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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분의 마음을 두실 때 벧후3:9 출처보기
데이빗 윌커슨 Dec. 6, 2006
▲설교의 개요.
히브리서 12;1절은 우리에게 세상이, 영광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로 둘러싸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허다한 사람들이 증거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그들은, 증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저는 그들이 우리에게 세 가지 말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여전히 이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는 데 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져버리셨다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모든 육체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주시고
모든 나라의 남자와 여자들에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2. 그 증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여전히 그분의 <교회>를 사랑하고 보호하시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계속적인 배신과 타락에도, 주님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계십니다.
3. 그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그분의 모든 <자녀>들, 즉 우리 각자에게 있다는 것에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단 한 사람의 종이라도,
그 종이 아무리 크게 넘어졌다 할지라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What does this multitude of heavenly witnesses have to say to the present wicked world?
이 허다한 천국의 증인들은, 지금의 악한 세상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그 결론은, 본문인 벧후3:9절입니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이제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여전히 이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는 데 있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노아의 때보다 훨씬 더 악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소돔보다 훨씬 더한 죄를 짓는 인류의 행태를 보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는 가장 번영한 시대 중 하나입니다. 경제는 축복받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나 부도덕하고, 폭력적이고 하나님께 反하며
심지어 세상 사람들조차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이라도,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악한 사회에
심판을 지연시키시는지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주님, 어떻게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그렇게 수치스럽게 하는 많은 것들을
용납하실 수 있으세요? 당신의 말씀이 우리 중에서 사실상 벗어져 없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이런 일이 계속되나요?
그리고 어떻게 당신은 범람하는 성적인 타락을 참으실 수 있으신가요?
당신은 이보다 훨씬 덜 한 이유로 소돔을 멸하셨습니다.
얼마나 오래 이런 상태를 놔두실 건가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우리는, 왜 그렇게 대량의 악이 계속되도록 허락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그 자비와 인내에 의문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중에 있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인 중에 대괴수”에게 주신 끝없는 사랑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삶과 기록들은, 그가 그리스도를 저주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테러리스트였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추적해서 잡았으며
그들을 감옥에 넘겨주거나 죽임 당하도록 끌고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몰랐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현 세대를 참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바울처럼, 어린 시절부터 증오하도록 교육받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때까지 알고 있는 모든 증오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바울처럼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지극히 악한 사람들 중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사이에 있는 사도 베드로 역시
하나님께서 너무도 인내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삶과 글들은
우리에게 그가 예수님을 저주했으며, 결코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맹세했던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분을 저주하고 부인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심판을 미루고 계십니다.
그들은 신앙을 버리고 되돌아간 사람들이며 자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베드로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을 생각할 때면 저는, 이전에 마약과 알코올중독자였고,
창녀였고 동성애자였으며, 갱단 원이었고 마약 판매원이었고, 살인자였으며
아내를 구타하는 자들, 이단자들과 포르노 중독자들-사회가 포기했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봅니다.
그들은 모두 회개했고 예수님의 팔에 안겨 죽었으며,
이제는 사랑의 아버지의 자비와 인내에 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그분의 자비를 그들이 받기 전에는
심판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하나같이 증거하며 말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 심판들을 미루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사람도 희망 없거나 절망적인 상태로 잃어버린 바 되는 것을
정말로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진노를 참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소망의 마음을 변치 않고 계십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의 참으심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The depraved world today is abusing God’s patience.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죄악의 잔이 이제는 넘쳐흐를 것 같은 시점까지, 계속해서 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자비와 그런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분께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죄를 심판하는 것을 미룰 수가 있으실까요?
왜 그분께서는 악한 사회가 그분의 이름을 계속해서 모욕하고
그런 사악한 방법으로 그분을 화나게 하도록 허락하고 계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이 더욱 더 사악해져서,
그분께서 그들에게 훨씬 더 엄청난 진노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지만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내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없어졌겠죠.
지금 하나님께서는 심판함으로써
그분의 짓밟힌 영광에 대해 복수하실 날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지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비록 늦더라도, 다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 때문에, 주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가, abuse되는 것도, 참고 감수하십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처럼, 때때로 저는, 이 세상이 심판받을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많은 신자들은, 계속적으로 주님을 모욕하는 교만하고 뻔뻔스러운 자들에게
당연히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다르십니다.
그분은 심판이 아니라 구속을 원하십니다.
베드로는“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멸하는 불이 쌓여지고 있으며
주님께서 죄 지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부으실 시간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세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분께 천년은 우리에게 24시간인 하루인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9: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진리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타버릴 것이고..
지금은 한밤중이고.. 심판의 불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아직도 자비와 용서와 구원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즉 온 세상에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을
더 긴급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정신 나가고 음란하며 생각이 없는 세상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 같이, 우리도,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하도록 기도하십시다.
우리가 그분께서 바로 지금 세상에 보여주고 계신 인내와 사랑을
우리도 똑같이 갖게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2. 하나님께서는 거짓 교사들이 난무하고 강단에서 어리석은 것들이 넘치고 있음에도,
타락한 모든 그분의 <교회>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God still loves his church, blemishes and all,
in spite of a flood of false teachers and foolishness in the pulpit.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님께 너무도 소중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분의 교회는 변절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겪어왔습니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사도적 집합체였던 초대 교회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권고하심이 가르쳐졌습니다.
“자라나기에 충분하고 확고부동한”것이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진리를 받았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심었고 위대한 복음 전도자인 아볼로가 물을 주었던 곳입니다.
“충분히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고린도 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써서 보냈음에도,
5, 6년 내에 그런 교회가 잘못된 교리에 깊이 빠져들게 됐던 것입니다.
그들은 미묘하고 사악한 공격아래 있었고,
그래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그분의 희생적인 죽음과 부활을 무효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편지에 이렇게 써서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12–18
얼마나 하나님을 모욕하는 오류가, 고린도 교회 안에 살며시 들어왔었는지요...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그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역시 바울이 세웠던 곳입니다.
이 믿는 자들의 눈에, 바울은 마치 천사와 같이 그들에게 보내진 사람이었기에,
바울의 가르침을 큰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그 사도를 너무도 높고 귀하게 여겼고
“그들의 눈이라도 빼서” 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충격적이게도, 그렇게 감사했던 신자들이
바울이 올바르게 가르쳤던 진리로부터 변질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교인들처럼, 정상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나 배회하다가
그들을 잡으려는 거짓 교사들의 “유혹하는 마법”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칭의가 믿음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행위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선포하는 이단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기가 막힌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3:1.
그는 요약하면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받은 이 이상한 미혹과, 그렇게 갑작스럽게 너희에게 온 이 영적 마법이 무엇이냐?
너희들은 너희를 위해 우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훈련을 받았고
그들은 너희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너희들은 그 가르침을 끊어버리고 이제는 탐욕스럽고,
천국에서 멀어지게 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구나.
도대체 너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너희가 받았던 순수한 복음의 가르침에 무엇을 한 것이냐?
너희는 육신을 끄는 아첨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참 진리를 밀어 제친 것이다.”
▲저는 오랫동안 견고하게 성경에 기반을 두고
하나님의 충분한 권고를 규칙적으로 받아온 교회에 출석하는 크리스천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름부음 받은 설교를 들으며, 천국에 이끌려 갔었고,
지옥을 실제적으로 봤으며, 그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었습니다.
어떠한 것도 그들을 복음에서 물러나게 하지 못했고, 믿음가운데 성숙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이 들었던 순수한 말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어느 유명한 설교자의 테이프를 주었거나 아니면 “호기심”에서,
그들은 그 설교자의 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들은 것은 너무도 옳게 느껴졌으며 95퍼센트는 진짜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에 끌리고, 성경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미묘하게 잠식해가는 5퍼센트의 가르침이 독이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곧 그들은 들었던 것에 중독되었고,
그 마음은 육을 만족시키는 어떤 복음에 걸려들게 된 것입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잘나가는 설교가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부자였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재물을 가지셔야만 했다고 말함으로써
성경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돈이 많으셨기 때문에 돈 맡는 자(유다)가 필요하셨으며
그 시대에 어떤 목수도, 자신이 집을 지을 수 있기에 집이 없지는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놀랍게도, 크리스천들은 이런 거짓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헌신되고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갑자기 순전한 가르침을 도외시할 수 있는지 궁금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분별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왜 그들은 가르침을 받아왔던 그 단단한 음식을 기억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여전히 주님은,
고린도 교회, 갈라디아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오늘날의 ‘정도에서 벗어난’ 교회(성도)들을 사랑하고 계시며,
그들이 돌이킬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 윌커슨은, 히12:1절에, 구름같이 지금 우리를 둘러 싼, 허다한 천국의 증인들이
우리에게 이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한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그런 유혹적인 가르침들이 올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행 20:29).”
또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표면에 드러나게 되어
“멸망하게 할 이단(벧후 2:1)”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의를 줬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들 중 얼마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소위 신비주의적인 진리들)를 따르는”시간이 올 것을 경고했습니다. 딤후4:3–4
▲교회역사는 바울이 예언한 그대로의 일이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죽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던 그 세대가 지나가자,
사악한 오류를 일으키는 음모가 교회에 홍수처럼 넘쳐흘렀습니다.
신자들은 이상한 가르침에 빠져들었고,
과학과 철학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서서히 침식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그렇게 무너진 교회들을 알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파에서, 동정녀 탄생설이 파헤쳐지며,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인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주교들과 설교가들이, 동성애와 동성끼리의 결혼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배교자들이며 두 번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런 “이가봇” 단체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그런 교회와 관련이 없을 것이고
어떤 배교행위에 참여하느니 떠났을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교회의 순수함에 대해 말했던 것을 살펴봅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5:25–27”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복음을 설교하는 자가 얼마나 영적으로 소경이기에,
그리스도께서 더럽혀지고 얼룩진 옷을 입은 신부를
아버지 앞에 데리고 가는 것을, 태연하게 설교할 수 있는지요?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상상도 할 수 없이 혐오스럽게 꾸민 신부를
하나님 앞에서 소개시키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으신가요?
“여기요, 아버지, 제 신부입니다.
이 세상 것들로 마음이 채워진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죠.
그들은 돈을 사랑하고, 거짓 선지자들의 장사에 속은 자들입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심지어 마귀조차도
그런 미혹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관심은 아직도 변질된 교회들에게 있습니다.
변질된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죽이거나 파멸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어하고 계시며,
그분의 놀랍고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으며 승리하는 교회는 죽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령의 강은, 변질된 교회들인
“사해”로 흘러들어가 죄악과 미지근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을 솟아나게 하고 있습니다.
변질된 상태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남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들판이 희어져 있다.
지금은 일꾼들이 계속 전진해야 할 시간이다.”고 선언해 오셨습니다.
성경 어느 곳을 봐도, 성령님께서 활기 없는 추수를 뒤로하고 떠나시는 장면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아직도 역사하고 계시며,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께로 변절자들을 포함한 잃어버린 자들을 이끌고 계십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계신 때이며, 그분께서 즐거이 성도가 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득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 추수할 일꾼들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합시다!
◑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마음을, 이 땅에 있는 그분의 몸의 <모든 지체>들에 두셨습니다.
God has his heart set on every member of his body on earth.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저와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을 할까요?
▲사도시대에, 그리스도를 증오하는 권세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했었습니다.
이런 권세들은 구원자를 저주했고, 그분의 부활을 거짓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런 철 빗장도 사도들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천사를 보내
그들을 풀어주셨던 것입니다. 행5:18–32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행5:27–28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도들은 즉시 성전으로 되돌아가서,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계속 전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가서 신선한 불과 권능으로
예수님에 대해 설교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규칙들을 무시했었고, 어떤 것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복음을 가로막지 못하게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동성애나 어떤 다른 음란한 성행위에 대한
모든 설교를 금지하도록 하는 영향력을 얻으려는 운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사회에서, 마침내는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내보내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할 때, 여러분은 그분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많은 유럽 사역자들에게 있어, 성적인 죄에 대해 용기 내어 말한다는 것은
벌금과 감옥행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여기 미국에서도, 그런 조류가 反그리스도 의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다시,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 박해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나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5:29, 32
▲고넬료 가정 역시, 이 구름같이 허다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여기 성경에 기록된 고넬료의 증언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와서 예수님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직접 주님의 부활하신 몸을 목격했으며 심지어 그분을 만져보기도 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부활하신 자신을 보이셨으며,
부활 이후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분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행10:34–41
그러자 베드로는 고넬료 집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3–44)”
베드로의 설교로 인해, 고넬료 집 사람들은 죄로부터의 자유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넬료의 증거는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과 사역에 임하시길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용서에 대해 설교하시고 믿으세요.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그것을 믿으세요.”
베드로가 용서를 설교했을 때,
고넬료의 집안은 그것을 믿었고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천국의 증인들이 우리에게 복잡한 신학이나 교리들을
붙잡고 있으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I don’t believe this multitude of heavenly witnesses would speak to us
about holding to complicated theologies or doctrines.
단순한 진리를 말하는, 다른 증인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고 증명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승리를 계속해서 설교해야 하며,
우리를 대항하는 죄인들의 비난을 참고, 끊임없이 따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해야 합니다. 히12:1–2
▲다윗 왕은, 주님의 용서하심과, 우리에게서 그분의 성령을 거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살인을 저질렀고 간음과 거짓말을 했지만
회개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다윗에게 두신 그분의 마음 때문에
그를 그냥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다윗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풍성한 용서를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새 언약을 믿는 우리는, 다윗이 꿈에서나 바랄 수 있었던
보혈로 덮으심과 자비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가장 위대한 빛이셨던 분께 죄를 지었던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 제자는 예수님의 임재 안에서 걸었으며, 주님을 만졌고
그리스도 그분께 직접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분을 저주했고 그리스도의 그 입술에서 나왔던 예고대로
죄를 지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구원자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죄를 지었고 정죄감속에서 살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마음을 두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가져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희생 앞에 내려놔야만 합니다.
비록 과거에 어떤 죄를 저질렀었더라도 우리는 일어나 전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없애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면서 고난을 겪으셨으며,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을 때,
그분께서는 바울이 얼마나 크게 고난을 당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역기간동안 바울은 정말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분의 마음을 두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살전 3:3).”
▲욥의 증거로 되돌아가봅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7:17–18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여러분에게 두실 때, 여러분은 자주 단련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이 더 길고 더 어려울수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깊이 그분의 마음을 두시고
여러분이 그분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과 예수님의 삶이 정말로 그러합니다.
대적은 여러분을 대적하여 올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적을 대적하여 깃발을 올리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만 완전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모든 목소리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에서 그런 증거를 저로 듣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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