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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높은 바위로 나를 인도하소서

LNCK 2013. 11. 2. 23:21

◈나보다 높은 바위로 나를 인도하소서      시61:1-8      -09.05.22.스크랩-

 

*원제목 : 계단도 승강기도 없는 고층빌딩 오르기

 

▲본문의 배경

이 시편 61편은 압살롬의 모반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인데

처음에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곧 이스라엘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자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서 이스라엘 영토에 동쪽 끝인

마하나임 까지 피신을 가게 됩니다.

 

그 마하나임 이라는 약속의 땅(이스라엘 영토) 끝에 이르러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떤 소식을 듣습니까?

 

자기 아들 압살롬이 이제 총공세를 펴서

아버지가 피난 가있는 마하나임을 공격해서 뿌리를 뽑아버리고

자기가 완전히 이스라엘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때 왕궁을 뺏기고, 나라를 빼앗겨버리고

이제 정말 완전히 인생이 끝나버릴 마지막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부른 노래가

바로 오늘의 이 시편이라는 것이에요.

 

▲땅 끝에 몰렸으나

 

2절,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마하나임)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라는 기가 막힌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 땅 끝은 말씀드린 대로 마하나임까지 피신 간 것이

마치 정부가 6·25때 밀려밀려 낙동강 아래 부산까지 간 것과 같습니다.

 

상징적으로는 도저히 인간적으로 완전히 망해서 벼랑 끝에 서 있어,

이제 발 한발자국만 내밀면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위기의 상황을 땅 끝, 땅 끝으로 몰려간 겁니다.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이에요.

 

▲나보다 높은 바위로 나를 인도하소서

 

이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2절b

 

바위라고 하는 말은 참 많이 나왔어요. 그동안.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바위시오, 견고한 요새시오,

비슷한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보다 높은 바위라고 하는 이런 표현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나보다 높은 바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자리가 만약 5층 높이라면 6층으로,

‘내가 서 있는 층보다 더 높은 층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겁니다.

 

왜 ‘바위’라고 표현을 합니까?

지금 압살롬이 모반을 일으켜 나라를 완전히 다 뒤집어엎어버리는 이런 난국의 층,

이 층에서 내가 이 층을 평정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시고

지금 현재의 이 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완전히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이 난국이 펼쳐지고 있는 난장판이 벌어져버린 이 층으로부터

나를 한층 높여 인도하여주시옵소서... 라는 말을 합니다.

 

이게 땅 끝이라는 말과 맞물려있는 것이에요.

‘땅 끝’이라는 게 뭐라 그랬어요? ‘벼랑 끝’과 같습니다.

이제 낭떠러지에 떨어질 일만 남은 상태입니다. ‘땅 끝, 벼랑 끝’이

지금 다윗의 상태이지요.

 

이때 다윗이 기도하는 것은 이 상황을 잘 수습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가 아니라

땅 끝에서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나보다 높은 바위로 나를 인도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원리

참 역설적입니다.

압살롬의 모반사건을 통해서 지금 그 층에 발을 딛고 있는 왕으로서

이스라엘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다윗의 상황이 땅 끝에 밀렸습니다.

 

땅 끝에 밀렸는데,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한층 더 위로 올라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원리라는 것이에요.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 보좌를 향해서 한 층, 한 층 올라가야 되는데 그 올라가는 방법이 뭡니까?

계단이 없어요. 승강기도 없어요. 어떡합니까?

바위 끝, 또는 땅 끝(벼랑 끝)으로 내몰렸을 때

그냥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디뎌버리는 것이지요. ‘떨어져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그러면 나보다 높은 바위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날마다 죽는다는 말을 통해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평면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 일을 잘 되게 해주시옵소서, 해결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층에서 땅 끝으로 가서 서는 겁니다.

그리고 허공으로 발을 디뎌서 떨어지는 거예요.(상징적 표현임)

그러면 다시 더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에 의해서 땅 끝으로 밀려났습니다마는

그 사건을 통해 ‘자아의 죽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갑자기 본문 5절부터 <서원>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5절,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지금 바위(천연 요새를 의미)보다

한 단계 높은 바위(층)으로 나를 인도해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하면서

나의 요새시고 내가 피할 날개시고 견고한 망대시고 이런 노래를 쭉 부르다가

하나님과 만납니다. 한층 올라가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새롭게 보게 됩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속에 생긴 게 서원에 관한 기억이에요. 서원이 뭡니까?

서원은 하나님에게 맹세해서 소원을 세우고 이루어가는 거예요.

 

지금 땅 끝으로 밀렸습니다.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처지에서 마하나임이라는 땅 끝으로 몰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땅 끝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나보다 높은 바위, 한층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층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더 가깝게 새롭게 봅니다. 이게 원리에요.

그러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사람의 느낌은 하나님의 매력에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때 나타나는 게

‘아, 내가 이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약속하고 싶다.

더 잘 믿고 싶다. 더 헌신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겨버려요.

 

지금 다윗은 나라를 잃어버리게 돼버렸고 왕권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런데 자아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한 층 더 위로 올라가니까

위로 올라가자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니까 갑자기 마음속에

‘아이고,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싶다. 더 헌신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서원'은, 꼭 무슨 선물을 드리기로 결심한다.. 라는 뜻은 한국적 개념의 서원입니다.

물론 그런 의미를 일부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의미는 '헌신, 결단, 서약'입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진 다윗

 

6절,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왕은 아마 다윗 자신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은 만만세,

이런 선취적 신앙(믿음)을 가지고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서원이라는 얘기가 또 나오잖아요. 8절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다윗

 

8절, 내가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매일매일 나보다 높은 바위위로 올라가고

그 하나님의 매력에 빠지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죽으나 사나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하나이다와 같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합니까? 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주님을 딱 만났더니 주님의 매력에 뿅 가는 겁니다.

‘아니, 이렇게 멋지고 사랑스러운 분이 있을까? 이거 뭐 내가 좀 드릴 거 없나?’

이런 마음이 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과 다윗 간에 이런 관계가 지금 설정이 돼있는 겁니다.

 

▲마치는 말

다윗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를 계기로 한 번 더 모험을 감행해서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신약에도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살펴보면

풍랑을 맞서 싸우고 뚫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잠자는 것이 믿음임을 알게 됩니다.

풍랑 속에서 하늘의 평강을 누리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풍랑이 일면 일수록

풍랑을 잠재우려고 하거나, 풍랑을 뚫고 나가려 하지 말고

풍랑 속에서 잠을 자려고 하자...

자기 믿음을 담대하게 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서원기도를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그만 떠밀어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럴 수가!’

 

순간 ‘이제 끝장이구나!’ 생각했었지요.

 

절벽 아래로 끊임없이 추락하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때는 짧은 시간도 아주 길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비로소

 

내 등에는 날개가 있고

 

내가 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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