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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시라

LNCK 2013. 10. 5. 15:05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시라          출20:7       2004.02.08. 출처

    

 

 

▲서울에는 명동성당이라는 유명한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성당으로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고, 농성장소로도 유명합니다.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까? 명동성당이 이처럼 인기가 있는 이유는

경내에서 농성을 하는 한, 경찰이 진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철조망이 쳐져 있기 때문에 진압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성역으로 여기기 때문에, 진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역이란 사람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을 말합니다.

농성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고, 온 세상 사람이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이처럼 최소한의 거룩한 영역이 필요합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타협할 수 없는 내어줄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컨대 아무리 시대가 악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사람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 대놓고 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가 설사 도둑질을 하며 산다고 하더라도, 자식에게 가르칠 때만큼은

‘도둑질 하지 말아라. 그것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가르칩니다.

자식에게 만큼은 타협할 수 없는 최소한의 거룩한 가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기가 그것을 내어주게 되면

그것은 사람으로 살기를 포기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타협할 수 없는, 내어줄 수 없는 거룩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세상이 자유화 되고, 민주화 되고

문화가 달라지고 세상 물정은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우리가 결코 타협할 수 없고, 내어줄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요, 나를 위해서 지켜야 됩니다.

 

내가 바르게살기 위하여, 뜻있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 내 믿음을 위하여,

영혼을 위하여 지켜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우선적으로 자기 거룩한 장소, 거룩한 시간, 그리고 거룩한 규칙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1. 먼저 그리스도인에게는 거룩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3년 반전에 이 교회를 개척하기 이전에, 이 장소는 텅 빈 창고였습니다.

아마 그 때에 여기를 와 보신 적이 있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창고를 개조해서 예배당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예배당입니까?

그러나 옛날에는 여기가 텅 빈 창고였고, 그 이전에는 볼링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소가 본질적으로 거룩한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구별한 거룩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만큼은 거룩합니다.

 

제가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저의 집사람 오르간을 놓은 곳을

제 기도실로 사용해 썼습니다. 그러니까 그 방은, 제게는, 잠자는 방도 아니고

밥 먹는 방도 아니고, 기도하는 방 이예요.

기도하기 위해서 제가 구별해 놓은 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방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거룩한 장소를 끊임없이 침범하려는 것이 있습니다.

뉴욕에 가면 어떤 나이트클럽이 있습니다.

이 나이트클럽은 평범한 나이트클럽이 아닙니다. 옛날에 그 자리에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교인이 없어서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건물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을 사 들인 사람이 겉모양은 내버려 두고

내부를 개조해서 나이트클럽을 만든 것입니다. 전형적인 고딕 건물 이예요.

높은 십자가 탑이 있고 스테인 글라스가 있는 예배당 건물을,

이 사람이 사들여가지고 내부를 나이트클럽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마 그곳에 와서 노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춤추며 놀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함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 볼 때는 불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차라리 그 건물을 허물어뜨려서 나이트클럽을 만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왜 예배당 건물을 내버려 두고, 그것을 나이트클럽으로 바꾸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을, 의도적으로 침범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2. 그리고 둘째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거룩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어떤 분은 자기가 하루 종일 주님과 동행하므로, 특별히 따로

거룩히 구별하고, 떼 놓는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생각과는 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이 거룩하다’는 말은, ‘아무 시간도 거룩하지 않다’는 말이고,

‘모든 장소가 거룩하다’는 말은, ‘아무 곳도 거룩하지 않다’는 말 일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새벽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정해놓은 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9시 (즉 오후 3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다음 주일에 4번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기키라’

이 계명을 공부할 것이지만은

여러분 주일을 지키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버릴 수 없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주 5일제를 도입하면서 사람들이 주말이 되면 산과 바다로 놀러갑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왜 꼭 주일예배를 본 교회에서만 들여야 됩니까?

리조트에 가서도 예배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왜 주일 예배를 꼭 주일날만 드려야 된다고 고집합니까?

금요일 저녁에 토요일 저녁에 드려도 되지 않습니까?” 이런 의문을 제시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타당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교회의 보루요, 성역입니다.

이것을 내주기 시작하면, 우리의 경건이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제 와서 이런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경험했습니다.

독일이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독일 교회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주말이면 놀러가니까

아예 리조트에다가 교회를 만들자, 그래서 놀러온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자,

이런 취지에서 리조트에 교회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좀 모이더랍니다.

 

간편 운동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좀 모이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그나마 모이지도 않더랍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생각하기를 ‘내가 이미 선을 넘었는데

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아예 편하게 놀자’ 이렇게 해서

리조트에서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본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점점 독일 교회가 텅텅 비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즘에 독일에 교회를 가보면, 교회 재적이 천 명이 넘어요.

그런데 주일날 예배드리는 사람은 30명, 50명,

그나마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떠났느냐, 그건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까?

이것이 기독교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세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한 규칙입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사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십계명을 공부하는 이유는, 크리스천 삶의 규칙을 배우기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제 멋대로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배워야 되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남의 것을 네 것 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라,

살인하지 말라, 생명을 소중하려 여겨라,

안식일을 지켜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기본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행한다고 의인이 되는 건 아니 예요.

도둑질 안한다고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최소한 지켜야 될 규칙이에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규칙입니다.

 

▲세속화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끝도 없이 밀려들어옵니다.

교회에 파고드는 세상의 생각에도 끝이 없습니다.

 

제가 주일 예배 때 목사 가운을 입고 설교를 합니다만,

많은 교회에서는 이미 그것을 중단해버렸습니다.

권위주의적으로 보인다고, 교인들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이 가운을 버리고 이제 정장만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있어서도 이제 타협을 요구합니다.

‘왜 꼭 정장을 입어야 되느냐? 목사가 케쥬얼한 옷을 입고 예배를 드려도 되지 않느냐?’

 

그래서 요즘은 남방만 입고, 골프 칠 때 입는 옷 입고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하는 목사들도 많습니다.

 

미국에 있는 제 친구 목사는요 단독 목회를 하는데

1부 예배는 한국어 예배이고, 2부 예배는 영어 예배입니다.

그런데 1부 예배드릴 때는 양복을 입고 설교를 하고요,

2부 예배를 드릴 때는 양복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바람으로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가 세상에 가까이 감으로써

세상이 교회로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오히려 손해입니다.

 

어떤 분들은 뭐 어떠냐, 자연스럽고 좋지 않으냐, 민주적이지 않으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자연스럽고 민주적인 분위기를 얻기 위해서 교회를 갑니까?

 

여러분 자유스럽고 민주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얻으려면

차라리 게그 콘서트를 가세요.

 

그러나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다.

사람이 절제하고 자제하고 침묵하고 그리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최소한의 성역,

세상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규칙이 최소한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틀'도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둘 다 필요합니다.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경건의 모양은 외형적인 것입니다.

 

예배당에 올 때 정장을 입고 오는 것, 그것은 경건의 모양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 것, 그것도 경건의 모양입니다.

 

눈을 감는다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것도 아니고

눈을 뜬다고 하나님이 안 들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경건의 모양이 있어야, 경건의 능력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담을 때 그릇을 먹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릇이 있어야,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경건의 모양 자체가 능력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건의 모양이 있어야, 거기에 경건의 능력을 담을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경건의 모양을 가르쳐 주어야

그들이 때가 되면 경건의 능력을 얻게 되고,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성령 체험을 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교회 다니는 것을 훈련시키고, 그게 다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양을 배우는 것입니다.

 

학교 공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학교 갈 때 가방에 책을 넣고, 연필 넣고,

제 시간에 교복을 입고 가서 예습하고 복습하고

그 자체가 학문을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필요한 준비를 갖추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 예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내면으로부터 거룩한 사람으로,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믿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은혜를 담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릇을 갖추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건물을 지을 때 벽과 기둥을 콘크리트로 짖지 않습니까?

 

여러분 유심히 보면 콘크리트를 붓기 전에 먼저 나무로 틀을 짭니다.

나무로 담과 기둥의 모양으로 틀을 짜놓고, 그리고 거기에다가 콘크리트를 붓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콘크리트가 굳습니다. 그리고 나면 틀을 떼어냅니다.

 

그러고 나면 기둥과 담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콘크리트와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위로부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담을 수 있는 틀을 준비해야 되는 것은 우리예요.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 말씀 공부하는 것, 주일 성수하는 것,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틀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 주변에 유태인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들도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발견한 것은, 믿음이 있는 유태인들은 이방인들과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방인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아예 사귀질 않아요.

 

제가 물어봤습니다. ‘차별하기 때문에 그러느냐?’ 그랬더니

차별하는 게 아니고, 이방인과 사귀다가 정이 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정이 들면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나는 장차 유태인으로 살고 싶은데

이방인과 결혼하면 그게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사귀다가 정이 드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아예 안 사귄다는 거예요.

 

저는 거기에서 경건의 모양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현실적입니다.

너무 현실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을 타협하고,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을 양보해버리고

내버리고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우리예요. 내 신앙이 손해를 봅니다.

영적으로 손해를 봅니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계명은 십계명 중에 제 삼계명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도 거룩합니다.

 

우리가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하기 때문에

사람이 누구관대 하나님 이렇다, 하나님 좋다, 하나님 싫다, 믿는다, 안 믿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우리의 입에 올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다’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우리가 납득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섣불리 판단을 내려서,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느냐, 왜 하나님은 저렇게 하시니 않느냐,

왜 하나님은 이러느냐, 저러느냐,

섣불리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남의 집 사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절제해야 됩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들 많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내가 모르는 크고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고 이루고 계십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일을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 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신뢰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은, 확장하면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우리는 의지하고 순종하기만 합니다.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일이로다’

‘Trust and obey' 의지하고 순종하라는 겁니다. 의지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의지하면 순종하세요. 그게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간에 거리를 좁히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좁히세요.

 

부모와 자식 간에 거리를 좁히는 것도, 부모를 공경하면서 좁혀야죠.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좁히면.. 그것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점점 더 아무것도 거룩하지 않고 성역도 없고, 금기도 없고,

내 멋대로 사는 시대가 돼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멋대로 사는 백성이 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예요. 구별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거룩해요. 하나님의 교회도 거룩합니다.

안식일도 거룩합니다. 구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