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된 제자의 자격 3가지 마19:11~12, 20:25~27 편집자 큐티묵상글
마태복음 19장~ 20장을 읽다가, 다음 3가지 사실이 눈에 띄였습니다.
▲서론
신약학자들은, 마16장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을,
공생애 3년의 터닝 포인트로 잡습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예수님은
비로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 가르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마16:21
아래에서 살펴볼 3가지 제자의 자격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제자의 초급반 과정이 아니라,
제자의 성숙자반 과정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본문은
마16장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 예수님의 공생애 막바지에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서론이고요)
▲1.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리라. 마19:30, 20:16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리라.’는 말씀이,
똑같이 두 번 나옵니다.
먼저는 마19:30인데,
부자 관원이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이 그를 안타까워하시며 하신 말씀이고요.
두 번째는 마20:16인데,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결론처럼 마무리하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똑같은 말씀을,
두 가지 사건에서 똑같은 결론으로 마무리 지으신 것은
두 가지 사건이, 내용적으로 공통점이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 공통점이란, 다름 아닌 <물질 문제>입니다.
첫 번째, 소위 ‘부자 관원’ 사건인데,
그 내용인즉 <물질 문제>이었습니다.
젊은 부자 관원은, 물질 문제 때문에 실족해서, 결국은 제자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말씀하셨죠.
두 번째 사건도 ‘물질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 문맥상 바로 이어집니다. 두 사건이 본문이 막바로 연결됩니다.)
아침 6시 또는 9시에 온 품꾼들이
저녁 5시에 와서 1시간만 일한 품꾼과
똑같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을 때
그들은 ‘더 받을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마20:10
그런데 품삯을 더 받지 못하자.. 주인에게 분노한 것이죠.
부자 관원과 똑같은 ‘물질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결론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20:16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 대가를 ‘물질로 갚음 받아야 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 이삭의 복 운운 하면서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면, 이 땅에서도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부자가 되든지 말든지,
부자가 되면 좋고, 안 되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성숙한 제자의 길은,
‘물질 문제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아침 6시나 9시부터 포도원에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은,
오늘날로 치면,
젊어서부터 예수 믿고, 교회에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 전부가 아니라 일부는,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찍부터 예수 믿고, 포도원에서 일했는데도..
큰 부자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주인의 밭에서.. 섬길 수 있었던 것, 봉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복입니다.
영생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 젊음을, 일찍부터 투자한 것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복이요, 특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돈’에 시험이 들고, 맘몬 귀신에 빠지면,
주인의 밭에서 수고한 대가를, 현세적인 물질의 복으로 되갚음 받으려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한 데나리온 받았다고, 큰 부자 되지 못했다고’
주인께 항의하는 것입니다.
1단락의 주제는
제자의 길에 있어서, 물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먼저 된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 먼저 된다’는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목사, 장로를 하더라도,
물질에 초월하지 못한다면,
‘먼저 된자 나중 되고 말’ 것입니다.
꼭 가난한 것이 정답이다.. 가 아니라,
부자이든지/가난하든지..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는
물질 문제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 관원처럼.. 자기의 많은 소유를 내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됩니다.’
부자 관원과 반대 케이스로
예수님을 일찍/오래 믿었어도, 큰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해서 불평이 많은 사람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됩니다.’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2.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7
‘포도원 품꾼의 비유’ 다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자기 두 아들을 예수님께 청탁하는 장면으로, 마태복음이 연결됩니다.
사실 물질 문제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욕망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권세욕/명예욕입니다.
20:20에, 그 여인이 두 아들을 대동하고, 예수님께 나아와 ‘절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절했다’는 것은, 사복음서에 흔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권세/명예를 얻기 위해서
높은 사람에게 찾아가서 ‘절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20:25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높은 사람 앞에 가서, 머리 조아려 절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사실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에서는,
각 기관에 머리는, 오직 한 명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큰 자, 머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섬기는 특권은, 모든 사람에게 그 기회가 무한정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숙한 제자반> 두 번째 자격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진정 섬기고 있습니까?
-오늘 나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높은 자리에 임명되는 사람이 큰 자다’는 세속적 사고를 갖고 있습니까?
내가 만약 세속적 사고를 갖고 있다면, 그 증거는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와 그 어머니와 같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주여, 제가 승진하게 해 주세요!’ 하고, 예수님께 조르는 것입니다.
성숙한 제자의 기도는, 그게 아니라
‘주님, 제가 섬김으로써 큰 자가 되게 해 주세요!’가 될 것입니다.
▲3.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독신된 자 마19:12
마19:1~12에 ‘이혼에 관한 질의응답’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질문하니,
예수님은 아주 강경한 어조로 ‘불가하다’는 식으로 대답하십니다.
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이런 예수님의 입장이, 매우 강경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 들이 아니라, 제자들이 이렇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제자들마저도, 예수님 입장에 동의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결혼 안 하고 말지..’
라며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단락의 포인트입니다.
마19;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여기 나오는 ‘고자’라는 말은 *헬, 유뉴코스
환관, 거세된 사람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결혼을 자원해서 포기한 사람’도 됩니다.
그래서 ‘종교적 독신 celibacy’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서 그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니고요..
오늘날 ‘오피스 남편, 오피스 아내’라는 말이 (이런 말을 쓰면 안 되는데)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직장에서는 한 10시간 보내는데,
집에서는, 자는 시간을 빼면, 서너 시간만 보내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인 경우, 자기 배우자보다는
직장의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더욱 친근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삶의 여건이 그러기 쉬운 것이죠.
그래서 오래 전부터, 무슨 연속극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기혼자도 ‘애인 한 명쯤 없으면 바보다’는 말이 간간이 돌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오죽 무능력하면.. 그러겠느냐는 식으로.. 오히려 악을 미화하지요.
▲이 세 번째 단락의 주제 및 전체 주제는,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으실 것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마16장
이제 제자들에게 보다 높은 제자도를 가르치시는데
마19장과 20장에, 3가지 연속해서 그 내용이 나오는데
1. 하늘나라를 위해서 '스스로 된 고자'도 있을 수 있다. 19:1~12
오피스 거시기를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도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 혼자 사는 것을 추천하신 것입니다. 결혼해서요.
이혼도 가급적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갈아 치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꼭 서류가 아니라더도 심정적으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마음에서부터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2. 물질에 대해서 초월하라는 것입니다. 19:16~20:16
3. 높아지려면, 오히려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20:20~34
물론 우리가 완벽하게 예수님의 계명을 철저히 다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의로우시고 공평하신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마지막 심판대에서, 똑같이 평점을 주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기도 할 것이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할 것이며,
-개중에는 먼저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할 것이며
-나중된 자가, 나중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위의 3가지 계명과 교훈에
어느 정도 자기 마음 중심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그 상급이 달라지겠지요.
'분류 없음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의 완성은 쉽지 않다 (0) | 2014.04.17 |
---|---|
안식을 배우십시오 / 정원 (0) | 2014.04.16 |
여호와 삼마 (0) | 2014.04.15 |
금식은 겸손입니다 P2 / 데렉 프린스 (0) | 2014.04.14 |
금식은 겸손입니다 P1 / 데렉 프린스 (0) | 201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