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여호와 샬롬 / Sparks

LNCK 2013. 10. 15. 16:10

여호와 샬롬                6:1~24                               source 영어 편역, 축약

The Altar and the Name by T. Austin-Sparks

 

 

    

 

◑도입

 

성경에 보면 ‘(제)단’과 ‘(여호와의) 이름’ 이 두 단어가

얼마나 자주 연결되어 나오는지요..

창12:8,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26: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창33:20, (야곱이)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22장에도,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더라.

출17장에는,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했습니다.

사사기 6장에는, 기드온이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샬롬 이라고 부릅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더 많은 예가 나옵니다.

 

▲그런데, 위의 모든 예에서도 볼 수 있고, 나머지 다른 예에서도 볼 수 있는 바,

‘제단’이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

그것은 ‘십자가’와 깊이 연관 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제단’이라고 나오면,

‘하나님의 이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속성’이 거기에 연결 지어 나오는데,

그 하나님의 이름, 그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는 때는

모두 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즉 <제단에서> 입니다.

 

‘제단’이란.. 구약에서 제물을 각을 떠서, 하나님께 바치는 장소입니다.

창세기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제단’을 논할 때는, 결코 십자가를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또한 ‘제단’과 - ‘하나님의 이름’이 연결 지어져 나오는 것도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제단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이름’ 역시 십자가와 함께 생각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예

 

▲1. 이미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현실은 너무.. 비참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자들이, 현실은,

그들은 지금 미디안의 공격으로, 아주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었으며,

약하고, 패배했으며,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외에도, 가난, 굶주림, 두려움, 혼란에다, 단결력도 부족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런 상태를 타개해 나갈만한, 지도자 역시 부재했습니다.

 

게다가, 보십시오, 그 땅은 가나안, 언약의 땅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자들이)

언약의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살면서)

이런 패배주의에 함몰되어 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현대의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천’이란 말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이름을 내걸고 살아가면서도,

어쩌면 사사기의 기드온 시대처럼.. 다들 죽을 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나안 땅 (현재적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서 산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2. 기드온은, 마음의 전쟁에서 이미 승리했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의 이야기의 가장 핵심 포인트는,

그가 ‘단을 쌓았다’는데 있습니다.

 

삿6: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제단은, <기드온과 하나님 사이의 전쟁>의 클라이맥스 이었습니다.

제단을 쌓는 것을 기점으로, <기드온은 그 하나님과의 전쟁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요..

 

이스라엘을 치러 온 미디안과의 전쟁 이전에,

먼저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드온의 마음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무슨 외적 전쟁, 외적 문제들이 있을 때,

먼저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내적인, 내면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대한 불신, 원망’ 등이죠.)

 

기드온이 가졌던 마음의 전쟁이란,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그 놀라운 사역을 위해서, 기드온을 택하셨다고 하지만,

기드온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 너무 처량한 것입니다.

 

그가 수행해야 할 전쟁은, 너무나 엄청난 큰 과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전쟁에 들고 나갈 자원, 군대,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불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돌보시기나 하시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고난이 닥치는 거지?’

‘하나님이 이런 상황이 일어나도록 다 방치하셨는데, 정말 여기서 우리를 구원하기나 하실까?’

‘하나님은 정말 신뢰할만한 분일까?’ (우리 하나님 맞나요?)

 

△그런데 모세와 예레미야도, 늘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기드온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평, 하소연, 죽고 싶은 심정..이 종종 있었습니다.

 

일례로, 모세도, ‘나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나는 웅변술이 부족합니다.’

예레미야도, ‘나는 말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본문의 기드온이 ‘나는 우리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자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때 기드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이슬이었습니다.

천둥이나 번개가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천둥과 번개는, 성경에, 하나님의 응답의 표가 아니라,

종종 하나님의 심판의 표였습니다.

 

우리는 늘 ‘천둥과 번개’처럼, 하나님이 뭔가 눈에 확 끌리는 것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소리 소문 없는 ‘이슬’로 응답하십니다. 이슬이 얼마나 소리 없이 내립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눈과 귀에 크게 보이지 않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하나님은 조용히,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 나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국 기드온을 굴복시키셨습니다. 즉 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기드온이, 자기 마음의 하나님과 전쟁 중에 받은 응답은,

“여호와 샬롬” 즉 ‘주님은 평화’ 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미디안의 메뚜기 떼 같은 군대,

백성들의 패배주의.. 이런 모든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

놀랍게도, 기드온의 마음에는

<주님의 평화>가 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한 외적 상황이 너무나 절망스럽고,

또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나오고, ‘주님이 맞습니까?’ 하다가도,

주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여호와 샬롬’이 내게 임할 때,

 

그 전쟁, 내 마음의 전쟁에서 ‘여호와 샬롬’이 임하여, 내 마음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나머지 외적인 전쟁은, 다 이긴 거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삿6: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래서 히브리서11장 ‘믿음 장’에, 기드온의 이름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라는 말은, 이미 그들의 마음에 평화가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자기들 마음의 전쟁에서, 이미 주님의 평화가 임하니까,

즉 마음의 전쟁에서 승리하니까,

나머지 외적 전쟁도, 당연히, 자연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마음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내가 내 마음에서, 주님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즉, 주님이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믿음을 주실 때,

나머지 외적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대적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3. 제단에서 자아가 죽은 기드온에게 - 여호와 샬롬이 임하다.

 

기드온이 ‘제단’을 쌓으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제단’은 ‘십자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삿6:15,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기드온은, 자신을 지극히 낮고 낮게 낮춘 것입니다.

제단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죽이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역설적 진리”가 적용됩니다.

자기가 낮아지고, 자기가 죽었는데,

그러면 내가 완전히 죽어서 망할 것 같은데, 정반대로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고, 죽은 자아 위에, 주님의 능력으로 덧입혀 지는 것입니다.

 

제단 앞에서, 자아가 죽고, 자기가 죽고, 자기 교만이 죽은 기드온에게

그 절망적인 처지에서,

비로소 ‘여호와 샬롬’ ..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화가 임했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디안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미디안 십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삿6:24

 

자기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

자기를 비천하게 스스로 인정하는 것,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것,

거기서, 그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는 자리에서, 그 제단(십자가)에서,

비로소 여호와 샬롬이 임하고,

또한 여호와 이레가 임하고, 여호와 닛시가 임하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도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영어성경에 empty라고 나와 있죠. 빌2:7

십자가란..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무리 낮고 비천해도, 예수님만큼 비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지위가, 명예가, 소유가 비워지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움은, 즉 십자가는,

‘순종’의 뜻도 포함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무조건 백지수표처럼 다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전쟁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원망, 마음의 전쟁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내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철저히 순종하는 자라야..

십자가=제단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서

여호와 샬롬, 주님의 평화가 내게 임하게 되고,

그러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고, 미디안 대군도 무섭지 않는 것입니다.

3백 용사로도, 대군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뒷부분을 너무 간략하게 요약해 버렸는데, 출처의 원문을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