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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인생 역전이 없어도

LNCK 2014. 1. 7. 09:32

www.youtube.com/watch?v=Yo9OW7PwPaY

◈인생 역전이 없어도              벧전4:12        

 

이 설교문의 제목 및 주제는

<인생 역전이 없어도,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세요!> 입니다.

 

시중에, 예수님을 신실히 믿고 따라도, 인생 역전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좌절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분들이 실망하거나, 좌절하는가.. 가만히 살펴보니

‘예수 잘 믿으면, 부자 된다. 성공한다’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서,

자기 머리에 세뇌가 된 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자기가 부자도 되지 않고, 성공하지도 못하니까.. 실망하는 거죠.

 

고육지책으로 ‘내년이면 잘 풀릴거야. 좀 지나면 잘 될거야’ 그런 설교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내년에도, 좀 지나도..’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한 번 성경을 정직하게 읽어보십시다.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십자가입니까, 세상 성공입니까?’

답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성실히 주님을 뒤따라도

그들에게 주어진 초대장은 ‘자기 십자가, 고난의 쓴 잔, 네 팔을 벌리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아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자기 십자가, 고난의 쓴 잔’을 배우고 나아갔으면,

현실에 여러 가지 고난이 닥쳐도,

‘당연히 올 게 왔구나. 이게 기독교 신앙이구나!’ 하고 기꺼이 감당할 터인데,

 

오늘날 신자는 물론, 사역자까지도

현실에 여러 가지 고난이 닥치면

‘아, 왜 이럴까?’ 하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자꾸 주님의 섭리에 대해, 스스로 시험에 듭니다.

-그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믿으면 잘 된다는 식의 거짓을 누가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물론 ‘십자가 후에는 부활의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을, 먼저 통과해야 합니다.

 

‘십자가 고난’을 잘 받고, 견뎌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뭐 성공하고 부자되는 영광만 먼저 기대하는 것은, 내게 ‘십자가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성공한다’는 공식을 가르치는 분들은,

자신이 ‘십자가의 원수’ 임을 인식하십시다.

 

그게 현실적으로 성도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잘못되어 있어서, 성도들이 계속 딜레마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리오리엔테이션’ (초기 재설정)을 해서,

현실적 삶에 신앙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고난이 닥칠 때, 당연히 여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설교문 시작>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인생역전을 기대합니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고생하고, 가난하고, 빈티 나고, 안 풀리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쨍하고 햇볕들 날이 있겠지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빌빌 거리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성실히 섬기면, 5년 지나고, 10년 지나면 활짝 펴지는 날이 있겠지..

그런 것을 은연중에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거니와, 또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요셉이 약 13~15년 고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잘 풀린 이야기,

또 다윗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리방황하며 고생은 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잘 풀린 이야기 등

 

이렇게 과거에 우리가 들어 왔던 메시지 중에는

‘인생 역전’이란 제목이나 주제의 설교를 너무나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내 인생이 지금은 이렇게 잘 안 풀리고,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지만,

인내하며 주님을 섬긴 결과, 앞으로는 내 인생이 역전 될 것이다.’

이렇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는 그렇게 기대하고 사는 사람들은 십자가신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요셉, 다윗. 에스더와 같이, 인생역전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66권 성경에 10명 안팎입니다.)

 

그러나 인생역전이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지는 삶 자체로 가치가 있고, 그 차체로 고귀한 것이지,

내가 주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헌신과 섬김에 삶을 사는 삶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내가 꼭 나중에 승진하고, 사업이 대박 나고,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게 되고 등등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십자가 신앙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주시고, 우리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 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활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저 하늘나라에 가서 부활을 얻는 것이지,

이 세상 현실의 세상에서 미래에 호의호식을 하면서 잘살아 보겠다.. 는 생각으로

오늘에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진정한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한나도 자녀가 없어서 자녀를 달라고 기도 했을 때, 하나님은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러한 역전극이 성경에 간혹 나타나지만

 

그러나 성경을 보거나, 우리 주변 현실을 볼 때,

또 지난 2천년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정말 애석하고 불쌍하게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러한 (인생역전이 없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냐?

인생역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헌신하며 사는 삶, 그 자체에 영광이 있고,

그 자체에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평화와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속에 임하면서, 그 자체에 사명 감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 자체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인생역전이 없어도요! 물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역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약 10년 전에 에티오피아에서 많은 기독교의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에티오피아 에는 기독교인도 있고, 무슬림도 있기 때문에

종교적 갈등이 일어나는 나라 중의 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 에티오피아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목사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군사정권의 군인들이 집에 들이 닥쳐서

자기 눈앞에서, 자기 어린아이를 삼층 높이에서 밖으로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투옥과 잔혹행위 들이 있었지만

아마 가장 큰 고통은, 자기 자녀가 자기 눈앞에서 죽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말씀 드리기에도 끔직한 일입니다. 그 장면이 쉽게 잊혀 지겠습니까!

나중에 그 교회가 성장하고 다시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그 상처가 쉽게 사라지겠습니까?

그 장면은 절대 잊혀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 지금껏 충성하며 살았는데,

왜 그때에 하나님은 기적을 안 보여 주셨을까요?

 

‘내가 그렇게 하나님께 충성하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을 다했는데,

내 자녀만큼은 살려 주시면 안 되나요?’ 하는 그런 원망이 왜 없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주고, 아무리 돈을 주고 해도

자녀가 죽으면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안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을 섬기다 보면 은 인생역전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눈앞에서 자녀가 죽어 가는데도, 주님께서는 그때 그 시간에 짠 하고 나타나셔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인생을 역전케 하여주시고, 자녀를 살려 주시고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건데..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났잖아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기적적으로 용광로 속에서 살아남은 얘기,

그 외에도 나인 성 과부의 아들 등,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도 있고,

 

이런 기적이 나에게도 나타나서, 인생역전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기적이 일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일어나고 (통계적으로 90%)

오히려 슬픔과 불행이 닥치는 그런 때도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지으시기 때문에,

한때는 이러한 것을.. 한때는 저러한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골고루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가운데 고생하다가, 주님을 위해 애쓰고 충성한 결과

노년에 물질 복을 많이 받아서 편안하게 사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죽어라고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닮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살았는데도,

그러나 그렇게 헌신해서 산다고 해도,

노후에 넓은 집에서, 돈 걱정, 건강걱정 하지 않고 유복하게 장수하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유복하게 무병장수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도 아니고요.

다만 우리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그럴까요.

 

내가 어릴 때부터 내 생각이 잘못 ‘Orientation 초기 설정’ 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믿고 충성하면,

후에는 뭔가 잘 되겠지, 뭔가 후에는 잘 풀리겠지..

그러한 생각 자체가 십자가 신앙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고

인본주의요, 인간적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평생을 신앙생활을 할 때

늘 인생역전만 생각하고 살다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맛보지 못하고

계속 인생의 딜레마에 꼬여서, 꼬여서, 신앙생활을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럼 인생역전이 있으셨습니까?

죽어서 부활 하신다음에 인생역전이 있었다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예! 우리들도 모두도, 죽어서 저 천국에 가서는 인생역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인생역전을 기대하고 달려가는 것은,

복음적 신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사셨는지요?

예수님이 어릴 때 요셉 아버지가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었지만 동생들을 키우면서

소년가장으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때 당시에 삶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엔 또 삼년동안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보더라도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었다.. 말씀하실 정도로

삼년동안 충성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섬기시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셨는데요.

 

그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보상으로 받으신 것은

무시무시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 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멋있게 로마를 제압하고, 바리새인들을 납작코로 만들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예수님을 괴롭혔던 자들을 다 투옥시키고

이렇게 멋지게 인생역전을 펼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소년 가장으로서 힘들게 사시다가

공생애 가운데 힘들게, 힘들게, 핍박과 고통을 당하시다가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예수님은 인생역전이 없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자기 어머니가, 자기 나이 29세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29세면 아주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요즘같이 다들 장수하는 시대에

자기 어머니가 58세에 돌아가신 것이.. 자기에게는 큰 상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살려 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그 기도를 외면하셨을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은 자기보다 더 젊었을 때, 소년시절 때 아버지를 여의었구나’ 하는 것이

자기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내 마음을 아시겠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님은 내 마음을 알아주시겠네!’

그러면서 동병상련의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고난과 아픔을, 모르시고 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실만큼 다 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말 우리 모든 고통을, 이렇게 위로 하실 수 있으신 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그와 같은 고통을 다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인생역전을 바라며

죽어가는 우리 가족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 주시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섭리 가운데서

혹시 그러한 것을 허락하여 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시험에 들면 안 되고요.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

그것을 지고 가는 삶 - 그 자체에 가치가 있고, 영광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있고,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혹시 이 세상에서 내 삶이, 또 내 주변인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난다고 해도

그것을 십자가 신앙으로, 능히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인생을 살펴보더라도 ‘참 인생역전이 없었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많은 복음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가 가는 도시마다 그는 예외 없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따라 다니면서 돌을 던지고 소란을 일으키고

결사대를 조직해서 사도 바울이 지나가는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충성을 다해서 섬긴 사도 바울이라면

한 20년 후에 억대 승용차에 태워서 한 백 평짜리 아파트에

수십억의 은행 잔고를 보상하셔서 신명기28:6 말씀처럼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보상을 해 주셔야 하는데

 

사도 바울이 보상 받은 것은 로마 감옥에서 1차 투옥이 되고

또 잠시 나왔다가 2차 투옥이 되어서, 결국에는 참수를 당하였습니다.

그게 죽도록 충성한 결과였다니까요! 정직하게 성경을 봅시다.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그런 예가, 더 많이 나오죠.

 

▶아무튼 인생역전이 없어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삶 자체 거기서 얻어지는 영광,

-거기서 얻어지는 구원의 열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보면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들 영혼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니까요.

 

예수 잘 믿는 그가, 부자가 되어서 호의호식을 하고,

돈을 물 쓰듯 하는..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따라가는

주님을 섬기는 (고난당하는) 그 삶을 보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말로 전해지는 복음이,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역전이 일어나서 부유하게 잘 살면 좋겠지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풍부하고 유족한 삶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보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부러움의 대상은 되지만,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삶, 예수님과 같은 삶, 또는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같은 삶,

또 앞에 예를 든 에티오피아의 어느 목사님의 삶,

그런 삶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저 분의 숭고한 삶을 본받아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치 않지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내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치 않아도 우리는 그 길을 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미안한 것이 없으시다’고 하십니다.

어떤 분이 설교에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도록 고생 시키시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시지만,

전혀 미안한 것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왜 미안한 것이 없는가 하면,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더 무겁고 모진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미안한 것이 없으시고,

 

두 번째는 저 천국에서 어마어마한 영광으로

영원토록 우리를 대우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십자가를 지우시지만, 전혀 예수님은 우리에게 미안해 할 것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손양원, 주기철, 한상동 목사님의 삶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인생역전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 괴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차라리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더라면, 즉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았더라면,

저렇게까지 고생하며 살지 않았을 터인데..

 

주님께 철저히 헌신한 결과, 더 무거운 십자가가 지워졌고

결국에는 순교로서 그 삶을 아름답게 마치셨지만,

 

그때 그 당시에도 호의호식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도 받고, 그런 분들이 계셨겠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 많은 후배 목회자들은 누구를 따르느냐 하면

손양원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을 따르고,

‘한국교회는 그들의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무튼 인생역전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십자가 신앙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먼 것이다... 는 것입니다.

 

▶인생역전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때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이 사람에게, 저 사람은 저 사람에게,

하나님이 각자 다른 길을 가게 하시고, 각자 다른 십자가를 지우실 적에

그것을 보고 의아해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기 마음에 시험이 들거나, 신앙의 갈등 속에서 계속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께 불평불만 하는 가운데서,

내 신앙이 성숙되지 못하고 퇴보되는.. 그런 일은 적어도 없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그런 일들이 생길까요?

그 원인을 찾자면, 어릴 때부터 인생의 역전에 관한 설교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

자기 머리에 세뇌가 된 거예요. 그것을 재설정을 reorientation 해야 되는 것이

우리가 '십자가 설교 시리즈'를 살펴보는 목적입니다.

 

▶영국의 WEC(웩) 이라는 국제 복음 선교회 지하실에 가보면

수십 개가 넘는 가방이 방바닥과 선반에 가지런히 정리 된 채 놓여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미 많이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해외선교를 떠날 때, 자기 짐을 맡겨 놓았지만,

영국 본부로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가방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짐을 선교회 어느 방에 놓고 갈 때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다들 생각 했지,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떠난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 보면, 자기 가방을 거기에 놓고 갔지만,

불의의 사고로, 또 어떠한 핍박을 당하여, 질병에 걸려서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손양원,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일화를 보면

그분들이 순교하시기 5~6년 전부터, 순교(핍박, 투옥)의 길을 걸어가셨는데

 

많은 주위 사람들이, 그분들을 도와주고, 그 자녀들을 잘 돌보아 주었느냐?

그런 분도 일부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아주 극소수이고,

 

아버지는 순교의 길을 가는데, 그 남겨진 가족들은 풍천노숙을 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며.. 하나님이 당장은 안 도와주시더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순교의 길을 가면, 그 가족과 자녀들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세상에서 잘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인생역전이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도움 받는 일도 일부 있었겠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죽도록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사택에서 쫓겨나고, 가장이 사라졌으니..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겁니다.

 

그러나 그 고생한 자체에 영광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감동이 있었겠지요.

(물론 일부 계속 원망만 한 사람은, 그 위로와 감동이 적었겠지요.)

 

어쨌거나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순교자와, 그 남겨진 가족의 삶을 보노라면,

비참하고 처량하고 불쌍해서.. 과연 하나님의 섭리가 맞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인생역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른 모양으로 역전은 반드시 일어났습니다.

 

‘순교자의 피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그분들의 고난은 정말 헛되이 값없이 허물어지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주변의 일부 사람들만 그 고난에 슬퍼하고 동참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들의 피가, 이 땅에 수많은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고난이 전혀 의미 없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순교의 피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더 큰 열매가 있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꼭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목사님, 그 외 옥중성도들, 그분들 말고도

 

우리 주변을 보면,

순교의 길을 가지 않아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일평생 십자가 길에서, 고생하다가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역전이 일어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와 눈물로 뿌린 씨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못한, 다른 모양의 부활의 역사,

전혀 예기치 않았던 역전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세대는 엄청나게 고생하다가 별 볼 일없이 인생을 마감하고 천국에 갔는데,

그 아들 세대는, 또한 손자 세대에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많이 우리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분은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았는데, 자기 친아들이나, 그 분의 제자들 중에,

훌륭한 전도자가 나타나, 나라 전체를 바꾸는 사도바울과 같은 큰 하나님의 종이 되는

그런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또 한국 선교사가 외국에 가서

20년 사역을 하였는데, 변변한 수백 명이 모이는 교회를 세우지도 못하고

고작 학생 열 명 남짓 데려다 놓고 가르쳤는데

그 학생 가운데서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그분이 걸어갔던 고난의 길, 그 분이 지셨던 십자가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은 인생역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분량만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성실히 자기 길을 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십자가 후의 부활의 열매’가, 언젠가는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뭐 호의호식하고 고대광실에서 크게 잘 되는 인생역전이 일어나면 좋지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역전이 목표가 아니라니까요.

 

그 분이 진실 되게 자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다고 했을 때,

그 사역이 크게 일어나도 좋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 세대에, 또는 자기 아들 세대에,

 

(그분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기에 실패했다고 판단되지만)

그러나 그가 걸어갔던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반드시 훌륭한 열매가 맺히는 것을

 

우리가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목사님, 장기려, 김용기 장로님 등

이러한 분들의 삶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명의 많은 목회자들 또는 장로님 권사님들 삶을 보아도.. 허다합니다.

 

권사님들만 해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냥 교회의 권사로서 일생을 기도하며, 주님 앞에 신실하게 자기 길을 가는데,

그가 고대광실에서 부자로 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녀들 가운데서 훌륭한 하나님에 종들이, 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지도자들을 키워내었습니다.

 

그 분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신앙인 어머니 권사님, 아버지 장로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가셨다는 것을.. 그 결과요, 열매인 것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부터가 너무 ‘인생역전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버리고

예수님이 걸어 가셨던 그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 신앙이지요.

 

‘인생역전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은, 십자가의 원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 길이 뭐 아름답다고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그 사람은

그 십자가에, 자기 마음속 깊은 감동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그 고난의 길로 인해서, 내가 구원을 받았구나!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았구나! 하는 그런 마음에 깊은 감동의 프로세스가 일어난 사람은

자기 십자가의 길을 꿋꿋이 걸어 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생역전이 아니라니까요. 인생역전이 일어나면 좋겠지만,

요한계시록에 칭찬을 받았던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십시오.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 그들에게 인생역전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서머나 교회는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둘째 사망을 면하는 복을 주리라,

또 빌라델비아 교회는 성전 기둥이 되게 해 주겠고, 앞으로 장차 올 시험을 면하게 해주겠다...

 

이러한 예수 잘 믿은 교회에 대한 약속들이,

큰 부자 되고 출세하고, 호의호식한다는 그러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걸어가야 될 길은, 인생역전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다가

내가 싫다고 해서 그 짐을 벗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우시고 하나님이 걸어가게 하시고

억지로라도 그렇게 걸어 갈 때에, 구레네 시몬같이

(구레네 시몬도 나중에 훌륭한 북아프리카 교회 감독이 되고, 그 자녀들도 훌륭한 신앙인이 되었다고 하지요.)

억지로라도 지고 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

반드시 놀라운 하나님나라의 열매를 거두어주시고,

영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인생역전을 바라며 하나님과 씨름하며 갈등하며 괴로워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길이 어떠한 길이던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을 따라 가는 가운데서

내 주위에서 영혼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들이 많이 생겨나기 바랍니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고

나를 뒤따르는 그러한 사람들이 생길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를 보고 예수님을 뒤따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인생역전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초보적인 단계를 내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고,

인생역전!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도 말게 하여 주시옵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제자의 삶이 되게 하소서.

 

십자가를 지는 삶 그 자체에 영광이 있고, 사명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있고,

그것이 참신앙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PKH Ty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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