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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빌다가 망합니다 ✝40

LNCK 2014. 2. 3. 13:28

◈소원 빌다가 망합니다          렘9:12~15               편집자글        십자가 시리즈 40회

  

 

 

※신자 개인적으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소원성취식 기독교'로 나가면,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열왕기서, 역대기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알신앙은 결국은 망한다니까요!

   처음에는 뭐가 좀 왕성하게 잘 되는 것 같지만, 최종 결과는 '바벨론 포로'입니다.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는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징계하셔서 망하는 것입니다. 징계 후에 돌이키라고요!

   

 

▲매해마다 새해 첫날에

동해안에 나가서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공손히 비는 사람들도 있고, 아마 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초에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하루 전날 도착해서 숙박을 합니다. 그때는 또 숙박비도 평소보다 비쌉니다.

 

‘왜 저렇게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러, 먼 길을 나갈까? 비용도 많이 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비는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까짓것 몇 십 만원 드는 비용쯤이야.. 별로 아깝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정초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빈다면.. 그게 이루어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정초에,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동해로 가야 되겠죠.)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바알숭배하면.. 오히려 하나님께 벌을 받아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아래에 나옴

 

그러니까 우상을 향하여 소원을 빌면

만약 안 이루어져도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대단히 밑지는 장사입니다.

 

-우상에게 빈다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오히려 벌과 징계를 받으니.. 대단히 밑지는 장사이지요.

 

사람들이 정초에 소원을 빌러, 바다로, 산으로 나갔다면..

그것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망하는 길로, 제 발로 나아간 것입니다.

 

▲본문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남유다 땅이 폐허가 되었습니까?’ 렘9:12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렘9:13.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남유다가 바벨론에 망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1. 하나님의 법을 버린 것과 :13

2. 바알 신을 따라 간 것이었습니다. :14

 

▲그런데 교인들은, 새해 소원을 빌러, 해를 맞이하러 바다로 가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집 가까운 예배당으로 갑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안 믿는 사람들은.. 바닷가에 가서 빌고

믿는 사람들은.. 예배당에 가서 빌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빌다가 오히려 망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는 소원이 안 이루어져도) 믿져야 본전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인 것입니다.

빌다가.. 소원성취도 못하고.. 도리어 벌받아 망할 수 있습니다.

남유다가 그래서 망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원래 구약의 유대교는 (신약도 마찬가지지만, 구약만 살펴봅시다.)

‘언약종교’라 그럽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주변국가의 이방종교들이

모두 다 ‘자기 소원을 비는 종교’입니다. (대표적으로 바알종교)

 

소원을 빌면, 비는 족족 다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도박을 하면 다 자기가 돈을 딸 것 같은 마음이 드니까, 도박을 한다지요?

우상숭배도, 빌기만 하면 뭐가 이루어질 것 같으니까.. 비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냥 느낌이죠.

 

그럼 ‘언약종교’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십계명이며, 넓게는 모세의 율법(레위기, 신명기)입니다.

 

이스라엘은, 번제물을 잡아 바치면서

그 제단 곁에 서서, 자기 소원을 비는 것이.. 구약 유대교의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사이에 맺은 언약을 지켰는지, 못 지켰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만약 못 지켰으면,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면서, 다시 잘 지키기로 다짐합니다.

 

언약을 지키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조건 자기 소원만 비는 것은.. ‘언약종교’가 아닙니다.

바알우상숭배가 바로 ‘자기 소원을 비는 종교’였습니다.

 

실제로 남북이스라엘이, 다 망하고 이방에 포로가 된 것도

‘이미 신명기 28장 언약에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다 언약대로 된 것입니다. 언약을 안 지켜서, 언약(계약) 내용 그대로.. 망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인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망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1. 하나님의 법을 버린 것과 :13

2. 바알 신(자기 소원을 비는 신앙)을 따라 간 것이었습니다. :14

 

오늘날 우리가 해맞이는 가지 않지만,

교회당에 나와서 위 두 가지를 그대로 똑같이 행하다가는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대단히 밑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손해인가 하면,

1. 소원을 빈다고..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박을 하기 전에, 뭔가 딸 것 같은.. 그런 마음은 들 수 있지만,

 

신년에 소원을 빈다고, 내 소원대로 안 된다는 것은,

길게 설명 안 해도, 우리가 체험적으로 다 겪어봐서 압니다.

 

2. 만약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구약에 의식법, 시민법은 신약에 폐지되었지만

도덕법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바울, 베드로가 강조합니다.)

 

그저 ‘내 소원 비는 일’에만 내가 열중하고 있다면,

그 속 본질은 ‘바알우상숭배’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신자를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 하고 있으니까요. 남북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해서 다 망한 것입니다. 

이래 저래 대단히 손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신년에, 그럼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언약에 더욱 충실하자..’ 이건 옳은 방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자..’ 이것도 본질적 기독교입니다.

 

그런 ‘신앙의 본질적 개선’에는, 별로 방점(강조점)이 없고

무조건 신년을 ‘소원성취의 기독교’로 몰고 가는 것은,

소원성취는 커녕

마구 두들겨 맞는 행태가 된다는 것을

예레미야서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수 백 개의 구절이 있습니다),

 

아직 안 두들겨 맞았으면, 곧 맞게 됩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 차면,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전11:3

아직 좀 더 차면.. 반드시 징계가 내려올 것입니다.

 

물론 언약적 관계에 충실한 다음에, 자기 소원을 빌면 되겠지요...

그런데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자기 소원 성취'의 종교가 아닙니다.

'주님 뜻대로! 아멘'의 종교입니다.

'주여, 내 소원은 없습니다. 주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를 묻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바알 우상 숭배'의 신자를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백성들이 망한 길로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런 식으로, 백성들을 망하는 길로 몰고가는, 거짓선지자가 되지 맙시다.

 

....................

 

창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자손)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할 때.. 무조건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잘 믿은 것처럼 이해하는데,

      위 구절을 보니까,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이루게 하는 것'

      they shall keep the way of the LORD, to do justice and judgment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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