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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아가서 5장 / 폴 워셔

LNCK 2014. 2. 3. 13:41

www.youtube.com/watch?v=kxE1LGmyFf4

◈아가서 5장                       아가서 5:1~12                  폴 워셔

*관련글  아가서 4장                   English 1           English 2

 

◑아가서 5:1절입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서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정말 멋있습니다. 왕은 이 작은 소녀가 정원에서 가꾼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왕에게는 하루 종일 그의 정원에서 일하는 만 명의 남자들이 가꾸어낸

꽃, 정원, 야채밭, 과수원 등 온갖 종류의 정원이 있습니다.

 

이 분은 왕이십니다. 왕이신 이분은 당나귀를 타고 시온으로 오셨습니다.

이 분은 겸손하신 사랑의 왕이시며, 이분은 소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십니다.

 

그녀의 가장 큰 열망, 그녀의 마음에 가장 큰 열망은,

그녀가 가꾼 것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 정원은 왕의 소유입니다.)

 

그 분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 분은 ‘내 정원, 내 누이, 내 신부’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되고 싶다고 하고, 그분은 ‘너는 나의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분께 이것을 드리고 싶다’라고 고백하고,

그 분은 ‘내가 취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의 담대함(5:2↓)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취하십니다.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너무나 좋습니다.

 

저 폴 워셔는, 찰스 스펄전이나 조지 뮬러 같은 사역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존 파이퍼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되어야만, 주님의 측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주님의 측근입니다.

 

      말도 안 되지만, 기독교 안에 서열이 매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평생 동안, 여러분은 소외당해 왔습니다. 세상은 그렇죠?

-돈이 많아야 가는 곳으로부터 소외되고

-아주 똑똑해야 가는 곳(일례로 명문대학)으로부터 소외되고

-잘 생겨야만 가는 곳도.. 가지 못합니다.

그런 곳에는, 여러분이 속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당신은 그런 곳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그저 스쳐 지나가야 했습니다.

자기가 끼일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목회자 컨퍼런스에 가면, 모이는 자리들이 자연적으로 나뉘게 됩니다.

5천 명 이상 교인을 가진 교회는, 저쪽에서 자기들끼리 모이고,

2천5백 명에서 5천 명 교인을 가진 교회 목회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이고,

2천 명 이하는 저쪽, 50명에서 백 명은 저 구석에, 사람들은 그렇게 끼리끼리 모입니다.

 

50명의 교인을 가진 교회 담임목사는,

HeartCry 컨퍼런스(폴 워셔의 선교센터)를 제외하고는

컨퍼런스 강사로 절대 안 세웁니다.

 

그러나 이런 서열은, 천국에는 없습니다.

주님은 ‘내게는 스펄전도 있고, 다른 대단한 사역자들이 있으니, 너는 필요 없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위대한 누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소중히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한 일에 절반도 모르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촛불도 끄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갈대를 갖고 놀다가 그 연약한 갈대가 부러지면 던져버리고,

다른 가지를 가지고 만들면 된다’ ..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그 분 손 안에서 부러져서, 더 이상 음악소리를 내지 못하면

주님은 ‘내가 하려는 것을 지켜봐라’ 하시고, 당신을 고치시고,

 

그 상한 갈대로,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피리)로 만드십니다.

 

꺼져가는 촛불.. 같은 사람도, 주님은 다시 살리십니다.

눈 폭풍이 몰아쳐서, 전깃불이 전부 꺼집니다.

그러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방치 해 두었던, 캠핑용 램프에 불을 밝히게 됩니다.

그런데 오래 사용하지 않았던 그 램프는,

기름이 말랐고, 심지에서 연기가 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그런 ‘꺼져가는 등불’은 밖으로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당신이 성령을 근심케 하고, 악취를 풍기고, 온갖 말썽을 부리고,

모든 사람이 '내다 버리라'고 해도

주님은 램프를 가져다가 품에 안고, 심지를 청소하시고, 기름을 채우고 불을 붙이십니다.

당신에게는 이런 하나님, 이런 구원자가 계십니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5:1

위 말씀은 며칠전에, 제게 일어난 일입니다.

 

예전에 매우 방황했던 사람이, 자신의 삶에 임한 성령에 대해 간증했는데,

저도 그와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주안에서 식탁의 교제를 나눈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만찬의 식탁을 차리고, 주변 사람들을 불러서 먹입니다.

모든 사람을 초청해서 먹자고 합니다.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5:2절,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멋있는 애인이며, 놀라운 남편이며, 왕이신 분이, 술람미 여인을 찾아왔습니다.

 

왕은 뜻하지 않은 때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오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사랑은 담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예고 없이 나타나십니다.

왜 일까요? 왜냐면 사랑이란 그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주님도 우리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주십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할 때에 너에게 방문 하겠다.’ 새벽 2시에 마음을 두드립니다.

(컨퍼런스에 오신) 목회자들, 여러분들이 할 일이 태산이라도

주님은 새벽 2시에 오셔서

‘모든 것은 멈추고 나와 함께 있자’ 라고 하십니다.

 

 

◑5:3절,

예고 없이 찾아오신 주님께, 뜻밖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속옷까지 벗었는데, 옷을 다시 입어야 할까요? 발도 다 씻었는데, 다시 흙을 묻혀야 할까요?" :3

 

이 소녀는 한때는, 혹시 사랑하는 님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시장을 하루에 여러번씩 기웃거렸던 여자입니다.

 

그녀는 그분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면, 태산이라고 옮기려고 했던 여자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한번 사랑을 얻고 관심을 얻고 나면, 사랑도 시들해 집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 저는 안데스 산맥의 세계 최고의 고도altitude의 도로 위에서

제 아래로 펼쳐 보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숨 막혀 할 때

자동차 제 옆 좌석에서 나이든 선교사 앤디 크레인은,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어찌 그리 둔한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몇 해 전에, 저도, 그곳에 대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그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저는 코를 골고 있었고, 대학생들은 그 경치에 경탄을 연발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익숙해지면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내에 대해, 남편은 반성해야 합니다.

한 때는 당신의 심장을 멈추게 했던 아내의 시선에

오늘도 그렇게 반응해야 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못하지요..

 

▲이 소녀는, 이제 사랑이 귀찮게 느껴집니다.

 

여러분,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이 기도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진리 안에서 걸어가길 원했던 때를,

 

성령을 근심하게 했다고 깨달으면, 즉시로 애통해 하며 회개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께 가까이 가며, 주님을 찾고 간구하고,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원했던, 과거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주님이, 만약 오늘 밤 10시에 여러분을 찾아오시면,

당신은 ‘주님, 제게 원하시는 게 뭔가요? 저는 지금 자야 되요, 잠옷을 갈아 입었거든요?

제가 성경 컨퍼런스에서 3일간이나 사역 했습니다.

주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주님, 저 지금 피곤해요.’ 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상태입니까?

 

그런데 이런 불평은, 목회자들이 가장 심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TV를 집에 둬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밤 시간에 ‘너는 나와 함께 있자’ 라고 권유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종종 이렇게 반응합니다.

“주님, 저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심신이 완전히 진이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쉰다고 하면서, TV 앞에 앉아 있습니다. 

 

특히 주일날 밤에는 피곤하고 진이 빠진 상태인줄 알지만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의 지치고 피곤한 마음을, 평안으로 채워줄 것이다.’

 

‘주님, 그렇게 될 리가 있나요? 저는 그냥 TV나 볼래요.

주님, 제발 봐주세요. 제 책임량은 다 채워 드렸잖아요.’

 

피곤할수록.. 주님과 교제를 통해, 그 피곤함을 풀어야 할 터인데,

피곤할수록.. 사람들은 TV로 그 피곤함을 풀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TV를 없애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때, 막 거듭났을 때, 우리는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사모했습니다.

피자만 많이 먹어도, 그날 그 상황을, 영적으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저 주님만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바람이 등 뒤로 불어오면, 뒤돌아보고, ‘주님, 당신이세요?’

주님을 너무나 원해서, 때로는 지나치게 민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예수님이 성숙한 당신에게 연인으로 오셔서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시며 ‘나와 함께 가자’고 해도

여러분은 이제는 그 손길이, 주님의 요청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주님의 오심이 아니다. 주님의 음성도 아니고, 그저 내 생각이다.’

 

과거에는, 설사 그것이 당신의 상상이었다 해도,

그 느낌을 따라서, 홀로 주님 앞에서 기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구실이라도 생기면 주님께 달려갔던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고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차가워 질 수 있는지.. 계속 보십시오.

 

 

◑5:4~5절을 봅시다.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그래서 문을 안 열어주었구나. 이제)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구나.’

 

술람미 여인을 찾아왔던 왕은,

여인이 집안에서 미적거리며 문을 열어주지 않자, 결국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제자들이 태풍가운데 어려움을 겪을 때

주님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을 지나가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불러야합니다.

 

엠마오 도상에서도 주님은 계속해서 혼자 걸어가려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분을 붙잡고, 함께 지내자고 간청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성령처럼 아주 민감합니다. 성령의 상징은 비둘기입니다.

비둘기는, 하나님의 사랑의 민감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가볍게 잡아끌고 또 잡아끕니다.

몇 번 그렇게 하시지만, 그래도 우리 반응이 없으면, 언젠가는 더 이상 이끌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뭐가 남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 생활의 대부분은 머리에 놋을 이고, (철판이 가로막혔다는 뜻)

주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상태에서 주님의 임재, 주님의 임재를 구하지만

임재는 절대로 임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셨다가, 이미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허한 영혼으로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주님의 온유한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지 않으면

민감한 성령님은, 더 이상 우리를 부르지 않습니다. 떠나십니다.

 

▲당신이 주님과 함께 머물렀던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이 식상해지자, 그분이 부르셔도 여러분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분도 더 이상 여러분을 부르지 않고

여러분이 그분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와 아내 카로가, 한번은 비성경적으로 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방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내와 떨어져 있었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학업을 마치려 미국으로 혼자 가서 82일을 머물렀고

저는 페루에 혼자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정글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페루 시내에 나왔을 때, 아내와 헤어져 지낸지가 오래된 시점이었습니다.

아파트에 혼자 앉아 있으니, 아내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저는 서랍장에서 아내의 스웨터를 꺼냈습니다.

스웨터에 스민 아내의 향기를 맡으려고 침대위에앉아 스웨터에 제 얼굴을 묻었습니다.

그게 외로움을 달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리움만 더 키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내는 없고 아내의 체취만 있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상황이, 지금 이 상황이지요?)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 그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거부했고,

이제 주님의 남겨진 체취 안에서만..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그리스도가 오시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잠자려고 누웠습니다. 주님 하루 종일 사역해서 피곤해요.’

 

진정한 사랑은, 그런 말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거부당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 줄 아십니까?

 

차라리 천방지축이어도,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는 게 낫습니다.

내가 둔하게 되어서, 성령님께 반응 하지 않는 마음은, 상대방을 죽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문을 거절하는 셈이 됩니다.

‘봐서는 안 되는 TV프로그램을 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어,

내 안에 옳지 못한 생각을 품는 죄를 하나님 앞에 범 했어.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만, 하나님이 그 유혹의 순간에 당신을 방문하셨는데

‘형제/자매여, 그렇게 하지 말어!’

그것을 거절한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입니다.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여인은, 일어나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몰약이, 문빗장에 묻어 있었음을, 손잡이를 만져서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고대근동 풍습에, 그 집에 찾아왔다가, 아무도 없으면,

      방문자는, 문고리에 향수(몰약)를 묻혀 놓고서, 떠났다고 합니다.

      자기가 그 집을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다는.. 일종의 표식이었던 것이지요.

 

신랑은, 그렇게 문빗장을 흔들거렸지만,

여인은 강퍅하게도, 응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녀는, 마음을 고쳐 먹고, 신랑을 찾으러 거리로 나갑니다.

이때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

 

 

◑5:7절입니다.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져갔도다.’

 

▲이 순찰병들은 매우 비열합니다.

왕이 마음에 둔 여자에게, 평소에 이 자들은 감히 눈길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왕의 여자 앞에서, 그들은 머리를 떨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떠나자, 이 자들은, 여인을 오히려 학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왕이 우리를 정결케 하였고,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왕의 임재 가운데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왕의 신부’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위 구절을 보십시오.

5:4절에서, 왕이 떠나시자,

홀로 남겨진 술람미 여인의 신세는.. 성안의 사람들에게 수욕을 당합니다.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져갔도다.’ :7

 

▲사탄은, 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양이 아니라, 양옆에 있는 목자를 두려워합니다.

 

순찰병은 작은 소녀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을 두려워합니다.

교회가 왕을 떠나면, 왕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면

교회는 각종 어리석은 것에 매혹되다가,

결국은 이렇게 순찰자, 파수꾼에게, 수욕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길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과 같지요.

 

왕 이외의 모든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교회가 왕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라도 눈길을 주면,

교회는 아주 위험한 곳에 서게 됩니다. 교만의 높은 산에 서게 됩니다.

 

그 산은 늑대와 사자와 표범으로 가득합니다.  4:8

이때 교회/신자가 걷고 있는 길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술람미 여인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교만하게, 왕의 임재/방문을.. 거부했거든요. 5;2~3

 

 

◑5:8절

 

여인에게는, 왕의 임재가 다시 필요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그러자 예루살렘 여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5:9절

‘여자들 가운데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한 마디로, 우리가 ‘왜 그를 찾아야 하는가?’ 라고, 세상이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가 너를 방문 했는데, 너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네가 그렇게 무시한, 그런 시시한 사람을, 우리가 이 밤에 찾아나서야 하는가?

네가 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대단치도 않은 인물인데, 왜 우리가 그를 찾아야하는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처럼 살면,

      세상이 모두 회심했을 거라는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우리도 십자가로 가야할 것입니다. 세상은 크리스천을 더 미워합니다.

      세상은 주님을 증오했고, 우리가 그분처럼 살면, 우리까지도 증오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무엇인가 중요한일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인정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주님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외치며 전도할 때, 세상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차 3대 주차공간을 갖춘 큰 저택이나, 스포츠카 혹은 축구게임보다

예수가 더 필요한가?

 

그리고 우리가 네 삶을 보니,

너는 예수보다, 다른 많은 세상 것들이 더 필요한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예수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너는 전도하는가?’

 

그들은 기독교 신앙 자체에도 관심이 없지만,

우리 신자들의 삶을 보면서, 더욱 기독교 신앙이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너희들이 (엉터리로) 사는 것을 보면.. 왜 예수가 꼭 필요하다고 너희가 전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네가 설명을 좀 해봐라. 너도 별로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에게도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 같은 예수에게.. 우리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지금 5:9절의, 예루살렘 여인들의 술람미 여인을 향한 책망이,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우리 사회에서 들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을 향한, 그들의 강한 책망입니다.

 

▲그러나 그 책망에 그녀는 마음이 깨어졌고, 영혼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책망은 좋은 것입니다. 책망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갑자기 그녀는 정신을 차립니다. 회개는 바로 정신을 제대로 차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사십니까?

      아직 그분을 한 번도 뵌적이 없어서, 그 임재를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해서,

      그분이 당신의 기쁨이 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습니까?

 

      아니면, 그분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당신은, 세상의 다른 많은 것들로, 마음의 채움(만족)을 입은 것입니까?

 

      왕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대신에

      나무와 철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들과 교통하고 교제하고 있어야 합니까?

 

이제 그녀는 제정신을 차립니다. ↙

 

 

◑5:10~12절,

‘내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머리는 순금과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 박혔구나.’

 

 

 

◑5:16절

그녀는 그분을 경배하기 시작합니다.

‘입을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5:16

그녀는 격정적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성격중 하나입니다.

저는 묵시록을 믿습니다. 계시록과 에스겔은 묵시록입니다.

바퀴 안에 바퀴가 있구나.

이런 모든 것들은 장엄하고 놀라운 상징들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해석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계시에 빠져들어, 자신의 지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계시를 받게 되어, 그것을 전달한 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5:16

 

그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합니다. 그러면 미친 사람처럼 됩니다.

 

이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적으로는 이해도 되지 않는 것들을.. 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1

이 여인은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워 보는 자를 거의 미치게 할 것 같은

그런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입을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16 

 

우리가, 장차 구원받고 천국에서 주님을 뵐 때,

그분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미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주제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에 이런 면도 있습니다.

저는 교양 있고, 신학적으로 올바르고 개혁적인 설교에 진저리를 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수학공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차갑게 계산적으로 설명해주는 조직적인 설교에, 진저리가 납니다.

 

설교자는 세련되고 교양 있어 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설교자는 어느 정도는 '미친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전하는 것은,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격정적으로 추구하고, 몰입하고 집중하며

존 파이퍼가 말하는 것처럼 간청해야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6장1절

‘여자들 가운데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함께 님을 찾아 나서자’

위 구절은, 여인의 친구들/예루살렘 여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교회가 격정적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면, 소동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기쁨을 주지 못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오직 그리스도만 본다면

그런 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 담대해 질것이며, 격정적이 될 것입니다.

 

그녀가 사랑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난 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더럽혀지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5:7

 

그러나 여인이, 격정적으로 신랑을 찾아 나설 때,

자기를 무시하던 친구들도, 그를 도와서, 신랑을 찾으러 함께 나아가 주는 것입니다.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마침내 여인은, 신랑을 찾게 됩니다. ↙

 

 

◑6:2절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위 구절은, 술람미 여인의 말입니다.

 

여인의 집을 떠난 그 신랑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는 꽃을 꺾으러 갔습니다.

한때 냉담했던 신부가 돌아오면, 꽃을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사탄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네가 그런 잘못을 했다. 네가 그렇게 하고야 말 줄 알고 있었다.

하나님도 너를 더 이상은 원하지 않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분은 절대로, 당신에 대해 싫증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하늘을 향한 시선 한 번이면, 그분의 마음의 맥박은 빠르게 뜁니다.

그리고 당신이 냉담한 마음으로 그분에게 나오거나

혹은 그분으로부터 도망가려고 노력하고, 그분을 떠날 핑계를 찾아도

당신이 그분을 떠나자마자, 그분은 당신에게 줄 선물을 찾으십니다.

 

믿기 힘든 진리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진리입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제 마음을 두드리는 음성을 들을 때

늘 왕의 부르심에, 제가 기쁘게 달려가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항상 기도 하게 하시고,

기도가 일이나 은혜를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서 기뻐하는 교제의 시간임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당신은 나의 얼마나 큰 기쁨이신지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