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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 1

LNCK 2014. 2. 17. 15:26

◈고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 1       엡4:13, 욥19:25, 요10:10       인터넷 설교 녹취

 

https://www.youtube.com/watch?v=nQfksk2l5s0&feature=emb_logo

▶제가 이 모임에 초대를 받고 사실은 염려가 많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에 제가 허운석 선교사(제 아내)와 같이 왔었습니다.

하루에 모르핀이 들어있는 진통제를 20알 이상씩 먹으면서

너무나 힘든 통증을 부여안고 설교를 했습니다.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너무나 밝고 너무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설교를 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허운석 선교사가 그 말기에 폐암 통증으로 그렇게 고통당한다는 것을

모르셨기 때문에 설교 초대를 하셨고

아마 부흥회에 초대 같은 것들을 하셨다고 생각 됩니다.

 

그렇게 많이 아파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아셨으면

아마 설교 초대를 못 하셨을 텐데 그런데

허운석 선교사님은 그 설교 초대를 받고

설교를 하기 전에 진통제를 두 배로 먹고 나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자기 생명이 점점 소진해 가고 있는데

그런데도 자기 죽음을 불사하는 가운데 한 말씀 한 말씀을 토해내고

주님의 손을 들어드린 그런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 제가 와서 설교를 한다고 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잘 조절 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그런 두려움이 제 마음 속에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허운석 선교사가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설교를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서 듣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제가 부탁을 드리고 싶다면

허운석 선교사가 했던 설교는 건강한 사람이 했던 설교가 아니라

죽어가는 암 환자가 자기 생명을 다 던져서 쏟아내었던 말씀이었고

어쩌면 마지막 남기고 싶어 했던 그의 유언 같았던 설교였습니다.

 

'설교가 생명력이 있다. 감동적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로

허운석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끝낸다면, 저와 저의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고

유튜브를 듣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저와 저의 가족들이 기도하며, 설교를 듣는 분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서론/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어느 분의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아주 헌신적인 어느 목사님께서, 가족을 데리고 낙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낙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교회는 가난했고, 목사님 가정의 생계마저 어려워서, 목사님이 노동을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도 가난했기 때문에 고구마로 연명을 했는데

사모님께서 영양실조에 걸려서, 전신마비가 오고 말았습니다.

서울에 올라가서 취직을 하고 있던 딸이, 엄마가 전신마비로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수발을 하기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 가기 위해서 차를 타고 가려고 하다가

그만 차를 놓쳐서 그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을 이용해서 육지로 건너가려고 하다가

그만 물 때를 맞추지 못해서, 바다에서 빠져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바닷가에서 죽은 그 딸의 옷과 장화가 발견 되었을 때

그 목사님은 강대상에 그 딸의 장화를 내 던지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제가 자원해서 이 섬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어떻게 저의 가족을 이렇게 대접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화를 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리고 ‘우리가 행한 대로 받는다’, 등

인과응보의 원리를 항상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딸을 잃고,

아내가 영양실조로 누워있는 이 목사님의 이야기는

인과응보로 잘 풀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고 있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소설이나 모든 책에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는 이야기와

인과응보라고 하는 논리로 다 풀어지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욥기서를 읽다보면, 인과응보 적으로 풀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경을 한번 읽으실까요? 욥기서 42장 1~6절 말씀입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오늘 저녁에 제가 <고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 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욥기서 초반부를 읽어보면

욥이 얼마나 훌륭하고 의로운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인지 하나님이 욥을 칭찬합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옆에서, 하나님이 욥 칭찬하는 것을 듣다가

‘욥이 괜히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까. 다 이유가 있어서 이겠지요.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시고 다 잘 되니까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욥이 세상이 다 편안하고 잘 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욥을 한 번 시험해보겠다고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도 좋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건드릴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욥을 시험하지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욥의 재산이 다 빼앗겨지고, 그리고 그의 자녀들이 다 죽고 맙니다.

 

재산과 자식들을 다 빼앗긴 욥이, 그러나 그렇게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욥기서 1장 21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좋은 일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쁜 일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욥이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욥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버리지 않자

다시 한 번 사탄이 하나님께 제안을 합니다.

‘아직 몸이 건강하니까 그렇지요. 몸이 아프다면, 욥도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그렇게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시험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할 때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해 줍니다.

 

‘그런데 그의 건강은 해칠 수 있지만 그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아라.’

 

그래서 사탄이 욥에게 건강의 문제를 주어서

온 몸에 악창이 나고 기왓장으로 온 몸을 긁어내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또 욥을 이렇게 버리고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욥이 처참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 동안 욥을 아주 존경했고 사랑했던 욥의 친구들이 욥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이나 욥의 고통을 보면서,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 후에 그들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이 온 것이 아니냐, 회개하라. 숨겨둔 죄를 찾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도움을 주셔서 회복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욥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지요?

‘회개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회복시켜주실 것이고, 다 잘 될 것이다.

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할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늘 듣는 이야기를, 욥의 친구들이 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고,

아주 바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죄 없이도 망할 수 있는가요?, 죄 없이도 고난이 올 수 있는가요?,

죄 없이도 우리가 잘 못 될 수 있는가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사탄은 전지전능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죄 없는 주님을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섭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아서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하는

죄 없이도 고난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그것을 몰라서, 욥을 계속해서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죄가 있기 때문에 망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왔다’고 하면서

욥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사실 욥의 고난을 통해서, 세 친구들의 무지함과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 없이도 고난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하나님,

죄 없이도 우리를 고통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잘 모른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없이도 고통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을 잘 모른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그러면 일반 종교인이라면,

절에 나가던지 아니면 다른 종교를 나가는 사람들,

그들은 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이론으로, 또 인과응보로 해결이 되는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죄 없이도 고난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라고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빛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은 아주 의롭고 순결한 모습뿐만 아니라

또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있는 사람들이 비겁한 모습도 기록된 그런 모습들도 보여주면서

우리와 비슷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원받기로 선택되어 있던 사람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모세 같은 사람,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같은 분. 그 분들은

참으로 까닭 없이 이유 없이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왜 그들이 고난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게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과 불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다 선택하셨다고 믿습니까?

무슨 조건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택하셨다고 믿습니까?

 

신명기 7장 6절, 7절 말씀을 읽어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1:4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신명기 7장 말씀과 에베소서 1장 4절, 이 두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조건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조건이, 전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외모 때문에 선택하신 것도 아니고,

재능이나 가문이나 아니면 특정 지방도 아닌

그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셨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하는 사실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기준이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시겠어요?

여러분을 선택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본 적 있으세요?

‘하나님 나 좀 뽑아주세요. 하나님 저 좀 선택해주세요!’ 라고

우리가 부탁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일방적으로 사랑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죄로부터 지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일방적으로 사랑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 받았다고 해서.. 여러분, 조금 좋아진 것 있으세요?

선택받았다고, 인생을 사는데, 조금 유리해진 것 있어요? (현실적으론 크게 없어 보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어보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보니까 마찬가지더라고요.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꼭꼭 짚어나가시는데

      요만한 허물도 하나님이 그냥 넘겨 지나가지 않으시고

      꼭 꼭 짚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시고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데..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시면서, 하나님이 나를 택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조금 나를 봐주신 것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 중 하나님이 조금 봐주시고 지내왔어요?

봐주신 것 보다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꼭 나보고 가서 용서를 구하라고 하시고..

나만 회개하라고 하시고..

내가 무슨 세상의 죄를 다 진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꼭 꼭 짚고 가시는지..

지치지도 않으시는, 그렇게도 우리를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억울할 때 많지 않았어요? 저는 억울할 때가 너무 많았는데,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잘못은 내가 안했는데, 그 사람이 했는데,

나보고 회개하라고 하고, 나보고 용서를 구하라고 하시고,

 

내가 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금식하고 철야하라고 그러시고,

이거 택한 백성에게 얼마나 불공평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찾아 오셔서

나를 회개하게 하시면, 하나님이 아직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에게 내게 회개를 촉구하지 않으시고

나를 괴롭히지 않으시고, 내가 회개할 마음도 없고,

내가 금식하고 철야할 마음도 없고, 내가 주님 앞에 엎드릴 마음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손을 놓으셨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사별을 하거나/ 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저주’라고 말하는데,

 

가장 무서운 저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이상 회개를 촉구하지 않으실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실 때에,

그때가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놓아 버릴 때에, 가장 큰 무서운 저주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시고,

 

아직 하나님이 여러분을 괴롭히신다고 믿으시면

아직 하나님이 나를 회개케 하시기 위해서 나를 책망하신다고 생각하시면

기뻐하시고..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고난을 꼭 주시더라고요.

 

▶근데 이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으로,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내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게 만들기도 하고,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하시고, 여러 가지 환란들을 주는데..

 

고난이 우리를 그렇게 끌고 가는데,

욥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도 알았고, 사탄도 고난의 이유를 알았는데..

욥은 전혀 왜 고난을 받는지 몰랐습니다.

 

왜 고난 받는지 모르고 고난을 받았던 욥.

고난을 왜 받는지도 모르고 고난을 받았던 욥이, 얼마나 심한 질병을 앓았는지

성경이 잘 기록을 해주고 있습니다.

 

몸이 가려웠다고 말하고 있고, 얼굴색이 변했다고 말하고 있고

뼈가 쑤시는 관절염에 걸렸다고 말하고 있고, 육체가 썩어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고

악몽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했고, 식욕을 잃어간다고 말했고,

고약한 입 냄새가 난다고 말했고, 체중이 줄어들어가고 피부색이 검게 변한다.. 그랬습니다.

정말 인간으로서 보기 어려운 그런 고통을, 아마 욥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통이 진해지고 힘들어질 때

욥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욥기서 19장 25절에서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에 서실 것이라’

 

이 고난당하는 이 무정한 고난을

언젠가 구속자이신 그 분이 나에게 나를 증거 해주실 것이라고

욥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은 죄 지어서 당하는 고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회개한다고 해도,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할지라도 해결되지 않는

그런 고난이었습니다.

왜냐면 욥이 잘못해서 받는 고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허운석 선교사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에

어떤 예언하는 사람이 저한테 ‘남편인 제가 회개하면, 허운석 선교사가 살고,

제가 회개하지 않으면 허운석 선교사가 죽는다고.. 저보고 회개하라’고 그랬어요.

 

아마 여러분 가운데에도 가족들 중 한 사람이, 아프거나 암에 걸렸거나

질병에 걸렸다면 정말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정말 몸부림을 치면서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회개를 해서라도.. 제가 허운석 선교사를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내가 아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대신 죽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저희 신학교 채플은 통나무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판자를 이어서 의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거기 앉으면 엉덩이가 많이 아프고, 거기 누우면 얼마나 불편한지..

그런 의자인데, 제가 밤마다 거기서 기도하다가/ 자다가/ 기도하다가.. 그랬습니다.

 

‘하나님, 아내 허운석 선교사를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이 기도를 했던지.. 의식이 있을 때 마다 기도를 했어요.

 

얼마나 많이 기도를 했는지, 제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의 기도가 하늘에 사무쳤으니까 이제 기도 그만 해도 된다. 다 응답 되었다. 다 치유 되었다.’

그런 생각이 제 마음 속에 들더라고요.

그런데 결과는, 제가 받은 음성대로 되지 않고, 아내는 그만 먼저 천국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집 사람이 천국으로 떠나고 난 다음에, 제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

‘내가 기도를 하도 많이 했더니, 내 혼에 최면이 걸렸구나.

내가 귀신에 장난에 속았구나. 내가 귀신에 장난에 놀아서

내 기도가 하늘에 사무쳤으니까, 그만해도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후에 욥이 고난에서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욥이 회개해서 회복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그냥 하나님께서 회복해 주셨습니까?

욥이 회개했습니까, 회개 안 했습니까?

 

욥이 특별히 회개 안 했는데도, 하나님이 고난을 처리시켜 주셨고,

(다윗처럼 눈물로 침상을 띠우는 것 같은) 철저한 회개를 하지 않았는데도.. 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회개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제 이야기를 오해해서, 제가 회개하지 말라고 했다고 이야기 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욥이 계속해서 이런 고통을 당할 때에

욥의 친구들이 계속해서 욥을 괴롭히는데

참으로 욥이 괴롭힘을 받고, 또 괴롭힘을 받고 하는 가운데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주는.. 그런 욥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욥에게 까닭 없이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문제 제기

 

 

◑1. 저는 고난이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은,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기회입니다.

여러분 고난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십니까?

 

우리가 왜 고난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고난이, 우리가 주님께 선택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받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우리의 고난이 극심하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13장에서, 예수님이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때 뭐라고 말씀 하셨냐 하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라고 말씀하시며

참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배반당하는 것이 영광입니까, 치욕입니까?

치욕인데, 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그 때에,

예수님은 오히려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4장 13절에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나의 환난이 너에게 영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고난이 너에게 영광이라고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기회입니다.

욥이 만일 자신이 고난 받는 이유를 알았더라면

욥이 어떻게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욥은 고난 받은 이유를 몰랐지만, 그러나 욥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유를 모르면, 더 감당하기 쉬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영광스럽게 생각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게 생각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늘 혼동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 질 때에,

나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 내 육신적인 원함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개척교회 목사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개척교회 교인들이 막 늘어날 때, 축복 받았다..

 

만일에 어떤 분이 사업을 해서 많이 기도하시고 철야하시는데

막 사업이 확장 된다, 또 자녀가 서울대에 입학했다..

 

아니면 또 뭐 건강이 아주 죽을병이 걸렸는데

건강이 회복 되어서 아주 잘 되었다..

 

또 뭐 전에는 아반떼를 타다가 제네시스 자동차로 바꾸었다..

그러면 굉장히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내 눈과 내 귀와 내 감각에 좋은 것이

우리를 주님께 데려갑니까. 주님께 더 친밀히 나를 이끕니까?

 

우리 감각에 좋은, 내 눈과 내 귀와 내 느낌에 좋은 것은

우리를 주님께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하기 쉽습니다.

 

우리를 주님께로 데려가는 것은 고난입니다.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는 교훈을,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고난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축복인가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둑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함인데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저도 얼마 전 까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준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균형 잡힌 것을 풍성한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뭐 자녀들도 잘 되고, 몸도 건강하고, 성도들의 사업도 잘 되고

다 좋고 좋은 것이 풍성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라고 생각(오해)했었습니다.

 

거기에 보태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풍성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풍성한 삶은, 지금 제가 깨닫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으로 충만한 것이.. 풍성한 삶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로 오시면 풍성한 삶이 시작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성도가, 풍성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이라고 하는 것이

다 허울 좋은 허우대요, 우리를 주님께로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13년 12월 25일 밤, KBS방송국에서 손양원 목사님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혹시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나레이션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손양원은 말 하였다.

기독교는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 잘 죽기 위한 종교라고.” 나레이션 중에서

 

오늘이 2014년 1월 21일입니다.

여러분이 2014년에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014년의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교만에 대해서, 욕심에 대해서,

명예에 대해서, 탐욕에 대해서, 음란에 대해서, 죽기를 꿈꾸는

2014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독교는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 잘 죽기 위한 종교” 나레이션 중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여러분의 목숨까지라도 미워하시는 2014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자기 소원을 다 팔아서 주님을 얻기를 원하는 그런 꿈을

여러분이 갖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만일 올 해의 2014년에 가장 큰 꿈이, 가장 큰 소원이

그 분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라면

고난을 통해서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받아들이실 줄로 믿습니다.

 

▶얼마 전 까지 저는, 예수님을 잘 믿고 성경을 잘 알면

인생이 잘 풀린다고 생각하며 살았었어요.

 

그런데 성경을 잘 보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성경에 위인들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그 사람들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찌질이들이었고, 바보들이었고, 못난이들이었더라고요.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욕심으로 눈이 멀어서, 오해하는 사람이 몇 사람 있어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다윗과 모세,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부와 영광이 극에 달하는 것이다.. 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 분들은 인생 초반에 꺾여진 사람들이에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모세 같은 사람들은

인생 초반에 밟히고 밟힌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후반부에 아마 인생을 윤택하게 해 주셨는데,

 

이 땅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했던,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율법을 지켰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한 보상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에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한 그 보상이

치욕스럽게 두 강도들 사이에서 죽으신 예수님이에요.

 

모든 선지자들, 여러분들 다 아시지요? 다 제명에 못 살고 순교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했던 사도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갇혀서 여러 감옥을 전전하다가 목이 잘려져서 죽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찌질이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손해보고 살았던 사람들이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때문에, 자기 인생을 찌질이로 살아도 괜찮습니까?

인생을 찌질이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다 한번 아멘 하실까요?

 

우리 젊은 형제들은 아멘을 잘 못하시는데.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일생을 찌질이로 살아도 좋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인생을 바보처럼 살아도 좋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인생을 손해보고 살아도 좋습니다.

그렇게 고백하시는 2014년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