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2:2절의 해석 요일1:9~2:2 *영문 번역 中文 번역
*관련글 : 만민구원설 오해 구절 해석
여러분. 이 시간에는 요한1서 2:2절의 해석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의 설교를 번역한 것입니다.
◑문제 제기/ 예수님은 온 세상사람 전부를 위해 죽으셨잖아요.
그러면 온 세상사람 전부가, 구원 받을까요?
요한1서 2:2절. ‘주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위 구절을 오해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렇게 할때 ‘보편구원론’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신자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위 구절에 명백하게 나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을 필요가 꼭 있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꼭 일부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심이냐?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죽으심이지..
온 인류 70억 전부를 위해서, 또 지구상에 지금까지 존재한
250억으로 추산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지..
맞습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을 위해서 죽으셨지요.
어떻게 일부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유명한 요3:16절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 사랑하셔서,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지요.
어떻게 그 중에 일부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요일2:2절뿐만 아니라, 요3:16절도
예수님의 대속적 십자가의 죽음이, 문자 그대로 <온 세계 인류를 위하심이다>
라고 보게 됩니다.
▶이제 그 ‘보편구원론’(예수님은 세상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이 발전되면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지옥도 필요 없는 것이 됩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효력이 1만년 인류 역사의, 모든 인류에게 미치기 때문에,
'꼭 뭐 예수를 믿어야 되나. 꼭 지옥이 있어야 되고 지옥에 가야되나.'
그것은 사랑의/구원의 하나님이 아닌 것 아니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그렇게 힘이 없는 것이냐. 일부 신자에게만 국한 된 것이냐?'
이런 식으로 철학적으로/이성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다 보면
‘보편구원론’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교를 믿거나, 저 종교를 믿거나..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어차피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을 모두 사랑하시고, 모두를 구원하실 터인데,
왜 꼭 기독교만 믿어야 하나? .. 그런 것은 독선이요 배타적이다.. 라고 주장하는데요.
▶그런데 평소에 성경을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은, 이런 갈등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자기가 성경을 잘 모르니까요.
그러나 성경을 조금 열심히 읽거나 공부한 사람은,
요한1서 2:2절에 오면 딱 걸리는 것입니다.
‘아! 예수님께서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 죄를 위해서 죽으셨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하는 말이 맞네.
그렇지, 사랑의 하나님이 모든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전부를 구원하시는 게 당연히 맞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오해를 할 수 있는 데에 대해서
아더 핑크 목사님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답: 편지의 ‘수신인’이 누구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요한1서 2:2절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느냐?
요한1서 2:2절을, 직전 구절인 2:1절과 연결해서 해석을 해 보면,
이 편지의 수신인은 '신자들'입니다.
2:2절은 접속사 and (헬라어로 ‘카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절과 2절이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and를 생략해서 변역해 버렸습니다.
한 번 연결해서 읽어보면요.
1절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2절, ‘그리고 그 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시니, 우리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니라’
이렇게 1절과 2절을 연결해서 보면
2절은, 1절의 ‘나의 어린 자녀들/신자들’에게 말씀한 내용입니다.
본문의 수신자가 - <어린 신자들>입니다.
본문의 수신자가 - <예수 안 믿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닙니다.
2절만 딱 떼서 생각하면,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한 것 같지만
1절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and 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신자들’에게 주신 사도요한의 권면입니다.
▶그런 정황 가운데서 살펴보면, 2:2절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신자들이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신자라고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피치 못해서 죄를 지을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 때, 사도 요한은, 그 어린 신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죄를 짓더라도,
2:1절, 여러분께는 대언자/변호사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2:2절,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십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2절은, 1절과 연결해서 해석을 할 적에
‘죄를 지은 신자들을 위해서’ 사도 요한이 쓴 글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문제가 되는 구절을 해석해 봅시다.
2:2절. ‘주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즉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는
‘온 세상에 흩어진, 다른 어린 신자들을 위하심이라!’
‘편지를 받는 저와 여러분(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사는 신자들(이방인 신자들)을 위하심이라’
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씀은 문맥상
<신자들>을 위하심이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편구원론’을 지지하는 구절이 아닌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에는 ‘유대인’과 그 외 이방인들’이란 표현이 관용어법처럼 종종 나오는데,
일례로, 요11:51~52절에, ‘이스라엘’과 ‘세상’을 구분해서 사용했습니다. A and B 처럼요.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그 외 이방인 신자들)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렇게 볼 때 2:2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도 그렇게 보는 것이지요.
전자의 ‘우리’는 유대인이고
후자의 ‘온 세상’은 이방인 (신자들) 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관용적 표현인데요)
즉 ‘우리’나 ‘온 세상’은 신자들을 가리키지,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 지식적인 내용이었고, 거기 담긴 메시지로는
1절에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가 되신다.
2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다.
그러니까 <죄를 회개 할 적에,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1. 대언자
▶‘누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많이 들어 본 말이지요.
요14:16절에는 파라클레토스를 ‘보혜사’로 번역했는데
본문에는 같은 말을 ‘대언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부르면, 즉시 와서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대언자라고 번역 했는데, 영어 성경에는 'advocate 변호사'로 번역했습니다.
‘대언자’는 시중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어감이 잘 와 닿지 않는데,
'변호사 advocate'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변호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래서 성도들이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
피치 못하여 죄를 짓게 되더라도
(우리가 직전 시간에 살펴보았지요. ‘계속 회개하는 사람이 죄를 이긴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죄를 회개해야 되는데)
계속 죄를 회개할 적에, 우리에게 advocate 변호사가 있다고 2:1절에서 말씀합니다.
‘변호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가 요즘 TV, 영화에 법정 소송사건이 하도 많이 나오는데
꼭 소송을 당한 피고가, 자기 혼자 가는 경우는 한 번도 없더라고요.
다 변호사를 대동해서 갑니다.
그리고 무슨 일만 생기면 ‘변호사에게 문의 하시오. 변호사에게 알아봐요.’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변호사가 다 해줍니다.
대답을 하려고해도, 자기는 가만히 있고, 변호사가 나서서 대답을 해주고
또 상대방이 무슨 공격을 해도, 변호사가 다 변호해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법정, 심판대 앞에서 어떤 취조를 당하게 되는데
아,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또 마귀가 마치 검사처럼 출두합니다.
그런데 너무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왜냐 하면 ‘우리에게는 <변호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래서 우리가 참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또 늘 우리가 회개할 적에 참 감사한 것은
<나 혼자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회개할 적에 내 곁에 변호인이 대동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변호를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변호사 되신 나의 예수님께 늘 감사하며
나 혼자 외롭게 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내 곁에 변호사 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야겠습니다.
◑2. 화목제물
▶요일2:2절에서 여기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 나오는데, ‘화목제물’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뭐 회개하고 또 내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화가 나시고 진노하시는 그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것이
화목제물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달래게 되고,
하나님의 그 성나고 진노하신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그러한 화목제물이 되셨으니까
(성도가 죄를 지으면 안 되지만) 죄를 짓고 나서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라.
이런 메시지를 사도 요한은 전한 것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너무 안 두려워해서 그것이 문제인데
초대 교회 당시에는, 죄를 짓고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이, 또 충분히 그런 환경을 조성했을 것입니다.
요일2:1~2절은,
직전에 1:9~10절에 연결되어 나오는 데요, 같은 맥락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신자가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
혹시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고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불안해서 떨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1:9절에는, <자백>만 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이어지는 2:1절에, 예수님이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고
2:2절에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기 때문에,
우리도 보편구원론에 빠지지는 않아도, 보편구원론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일례로,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나의 과거/현재/미래의 죄를 다
십자가에서 처리 하셨다며,
예수님께서 나의 일생의 모든 죄를, 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사람의 죄를 다 처리 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뭐 매일 회개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매일 살아가고,
그것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아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어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몽땅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위해서 다 죽으셨잖아요.'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회개의 삶을 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안에 있는 보편 구원론자’라고 이렇게 말을 해도 되겠지요.
그게 정답은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
또는 예수님의 화목 제물이 되심을 믿는 사람은
자기 속에서 계속적으로 회개의 프로세스가, 일생동안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과 예수님의 구속을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지식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다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시고 다 이루었다 하고 돌아가셨는데
내가 회개할 필요가 있나. 내가 뭐 회개한다고 해서
그게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에, 큰 도움이 되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이해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론이 필요하지만, 신앙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적에,
늘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고,
늘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영혼이 병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하나님께 회개하더라도
우리에게 변호사가 계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이 사실을 믿고
너무 불안에 떨지 않고, 감사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문 요한 1서 2장 1절과 2절을 살펴볼 적에
그 당시 초대 교회의 신자들도,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자꾸 죄를 짓게 되는 그러한 갈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계속 회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회개를 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입니까?
1절에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변호사가 되신다.
2절에 화목제물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적으로 회개하는 가운데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고
또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사도 요한이 <요한 1서> 편지를 써서
흩어진 디아스포라 신자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그것이
영 단번에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은 잘못된 지식적, 철학적 신앙이고 (이건 박옥* 의 사상입니다.)
신앙생활의 실제는 예수님께서 영 단번에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지만,
우리가 계속적으로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사는 그 사람이
죄를 이기며 더 성화의 삶을 살게 되며, 그것이 성도의 현실이다.. 라는 것을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살펴 본 것입니다.
............................
※Universalism 과 Universality의 구분
보편구원론은, 만인구원론이라고도 하는데 영어로 universalism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universality 와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universalism(보편 구원론)은 잘못된 것이지만,
하나님/기독교의 속성은 '우주적/보편적 universality' 이라는 말은, 성격적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은 모든 인종을, 모든 민족을.. 차별 없이 다 사랑하신다는 뜻이죠.
구약에서도 꼭 유대민족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을 다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건 성경적입니다. 물론 그 중에 회개 안 한 죄인은, 결국 심판하셨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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