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겉옷 왕하2:1~25 출처보기
The Mantle of Elijah, By David Wilkerson January 17, 2000
◑서론
열왕기하 2장은 구약 전체에 걸쳐 가장 극적인 구절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노년의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종 엘리사에 관한 기적적인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지상에서의 그의 사역이 끝났다는 사실을 이미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는 요단강을 건너서 그를 영광스러운 곳으로 데려다 줄
하늘의 병거를 탈 곳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 노년의 선지자는 벧엘과 여리고성을 방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그의 종 엘리사에게 동행을 제안했습니다.
두 선지자는 제가 ‘수학(배우는)여행’이라고 보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두 성을 둘러본 후에 그들은 요단강가에 다다랐습니다.
엘리야가 그의 겉옷, 넓고 헐렁한 가운을 벗어서 그것으로 물을 내리쳤습니다.
기적적으로 물이 갈라졌습니다. 두 사람은 마른 땅 위로 강을 건넜습니다(왕하 2:8).
반대편에 도착했을 때 엘리야가 그의 종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9절)
주저없이 젊은 종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9절).”
순간 엘리야는 엘리야의 대답에 놀란 듯 보였습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10절).
그리고는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10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불수레가 나타나 두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순식간에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소리쳤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12절).
엘리야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겉옷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옷을 잡아 찢고 엘리야의 겉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요단강으로 돌아와 스승이 했던 그대로 행했습니다.
겉옷을 벗어서 그것으로 물을 쳤습니다.
그 즉시 물은 둘로 갈라졌고 엘리사는 마른 땅 위로 강을 건넜습니다.
이와 같이 젊은 선지자의 비범한 사역은 시작됩니다.
▶본문 왕하2장에 나오는 사건은 정말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세대 한세대 한세대와 더불어
더 크고 더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새로운 세대는, 주님께 그 세대만의 성령을 경험하도록,
주님의 능력을 그 세대에 부여 받도록 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위해 홍해를 가르셨고
여호수아를 위해 요단강을 가르셨다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기사를 행하시도록 요청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로 그것이 정확히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과거에 보여주신 모든 것을 능가하는
기적을 행하고 더 놀라운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갈망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엘리사처럼 성령을 갑절이나 구하도록 우리의 믿음을 키우고
넓히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구약의 배경에서 엘리야는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의 전형(모형)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너희는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나의 기름부음, 능력, 권세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나의 영으로 부어주겠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 이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 제가 가졌던 첫 의문은
왜 엘리야는 엘리사를 회리바람 여행에 대동했는가? ..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노령의 선지자는 벧엘과 여리고성으로의 여행에, 그의 종이 함께 가기를 원했을까요?
분명 그 여행은 엘리야에게 감상적인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을 여행이었으니까요.
이 지혜로운 노년의 선지자는 엘리사에게(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그가(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기름부으심을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벧엘은 위대한 영적 유산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야곱이 희생제사를 그곳에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사건인가가 그 도시에 일어났습니다.
여로보암이 그곳에 금송아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곧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세대 전체가 회의론, 조롱과 비웃음에 빠져서
그 자녀들의 세대에 벧엘의 영적 뿌리의 흔적을 하나도 남겨주지 못했습니다.
사태는 너무 심각했습니다.
이 성읍 사람들은, 아마도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루 정도가 지난 다음 엘리사가
벧엘로 다시 왔을 때, 마을의 젊은 아이들이 그를 조롱하려고 달려 나왔습니다.
두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는 동안 엘리야는
아마도 완전히 타락한 사회를 향한 자기 종 엘리사의 공포와 분노를 눈치챘을 것입니다.
엘리야도, 자신의 생전에 조롱하고 비웃는 자들을 대면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갈멜산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새로운 세대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위대한 초자연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세대의 젊은이들은 엘리야가 싸웠던 우상의 제사장들보다도
훨씬 더 완고하며 사악했던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 때 엘리야가, 그의 종을 시험하기로 결심했다고 믿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렇게 제안했을 것입니다.
‘엘리사, 자네가 여기에 남아서 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겠나?
자네도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고 훈련도 잘 받아왔으니까.
자네는 벧엘의 위대한 영적 유산을 회복시킬 수 있을 걸세.’
저는 엘리사가 경청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는 자기의 스승이 엄청난 능력의 분별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젊은 선지자가,
즉시 다른 선지자의 이야기를 회상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무명의 선지자를 벧엘로 보내셔서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대한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여로보암, 당신의 금송아지가 무너질 것이오.’
그리고 즉시 그 우상은 제단에서 떨어져서 재를 쏟아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 광경을 보고 선지자를 잡으라고 팔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손이 마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명의 선지자의 사역을 또 다른 초자연적인 역사로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선지자는 나중에 유혹에 넘어갔고, 영적 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타협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벧엘의 상황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그곳의 악한 영혼들을 대항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줄곧 알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엘리사 자신이 그렇게 사악한 도시에서 악을 대면하기 전에
성령의 더 크고 위대한 능력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왕하 2:6)
그리고 나서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벧엘이, 겨우 한 세대 만에 사악해져 버린
미국과 같은 사회를 상징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들도 조롱자와 비웃는 자들, 정욕과 우상숭배, 동성애에 빠져버린
정욕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는 엘리야나 엘리사가 대면했던 어떤 사회보다도 더욱 악합니다.
그 거룩한 선지자들은 아이들이 조롱하고 비웃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아이들은 상해를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벧엘의 청소년들처럼 오만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죄의식이나 슬픔없이 살인을 자행하고
부모나, 학교친구, 아무 죄 없는 낯선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 악한 시대에 타락한 세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갑절이나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어떤 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름부으심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남은 자가 이 시대에 엘리사와 같이 일어나
‘오 주님! 갑절의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라고 외치는 일이 필요합니다.
◑2. 이 여행은, 엘리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후세대를 교훈하기 위한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계속해서 ‘유쾌한’ 곳이라는 뜻을 가진 여리고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성읍은 황무하고 메마르며 생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나무, 풀밭, 과일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말라죽었습니다.
독이든 물(a stream of poison)이 물 근원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죽고 메마른 기독교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셨던 교회말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엘리야는 여리고성에 선지자 학교를 세웠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그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젊은 선지자 생도들 중 몇이 엘리사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왕하 2:5)’
엘리사는 급하게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잠잠하라.’
여기 이 건장한 하나님의 젊은이들은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적인 이상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그날 승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 전국에서 학교를 짓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며,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섬김의 사역을 하도록 보내어질, 한 세대의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들에게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 기름부으심, 그리고 권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다음 날 이 젊은 사역자들은 성령께서 엘리야를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던지셨을까봐
엘리사에게 가서 엘리야를 찾아보게 해 달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그들은 성령의 방법과 역사하심에 완전히 무지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보고, 설교하고, 말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아마도 그들과 엘리사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육적인 사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그의 종이 분별하였는지 틀림없이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노년의 선지자는 그의 젊은 제자를 시험합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제안한 듯 합니다.
‘엘리사, 자네는 다음 세대의 사역을 보고 있네.
그러나 자네도 분명히 그들 안에 성령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고 있겠지.
여기 남아서 이 사역자들에게 성령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 어떻겠나?
자네는 이 메마르고 죽은, 형식적인 교회를 깨우기에 딱 적합한 사람일세.’
▶그러나 엘리사는 이들을 돌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의 강력한 사역의 추억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엘리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퍼부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스승 엘리야는 하루에 몇 시간 이나 기도했나요?
엘리야는 주님의 법을 공부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드렸나요?
엘리야는 어떤 방법을 사용했나요? 어떤 원리를 그는 가르쳤나요?
엘리사는 과거의 기적과 부흥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모든 시간을 쓰다가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젊은 사역자들은 엘리야가 일으켰던 기적을 다시 창조하기를 기대하면서
작은 엘리야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과 권세 없이 그리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와 똑 같은 올무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부흥과 운동들을 공부하면서
하늘로부터 불을 내릴 방법들을 발견하기 위한 열쇠를 찾습니다.
제 기억이 닿는 한 교회는 옛날의 성령 부흥을 계속해서 외쳐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던 어떤 것을
다시 창조하시기를 바라는 열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의 스승에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머무르지 않겠나이다)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2절, 4절, 6절).
그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고는
이 죽은 메마른 교회의 어떤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행한 위대한 일들에 의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승이 가졌던 성령의 능력보다, 더 작은 능력을 가지고
어떤 사역을 위해 정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선조들의 믿음, 과거의 영적 거인들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것보다도, 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저는 이제 요단강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왜 엘리야는 고집스럽게 기적을 통해 요단강을 건넜을까요?
요단강은 깊고, 넓은 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물이 불었다는 이야기를 성경이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강하고 젊은 50여명의 선지자 생도들이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세 시간이면, 뗏목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엘리야가, 모세로부터, 여호수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재현되는 그 기적적인 역사가
모두 생생한 역사였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고 믿습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도전을 주기 원했던 것입니다.
"자네가 사역을 시작할 때, 자네가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전하게 될 때,
자네는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행하신 일을 증거해야 하네.
나는 곧 이 땅에서 사라질 걸세. 그리고 내일 자네가 이 강에 되돌아올 때
나는 자네가 우리가 오늘 이 강을 건넌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강을 건너 돌아가기를 바라네.
하나님께서 자네의 삶에 행하실 기적을 믿게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를 위한 능력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일어난 경이로운 기사들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러는 내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위해 더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있단다.
나는 너의 삶에 기적을 행하기를 원한다. 너의 가정을 변화시키고,
너의 깨진 결혼생활을 고치며, 너의 사랑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너의 홍해를 대면할 것이다. 너의 요단강을 대면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해 그 강을 가르기를 원한다.’
◑3. 요단강을 건넜을 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노년의 선지자는 알라딘의 램프처럼,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라고 제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경건한 믿음의 선생으로서 그 제안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시험이었습니다.
그는 이 젊은 제자가 어떻게 대답하는지 보기 원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세상이 완전히 뒤틀렸어요. 시간이 갈수록 혼돈만 더해가는군요.
저는 이 전투에 지쳤어요. 마귀의 괴롬힘이 지긋지긋해요.
지금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 같아요. 엘리야, 나를 데려가 주세요.
저도 본향으로 돌아가기 원해요. 분명 그 병거에는 제가 탈 자리가 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외침은
"주님, 어서 오십시오"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왜 거기 서서 바라보고 있느냐? 가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라.’
▶엘리사는 당시 자신의 위치가 주님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벧엘의 반역하는 자녀들과
여리고의 황무한 교회를 위해 울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는 이 땅에 남아서
악한 세상과 죽은 종교적 시스템을 대면하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저는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믿습니다.
‘엘리야여, 당신은 제게 이 세상과 교회의 상황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제가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선지자보다도
더 많은 능력과 기름부으심과 권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셨던 성령의 갑절을 요청합니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 2:9).’
엘리야가 듣고는 대답했습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10절).
그런데 정확히 누구에게 이 일이 어렵단 말입니까?
하나님께 이 일이 어렵다는 말입니까? 죽은 자를 일으키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했던 엘리야에게 어렵다는 말입니까?
아니 이 일은 엘리사에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얻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일부를 종에게 부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성령을 사람에게 부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10절)’
엘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자네가 내가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의지하는 한
자네 안에 아무 특별한 역사도 이루어 주실 수 없다네.
자네는 내가 이제 없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네. 자네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엘리사. 내게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셨던 주님을 의지하게.
주께서 자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것일세.’
▶그의 스승이 갑자기 하늘의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을 때
엘리사는 그의 세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책임을 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요단강가에 다시 섰을 때, 그는 물을 내리 쳤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외친 말은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였습니다.
그 젊은 선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저의 영적인 아비들은 이제 모두 죽거나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 비참한 순간은 당신께서 지금까지 주신 것 훨씬 이상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 다시 역사하시옵소서. 이번에는 저를 통해 하시옵소서.
저는 더 큰 당신의 성령으로 무장되어야만 합니다.’
◑4. 엘리사는 엘리야와 함께 걸어왔던 길을 거쳐, 두 성읍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후 엘리사는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전진했습니다.
▶1. 그가 첫 번째 다다른 곳은 여리고 이었습니다.
50여명의 선지자 생도들은 즉시 하나님의 손길이 그에게 임한 것을 인식했습니다.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왕하 2:15).
이 숨겨진 종이 성령의 더 깊은 능력과 권세가운데로 끌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명확했습니다.
젊은 선지자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왕하 2:19).
그들은 "물속에 독이 있습니다. 그 독이 모든 것을 죽게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50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독이 여리고성을 죽음으로 이끌지 못하도록 막아설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사야에 의하면 이 ‘유쾌한’(여리고의 말 뜻) 곳은, 사역을 상징합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사람이라"(사 5:7).
또한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여리고성의 독이 든 물’은 그 성읍의 강단에서 전파되는 오염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다루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설교는 부패한 마음에서 나온 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 없는 육을 좇는 설교는, 백성들 사이에 영적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여리고성의 독을 치료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물의 근원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엘리사가 한 것입니다.
그는 깨끗한 새 그릇에 소금을 가득채워 성읍의 물 근원에 부었습니다.
곧 모든 물이 깨끗케 되었고 생명이 사방에 피어났습니다.
물론 엘리사가 사용한 소금은 순결하고 거룩한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그릇은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고 성령의 정결케 하는
불로 성화된, 순전한 복음을 전파할 준비가 된 사역자들입니다.
여러분, 오직 이러한 것들만이 하나님의 전으로 밀려드는 악의 물결을 막을 수 있습니다.
거룩함 가운데 행하고 신선한 기름부으심으로 순전한 말씀을 전하는
깨끗하고 순전한 그릇 말입니다.
▶2. 이제 엘리사는 벧엘로 돌아갔습니다.
타락한 젊은 세대가 있는 부패한 세상 말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엘리사는 조롱을 당했습니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왕하 2:23-24).
얼마나 비참한 광경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곰의 공격을 받도록 허락하셨다니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젊은 아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 ‘젊은 청년’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사가 조롱 당한 것이 화가 나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들의 죽음을 야기시켰습니까?
아닙니다. 이 경건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과 권세 아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조롱하던 젊은이들은 말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의 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젊은이들은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 들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엘리야를 조롱하며 ‘올라가라, 대머리여’라는 외침 가운데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비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거룩한 역사에 관한 진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엘리사를 향한 행동은,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5. 오늘날 젊은 목사들은 벧엘의 사역자들이
했던 것과 똑 같은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타락한 교회를 참아오셨습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안락한 제단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엘리야를 포함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 도시의 우상숭배와 사악함을 참으실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심판을 선포하시며
갑절의 성령을 받은 선지자를 이 사악한 도시에 보내셨습니다.
엘리사는 벧엘에 권세를 가지고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러 왔습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젊은 사역자들이 벧엘의 타락한 교회들이 했던 것과 똑 같은
육적인 방법들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 안에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반역과 음란함을 일으켰던 바로 그 음악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신자들을 교회 안으로 유혹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죄악으로 넘쳐 나는 사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연극, 파티, 콘서트를 제단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죄악과 공허감을 명료하고 순전한 복음으로 대면하기 보다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교회는, 엘리사가 직면했던 바로 그 ‘조롱의 영’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동성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뉴욕시의 유명한 미술관들은 자랑스럽게 신성모독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오줌통에 빠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코끼리 배설물이 묻은 마리아의 초상화 등등이 그러합니다.
그런 뻔뻔스럽고 오만한 사악함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죄악 넘쳐나는 가운데에도
저는 하나님의 찾는 많은 경건한 자들과 교제를 맺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을 ‘엘리사 부대’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보의 기도를 그치지 않으며,
이 세상과 교회의 사악함으로 인해 슬퍼하고, 성령의 더 큰 기름부으심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같은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심판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홍수, 허리케인, 철새들로 인한 치명적인 전염병 등등
비참한 대재앙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과거의 부흥을 공부하며 앉아있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더 큰 기사를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저는 들을 귀 있는 자들이면 누구에게나 자비와 은혜의 말씀을 계속해서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롱자 앞에서 두려워 떠는 비겁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경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심판으로 그들을 완전히 파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가장 완악했던 자들까지도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엘리사 부대’는 현재에 만족하거나, 몇몇 과거의 부흥을 재창출하는데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지금 그들은 주님께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더 큰 성령의 능력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기 위해
마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그 부대에 자원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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