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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4~2005

우리 괴물들을 다루시는 하나님 / Wilkerson

LNCK 2013. 10. 7. 19:26

www.youtube.com/watch?v=TS0MD3Qk-Nw

◈우리 괴물들을 다루시는 하나님          욥9:15~23                       출처보기

God of Our Monsters By David Wilkerson.   March 8, 2004

 

◑미국의 크리스천들이, 졸지에 욥의 고난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언제나, 가장 곤란하고 괴로우며 절망한 신자에게

어떠한 시험이나 환난에 대한 격론이 시작됩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사람은 의롭고, 신실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종이며,

찬양과 기도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슬픔과 문제가 그의 삶을 압도할 때면,

이 사람은 마치 ‘자기가 무신론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삶의 무게가 무겁게 짓누른다는 뜻입니다.

 

그 고난의 절정에서 이 종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내가 불렀을 때, 그분께서 내 기도를 듣기는 하시겠지만,

그러나 나는 그분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셨다 (관심을 가졌다)고 믿지는 못하겠어.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폭풍으로 깨뜨리고, 이유 없이 내 상처를 갑절로 크게 하셨어.”

 

▲욥도 한 때 그랬습니다.

 

욥9:16~18절을 보십시오.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18.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여기, 자기의 모든 것을 졸지에 잃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자기 가족, 자기 건강, 자기의 선의, 그의 재산, 자기의 소망..

 

위에서 하나님에 대한 욥의 발언은

이 불쌍한 사람이, 자기 끔찍한 고통이 배가되며 남긴 많은 절망의 말 중에

단지 하나일 뿐입니다. 욥기에 저런 절망의 표현들이 수두룩하게 반복해서 나옵니다.

 

욥이 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의 모든 재난이 어느 날 갑자기 그를 덮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욥은 이렇게 단언하였습니다.

“그 분이 나로 숨도 쉬지 못하게 하시고, 괴로움으로 나를 채우시는도다”(9:18)

얼마나 고난이 연속적으로 극심한지.. 숨 돌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의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욥은 또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채찍에 맞아 어이없이 숨져가는데, 죄없이 절망에 빠진 자를 그가 비웃으시네. ”(9:23)

 

이런 여러 가지 말로, 욥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거룩하거나 의롭게 사는 것은 소용이 없구나,

하나님께서 사악한자나 순결한 자나 똑같이 다루시는구나,

그럼 왜 올바르게 살며 수고하겠는가?”

 

“나는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어.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바르고 정직했어.

 

친절하고 동정적이어서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혔어.

또 나는 헌신되었고, 회개한 신자였어.

주님을 최대한 경외하며 나의 자녀들을 길렀어.

그런데 나에게 일어난 일 좀 봐, 내 삶은 이제 슬픔과 문제와 고난밖에 없어!

 

아무도 나에게 진심으로 신경 쓰지 않아.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조언이나 평안을 줄 수 없어.

 

나는 내 코너에 몰린 채 중보자도 없어.

오 제발, 하나님께서 회초리를 거두어 가시길.

 

나를 그만 괴롭히시길, 이 모든 재난들이 나를 압도하고 있어.

주님께서 이것들 가운데 어떤 일이라도 하고 계시다면, 정말 모르겠어.

나의 삶은 웃음거리처럼 되 버렸어,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모든 슬픔 속에서 나를 비웃고 계셔.”

 

▲그런데 이런 욥의 예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 윌커슨은, 욥이 앞으로의 날에

격렬한 시험을 겪을 마지막 날의 신자들을 대표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졸지에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주택대출금을 납입하지 못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서, 모텔로, 공원의 텐트로 전전하고 있습니다.

 

욥보다 강하지는 않지만,

마치 욥과 비슷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욥이 경험한 것과 동일한 고난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고난 받은 사람, 욥의 예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미국은 이미

고난과 재난의 때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사태가, 앞으로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늪과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급격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세계가 본 적이 없는 그런 시대 말입니다.

 

지금, 많은 훌륭하고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의 삶 위에

문제에 문제가 겹겹이 쌓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의 경기 불황에 그들의 직업을 잃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퇴출 당하였습니다.

 

욥과 같이, 많은 헌신된 신자들이

벌거벗겨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그들이 경험해 왔던 그 어떤 것도, 신앙도,

그들을 그러한 고난에 준비시키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다수의 그리스도인의 결혼생활이 시험 받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압력아래 처하게 되었고, 온갖 종류의 고통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시대의 광란에, 길을 잃고 방황하며, 버린 바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국내적 불행에, 우리의 국가적/ 개인적 번영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 또한 악화되어, 새로운 질병들이

늙은이와 젊은이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모든 문제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우리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무서운 전망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장래를 내다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만 더한 불확실성과 두려움과, 암울한 울부짖음 일지도 모릅니다.

 

욥과 같이, 우리의 마음은 울부짖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까? 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왜 주님께서 간섭하셔서 멈추지 않으시는가?”

 

그러나 우리가 보는 이 세대에게 일어나는 일은

바로 욥에게 일어났던 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이야기(욥기)를 고찰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그의 고난에서 꺼내셨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우리의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앞으로의 날들에, 우리는 어떠한 안락의 포근한 고치 안에서

안주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허무한 공상입니다.

단지 그런 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방면에서 문제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모든 고난 내내, 우리를 신실하게 구해 주실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저는 이 진리가 미국의 방방곳곳의 강단에서 설교되는 것을 듣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 선지자적 목소리로 키워오신 사역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 신실한 목자들은, 다가오는 환란을 위해, 주님의 백성을 준비시키려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 백 명의 그런 목회자들이 여러 도시에 기도하기 위하여 모입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비슷한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나의 양 중 많은 자들이 이토록 깊게 시험 받았던 때가 없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어떤 것이 이 땅에 풀어졌습니다.

 

제가 아는 많은 경건한 남녀들이 문제, 어려움, 고난

그리고 슬픔의 홍수아래 있습니다.”

 

▲문제는, 홍수 그 뒤에 인격적 실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사실 이 악마가 욥의 훼방꾼이었고

그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훼방꾼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대적은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분의 교회에 엄청난 고소를 퍼부으면서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하나님께 도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마지막 때에 어떠한 진정한 지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예언했던 흠 없는 신부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 그들은 슬기로운 처녀가 아닙니다.

대부분이 깊게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에 골몰해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고난 당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물질적인 것이 그들의 손에 달렸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지금 당신께 도전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백성 주위에서 보호의 벽을 내리십시오.

내가 잠시만 그들에게 손을 대게 하소서.

내가 당신의 살찐 추종자들을 시험에 넣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세대가 누구와도 달리 총애를 받아 온 것을 충분히 잘 아십니다.

만일 당신께서 내가 그들을 까부르도록 허락하신다면,

스스로도 남는 자들을 갖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아실 텐데.

 

내가 그들을 불 같은 유혹의 화살로 찌르고, 그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절망의 영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내가 보증하건 데, 하나님,

그들은 한 시간 내에 무너져 끝날 것입니다.

 

지상에 당신의 몸에는 어떠한 욥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부 영적인 겁쟁이들입니다.”

 

 

◑계시록에서 요한은, 제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정황을 설명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언적으로 이렇게 씁니다. “땅과 바다에 사는 자들에게는 화 있으리라!

이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너희에게로 내려갔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계12:12

 

오늘날, 악마가 인류 위에 형언할 수 없는 화를 초래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욥이 그랬던 것처럼, 전적인 혼란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탄이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보호의 담장을 내리셔서

악마에게 우리를 시험하도록 결정하실 때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이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정결케 하는 불을 통과시키실 것이라고

매우 명확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문제에 문제와 마주칠 때,

모든 시험 내내 주님 안에 우리의 신뢰를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물론 이것이 욥이 들었던 조언은 아니었습니다.

이 고난 받는 사람이 그의 가장 낮은 곳에 처해 있을 때,

그는 상담자로 자처하는 비난자의 공격을 당했습니다.

 

이 소위 친구라는 사람들은, 욥을 더욱 절망시키기만 합니다.

그들은 욥의 삶에 숨겨진 죄가 있다고 비난하며, 그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욥에게, 이 사람들의 비난은 단지 어리석을 뿐이라는 것을

밝혀 주셨습니다.

 

 

◑현재의 우리 고난은, 다음 둘 중에 하나를 낳습니다.

강퍅함 또는 불신의 영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 관한 모든 상황을 다스리신다는

영광스러운 믿음 입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 여러분은 극심한 고통의 시험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배후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죄를 다루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의아해 합니다.

왜 주님은 여러분이 그런 고약한 고통을 겪도록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고통의 아궁이는

여러분에게 삶을 바꾸는 부활을 가져오기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의 고난 가운데서 욥은 믿을 수 없는 발견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전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그는 하나님을, (깊고 친밀하게)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보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욥42:5~6)

 

▲욥이 이 고난을 겪을 때, 그는 적어도 70살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모든 삶 동안 하나님에 관해 알아왔습니다.

 

어떤 시점에서 욥은 주님께 제단을 세워 거기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경건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길과 비밀한 일들을 그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욥은 주님의 위로, 거룩하심, 인격, 성품, 진노에 대하여 배워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힘과 지혜의 위엄에 관해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아연실색할 위기가 다가왔을 때,

그는 그다지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욥42:5

 

대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단지 공허한 신학적 용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일상에서 그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셨던 주님이

이제는 욥이 겪는 모든 일에 부재하신 듯 보였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은 일련의 설교, 죽은 말,

그 뒤에 어떤 생명의 힘도 없는 지식과 같이 보였던 것 입니다.

 

저는 이것이, 주님께서 처음부터

욥의 삶의 표면에 떠오르게 하기 원하셨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랑의 아버지께서는

그의 자녀가 그분을 더욱 깊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찬양예배보다도, 성경공부나 기도시간을 통한 것보다도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를 친밀하게,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시험과 고난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문자적인 죽은 신학의 하나님 이상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우리의 고통의 때에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 가장 가까우신 분,

바로 그분의 손 안에 모든 것을 완벽히 통치하시며 쥐고 계시는 분으로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편의와 축복의 모래 위에 그들의 믿음의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시험과 고난의 폭풍이 오면,

그 신자들은 완전히 (부는 바람 앞의 겨처럼)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이미 저는 갑자기 불어 닥친 재난들로 인해

훅 불려서 날아가고 있는 많은 신실한 남녀들을 봅니다.

 

그들은 고난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의 인생 속에서 행하는 역할을

결코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번영하고, 고통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기도가 즉시, 별 시험 없이 응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결코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피하게 해주신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성경은, 우리를 고난에서 구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욥에게 행하셨던 일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시험과 고통을 상징하는 돌풍이 욥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초자연적 돌풍의 한 가운데서,

주님께서는 욥에게 어떻게 그의 고난들 위로 솟아나는 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이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그의 종이 무시무시한 두 괴물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거대한 하마와 백과 같은 악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와 함께 만든 베헤못(하마)을 보라. 그가 소처럼 풀을 먹는도다.”(욥:40:15)

 

“네가 갈고리로 리워야단(악어)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또한 끈으로 그의 혀를 맬 수 있겠느냐?” (41:1)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이 거대한 두 괴물을 생각하게 하시며, 계시하셨겠습니까?

 

▲첫째, 주님께서는 이 문제를 그의 종에게 내셨습니다.

“보아라, 욥, 여기 하마가 너를 뒤쫓아 온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네가 너의 육체적인 힘으로 그와 씨름하여 눕힐 수 있느냐? 아니지?

아마 너는 그에게 달콤한 말을 걸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제, 위협적인 악어를 보아라, 네가 어떻게 그를 다루겠느냐?

그냥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코에 밧줄을 걸겠느냐?

네가 그를 애완동물과 같이 길들이거나 뜻대로 그와 놀 수 있느냐?

 

나에게 말해 보아라, 너는 그의 거대한 턱을 비틀어 열어 그의 이빨을 볼 힘이 있느냐?

물론 없다. 이 피조물은 돌 같은 심장을 가졌다. 그에게는 자비란 개념이 없다.”

 

이것은 동물의 왕국에 관한 단순한 설명 그 이상입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인생의 괴물’에 관한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의 종에게 욥의 인생에 도전하는 괴물 같은 문제들을 상징하는

이 두 가지의 두렵고, 흉포하며,

압도적인 피조물을 보여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욥에게 지적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이 두 마리의 거대한 피조물과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굉장한 실수를 한 것이다. 네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든지, 절대 이길 수 없다.

내가 보증하건데, 너는 절대 그 싸움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마를 생각해 보아라, 그는 보이는 모든 것을 밟아 뭉개버린다.

그는 단지 네가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큰 문제인 것이다,

욥. 그러니 내게 말해 보아라, 네가 어떻게 그와 씨름하여 눕힐 수 있느냐?

네가 그를 올가미 씌우거나, 옥수수 한 바구니로 꼬이겠느냐?

 

아니, 너는 어쨌든 그와 상대가 안 된다.

네가 하는 그 어떠한 것도 그를 길들일 수는 없다.

오직, 나 주님만이 그러한 괴물 같은 피조물을 멈추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악어는 어떠하냐, 욥?

그 네가 본 그 면도칼 같이 날카로운 이빨들은 사탄이 시험 동안

너를 뜯었던 악마의 이빨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인간도 그런 피조물과는 싸울 수 없다.

 

그리고 누구도 그 자신의 힘으로 악어의 두꺼운 갑옷을 벗길 수는 없다.

너의 영적인 대적, 악마도 마찬가지다.

오직 나만이 그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으십니까?

그분은 단지 욥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신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삶의 괴물에 관한

실체를 직면하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들을 다룰 수 없다. 오직 나만이 그들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다.’

 

▲이 시점에서 저는 갑자기 욥의 머리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상상해봅니다.

그는 분명 이렇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이 괴물들- 거대하고, 압도적이고,

대담무쌍한 피조물들- 그들이 나의 모든 문제들이야.

 

그리고 나는 절대 그들과 싸워 눕힐 수 없어.

 

“이 모든 시간, 나는 잿더미 위에 앉아,

왜 하나님께서 이 괴물 같은 문제들이 나를 대적하여 오게 하셨는지를 알아내려

노력하며 앉아 있었어. 나는 그들과 싸워 쫓아 낼 방법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어.

 

그러나 사실, 나는 나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거야,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위해 싸워주실 거야.”

 

▲이제 욥의 말은 달라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욥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주의 생각은 그 무엇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나이다.”(욥42:1~2)

 

욥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전능하셔.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어.

그리고 그의 어떠한 목적도 좌절될 수 없어.

그러므로 나는 내 삶도 흩어지지 않을 걸 알아.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난 뒤에 계획을 갖고 계셔.

 

나는 내 주님이 나의 곁에서 지키시는 걸 알아,

그 손에 나를 보호할 칼을 들고서 말이야.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가 알맞다고 보시는 정확한 그 순간에 나를 구하실 거야.

 

어떤 사람이나 괴물도

그의 마음을 바꾸거나 그의 계획에 영향을 끼칠 수 없어.

그분께서는 절대적으로 그의 길을 가지실 거야.

 

나는 내가 하마나 악어를 대적할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러나 그건 중요치 않아,

나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나의 임무는 단지 가만히 있어 주님의 구원을 보는 거야.”

 

 

◑저는 몇 년 전 제가 십대도전사역을 하면서

이와 같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저의 사역 초기에, 저는 모든 나날들을 뉴욕의 거리를 걸어 다니며

마약중독자나 갱 멤버들이게 설교를 하며 보냈습니다.

저는 곧 지쳐버려, 영육으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저는 결국 병이 나서, 6주 동안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한 시점에서, 제 목에 종양이 생겼습니다. 저는 마시거나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때때로, 내 숨을 돌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곧 저의 몸무게는 115파운드(약52kg)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우리의 사역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돌아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병원에 더 오래 머물게 되면서,

그 사역자금은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곧 우리의 마약,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사역은, 끝이 다가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늙은 악어가 그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교회에서 누워 지낼 때,

저는 하나님께 어느 정도 화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방문하러 왔지만

저는 그들의 교제에서 위안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저를 신경질 나게 했을 뿐입니다.

 

사실, 저는 곧 욥과 같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세 사람이 저에게 ‘주님께로부터 온 말씀’을 말하기 위해

제 방에 왔지만, 그것들은 저를 무겁게 했을 뿐입니다.

 

결국, 어느 밤, 저는 절망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탄원했습니다.

“주님, 저는 포기했습니다. 저는 여기 싸울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이 당신의 손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단지 당신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당신께 부탁드릴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이 사역의 문을 닫기 원하신다면, 그건 당신의 일이니까요.

그러나 제발 주님, 이것을 내 목에서 꺼내 주시옵소서.”

 

한 시간 만에, 저는 큰 호두크기의 종양을 기침해 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단 시간에, 저는 다시 건강해 졌습니다.

저는 곧 병원을 떠났고 저의 육체적 힘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시 십대도전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저는 제가 떠난 사이에도 그 사역이 살아남았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떻게 주님께서 이를 이루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제가 바랬던 어떤 기적적인 거액의 수표를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제가 아팠던 그 시간 동안,

우리 사역의 간사들이 저를 바라보는 대신에, 주님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이루고자 하셨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인생에서 우리의 문제들은 단지 예측할 수 없는 재난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나든지, 또는 우리의 고통이 얼마나 깊게 파고드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 내내 목표를 정확히 겨누고 계십니다.

 

또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괴물과 싸우는 때도 정확하십니다.

 

가끔씩 우리는 악마가 와서 하나님의 계획을 끊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절대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 모든 것을 그분의 지배아래 두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사탄이 악하게 의도했던 것들을 이용하셔서

그것들을 우리의 선한 것으로 바꿔 주십니다.

 

▲우리가 시험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 우리는 괴물로부터 우리의 눈을 때어야 합니다.

그런 때에는, 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어떠한 것이라도 하실 수 있어.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잊지 않으셨어.

그분께서 지금 나를 보고 계셔, 내가 이 고약한 시험을 견디는 동안에 말이야.

그리고 나는 알아,

얼마나 상황이 나빠 보이든지 간에,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지배아래 가지셨어.

누구도, 어떤 힘도, 그분의 나를 향한 계획을 바꿀 수 없어.”

 

어쩌면, 여러분은 지금 당장 이렇게 의아해 하며 낙담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문제에서 벗어날 어떤 길도 보지 못하겠어,

내가 이 맹렬한 시험에서 빠져나갈 수나 있을까?

아니면 나의 고난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인가?

주님, 제가 다시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여기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이 있습니다.

“보라, 우리는 견디어 내는 자들을 복 있는 사람들로 여기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또 주의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인정이 심히 많으시고 자비로우시니라.”(약5:11)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주께서 욥의 사로잡힘을 돌이키셨고,

또 주께서는 욥에게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니라. ”(욥42:10)

 

▲욥이 그랬듯이 여러분에게 잃어버렸던 것이, 두 배로 불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무엇인가 훨씬 훌륭한 것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지식을

마음에 진실로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은

더 이상 신학적인 관념이 아닐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들은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구원을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는 어떤 원수나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여러분은 정복자 이상으로 여러분의 시험을 이겨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자리에 앉아서 말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은 욥과 같이 그 시험의 시작될 때에는,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들은 것으로만, 그분을 아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정확히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분을 보기를 또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께서 여러분 삶을 위한 신성한 계획을 가지셨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키우기를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은

지옥의 어떠한 악마에 의해서도, 여러분의 길에 나타나는

어떠한 괴물에 의해서도 훼방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 가장 큰 시험 한가운데서, 여러분은 욥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담대하게 이와 같은 훌륭한 믿음의 선언을 빌어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 분을 신뢰하리라.”(욥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