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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LNCK 2014. 2. 25. 11:01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빌3:7~11               출처보기

 

 

 

◑도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19살의 영국 청년 한 사람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월드컵 기간 동안에 한국을 경험한 것이 인연이 되어서,

줄곧 한국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이런 형태 저런 형태로 인연을 이어오다가

2010년 이후로 ‘이코노미스트’지의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에 살면서, 쓴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이 다니엘 튜더인데, 그가 10년 이상 한국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을 느끼고 배우고 알게 된 결과 쓴 책이 바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입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민주주의 경제대국을

대한민국이 이루어 낸 것은 기적이라는 겁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혹독한 전쟁을 치루고, 먹을 것이 없어서 전전하던 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세계경제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아직 미흡합니다마는, 기어코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 튜더가 보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그렇게 엄청난 기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 전체는 '무한 경쟁'이라는 편만한 분위기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 강박감의 이유들을 보면 다양한데요..

 

①첫째로 꼽히는 이유는 ‘체면 인플레’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면 문화’입니다.

 

도대체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고, 행복할 겨를이 없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아주 커다란 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참 이게 정확한 지적이에요.

 

제가 사는 강릉에서 가끔 산책을 하다 보면, 막 결혼한 영어로 Just Married라고 하지요?

지금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신혼여행을 위한 차를 보게 됩니다.

강릉사람인지, 외지사람인지 그건 알 수가 없는데, 차가 다 비까번쩍하지요.

 

그럴 때마다 기억나는 게,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 갑자기 길거리가 시끄러워요,

그래서 보면 깡통을 줄줄이 쭉 차 뒤에 매달고, Just Married라고 써 가지고

차에다가 꽃을 달고 가는데, 그 차가 꼭 비싼 고급차들이 아닙니다.

 

중고차, 20년~30년 지난 차에도,

‘Just Married’라고 써 붙이고, 차에다가 꽃과 리본을 달고 갑니다.

 

그런 소신이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요 도대체.

우리나라 같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죠?

빚을 내서라도 비까번쩍한 차를 사든지, 아니면 빌려야지요.

 

②두 번째로 이 책에서 꼽은 강박감의 이유는 ‘네오필리아’

새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새것에 대한 애호증입니다.

그래서 아마 핸드폰이 계속 발전하는지 모르겠어요.

 

③세 번째 강박감은 외모.

그래서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성형수술의 열풍.

 

④그리고 또 하나의 강박감이

결혼할 상대를 찾을 때에도 완벽함을 바라고 있는

'엄친아, 엄친딸에 대한 신화', 이게 또 지배하고 있다는 거예요.

 

⑤그리고 산업분야에서, 끊임없는 성취와 경쟁의 선두를 점하기 위한,

성장과 전진에 대한 압박감.

 

⑥그리고 마지막으로 꼽은 게 외국어, 특히 영어에 대한 강박감.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한국사회를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책의 결론을 어떻게 내리느냐 하면,

확고한 목적의식과 치열한 노력을 통해서,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출발해서, 전쟁과 굶주림을 극복하고,

이제 발전되고 안정된, 민주국가를 만들어 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막론하고,

소파에 편히 앉아, 한 잔의 샴페인을 맛볼 자격이 있다.. 는 겁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샴페인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성공했다는 거예요.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는 겁니다.

민주주의 경제대국이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책의 마지막에서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이미 손에 움켜쥔 것 너머에 있는, 행복과 만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기적을 꿈꿔 보기로 하자.”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요, 정신 문화의 기적입니다.)

 

이미 얻은 성공과 성취를,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정신문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에 625를 경험한 연로한 노인들은,

악착같이 일하고 저축해서, 결국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는데,

어떻게 돈을 잘 쓸 줄을 몰라서,

자신은 수도세, 전기세 아껴서 모은 돈을,

그냥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떻게 잘 쓸 줄을 몰랐습니다.

 

▲아! 참, 뭔가 쾌감이 느껴지는 통찰 아닙니까?

또, 우리는 외국에서 알아줄만한 삼성이나 LG나 현대나 기아,

이런 타고난 세계적인 기업들을 갖고 있는 경제선진국입니다.

 

근데 그런 것으로 샴페인을 마시고는 있는데, 기쁨이 없다는 거예요.

기적은 이루었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또 하나의 기적>을 꿈꿔보자는 거예요.  - 설교 제목

<또 하나의 기적>이 뭡니까?

 

“이런 모든 것들이 있어도 주어지지 않는,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한 번 찾아보자.”

그러니까 다니엘 튜더는 ‘참 기쁨, 참 행복을 기적’이라고, 그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참 이 말이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까?

참 기쁨은 기적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민주주의 경제대국의 기적을 넘어서는

만족과 행복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 뭔지, 분명히 성경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나 참 기쁨을 기적으로 보고 있는, 경제대국과

민주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모든 면에서, 이룰 만큼 이루었는데도

아직도 만족하고 행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만족과 행복이라는 게 이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기적이라고 보는 그의 insight는

참 바람직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기쁨’입니다.

 

빌3:1절에서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3:3절에서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야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체를 신뢰한다’는 게 뭡니까?   3:3

육체의 어떠어떠한 조건으로 기뻐하려고 하는 것이.. 육체를 신뢰하는 겁니다.

 

우리가 앞에서 얘기한 체면이라든지, 새것을 좋아한다든지, 외모라든지

그리고 무한성취, 산업에 있어서의 업계 동종 경쟁력 1위.

 

만약 이런 것으로만 만족한다면.. 이게 ‘육체를 신뢰하는’ 겁니다.

 

<육체를 신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기쁨>과

<주 안에서의 기쁨>을

지금 사도바울이 대치시키고 있는 가운데,

본문 말씀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3:1

기쁨은, 신앙의 좌표 같은 거예요. 무슨 의미입니까?

 

내 신앙이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떤 정도의 수준에 와 있고,

내 인격이 어떤 수준의 인격인가를 알려면,

내가 지금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고, 거꾸로 말하면 내가 무엇으로 지금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기분이 안 좋은가를 보면 된다는 겁니다.

 

기쁨이 ‘영적 체온계’와 같은 거예요.

 

본문 앞에서 우리가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들과 달리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성령 안에서 봉사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성령 안에서 봉사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빌3:3

봉사라는 말의 뜻이 그래요, 예배드린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하나님과 재물이 동시에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지금 돈이 없어서 기분이 나쁘잖아요? 걱정이 많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현실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기쁨의 이유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의 과제, 기적을 이뤄야 된다. (서두의 책에 근거해서 ‘기적’이며, 설교 제목입니다.)

어떻게 기적을 이루냐?

 

육체에 근거된 그 어떤 조건의 의해서 얻는 그것은 기쁨과 무관하고,

육체와 상관없는 기쁨을 얻어야 된다고 하니까,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뭡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 기뻐합니다. 3:1

 

주님은 보이지도 않아요, 만져지지도 않아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주님 때문에 기쁨이 주어진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참 기적, 기쁨은 또 하나의 기적이라는 거예요.

이 또 하나의 기적을 어떻게 실제로 나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겠느냐? 얘기를 합니다.

 

◑1. 배설물로 '버려야' .. 기쁨이 옵니다.

 

여기서, 8절 하반절부터 보면 이런 말씀하세요,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 실제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참 기쁨의 기적이 내게 일어난다는 겁니다, 기쁨의 기적이.

 

근데 두 과정으로 이루어졌어요. - ‘버리는’ 것과, ‘아는’ 것입니다.

 

먼저, 육체에 근거 되어서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겨야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 튜더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이것(체면)에 마음을 쓰고 있었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는 거예요.

 

그리고 외모, 새것. 그러니까 뭐 명품백도 체면과 새것과 연결이 되죠?

새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바꿔야 되는 것이고, 누구하고도 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이 세상의 누군가를 이겨야 돼요.

 

이런 모든, 육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조건들에 대해서 배설물처럼 여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내가 지금 하아! 정말 돈이 이렇게 없어도 되겠는가, 정말 기분이 나쁘고 걱정이 된다,

이럴 때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은,

내 마음 안에 지금 돈이 들어와 있잖아요, 마음은 비어 있습니다.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돈 때문에 걱정이 하고 기분이 안 좋고 기쁘지 않다면,

돈이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내 마음 안에 둔 어떤 아가씨가

실제로 내 애인이 되지 않을 때, 그 아가씨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걸 얻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근데 우리가 배설물로 여긴다는 건, 마음 안에 돈에 대한 생각이 가득 들어왔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걱정합니다.

 

이때, 깜짝 놀라라는 거예요. 왜 깜짝 놀랍니까?

‘어! 내가 시궁창의 오물 같은 것을 내 마음 안에 담고 있구나.’

내 몸에다가 시궁창 물을 담았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배설물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내 외모가 지금 이렇게 못생겨가지고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내 마음 안에 사람 인분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믿으라는 얘기에요.

 

내 외모가 잘생겼건 못 생겼건, 그건 참 기쁨과 참 만족과 아무상관이 없는데,

그걸 붙잡고 마음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것은

인분을 입에/몸에 담고 있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해롭고 배설물로 버리라는 거예요, 마음에서 버리라는 얘기입니다.

아! 이거 이럴 수 있을까요?

 

여러분, 돈이 얼마나 좋아요?

그거 조금 더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근데 그게 배설물이래요, 배설물.

 

이렇게 해서, ‘세상에 대해서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육체에 근거 되어진 기쁨의 조건이라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기라는 거예요.

 

 

◑2. 그리스도를 ‘알아야!’ 기쁨이 옵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려면 나타나는 일이

그리스도를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부활과 능력에 대해서 알고,

그의 고난에 참여함이 무엇인가를 알고,’ 3:10

그럼으로써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자!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지금 그리스도가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승천해 계세요.

 

그 승천해 계신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지금 하늘에서 우리 지금도 말씀을 전하고 듣고 하는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마주대하는 아들의 위치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우리도 그 아들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마주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느껴지는 거예요, 내 손에 쥔 돈이 느껴지듯이.

 

근데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자리에 우리가 마음이 서게 되면서,

아버지를 느끼게 되니까 거기서 기쁨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부활과 그 능력을 안다’는 것은 무슨 얘기냐? 3:10

점강법을 쓴 거예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부활의 사건, 부활의 순간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지점으로 내려옵니다.

 

그래 부활은 뭐냐?

새사람 됨을 내가 느끼는 겁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다는 거예요.

 

새사람이 뭡니까?

이전에는, 돈이 많이 들어오면 좋아했고 돈이 적게 들어오면 슬퍼했습니다.

 

명품백 하나 생기면 기뻐했고,

명품백 못 들면 다른 사람들 눈에 창피해서 제대로 행동을 못했어요.

자신감이라고는 없었어요.

 

근데,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내게 임하면서 어떻게 변했느냐 하면,

아무상관이 없는 겁니다.

 

체면도 상관없고, 외모도 상관없고,

그런 것에 아무 신경을 안 쓰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새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완전한 자유를 말합니다, 이 부활이라는 것은.

 

▲그리고 ‘고난에 참여함을 안다’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3:10

(아까 배설물로 여긴다는 얘기와 같은 맥락이에요.)

 

주님이 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우리 죄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말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가 고난 받은 것이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이사야서에서 얘기가 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가 뭡니까?

육체를 신뢰한 거예요, 재물을 섬긴 거예요, 재물이 있으면 기쁠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외모가 예쁘면 기쁠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새것을 사면 기쁠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영어를 잘하면 기쁠 거라고 믿는 거예요.

 

이게 다 죄라는 거예요,

이게 다 오물을 입에 담고 있는 그런 상태라는 거예요.

내 마음이 오물을 담고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겁니다.

깨끗하게 하시려고 고난 받으시면서 피 흘리셨습니다.

 

근데 이렇게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알아서

새사람으로 자유함을 느끼고, 그리고 고난에 참여함을 알아서,

이 세상 것들이 마음에 담기에는 다 배설물 같다는 걸 느낄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의 죽음과 같은 형편이 되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3:10

죽음에서 같은 자가 되었다,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얘기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그 순간에 우리가 연합을 하게 되면,

이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 부활의 능력을 알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가장 고상한 지식, 가장 고상하다는 건 가장 완벽한 기쁨과 만족을

내게 가져다주는 그리스도를 알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가지 하라는 거예요.

주님의 죽음에 연합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고난의 의미도 알아서,

내가 이 세상 것들이 배설물인 것을 내 마음속으로 깨닫게 되고,

이상한 기적이 일어나요.

 

내가 정말로 이 세상 것 때문에 걱정하다가, 깜짝 놀라면서

아하~ 이건 진짜 더러운 거라는 걸, 내가 느끼게 됩니다.

내 마음이 그걸 걱정하는 것이.

 

그리고 부활의 능력에 힘입어서 새사람으로서 살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기쁨의 대상이 되는 그런 새사람.

 

그리고 그리스도를 앎으로서, 진짜 하늘에 있는 마음인 것처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그런 삶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는 도대체 어디다 쓰는 거냐?

 

그 다니엘 튜더가 열거한 것들 있지 않습니까?

 

이런 모든 육체적인 조건들, 경제대국이 된 것, 내 외모, 아니면 선천적인 조건

IQ라든지, 재능이라든지 이런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이게 내 참 기쁨에 아무 관계도 없고,

기쁨이라는 기적처럼 육체와 연관된 모든 것을 초월해서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면 이 육체의 소용은 뭐냐?

 

육체와 연관된 것들은 신뢰하는 게 아니에요.

거기서부터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쓰임을 받는 게 아닙니다.

 

육체와 연관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재료들입니다.

우리의 기쁨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위한 재료들이지,

우리의 기쁨을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육체와 연관된 건 다~ 하나님의 손에 쥐어지면 뜻에 맞게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올바르게 쓰여 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괜히 내 마음으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더러워져 버리고 마는 거예요.

배설물처럼 돼 버리고 마는 겁니다.

 

▲이 세상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만 살면 돼요.

이 세상의 삶을 위해서 애쓰지 마세요.

 

우리가 애써야 될 것은, 날마다 주님의 죽음에 연합함으로써,

이 세상 것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겨서

마음에서부터 내팽개쳐버리고, 그리고 계속해서 부활 얘기가 나오는데,

하늘을 향하여 마음을 고정시켜 가지고,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알고,

주님의 고난의 의미가 내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을

매일 반복하면 되는 겁니다.

 

우린 그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또 하나의 기적인 참 기쁨과 만족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민주주의 경제대국을 이루어도 참 기쁨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기적으로서의 참 기쁨이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