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제로 상태의 출발 창28:13~15
◑본문 설명 및 해석
▶십자가 신앙이란, 자기 것을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뭘 가질 수 있겠습니까.
물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가족을 가질 수 있습니까? 명예를 가질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십자가에 그야말로 벌거벗겨 못 박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그 사람이, 딱 한 가지 가질 수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가진,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사람.
세상 것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가진 그 사람이,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그런 주제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순간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현실적 문제는, 아직 실제로 다 해결 되지는 않았지만,
자기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면서
평안, 확신, 담대함, 소망이 생기면서, 문제의 8부 능선을 넘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수억 원의 빚을 지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하던 사람이
‘이제 내가 어떻게 사나, 나는 완전히 절망이구나.’ 하다가도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나면,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적에.. 현실 당면 문제의 8부 능선을 넘는다는 것이에요.
아직 현실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빚도 그대로고, 자기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인데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아,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나는 다시 사업을 재기 할 수 있어.’
자기 수중에 돈 한 푼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소망의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모든 문제가 사업뿐만 아니라,
사역 문제, 건강 문제, 다 해결된다는 것이에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을 언제 만난다고요? 십자가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자기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어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창세기 28장에서 벧엘에서 야곱은, 아무 것도 없이
지팡이 하나 들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그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네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너를 결단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조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했던 것과 같이, 이 땅을 너에게 주리라.’
그 하나님을 만나서, 그 약속 하나를 딱 붙드니까
야곱에게는 그냥 지팡이 하나 갖고도 “할렐루야 아멘,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발걸음 힘차게 밧단 아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서,
정말 그 야곱같이, 힘과 용기와 소망이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야곱이 언제 하나님을 만났다고요?
완전히 쫓겨나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지팡이 하나 들고 내가 요단을 건넜사오니.’ 라는 고백을 할 정도로
지팡이 하나 뿐인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힌 상태와 비슷하지요?
강제로 다 ‘무장해제’를 당하고, 벌거벗김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포인트(지점)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못 만나느냐..
주변에 뭐,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이 있다는 것이죠.
잡을게 있으니까, 그것을 잡을 동안에는 하나님을 못 만난다.. 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참으로 기묘한 영적인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복 중에서, 이미 야곱을 택하지 않았습니까.
구속사의 계승자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 뒤를 잇는
하나님의 백성의 족장으로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는가요?
그렇게 선택 받았으면, 좋은 길로 인도될 것 같은데,
오히려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택받은 야곱이, 결국 그 하나님의 예정대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장자의 축복을 받은 즉시, 야곱에게 환난이 찾아왔어요.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 나타난 ‘십자가의 예표’라고 할까요?
다 빼앗긴 것이에요. 아무 재산도 없이, 졸지에 다 벌거벗김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묘하게도, 그 가운데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의 장자권의 축복을 받으면,
야곱이 재산도 더 많이 받아야 되고, 더 세상에서 잘 풀려야 될 것 같은데..
주님의 섭리는, 장자권을 이어 받은 사명자를.. ‘십자가로 내모시는’ 겁니다.
그래서 에서를 격동해서, 에서가 죽이려고 달려드니까,
자기 재산 다 포기하고, 지팡이 하나만 갖고서, 자기 집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들판에서 만날지도 모를 들짐승 퇴치용)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친척집을 떠날 때에 거의 빈손으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재산을 갖고 갈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나간다고 그러면, 그 지방 사람들이 놓아주겠어요?
그냥 못 나가게 하겠지요. (요즘 법도 많은 재산, 함부로 국외로 반출 못합니다.)
어쨌거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도
그 모든 기득권을 거기에 고스란히 두고
거의 빈 몸, 빈 손, 빈 마음으로 출발을 했는데
이러한 것이 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신앙인의 삶에 그대로 적용 된다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출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란 무엇이냐? ‘십자가는 제로 포인트에서의 출발이다’ ←설교제목
라는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앞서 <십자가 시리즈 19회, 십자가는 자신을 비우는 능력 click>에서,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
창세기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혼돈과 흑암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그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나타나려면 <무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설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역사는, 무에서 출발 하는 것이에요.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Reset(초기 재설정, 컴퓨터 용어)하는 거지요.
◑적용
▶십자가의 길을 가는 하나님의 종은, 위 야곱의 경우를 살펴보았지만,
그 부모 유산 갖고 다투고 싸우고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부모 유산을 일절 포기시키십니다.
왜요?
‘나는.. 하나님이 나를 키우시고, 먹여주시고, 나의 쓸 것을 공급하신다.’
이렇게 나아가야지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람이, 자기 형제들하고 똑같이 부모 유산 다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것을 뭐 어떻게 나무랄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적어도 십자가의 역사는, 그에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십자가의 신앙으로 살지는 않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물질 뿐만 아니고 명예,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짓밟아서 시궁창에 빠뜨린다 하더라도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에요.
‘오직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높여 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신다.’
그 시궁창까지 기꺼이 내려갈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요.
남이 자기를 공격하고 시궁창에 빠뜨리려고 하면,
자기는 코브라처럼 자기 고개를 쳐들고, 똑같이 맞받아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크게 잘못된 것 없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 분에게는 ‘십자가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 이성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십자가 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위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늘 시시때때로 제로 포인트로 만들고,
제로 포인트에서부터 출발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때에, 그 제로 포인트가 되어서
자기가 아무것도 붙잡을 것도 없고,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수 없을 때에,
뭐 그 때가 되어 보면 아무리 기도 못하던 사람도
아마 두 시간은 매일 거뜬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 아무리 기도 안하던 사람도, 하루에 두 시간씩은 기도 한다니까요.
왜냐하면 자기에게,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지금 당장 쌀독에 쌀이 하나도 없어요.
도움을 청하러 나가봐야, 사람들이 자기에게 등 돌리고,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오직 붙잡을 곳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십자가에서 자기 자아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고 의지할 적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만나주시고, 그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하나님을 만날 때.. 그의 모든 어떤 문제, 그 상황이 돌파되어지는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됩니다.
그 기업이, 지금 당장 내 손안에 딱 떨어진 것은 아닌데
창세기 28장에 그 야곱이 꾼 꿈을 통해서
‘내가 너희 조상에게 약속한 이 땅을 다 너에게 줄 것이며
네가 이 땅으로 너를 다시 돌아올 때까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고,
천사가 자기 머리 위에서 사닥다리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을 적에
정말 야곱은
(죄송합니다. 그냥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통장에 마치 돈 백억 넣어 놓은 것 같은, 그런 뿌듯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전 까지는 불안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겠지요.
'아이고, 형 에서가 나를 잡기 위해, 추격조를 만들어서 나를 잡으러 오면 어쩌나'
또 광야에서 혼자 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겠어요.
강도가 출몰할 수도 있고, 들짐승이 나타나서 자기를 해칠 수도 있고..
뱀이나 전갈이 나와서 자기를 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황급히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뭐 노잣돈 조금 챙겨 왔을까요? 거의 빈손이었겠지요. 빈털터리.
그 가운데에서 장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꽉 차있었는데,
그 모든 걱정 염려가 일순간에 싹 날아가 버리고,
마치 통장에 돈 백억 정도 넣은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언제요? 십자가 포인트를 통과하고 나서,
그 십자가 (제로) 포인트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적에
자기 마음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 나는 이 길로 가게 되는구나, 나는 믿음의 조상이 되는구나.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나와 내 후손에게 주셨구나.’
물론 뭐 그것은 현실적으로 받기까지는, 그 이후로 수 십 년의 세월이 걸리고
그 자손 대代에 가서 그 약속이 다 이루어졌지만
적어도 그 약속을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야곱은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권의 축복을 기필코 받았는데, 그것을 받았으면,
그때부터 복이 콸콸콸 쏟아지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깡그리 다 상실해 버리는 거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참 이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도 조심해서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복과 은혜를 무조건 부어주시지 않고,
반드시 십자가를 먼저 통과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무작정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보통 심판(환란)과 같이 옵니다.
하나님 은혜를 그가 받았다고 칩시다.
하나님이 이제 그 사람을 쓰셔야 되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는 대충 넘어갈 것을, 비슷한 사안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십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시니까, 심판(환란)이 그에게 임하는 것이죠.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한 정결한 사람으로, 먼저 만들어 가십니다.
여러분,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은,
여러분이 '은혜, 축복'을 좋아하시는데요.. 본문의 야곱을 보세요.
다른 사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는 심판과 동전의 양면입니다.
심판 없이 은혜만 받는다.. 그런 것은 없어요.
죄가 없는 사람은, 심판(환란) 없이 은혜만 받겠지요.
그러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그 사람에게는, 조그만 죄라도 쉽게 용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은혜 받은) 사람에게, 이제 불 시험이 닥치는 것이지요. 회개하라고요,
그래서 기도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시옵소서. 하나님 제게 오시옵소서. 임재해 주시옵소서.’
그 기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겁내서 기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고요)
하나님이 진짜 임재하시면, 죄인들이 다 절단 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제일 처음 하시는 일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죄를 심판하셔야, 하나님이 그 정결한 심령에, 계속 오실 것 아닙니까.
적당하게 심판 안 받고 살려면, 적당히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이런 말씀을 드려서는 안 되지만) 조금 안전해요.
그러나 영생을 두고 생각하면, 그건 불행한 일이지요.
그러나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 속에 회개 안 한 죄가 있고, 죄의 습관이 있는 사람은.. 다 깨어집니다.
그가 하는 일은, 족족 다 하나님이 깨부수시고,
그를 발가벗기시고, 제로상태로 만들어 버리신다는 것이지요.
먼저 십자가의 길로, 경험하게 하시는 거지요.
야곱이 지금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언약 백성으로서 그 어떤 구속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때에
먼저 제로 포인트로 만들어서,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모든 세상을 의지하는 것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벌거벗기고 거지로 만들어서..
‘당신 재산 얼마요?’
‘예, 제 재산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당신 능력이 뭐고, 당신 경력이 뭐고, 당신의 지식이 뭐요?’
‘예, 제가 가진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 하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백하는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알거지가 된, 십자가에 발가벗겨서 못 박히게 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8장 13~15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에게 약속한 모든 축복을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를 떠나지 않는 것. 너와 함께 하는 것. 그 약속된 모든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
이제부터 야곱이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계획 된 인생.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길.
그 길을 이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지팡이 하나 갖고 있는 그 야곱.
미래가 정말 불안히 겹겹이 먹구름처럼 쫙 깔려있는 그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을 적에
야곱은 그 마음에 모든 불안히 사라지고
밧단아람을 향해서, 자기 막막한 미래를 향해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인 성도를 망하게 하십니다. 완전히 망하게 해버리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불순종했기에 망하나.’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먼저 맞는 매가 낫다. 빨리 망해서 다행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빨리 망해서 다행이에요. 나중에 70살, 80살 되어서 망하면, 회복할 시간이 없어요.
용케 회개하고, 회복을 했다 합시다. 그런데 봉사할 시간이 없는 것이에요.
제 주위에 목회하다가, 사업하다가 망했다는 사람을 보면.. 제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잘 망했어요. 아예 더 빨리 망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요.’
물론 망하면 안 좋죠. 그러나 제로 포인트가 된 상황에서
한 5년, 길면 10년 동안. 자기가 이제 ‘하란의 야곱의 상태에서’ 새 출발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남은 인생 10년, 20년 주님을 위해서 힘껏 섬기는,
그것이 진짜 섬기는 것이지..
그 전에 섬긴 것은 그냥 무늬만 크리스천이고, 무늬만 사역이었고,
무늬만 주의 일을 하고 있었지.. 진짜 주의 일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실 때에 ‘먼저 맞는 매가 낫다.’고 생각하세요.
자기 병이 완전히 불치병이 들어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던지
‘내 인생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 되는 것이..
만약 80세에 찾아오면 어떻게 할 것이에요?
그 때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천국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에게 한 가지 불행한 일은, 변화된 후에, 주님을 제대로 섬길 기간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나 40살, 50살, 60살에, 그 태풍을 만나서 풍비박산이 된 사람들은
완전히 제로 상태에서 십자가를 통과하고 나서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의 남은 인생 10년, 20년, 30년을
주님을 위해서 아름답게 자기 자신을 헌신하고 드리며, 살 수 있는 인생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주제를 다시 말씀드립니다.
십자가 신앙이란 뭐냐? 빈 손, 빈 마음인데,
자기 명예, 자기 권세, 자기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것,
무의 상태가 되는 것, 제로의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언약 백성은 하나님께서 강제로 그 길을 가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야곱이 장자권의 축복을 받자마자, 찾아온 것은 제로의 상태,
십자가의 길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로의 상태, 완전 밑바닥에서 아무 것도 붙잡을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딱 한 분을 우리가 붙잡게 되는데 (매일 두 시간 기도를 통해서요)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요. 예수 그리스도시요. 성령님 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하나님만 붙잡으면
자기 현실은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지만, 약속을 받게 됩니다.
자기 꿈과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그 뜻을 자기 마음속에 딱 갖게 되면서
‘이 사명이 이루어지기 전 까지는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그러한 마음의 믿음이 생기면서
현실은 자기에게 지팡이 하나밖에 없지만,
자기 마음속에 뿌듯한 그러한 약속으로 인한, 믿음으로 인한 평안함이 생기면서
자기가 이제 성숙의 과정을 밟아가고 순종의 과정을 밟아가면서
결국 그 하나님의 꿈과 비전과 약속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맞는 매가 낫습니다.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왕창 매를 맞게 될 적에
‘아, 십자가의 삶을 시작하라고 하시는구나.’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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