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 나라 왕으로 서서
거기서 그 나라를,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동산(세상)을 통치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처럼
솔로몬 왕국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어요.
솔로몬의 지혜는 전 우주적인 문제를 분별하고 사람의 본성들을 판단해서 재판하고..
그래야 하나님의 판결이 솔로몬에게 나타나거든요.
하나님은 세상을 의로 판결하시는 분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 그 평화의 임금으로 세우신 솔로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번제를 일천번 드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999번 했으면 안했을 까요? 그런 말이 아니라
이 왕국은 하나님의 기쁨의 처소 안식의 처소를 거기 두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전적인 헌신이 약속된 나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교제거든요.
그래서 이 앞에 기도에서는 기쁨의 헌신으로 말할 때도 있고
그것이 제사적인 용어로 표현되면 번제인데, 일천번제 10의 3승이지요.
10은 ‘길다, 많다’는 상징적 뜻을 가진 숫자인데,
그것이 3번(3승)이나 쓰인 것은, 제사가 영원히 계속된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물었을 때
솔로몬이 참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계시의 빛 가운데
하나님 앞에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우리 아버지에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이 백성은 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데
내가 어떻게 어린아이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다스릴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지혜를 내게 주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나를 통해서 이 백성에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말합니다.
아이큐 좋게 해 달라는 말이 아니어요. 하나님 나라를 의로 다스리게 해 달라 그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의로 통치하시니까요. 그 말이어요.
▲그런데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왕적인 권세로 나타나서
아담이 이름을 지어 줬지 않습니까? 그것이 솔로몬 때
모든 동,식물에 대해서 논 할 수 있더라.. 그렇게 나타나고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로 그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지혜는 참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지요,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룰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백성들을 판결 할(다스릴) 수 있도록.. 그처럼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영광이 14절부터 나타나 있는데, 보니까 참 기록한 방식이 좋아요.
처음에는 애굽 이야기를 안 해요 14, 15절에서는 안 해요.
그 다음에 1:16, 17절에서는 애굽 이야기를 해요.
그것이 그 나라 부를 영광스러움을 말하면서도, 부에 나타난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여기 보니까 솔로몬의 병사와 마병이 말하자면
그 나라의 강력함이 군대의 강력함으로 묘사 될 수밖에 없지요.
또 그 나라의 부요함은 은, 금이 돌같이 풍성하더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여기 보면 그 말은 어디서 가지고 왔느냐.. 애굽에서 돈 주고 산 것이요.
그리고 아라비아 왕들을 위해서도 그 손으로 내어 왔더라
자기에게 복종하고 동맹하는 그런 국가들을 위해서도
말하자면 미국이 우리 나라에 무기를 가끔 파는 것처럼 그렇게 해줬다 그 말이거든요.(대하9:14-15)
그러니까 14, 15절에서는 솔로몬 왕국의 영화로움 강력함과 영화로움을 말하고 있지요.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도 계시록에서 말하면 그 보석의 찬란함으로 말하고 있지요.
이렇게 분명히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디서 가지고 왔는가?
애굽은 다시는 내려가서 그런 일하지 말라고 했는데
거기서 가지고 왔더라 그렇게 말하고.. 결국 이것 때문에 솔로몬이 망하지요.
그래서 여기는 그 부요를 말하면서도, 분명히 거기에 한 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은,금이 풍성한 것도 보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왕권을 나타내서 이방 백성들이 갖다 바친 것이 아니라
두로 왕 히람하고 연합해서 저 배타고 가서 많이 캐 왔지요.
그렇게 해서 은, 금을 풍성하게 했지요.
그래서 어쨌든 여기서는 막 어두운 면으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말했듯이 다윗과 솔로몬은
이상적인 왕 하나님 나라 메시야 왕의 예표 적인 인물로 나타나고 있어요.
너는 내 아들이고 나는 네 하나님이라.. 아들이면서도
분명히 그 위가 영원한 아들은, 메시야 왕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들의 어두움을 지적하는데 강조점이 아니어요.
▲여기 1:17절에 600세겔 하는 것은 부서질 병기구나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뭐 600세겔이 가끔 나오는데 그때 값이 그런 것이지 그 문제까지
6자는 사람의 수니, 부서질 수 있는 병거요..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여기서는 솔로몬의 왕국은 그런 식으로 망하고도 있지마는
그러나 역대기를 기록한 의미로 봐서는
오히려 그 부에 권세가 우주적인 권세가 되더라 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바로의 딸을 데리고 왔을 때
그것은 이방 혼인을 하지 말하는 그 계율들에 어긋나지 않아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산실이 애굽 이어요.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를 불렀어요.
그리고 모세도 애굽에서 쫓겨났을 때 그랬고, 요셉도 애굽에 국무총리로 있을 때
거기 제사장 딸과 결혼했지요,
가나안 7족속에 대해서 죽이라고 그랬던 것이지
다른 이방 백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스라엘의 산실 이였던 애굽이
그 당시 세계적인 제국이지요. 거기가 솔로몬에게 화평하고 딸을 주고
그렇게 해서 보면은 솔로몬의 권세가 애굽이며
그와 연합한 모든 이방에 권세에 미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어요.
이 역대기의 목표에 맞추어서 해석할 때 그런다 그 말입니다.
거의 솔로몬과 다윗에 대해서 어두운 면을 말하지를 않습니다.
◑역대하2장
▲자 2장을 보십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과 자기 집을 지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과정들을 2절부터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로 왕 후람에게 하나님의 집을 짓는 문제를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쭉 설명함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 신가 하는 것을
이방 왕 두로 임금에게 설명하고
그로 그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대기의 특성을 따라 봐 달라 그 말입니다.
단순히 후람하고 솔로몬하고 어떻게 거래했느냐를 보는 문제가 아니라
그 기록의 목표에 따라서 봐 달라 그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전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으로 다윗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곧 세상의 구원자라 하는 것을 세상에 증거 하는 의미로 이스라엘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이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후람 임금에게 설명함으로써
그로 자기 일에 참여하도록 그처럼 요구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여기 보면, 두로 임금하고 솔로몬이 서로 합심해서
그는 기술과 재료를 제공하고, 솔로몬은 모든 먹을 것을 공급하고
그저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후람 임금에게 편지 쓸 필요가 없지요.
거래만 하자면 “나 무엇 줄 것이니까 무엇 하라”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열왕기를 보면 거의 이런 언약에 대한 문제가 잘 나타나 있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역대기를 봐서는 바로 솔로몬이 세운 하나님의 집이 어떤 집인가요?
그것은 온 이방까지 비추는 하나님의 은혜의 집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방식으로 여기서 진행이 되지요.
▲그리고 심지어 11절부터 보면 이방 임금 두로 왕 후람까지라도 답장을 보내기를
12절에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 지로다
그렇게 쭉 말하고 있지요.
물론 이가 얼마큼 하나님의 계시에 접했는가? 우리는 알지를 못하지만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라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고백은 분명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에 모든 선물로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즐거이 짓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제대로 하자면, 다윗에게 약속하시고
예루살렘에 지은 성전은, 유대인의 하나님 뿐 아니라
천하 만민의 하나님으로 거기 거하심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 나라가 설립되었을 때
그 나라의 권세는 솔로몬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애굽이며 모든 변방까지 다 미치고 있고
그리고 그 은혜의 빛을 설명했을 때
두로 임금도 기쁨으로 그 하나님의 찬양하고 물자를 보내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이 역대기는 기록합니다.
▲심지어 나중 어떻게 되었습니까? 돌아가서 네 하나님 집을 지어라. 누가?
세계적인 제국인 고레스 임금이 그리고 그 왕국에서 모든 물자를 다 주겠다.
그러니까 책을 기록한 의미대로 안보면
거기 나타난 복음의 부요함 그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만 집 지으라고 선심 쓴 정도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미 이사야를 통해서도 ‘고레스를 내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계시자’로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 우주적인 통치의 하나님을 모르고
이스라엘만 진짜고 이방은 다 가짜인데
어째서 이방 임금을 내종 고레스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고!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시 기관으로 역할을 못 살리고
대신에 이방인이냐/ 유대인이냐
늘 이런 식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계시의 부요함을 접하는데 좀 어려움을 겪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는 두로 임금이
그 하나님의 이름을 천지의 창조자로 고백하고 편지를 보내고 있고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경건한 성도들이 느부갓네살 임금 앞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천지의 주 하나님이라..
그래서 느부갓네살 임금도 ‘야 네 하나님이 참이다.’
다리오 임금도 ‘야 네 하나님이 너를 안 건지더냐?’
그리고 고레스 임금도 ‘그를 돌려보내라 가서 내 왕궁의 보물을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흥하던지 망하던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거기에 자기 집을 세우신 하나님으로
바로 세상에 자기를 증거하고 있지요.
그것이 역대기의 의미여요.
그러니까 그 책을 기록한 목표를 따라서 우리가 보자! 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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