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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 2

LNCK 2014. 2. 18. 09:30

◈고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 2     엡4:13, 갈6:14               인터넷 설교 녹취

 

<고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 1>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교정 예정

 

 

 

 

◑예수와 함께 삶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

 

▶독일 신학자 본 훼퍼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라고 부르시는 것은, 와서 같이 죽자.’

라고 하며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한국에 <레디칼 Radical> 이라는 책을 교인들이 많이 읽고 있더라고요.

저도 이 책을 선물로 받고, 하루 동안에 이 책을 단숨에 다 읽었어요.

 

그 책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아주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잘 제시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일주일 동안 레디칼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은혜 가운데에 있었겠구나.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에 그것을 다 어버리고

레디칼이 아니라 프렉시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라고, 제가 생각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철저하게 크리스천으로 살려고 결심하지만,

책을 덮고 현실의 삶에 돌아오면, 현실에 적응하고 타협하는 크리스천으로 금방 되돌아간다는 뜻.

 

그러면서 허운석 선교사의 설교가, 유튜브에 그렇게 많이 올려져 있는데

그 설교를 들으면서 ‘참 생동력 있고 감동적인 설교다.’ 하면서

영양 주사 한 대 맞고 일주일을 살고 나서,

기운 떨어지면 다시 원래 자기 건강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렇게 잠깐 동안 기뻐하지만, 그것을 계속 삶으로 살아내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내려오셔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셔도

우리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제가 아마존에서 15년 전부터 자원하는 선교사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불렀냐면, 제가 기도편지를 쓸 때마다 이렇게 기록했어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죽어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아마존으로 선교를 오십시오.’

 

그런데 아직 한 분도 안 오셨어요.

제가 믿고 있기로는, (하나님이 숨겨두신) 7천 명이 전 세계 어디인가에,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죽어드리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직 있을 텐데.. 아직은 제가 못 만나 봤어요.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제게 소개해주세요.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 죽어드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헌신예배 때 마다, 얼마나 교인들이 열심히 부르는지요..

그 찬송 절대로 부르지 말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그렇게 찬송 부르고, 삶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의 제자로 죽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현실의 삶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찬송을 부르지 마십시오.

전 교인을 사기꾼으로 만들어서 되겠어요? 절대 그 찬송 부르지 마십시오.

 

‘제가 아마존에 가도 좋습니다. 제가 죽어드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런 분은, 위 찬송을 부르십시오.

 

‘고난은,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입니다. ←설교 제목

고난 없는 것을 찾지 말고, 주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고난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둘째로, 고난 중에서 우리 자아가 깨질 수 있어서, 우리는 고난을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제가, 아내 허선교사가 투병생활로 고통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여, 허운석 선교사가 아마존에서 자기 생명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디안 형제들을 사랑하면서 자기 피를 짜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수고를 했는데

아니 어떻게 폐암에 걸리게 하실 수 있습니까?’ 담배 피는 사람도 폐가 멀쩡하던데요..

 

아니, 폐암에 걸리게 하셨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또 재발하게 하시고,

그것까지 제가 봐드릴 수 있는데..

 

그런데 암 걸리고, 항암치료 받고, 재발하고, 그리고 죽기 전 까지 갔는데

하나님이 기적으로 치료하셨다. 그래서 완쾌시켜 주셨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하나님도 좋고 저도 좋고 허운석 선교사도 좋고

한국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제가 그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제가 이 만큼 했으니까, 하나님이 이 만큼 더 돌려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브 앤 테이크 라고 잘 아시지요? give and take

‘하나님께 이 만큼 헌신했으면, 하나님 조금 더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저한테 많이 있었어요.

 

그런 기다림, 그런 간절한 바람이 되게 많이 있었는데

제가 바로 지성이면 감천인데..

내가 지성을 했는데.. 왜 하나님이 감동(감천)을 안 하십니까.. 라는

인과응보 식으로 나한테 갚아달라고 하는, 그런 요구가 제게 조금 있었습니다.

 

문뜩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내가 하나님께 했다고 하는 순종과 헌신이.. 주님께 대가를 바라고 했구나.’

‘내가 철야하고 금식하고 정말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이,

바로 좀 되돌려달라고, 때가 되면 나를 조금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그런 대가성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제가 발견 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한테 ‘너는 가짜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허운석 선교사가 죽은 것을 보고, 하나님이 저에게 가짜라고 말씀하시고

제가 틀렸다고 말씀해주신 것을, 제가 경험했습니다.

 

‘네가 목사라고 그러면서 세상을 알아? 고통을 알아?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사별하는 사람들,

여러 문제 속에서 소망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내려다 본 적 있어?’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는 기도한다고, 위로한다고 많은 말을 했지만, 너는 진실되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요즘에 제가 슬픔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아를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도 더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우리를 끌고 가면, 우리 속에 악이 드러납니다. 우리 속의 욕심이 드러납니다.

우리 속에 기브 앤 테이크, '하나님 내게 갚아달라'고 그렇게 하나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이 바리새인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평토장한 무덤 같다고.

무덤이 아주 예쁘지만, 속에는 시체가 썩어가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제가 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죠.

어떤 목사님이 낙도에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끼니를 연명할 수 없어서

사모님이 영양실조로 전신 마비가 걸리고

그 딸이 사모님을 돌보러 왔다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너무나 화가 나서, 딸의 장화를 강대상에 내던지면서

‘하나님 저희 가정에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라고 불평했던 그 목사님,

이것이 그 목사님만의 일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있는, 우리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자아,

포장되어있는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그 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한 것이었고, 대가(복)를 좀 받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이런 사실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악하고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주님 덕을 좀 보려고 했더니, 덕을 보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고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자아를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그냥 고난 없이 살아간다면

나의 숨겨진 악이나 숨겨진 죄가 드러나지 않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자아를 다 깨뜨려주기 위해서,

우리의 자아를 온 천하에 공개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고난이 믿음의 조상들을 끌어갔듯이, 고난이 우리도 끌어갑니다.

여러분, 고난 중에 여러분의 육신 적인 모습, 이기적인 모습,

여러분의 자아가 드러나게 될 때에, 기쁘게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 자아를 세상 가운데에, 거짓된 내 자아를 공개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 자아가 잘 숨겨져서,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고/ 하나님과/ 마귀만 알 때에

우리는 그 죄성이 잘 회개/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숨겨진 자아를, 고난을 통해서 공개하실 때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 정체를 들통나게 하시고, 우리 자아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과할 때 아담의 자산, 주님은 우리의 자아를 전멸시키신다고 합니다.

우리 자아가 깨지는 것을 경험할 때 그 때, 우리는 내가 고난의 피해자인 줄 알았다가

내가 주님을 죽인 살해자인 것을, 내가 정말 주님의 죄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자아가 비로소 전멸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사실. 우리 자아가 들통 나지 않을 때에

우리 자아가 공개되지 않을 때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아가 참으로 악하다고 하면서 말할 때에

‘주님 제가 주님을 죽인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래서 시편 119편 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살해한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최고로 악한 죄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습니까? 여러분이 죄인 중에 최고 괴수라고 믿습니까?

 

만약 그런 고백을 안하시면요, 여러분이 진정 구원 받을지, 안 받을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도 바울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는데 내가 주님을 죽인 장본인 이라고,

내가 주님을 살해한 살인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어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내가 주님을 죽인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구세주가 필요 없어요.

 

여러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왜 주님이 필요합니까?

차라리 저기 절에 가서, 차라리 백팔배를 하고 말지. *108번의 절.

그러면 그냥 그 부처님이 여러분들에게 만사형통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복을 줄지도 모르는데..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일평생 지속되지 않으면

여러분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왜 오늘 한국 교회가 이렇게 값 싼 은혜로, 값싼 교회로, 값싼 복음으로 변해버렸는지 아세요?

고난 중에서, 자아가 깨어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신앙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개를 참 많이 했어요. 선교지에서.

그냥 사영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는 사람이에요.

그 사영리를 우리 졸업생들이 졸업할 때에 앞에 나가서

사영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지 않으면 졸업을 안시켜요, 졸업장을 안 줘요.

이 사영리로 전도를 많이 했거든요.

 

여러분 사영리가 어떻게 시작 하는지 아시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놀라운 사랑과 놀라운 계획을 모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라고 설명하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복음, 귀에 감동적인 복음,

그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를 용서받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많은 좋은 것들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나 좋으라고 예수를 믿어요.

맞습니까? 나 좋으라고 예수를 믿습니까?

 

나 좋으라고 예수를 믿으니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생각을 안 하고

단지 사도 바울이 그런 고백을 했다네.

그런데 나는 좀 아니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내가 뭐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제가 브라질 사람들을 전도를 좀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브라질 사람들은 성품이 한국 사람보다는 좀 더 착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브라질 사람을 좀 사랑하는데, 나는 그렇게 특별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다 그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좀 더 그것보다는 죄를 더 지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죄를 좀 더 지었다고 생각하던지, 덜 지었다고 생각하던지

도토리 키재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정말 여러분 심령가운데 ,내가 주님을 죽인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죄를 지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오늘도 한국 교회가 변화되지 않은 것은 내 죄 때문입니다. 내 까닭입니다. 라고,

회개와 중보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허운석 선교사는 한국에 와서, 부흥에 대해서 별로 설교를 안 했어요.

대신에 십자가에 대해서, 많이 설교 했지요.

 

저는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해요. 왜 안좋아하는 줄 아세요?

기도를 자기 회개 안하고 자기는 회개 안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사람은요,

다 눈에 뭐가 씌워가지고 다른 사람 것만 보더라고요.

 

중보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요. 자기가 회개를 더 많이 해야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진짜 중보가 되요.

 

그래서 자기가 많이 회개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가 제일 많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진짜 중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중보 할 수도 없어요.

 

중보하는 것이 다 가짜고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 공덕을 쌓고있는 사람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자기의 덕(자랑)을 쌓고있는 중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고난은 우리의 자아를 공개합니다.

고난은 우리 자아를 들통나게 합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이런 고백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매일 매 순간마다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나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 하는데

여러분 예수님을 아무리 잘 안다고, 저 예수님을 너무 잘 알아요.

제가 하나님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땅에 부흥을 주시던지 저를 데려가시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하십시오.

 

여러분 어떻게 생각 하세요. 하루 하루 더 사는 것은요. 죄를 더 짓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루를 더 사는 것은 죄를 하루 더 짓는 것이에요.

 

우리가 아마존에서 12일 동안 기도했어요. 새벽마다 목이 항상 쉬어있었어요.

하나님, 이 땅에 부흥을 주시던지 우리의 목숨을 거두어 가시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하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할때에 회개 했어요. 하나님 지금 회개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부흥의 불씨가 되기를 원합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뭔지 아세요? 부흥이라는 것이 내가 회개해서

그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것이 부흥이잖아요.

그 부흥을 꿈 꾸는 사람은 제일 많이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제일 많이 기도하는 사람인데, 자기 회개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 오늘 신문에 나타나고있는 저 사람의 저 죄가 내 안에 아직도 있습니다.

허운석 선교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되게 많이 했는데, 우리 안에 귀신들이 있다고.

 

우리 안에 귀신이 다 있어서 그 귀신이 늘 나와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 뱀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우리 안에 무시무시한 살모사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나한테 뭐라그러면 딱 가서 그 사람을 공격해서

그 사람을 넉다운 시키고 싶은 마음. 고난은 이 모든 것들을 드러내줍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의 자아를 파괴시켜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내가 죄인중에 괴수라고 하는 생각을

하나님은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상한 심령을 죽는 날 까지 가지고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우리에게 약한 것들이 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난이잖아요.

우리에게 능욕과 궁핍과 핍박이라고 하는 것이 고난이잖아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우리는 강할 수 있습니다. 약한 그 때가 곧 강함이라.

그런데 아무도 고난을 구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나님 저 고난을 주십시오.’ 라고 구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고난을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실줄을 믿습니다.

 

▶허운석 선교사는 7년 가까이 암과 투병을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투쟁하면서 끝까지 성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떠난 허 선교사는, 저와 선교지에 커다란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허 선교사가 자기를 아마존에 묻어달라고 그랬습니다.

아마존에 묻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장을 해서 그 뼈를 아마존에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집 사람의 유골을 아마존에 가져가서 장례식을 했는데,

 

선교지에 제 위치가 있기 때문에

선교지에 그 도시에 모든 유지들이 장례식에 다 참석을 했었습니다.

 

제가 장례식에 예배를 드리면서 허 선교사의 사역을 보여주고

그리고 허 선교사가 유언을 이렇게 남겨서 화장을 했고

그래서 그 뼈를 가져와서 이렇게 묻어준다고 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게 될 때

정말 그 장례식에 참여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과 도전이 되어졌던지요..

 

제가 그 것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네 후손이 대적의 성능을 취하리라. 그랬는데

허 선교사가 살았을 때에도 참 큰 일을 행했지만

죽어서, 닫혀있던 이 아마존의 이 도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버린 것을 생각하면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룬 사람이

이 땅에 남기고 가는 축복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고통 가운데에서, 고난 가운데에서 우리 자아가 완전히 깨어질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합으로 갈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고난 가운데에 우리는 잠잠히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남편인 제가, 얼마나 아내 허운석 선교사가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랐겠습니까.

 

사실 언젠가 떠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언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중에 늘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러나 사실 그렇게 떠날 줄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시작 되는 것도 고난이 끝나는 시간도

하나님만이 정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까 말씀 드렸을 때에 욥의 고난이 회개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끝나게 했을 때에 욥의 고난이 끝나고 회복되었습니다.

 

▶시편 105편 17절, 19절 말씀을 읽어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으며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차꼬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메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까지라’

 

요셉은 종으로 팔려갔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했더니

감옥에 가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언제 감옥에서 풀려날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정한 고통이 욥에게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에 우리 고통을 끝나시게 하는 사실을 믿으시면서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허 선교사가 폐암에 걸리니까 남은 사람들이 우리 옆을 떠나더라고요.

그리고 암이 재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을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왜 우리 주변이 사라졌을까. 암 환자가 부담스러워서?’

또 ‘그렇게 아마존에 충성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암을 주실 수 있을까?’ 라는

하나님이 잘 이해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속에 숨겨진 죄가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암 걸리고 재발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내외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우리 때문에 혼동이 생겨서 보통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진짜 철저히 헌신된 사람들을, 이제 진짜로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되겠다.

그래서 우리가 기뻐했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을 볼 때, 고난당하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런데 고난당하는 사람은, 회개 하려고 얼마나 몸부림치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자기 죄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찾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옆에 가서 이야기 안 해 줘도.. 스스로 알아서들 합니다.

고난 때문이지요! 괴로우니까, 자기가 얼마나 회개하겠습니까.

 

그런데 고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주변에서 사람들을 다 떨어뜨리게 하면서

외로움 가운데, 고독함 가운데

우리의 고난을 끝내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분이 고난을 끝낼 것이라고 하는 믿음 가운데에

우리를 아무리 외롭고 고독한 자리에 처해진다 할지라도

기뻐하시면서 잠잠히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고난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선택 된 사람에게는 고난이 허락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나늘 허락하신 주님을 향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데려갈 때에, 우리가 기꺼이 고난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풀무 속에서 당신의 위대한 일을 계속해서 행하고 계십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고난 속에서 우리의 거짓 된 자아를 보게 하시고

우리를 참으로 회개케 하시는 분입니다.

 

허선교사가 떠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제게 아주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온 세상이 제게 빛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제게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시고

저에게 더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 집사람과 허운석 선교사가 평생 꿈꾸었던 일이었는데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이었습니다.

 

허운석 선교사가 떠난 다음에 제 인생에 모든 가치관이 다 바뀌어졌는데

전에는 제가 갖고싶었던 물건도 있었고 이루고 싶었던 일도 있었고

그런 많은 것들이 제게 있었었는데

 

허운석 선교사가 떠난 다음에 세상이 다 빛을 잃었기 때문에

제 인생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서

‘하나님, 이것을 제게 주시기 위해서 허 선교사를 데려가셨군요.’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허 선교사가 저를 이 땅에 남기고 가면서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 분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한 그 분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구나..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루고 싶은 미래의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꿈꾸고 사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평생 꿈꿔야 하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욥기가 끝날 때에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 욥이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합니다. 나는 입을 다물겠습니다.

내가 전에는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욥이 고백하는 고백이 시편 73편에 나온 것처럼

‘이제 하늘과 땅 사이에 주님 밖에 사모할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고백이 갈라디아서 6장 14절의 말씀에 있는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 외에는 아무 것도 알기를 원하지 않노니

내가 십자가에 대해서 못 박히고 세상에 내게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고백을

아마도 욥이 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 합니다.

 

최고의 영성가라고 알려진 잔느 귀용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욥이 고난을 받은 축복은 무엇이었느냐면, 주님 자신을 욥은 선물로 받았다.’

욥이 그 고난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주님 자신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주님이 선택하시면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 올 것입니다.

 

그 고난 가운데에서 우리의 자아가 다 깨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 가운데에서 참으로 기쁨 가운데 잠잠히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욥의 자아가 다 깨지고 아담의 재산이 다 없어지고 난 다음에

욥이 우리가 말한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었다는

2014년에 여러분이 꿈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 예수님을 선물로 받으시는,

예수님을 여러분 심령 가운데에 온전히 연합하는 그 축복

여러분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