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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LNCK 2014. 3. 6. 11:28

◈복 있는 사람은?              히13:5~6             설교 녹취, 출처

 

 

◑하나님을 가지는 복

 

사실 어젯밤, 교회에서 저(강사)를 위해 마련해주신 숙소에서

오늘 아침 예배를 위해서 자정이 될 시간까지, 제가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제가 바로 2013년 11월 30일,

그 마지막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이,

우리 ‘순회선교단’을 위해 그 마지막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최종 응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태프들과 동역자들이, 어제 밤 12시까지

어떤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질까 하는 기대를 걸고

모두 저의 입에서 전해 지는 '하나님의 응답의 멋진 소식'을 듣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냥 하루인 11월 30일이었지만,

제게는 어젯밤 12시 전 까지는, 제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는

어쩌면 초조하고 또 너무 간절히 기다린,

거의 응답을 하셨는데, 마지막 과정을 남겨놓고 있는 ‘한 건의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해 내내 제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아주 해결 되어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평생에 어느 때나, 하나님은 신실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해오셨고

이번 일 만큼은 꼭 지키셔야 하는 그런 응답이었는데

12시 자정 땡 하는 순간 까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러면, 상황은, 믿음을 가지고 사역하는 사람은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다른 대책을 세우면 믿음이 아니잖아요.

 

대책이 전혀 없는 채로 오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을 혹시 경험해 보셨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속이 상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이걸 어떡하지..’ 하는, 그런 난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요,

 

▲제가 그러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부를 이름이 주님밖에 없으니까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저를 위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저를 사랑하시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이심을 제가 압니다.

 

그런데 약속을 분명히 주셔서, 다 기도한 일이었고,

1년을 순종해왔고, 그 마지막만 이렇게 멋있게 마무리를 하시면,

주님도 앞으로 주님 사업에 상당히 도움이 되실 것이고,

그리고 또 얼마나 멋있는 피날레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능력이 모자라시는 것도 아니요,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요,

주님이 명령하신 일인데 왜,

왜 어제, 자정까지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차마 문장을 또박 또박 갖추어서 말을 하려니, 꼭 대드는 것 같고,

말을 안 하려니, 속이 막 그렇고,

 

그럴 때면 제가 참, 저의 지각을 초월해서, 주님 앞에 드리는 찬양이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내 상황과 감정과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아는 어떤 사실보다 더 큰 사실은

‘주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주님이 그렇게 그저 감정이나 다른 무엇은 그냥 완전히 내려앉았는데

주님을 바라보고 그 고백을 하는 순간

주님께서 제 마음 안에 이렇게 이런 깨달음으로

주님 마음에 내면의 음성으로 들려주셨습니다.

 

‘너 어제 11월 30일 그 사건 해결되는 그 응답이 더 필요하니,

아니면 내가 더 필요하니?’

 

뭐 꼭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시는 그런..

주님이 가끔 그런 식으로, 제게 질문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물으시는 거예요. ↑

그런데 이 말이 제 심령 안에서, 갑자기 울컥 하면서 감동이 오는 거예요...

과거의 일들이 불현듯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다섯이 있는데 지금은 다 컸습니다.

자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 제가 늘 밖으로만 돌아다니면

워낙 그때는 (뭐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에게 용돈 한 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날 즈음, 제가 (순회선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게 되면,

아이들이 막 열렬한 환영이 벌어집니다.

 

시골 그 소나무 숲에 있던 저의 작은 집으로 제가 돌아오면,

동네 개도 짖고 막 열렬한 환영을 하는데

우리 애들 다섯이 막 아버지 왔다고 달려옵니다.

 

제가 방 안으로 들어 설 때까지, 그 열렬한 환영식이 다 끝나고 나면

애들의 눈은 다 제 손을 향하고 있어요.

 

아버지 손에 간식 하나, 사탕 하나 못 먹고 지내는 아이들에게

토요일 날 어쩌다가 집에 오는 제 손에 들려오는 간식이야말로

이것은 그냥 기쁨 자체입니다.

 

열렬한 환영을 했다가, 제가 가방을 내려놓는데,

아이들이 가방을 눈치 있게 살피다가, 와락 달려들어서 열었어요.

 

그런데 빨래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때 아이들의 그 표정, 저는 지금도 그 아픔이 사라지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간식 하나 못 사주는 제 형편’..

또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고, 내 손에 들린 간식을 기다렸구나.’

이런 생각이 씁쓸한 거예요.

 

물론 아이들의 심정은 이해를 하지만, 꼭 제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늘 하나님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일, 내 입장에서는 너무 다급하고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어요.

 

그게 안 되니까, 저는 마음이 확 가라앉고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주님이 제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있으니 충분하지 않니?

네가 생각하고 네가 다급했던 그 일,

네가 바라던 방법으로 되지는 않았지만, 너의 시간, 그거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없는 것은 아니잖아.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있잖아.

내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니야?’

 

제가 울컥 하면서 은혜가 되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럼요, 맞지요. 주님.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이 사실보다, 더 큰일은 없잖아요.

맞아요. 주님. 주님 나와 함께 계시지요.’

 

▲여러분 이 예배 가운데 모든 것이 다 갖춰졌고, 너무 멋지게 진행되는데

정말 주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뭐 하는 것이지요?

 

성경의 지식도 충만하고, 수많은 체험도 했고, 대단한 열심히 봉사도 하는데,

만약 주님이 함께할 수 없다면

인간의 감동도 있고,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주님이 만약 함께 할 수 없다면..

그건 무슨 의미죠? 우리는 뭐 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지요?

 

정말 감사한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한 번 경험하게 하시고

또 오늘 아침 다시 예배 가운데에 주여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 위해 주님이 함께 하심이 결론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런 갈망을 가진 성도들과 함께, 오늘 말씀을 나누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복을 빌어주시며, 살아계시고 참 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 하시면

모든 상황과 이론이 그 앞에서, 눈 녹듯이 아침 안개 사라지듯 사라져야 합니다.

 

이게 우리의 믿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참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복음이 되어 오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정말 당신의 그 놀라운 복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안타깝고 복이 없는 인생을 두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1. 도울 자가 없는 사람.

천신만고 어려움을 겪고는, 마지막 턱에 닿도록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누가 한 번만 붙들어주기만 하면,

 

누가 한 번만 밀어주기만 하면, 누가 한 번만 들어 올려 주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 까지

턱이 닿도록 왔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나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세상에 여러 가지 안타까운 일이 많지만, 이것처럼 안타까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불굴의 자기 의지로, 남다른 기회가 주어진 사람인데

그 마지막 끝을 연결시켜줄만한 도울 사람이 없는 사람,

그래서 털썩 주저앉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안타깝고 복이 없는 인생입니다.

 

▲2. 두 번째는 끝이 안 좋은 사람.

참 출발 좋고, 승승장구하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무성한 여름 풀처럼

대단하게 모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잘 나갔는데

그만 끝이 안 좋아서, 한 방에 훅 이렇게 가버린 사람. 너무나 안타까운 사람이죠.

 

이것을 철학관(점집) 용어로 말하면 ‘운이 안 따랐다’ 이렇게 이야기를 보통 합니다.

 

사람, 인생이라고 하는 것. 내가 뭐 다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이 교만할 것이 없잖아요. 그렇죠. 가는 세월 막을 길이 없습니다.

염려를 아무리 하고, 대단한 학식을 쌓아도,

별 짓 다 해도, 내 목숨 한 자를, 한 길이를 늘일 수 없습니다.

 

나이 40만 되면 ‘불혹’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유혹 받을 것도, 유혹 줄 것도 없다’는 말이지요.

 

깊이 생각할 것도 없고. 그래서 인물의 평준화가 일어난다 그 말입니다.

좀 반반하게 세속적으로 생긴 얼굴 가지고

잘난 척 하고 까부는 것들은.. 조금만 기다리라 이거예요.

 

나이 40만 넘으면, 그 놈이 그 놈이고, 그놈이 그 놈입니다.

화려한 꽃일수록 시들면 추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할미꽃은 시들어도 별로 실망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할미꽃이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조금 외모에 자신이 없는 분들은, 조금만 기다리고 버티세요.

나이 40만 되면 외모의 평준화가 일어납니다.

악을 쓰고 주름 펴는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학벌에 미쳐서 난리를 쳐도, 나이 50만 지나면

좋은 학벌일수록 명퇴순위 1위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건강, 아무리 대단히 준비하시고 날마다 겨울에 냉수마찰하고 별 짓 다 해도

근육을 잘 단련하셔서 그냥 20대 근육을 갖고 있어도,

나이 육십만 되면 건강에 평준화가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 뭐 해부학이니 뭐 의학지식 없어도 관절이 어디 있는지 다 알아요.

왜냐면 관절 마디마디 마다 소리를 질러요.

‘나도 관절이야’ 이러면서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나이 육십만 되면, 몸에 온 마디가(관절이) 다 이렇게 많구나 하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이 무능한 인생,

그리고 앞을 아무도 누구도 자기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 불안한 미래, 무능한 인생이요 불안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에게

1) 나를 도울 자가 없다. 2) 끝이 안 좋다. 불안하다.

이러면 이거야말로 진짜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모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인생이 정말 불행하다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속지 마셔야 합니다. 내가 지금 남보다 조금 잘 나간다고,

내가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해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이 나의 도우심이 되는 복

 

▲그러면 정말 복 받은 인생이라고 하면 다른 것 뭐가 있겠습니까.

결론으로 말하자면,

나를 돕되, 내게 주어진 모든 기회가 정말 복이 되도록 도울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가진, 그런 도움을 가진 누군가, 도울 자가 있는 사람입니다.

 

잠깐 짧은 인생에 다른 해답은 없지만

그래도 같은 인생을 살면서 도울 사람이 없는,

도와줄 책임을 가지고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사람을

‘고아’라고 말하고 ‘과부’라고 말 합니다.

 

고아 같고 과부 같은 영혼의 모습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잠시 웃는 웃음을 짓지만.. 거기엔 늘 눈물이 묻어납니다.

 

아무리 호기를 부려도,

우리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면 이런 인생에 우리에게 ‘복이 있도다.’ 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속이는 축복이 아니라면, 진정한 복이 되려면

그것은 나를 돕는 이가, 아주 정말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든든한 백을 가지고, 든든히 도울 자를 모시고 있다..

이러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복 받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나의 미래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고

잘 되면 높이 올라가면 점점 더 불안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도 확실한, 죽음도 흔들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담대함과 확신으로 승리를 보장한 이런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

이러면 이 사람이야말로 하루를 살아도, 영원을 사는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진정 복된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복을 원하시는 분은 아멘 하십시다. 아멘.

믿음대로 될 지어다. 아멘.

 

▲자 그런데 놀랍게도 히브리서 13장 5~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이처럼 사랑하시되 당신 자신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누가 계시다.’

바로 살아계시고 참 되신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이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나를 생명 다해 사랑하시는 그 분이 만약에 나를 돕는자시다.

그러면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말. 오늘도 주여, 라고 부르는 그 고백하는 그분.

그 하나님을 나의 든든한 백으로, 지원자로, 주인으로 이렇게 붙들고 살면서

히브리서 13장 5~6절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 복된 사람입니다.

 

 

 

◑2.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의 복

 

▲디모데후서 4:7~8절을 보면, 거기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지금 가장 절망적 상황에서, 구원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 들어앉아서

자기의 마지막 생애를,

남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생명을 빼앗길 순교를 눈앞에 두고 있는 때에 외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 앞에서 뭐라고 당당히 외치는가 하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도다’ 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복 있는 사람’ 아닙니까.

자기 죽음을 코앞에 앞둔 사람이,

‘나는 내 사명을 다 마쳤고, 내 믿음도 타협 없이 잘 지켰다.

이제 내 앞에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

 

여러분, 말이 쉽지,

우리 가운데, 자기 임종의 시간에,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렇게 자기 죽음을, 가슴 뿌듯하게 맞이할 수 있으려면,

매일 잠들기 전에, 위 구절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하루하루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키는..

그런 진정한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도,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는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심판자이시고, 대 주제이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입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