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7jGPFqENnhM
◈아가서 4장 아가서 4:7~16 폴 워셔
※원래 설교, 아래 동영상은 아가서 4장과 5장을 묶어서 설교했습니다만,
정리를 하다 보니, 길어서, 이번 호에 아가서 4장, 다음 호에 5장으로 나누어서, 정리합니다.
*관련글 아가서 5장 English 1 English 2
아가서 4장과 5장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또 그에 대한 술람미 여인(성도)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도는 단순한 중보나 은혜를 받기 위한 것보다 더 차원이 높은 것이라는 것을 나누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아4: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뜰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아시는가요?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의 공로 때문입니다.
어린양이 십자가로 가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어린양의 아버지는, 전능자의 모든 진노를,
우리의 머리에 쏟아 부어져야 할 진노를, 영원히 어린양 위에 쏟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어린양의 죽음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정의가 만족되어
그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죄에 대한 진노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모든 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정죄가 없습니다.
에스더는 왕을 알현하고 싶었지만 왕이 규를 내밀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왕)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규가 언제나 내밀어져 있습니다.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당신을 아름답게 보시며, 어떤 흠도 없다고 보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중요한 진리를 이해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되는 진리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보좌 위로 오라는 초청을 받은 자라면
당신에게는 아무런 흠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 합니다.
여러분이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여러분의 둔한 마음으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때도
여전히 용서 받고, 여전히 주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위 사실을 앎과 동시에, 여러분은 물론 그런 죄를 버려야합니다.
제가 정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왜냐면 한 가지라도 흠을 가진 자는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쳐다볼 때, 이렇게 보신다는 사실은 커다란 격려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율법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의 얄팍한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또한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때문에
하나님은 이제 나를 받아 드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화를 포기하는데요..
그러나 정로는 이렇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진 특권을 받은 사람은,
자기를 더욱 성결케 하고, 죄를 버리는, 회개와 성화의 삶을 계속 살게 됩니다.
만약, 자기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때문에,
의롭게 되고, 받아들여진 것을 믿으면서도,
계속적인 성화와 회개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건 극단적/이론적/잘못된 신앙이지, 인격적/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긍휼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과 기대를 느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느낄 수 없다면
그런 것을 아직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보실 때, 아름답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시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렇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그런 주님의 사랑은, 당신이 기도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여러분의 죄를 씻어주신 분은 심판관이 아니라,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심판관이 아닌, 아버지로 오실 것입니다. 아버지로 말입니다.
마로 형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의롭게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재판을 받으러 갔는데
판사가 그에게 형벌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그저 의롭다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들로, 입양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 주셨기에.. 당신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십니다.
어린양의 피의 능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는 아름답고 흠이 없어 보입니다.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Come with me!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시고 ‘오라 Come’고 하시고 ↑
사탄은 우리를 보고 ‘너는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위 4:8절의 본동사는 영어로 Come입니다. 한글은 ‘가자’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 Come (오라)는 뜻입니다.
‘네가 어떻게 가려하는가? 네가 한 행위를 보라. 네가 어떻게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은 너의 죄를 알고, 너의 마음이 악함과 우둔함을 알고 있다. 그에게 가지마라!’
그것이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의 목소리입니다.
우리는 사탄을 자주 믿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크지만, 우리 인간은 그런 사랑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저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합니다.
가장 큰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독교인에게 가장 큰 믿음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볼 때,
자신이 너무나 많은 실수와 실패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말하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믿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그 사랑을 잘 믿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 같지 않으며,
누구의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하실 때, Come 하실 때, 4:8↑
그분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분이 당신이 행한 모든 것과, 행할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오라’고 할 때, 그것은 무조건적인 용납이요, 초청입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배회하며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당신도 혹시 그런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라고 깨달았다면 잘한 것이고, 그 죄를 고백했다면 참 잘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부터라도 며칠 안에 몇 가지 행동을 고치고, 수습을 하고
(성화된 후에)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오라!’고 하십니다.
▶제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은, 페루에서 제가 사는 집에서의 한 날입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 모든 흠과 점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며
하나님은, 나를 향한 그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나를 아는 것처럼, 그렇게 저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를 사랑해 주십니다.
저는 식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당신이 기르는 나무가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살아나겠습니까?
제게 상담을 한다면, 저는 그 나무를 보여 달라고 할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데리고 안방으로 가서, 장롱을 열고
캄캄한 장롱 안에 들어있는, 화분에 심겨진 나무를 보여준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무는 햇볕을 필요로 하니 밖에 내놓으시오.’
햇빛을 못 보면, 나무는 더 시들어만 갈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햇볕 안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들이 믿어질 때까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십시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4:8절을 다시 읽어보십시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Come’
하나님은 우리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교만하고 허영에 가득 차 있으며
언제나 우리가 속하지 않은 높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은 ‘허영의 시장’ 에 살고 싶어 합니다.
※‘허영의 시장’ : 천로역정에 나오는 한 장소.
사람들이 사치와 허영으로, 물질적 부요로, 방탕으로 낙을 삼고 살아가는 세상을 묘사함.
즉, 반짝거리고 소란스러운 자잘한 것들에 매료당해서
옷과 옷 위에 붙은 작은 상표(명품)에 집착하고
자녀들이 축구교실에 가는 것 따위를 염려하며
당신의 삶을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낭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혀 유익함이 없는 그런 곳에서..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 지를 봅시다.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그 곳은 위험한 곳이라고 합니다.
경건한 두려움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이 여러분에게 끼칠 해악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아와 죄가, 여러분에게 끼칠 해악에 대해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내려와라, 멀리해라!’
‘그런 것들에 매혹 당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라’.
혹자는 ‘그들 세상 사람들도 구원받아야 하니,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은 당신 자신의 영혼을 먼저 구원해야 할 때입니다.
눈이 악하지 않으며, 어둠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사람들과 동행하십시오.
언제나 당신을 영원한 곳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십시오.
오늘날의 교회가 원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지극히 약화시켜서 설교하고, <경건의 훈련>을 전혀 시키지 않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 악한 것을 사랑하는 악한 자들로 가득 차게 되어서
교회 안에서도, 영원한 것을 바라보도록, 당신을 인도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큰 문제입니다.
웨슬리와 휫필드의 시대에는, 교회에 가면,
그것은 거룩한 무리에 속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높은 곳에서 내려오십시오.’
당신의 육신은, 어떤 것이든 우상으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당신의 육은, 성경의 지식을 우상화 시킬 수 있으며, 사역을 우상화 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우상화 시킬 수 있습니다.
선하고, 좋고, 바른 것조차 우상화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어디로요?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로 내려오십시오)
◑4: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런 사랑이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그 외 어떤 것이, 우리 기도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제가 이렇게 주님을 쳐다보면, 하나님의 심장박동이 빨라집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신부가, 눈으로 신랑을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연인사이는, 서로 마음이 빼앗기는 것입니다.
결혼하신 분 중에
결혼 전에 당신의 배우자가 교회에 앉아 있는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 시킬 때
곧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아찔하지 않으셨나요? 기억하십니까?
그러나 결혼 후에도, 여전히 그런 사랑을 유지해야 합니다.
연인이 당신을 쳐다보는 순간 숨이 막혔죠.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연인의 시선은, 내 몸에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방 여인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당신의 아내가 당신을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심장이 덜컹 떨어져 내려,
예배당 통로를 굴러 넘어질 것 같았다면, 그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기도 중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보내면, 하나님의 심장이 빠르게 뛰십니다.
▶제 아들 이안은 난산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제 어린 아들이 웃고, 안기고, 손을 들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을 때 일입니다.
이안은 자기 방 침대에 있었고, 저는 제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 애가 걸어서 제 방으로 들어와서 저를 봤습니다.
아들이 저를 보더니, 그 순간에 두 팔을 저를 향해 활짝 벌렸습니다.
그 아이의 눈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인 제가 달려와서, 자신을 들어 안아 올려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자긍심, 긍지, 그런 게 아니라,
아들은, 자기를 향한 제 사랑에 대해 믿고 있었습니다.
그 애가 저를 바라보는 순간,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딸을 낳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딸이 있었다면, 아빠인 저는 벌써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이 어떻게 그런 하나님의 사랑/십자가의 사랑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조나 인간 본성에서, 그런 사랑이 나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런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랑의 깊이가
여러분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깊이 보다, 덜할 것이라고
어떻게 감히 생각하십니까?
자녀의 하늘을 향한 한 번의 시선이, 그 분을 감동시킵니다!
‘폴 형제님,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너무 과장인 것 같네요!’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하나님은 가슴이 뛰시고,
우리 가슴도 덩달아 뛰는, 그런 관계가.. 구원받은 성도의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육신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줍니다.
“아빠, 이것 보세요.” “정말 멋지구나.” 아이는 기뻐서 나가 놉니다.
다음날 아이가 다른 그림을 그려서 아버지에게 보여줍니다.
“아빠, 이것보세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날은 기분이 아주 안 좋습니다.
그런데도 어린 자녀가 계속 그림을 보여주면,
아버지는 순간 귀찮다며, 그림을 찢어버리고 아이를 밀쳐냅니다.
이렇게 육신의 아버지의 행동이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사실 깊은 지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게 행동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완전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아버지를 향한 한 번의 시선으로, 그분은 여러분에게 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4:9
신부의 구슬 목걸이는 누가 준 것일까요?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그 분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맏형 되시는 그리스도는 요셉과 다릅니다. 요셉보다 위대하십니다.
요셉은 무지갯빛 외투를 갖고 있었지만, 다른 형제들과 나눠 입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무지갯빛 외투를 갖고 있습니다.
그분의 의로움입니다.
본문으로 말하자면 ‘목의 구슬 한 꾸러미’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로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의로움을 당신에게 주십니다.
그 ‘구슬의 아름다운 목걸이’를 당신에게 걸어 주십니다.
그 아름다운 옷을 입은 당신을 봅니다.
그분이 주신 옷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의 아름다운 흰 옷을 입혀주셨다는 것입니다. 계19:8
▶‘그렇지만 폴 형제님, 교회에 들어와 있는 이 많은 죄를 보세요.
교회 안에는 세상과 똑같이,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말과 음란이 넘치고 있습니다.’
일부 목회자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그것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교회 안에는 음란물, 음란, 간음 거짓말, 부도덕이 교회 밖에서 만큼 만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은,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완전해지는 과정 중에 있고, 거룩한 성화의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빌1:6
주님은 교회를 열심히 지키고 계시고,
성령님도 교회를 지키고 계시며, 교회를 사랑하기에 열심히 징계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제가 말하는 ‘교회’ 또는 ‘성도’는
완전히 회개하고, 진정 거듭난 성도를 말하지, 명목상 신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신부는 아름답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신부는 깨어 있고, 걷고 있고, 성장 중이며, 변화되는 중입니다.
◑4:10절, ‘내 누이, 내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 보다 향기롭구나!’
▶주님은, 부족한 우리의 사랑을, 완전케 만들어 주십니다.
저는 때로는 사람들이 ‘아, 나는 주님을 사랑해요’라고 찬양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주님을 향한 제 사랑을 보면, 그렇게 쉽게 고백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은 때로는 차갑습니다.
차라리 ‘주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라고 그분의 사랑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사랑고백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민감한 문제입니다.
위 말씀을 보십시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우리의 대제사장이며, 중보자이고, 화해자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제물을 성결케 하십니다.
우리의 둔하고 순결치 못한 사랑도, 그리스도를 통과하면 아름다워집니다.
여러분, 그분이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이해 못하겠습니까?
그 분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 분은 어떤 부분도 미완성으로 남겨놓지 않으셨습니다.
‘네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 보다 향기롭구나!’
너무 아름다워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십시오.
◑4:12절,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무슨 뜻입니까? 그녀는 정숙합니다. 그녀는 잠근 동산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 구절은 여러분을 위한 교과서입니다.
여러분은 ‘잠근 동산’ 이어야만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른 모든 성적 행위는 했지만, 성교만 하지 않는다면
순결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결은 ‘잠근 동산’ 같아서, 아무도 그곳의 열매를 맛을 보거나 만지거나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동산은 금지된 동산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도 또한 ‘잠근 동산’ 이어야 합니다.
다른 애인은 출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각종 우상을 뜻합니다.
다른 자들은 사냥꾼이며, 우리를 사냥하려는 늑대와 사자들입니다.
목회자들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목사로서 첫 번째 임무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신부를 여러분에게 맡기셨고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를 보호하십시오. 그렇기에 교회 성장과,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기준을 낮추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께 순결하고 정숙한 신부를 드려야 합니다.
당신들이 신부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부를 만들어 내려고 하지 말고,
대신에 신부를 보호하고, 먹이고, 지키고, 사랑하고, 그녀를 그분 앞으로 인도하십시오.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하나님과 교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복음 외에..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교회를 격리시키십시오.
▶여러분 각자는, 당신 자신을 주님께 그리스도 그분께만, 하나님께만 드리십시오.
신앙적, 영적인 순결한 신부가 되기를 소원하십시오.
저 폴워셔는, ‘문을 걸어 잠근’ 한 명의 젊은이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교제와 친목모임을 갖고 얄팍한 찬양을 부르지만,
그런 모든 것을 벗어나, 하나님과만 홀로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를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제 친구가 한번은 레이븐힐 목사님을 만나서, 제 대신 상담을 했습니다.
‘레이븐힐 목사님, 제 친구 폴 워셔가 최근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좀 도와 주십시오.’
레너드 레이븐힐 목사님이 제게 짧은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폴 형제,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형제는 안 됩니다.”
그분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다른 사람은 시장 통에 나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TV를 보고, 하나님이 없는 얄팍한 기독교 콘서트에 가도 되지만,
당신은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은 기독교 수련회와 스키여행을 다녀도 되지만
형제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들은 그래도 되지만
당신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잠근 동산’이 되라는 충고였지요!
▶제가 사역의 부르심을 처음 받았을 때, 텍사스에 계신 교회의 목사님께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사용하신 분이신데, 그분이 저를 보고 하신 말이 이것입니다.
‘자네 혼자 있을 수 있나? 그렇다면 신학교를 가도 되겠네!’
저는 처음에, 그 말의 뜻이
제가 진리를 설교하면, 동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혼자 외톨이가 될 것이라고 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분이 정작 하고자 하셨던 말씀은
‘주변에 친구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하나님을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집안 일을 하거나, 나무 아래 앉아서 시간을 보내거나,
골프 등 운동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 잘 보냅니다.
서로 교제를 하며, 도넛을 먹으며, 그런 잡다한 것을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것은.. 잘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그 분과 독대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왜 그렇게 힘들어 하십니까?
이런 현실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구속 받았지만
우리 안에 육신은 아직 성화, 성숙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주님을 향하여, 주님만 사랑하는 ‘잠근 동산’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4:16절, 신부가 말합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많은 준비를 해 온 처녀가 있습니다. ↑
그녀가 이런 수고를 한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바람이 불어와서, 그녀가 가꾸어 놓은 것들의 향기를
그녀가 사랑하는 분이, 그 향기를 맡고, 동산에 와 그것들을 선물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바램입니다.
▶저도, 한 때 그런 마음을 가졌던 때를 기억합니다.
처음 구원 받았을 때, 여러분도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그분의 관심과 그분의 시선만을 원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반쯤은 미쳐있었습니다.
열심이 지나칠 정도에다가, 억제하지를 못했습니다.
신학 같은 것은 관심이 없고, 그저 나가서 영혼을 구원하고 싶어서
가가호호 방문을 했고, 경건 서적을 읽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서를 읽으며 좋아했습니다.
‘주님의 시선을 잡을 수만 있다면, 주님의 사랑 안에 있을 수만 있다면,
주님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곳에 오셔만 주신다면,
제 생명을 취하시더라도, 당신의 임재를 제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 분이 나를 보고 계시는가?
오직 그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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