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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완성은 쉽지 않다

LNCK 2014. 4. 17. 09:56

◈구원의 완성은 쉽지 않다                눅13:22~30                      인터넷설교 녹취

 

https://www.youtube.com/watch?v=ZWwUeSKjngM&list=PLbjFVE2uXgnaVy-Md39qOkFH86xkZwZrd&index=90 

 

※어제 해난사고를 당하신 분들께 심심한(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서,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안전하다’는 선내 안내 방송이,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회가, 구원에 관한 기준을 너무 낮춰버려서

 

‘안전하다’고 방송하지만,

 

그 '안내방송'이 이번 해난사고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학/대학원은, 입학은 비교적 까다롭지 않습니다.

 

기회균등의 원칙에 따라, 웬만하면 (조건부 입학이라도) 다 시켜줍니다.

 

그렇다고 다 졸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졸업은, 반드시 까다로운 과정을 마쳐야..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구원의 과정에 입문했지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입학은 했지만, 졸업을 못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꾸  ‘안전하다’는 안내방송을 하더라도.. 그 배에서 뛰어내려야 합니다/편.

 

 

 

아래 설교는, 인터넷에서 스크랩, 타자한 것입니다.

 

 

 

눅13:22 예수께서 각성 각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9. 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네 계속해서 여러분들과 구원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보니까, 아무리 우리가 신앙생활 하며 교회 다니고, 헌금을 내고

 

여러 가지 봉사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구원을 얻지(완성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구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개념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많은 교회에서 ‘복음을 한 번 듣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처럼’

 

요한복음 3:16절만 달달 외워가지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그래서 그것만 가지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성경은 항상 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반대적 측면의 말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본문말씀↑을 가지고, 구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구원이 뭔가,

 

어떻게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가를 조금 상세하게 보고, 또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눅13:23절

,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예수님을 따라가 보니까,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구원이 자기 생각대로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냐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랬어요.

 

적다, 많다, 이렇게 말씀 안하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성경은 많은 곳에서 구원을 얻는 자의 수가 많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적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10:5절에 보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저희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심으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 그랬어요.

 

 

 

그리고 로마서 9:27절에도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그랬어요.

 

 

 

끝까지 하나님 말씀 지키고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 것이지,

 

바다의 모래같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누가복음 12:32절에도 ‘(숫자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노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사람들이 ‘적은 무리 little flock’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태복음 24:37절에 보면 이 마지막 때, 인자가 올 때를 어떤 때라고 이야기 하냐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노아의 때에 벧전3:20절에 보면 겨우 여덟 명만 구원을 얻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주님이 오실 때에 바로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자가 극히 많지 않다는 거예요. 여덟 명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과 너무 다른 현실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안전하다’고 하는 배에서

 

자기가 알아서, 뛰어내려야 합니다. 안내방송도, 때로는 확실치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조금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구원을 얻는 자가 적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가 나와 있는 것이에요.

 

 

 

그냥 우리 생각대로 어떤 목회자가 이야기한 그것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이 진리의 말씀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늘 이야기 하지만 이 좁은 문이 뭐냐.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좁은 문은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 그랬어요.

 

 

 

▲눅13:24절‘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가 않고, 찾는 자가 적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힘들고요.

 

힘들다고 주님이 또 봐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거예요.

 

 

 

▲13:25절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한 번 문 닫혀 버리면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예요.

 

 

 

한 번 구원의 문이 닫혀버리면, 그 기회를 놓쳐버리면

 

 

이것은 우리가 좋던 싫던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한 번 구원의 문이 닫혀버리면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가이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것이 있어요. ↙

 

 

 

▲26절에 보면

 

‘그때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주님하고 우리가 같이 먹고 마셨습니다.

 

길거리에서 우리에게 주님이 직접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나를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교회 와서 설교 듣고, 친교시간에 밥 먹고 교제하고

 

구역 예배 가서 같이 교제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이라고 했는데

 

끝에 가서 주님이 나를 모른다는 거예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 그러죠?

 

우리는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해서 교회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나중에 주님이 나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것은 정말 심각한 우리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사지만 주님이 제가 나중에 갔는데

 

‘나는 너를 몰라!’ 그러면 이건 심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이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져요.

 

 

 

 

▲눅13:27절 읽겠습니다.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그랬어요.

 

 

 

예수님이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 한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나는 예수님을 알아요.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너무 많이 알아요.

 

신학교도 졸업하고, 성경 공부도 많이 하고, 설교도 많이 들었는데, 예수님을 아는데,

 

문제가 뭐예요?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확신이 있어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안다는 확신이 있냐는 말이에요.

 

우리는 그러려니 하며,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요.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두려운 마음 안 드세요. 여러분들?

 

 

 

설마 하나님, 하나님이 나한테 그러시겠냐고..?

 

누가 알아요? 예수님과 같이 먹고 같이 마시고 같이 배웠는데,

 

예수님한테 성경공부를 배웠는데.. 문제는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내가 아무리 예수님을 많이 알아도, 예수님이 나를 모르시면 끝이에요. 끝.

 

혹시 여러분의 학교 동창 중에, 사회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 찾아가 보세요.

 

그를 만나지도 못하고, 무안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위해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당신하고 같이 먹기도 하고, 내가 성경공부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내가 주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그래도 주님이 모른다고 하시면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 보세요. 말씀에 나와 있잖아요.

 

여러분 조금 심각하게 생각해보세요.

 

신앙생활은, 예수 믿는 것은 내 방법대로 믿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교리를 통해서 지식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사랑은요, 서로 간에 교통이 있는 것이에요.

 

짝사랑은 천 년 해도 안 되는 거예요. 나 혼자 사랑하고, 그게 뭐 순수합니까.

 

천만에요. 내가 사랑하고 그 사람도 사랑해야, 그것이 사랑이 되는 거예요.

 

나 혼자서 아무리 주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도, 그 분이 나를 모르면 안돼요.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바로 사랑하시는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그분이 나를 아신다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정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합니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주님이 나를 아세요.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우리는 주님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끝까지 내 생각대로 살아요. 내 방법대로 살아요.

 

그것은 주님하고 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27절 끝부분에 뭐라고 그랬어요.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라’

 

행악하는 모든 자가 뭐냐,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예요.

 

 

 

아니 교회에서 목사면 뭐하고 장로면 뭐하고, 사모면 뭐하고 집사면 뭐해요?

 

그게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내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았냐, 안 살았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그랬어요.

 

 

 

좁은 문으로 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러지 않고 교회 나와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외식하며 믿는 척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빨리 하나님 앞에 회개해요.

 

회개하고 끝나면 안 되고, 회개했으면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그런 자에게 우리 주님의 구원이 임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진짜입니다.

 

 

 

저는요. 이것을 선포해야 되요. 진짜로.

 

지금 교인들이 지옥에 너무 많이 가요. 왜요?

 

한 번 믿으면 끝이래요.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진저 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목사들이 이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자기도 천국 못가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천국을 못 가게 하고 있어요.

 

잘못 가르쳐가지고요.

 

 

 

정말 여러분은, 자기 구원만큼은 확실하게 알아야 되요.

 

뭐가 구원인지. 구원만큼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에요.

 

다른 것은 조금 양보할 수 있어요. 손해 봐도 되요. 그런데 구원만큼은 양보하면 안돼요.

 

구원만큼은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 되요.

 

 

 

믿음의 결국이 뭐에요. 영혼 구원이라고요.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정말 우리 깨야 됩니다. 사람 많이 모였다고 그러면 민주주의에요.

 

민주주의는 다수가 이기니까. 우리 기독교는 다수결이 아니에요.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한 명이라도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가 승리하는 자에요. 할렐루야.

 

 

 

이렇게 구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잘 못 살던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냐 하면↙

 

 

 

▲28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러분 슬피 울고 이를 간다는 것이 뭐에요. 억울하다는 거예요.

 

나는 예수 믿고 천국 갈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천국 간 것이 아니야.

 

그래서 자기는 너무 억울하다는 거예요.

 

(아마 로또 복권 버렸는데, 누가 주워서 당첨 받은 것보다 더 억울할 거예요.)

 

 

 

교회 생활 열심히 했는데, 10년 20년 교회 와서 봉사했는데

 

나중에 봤는데 천국에 못 들어갔다. 이 말이에요. 억울해서 이를 가는 거예요.

 

 

 

이를 왜 갈겠어요. 분하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목사 한 사람이 잘 못 가르치면, 여러 사람 지옥 보내는 거예요.

 

 

 

내가 이것을 알았으면 목사 안했을 거예요. 두려워요.

 

나도 못가고 남도 못가고! (그럴까봐 두렵지요)

 

 

 

전부 교인들 이용이나 해 버리려고 그러고.

 

목회하는데 도구로만 쓸려고 하지, 그 사람 영혼을 위해서는 기도 안합니다.

 

왜요? 시험들어서 교회 안 나올까 싶어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억울하죠. 얼마나 억울해요?

 

자기는 천국 갈 줄 알고 그렇게 살았는데 눈을 딱 떴는데, 천국이 아니야.

 

아예 교회도 안 갔으면 몰라요.

 

아예 교회 안 다니고, 자기 멋대로 살았으면 그냥 당연한 것이지.

 

그런데 왜 억울 한거에요?. 예수 믿었는데, 교회 나왔는데, 눈 떴는데 보니까 천국이 아니에요.

 

 

 

왜요?, 잘못 배웠거든요.

 

한 번 믿음은 아예 구원이 되는 줄 알았고,

 

멋대로 살아도 구원 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억울한 거예요.

 

아 정말 여러분 심각합니다. 이를 갈아요.

 

그 동안 구원에 대해서 잘못 이야기한 목사들 생각하면, 얼마나 이빨이 갈리겠어요.

 

 

 

그래서 저는요. 진짜 이 구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에게 착한 목사(말을 살살 하는 목사)는요. 하나님 앞에 사기꾼이 될 수도 있어요.

 

 

 

진짜 우리가 자다가 깨야 되요. 자기 구원을 놓쳐버리면 다 놓쳐버리는 거예요.

 

아무리 잘 살았어도, 내가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하면 끝나는 거예요.

 

슬피 울며 이를 간다니까요. 억울해서.

 

 

 

아니 교회를 아예 안 나갔으면 되었는데, 교회까지 나간다고, 열심히 믿는다고 했는데

 

나중에 구원을 못 받아봐. 얼마나 억울해요. 슬피 울며 이를 간다니까요.

 

 

 

저는 진짜 두렵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구원의 문제는요.

 

하여튼 우리 교회 나오는 모든 분들에게 제가 이야기합니다.

 

에스겔서 3장, 또한 33장에서 (파수꾼이 외치지 않으면) 그 피값을 받는다고 했어요.

 

 

 

마태복음 22:13절부터 보면, 혼인잔치가 나오잖아요. 똑같은 이야기에요.

 

아니 아들을 위해서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아무도 안와요.

 

그래서 임금이 막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막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데려왔는데 보니까 안에 꽉 찼어요. 그래서 임금이 다니다가 보니까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 예복을 입고 왔는데. 예복을 안 입은 사람에게 임금이 그래요.

 

너는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유구무언이에요.

 

입은 있는데 말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임금이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고 그랬어요.

 

 

 

나가서 다시 예복입고 오라고 안 그러고,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고 그랬어요.

 

거기서 그 예복 입지 않은 자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그랬어요.

 

 

 

왜, 자기는 예복 안 입어도 천국 잔치에 갈 줄 알고

 

예복 없이도 얼마든지 구원 받을 줄 알고 살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바깥으로 쫓겨나더라. 이 말이에요. 억울하지요. 이빨을 갈아요. 억울해서.

 

 

 

예복은 세마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에요. 계19:8

 

그러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내가 예복을 입는 거예요.

 

벌거벗은 몸으로 주님 앞에 나간다는 것은 뭐냐면,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그 자체가 나에게 예복이 됩니다.

 

 

 

그 혼인잔치는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에요.

 

아무리 천국 티켓 받아놔도, 예복 없으면 못 가는 거예요.

 

우리가 만든 천국 티켓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정말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구원 받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좁은 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깨야 되요.

 

 

 

(중략)

 

 

 

제가 딸에게 그랬어요. ‘너 나중에 결혼할 때, 네 남편은 아빠가 골라준다.

 

물론 네가 좋아할 사람으로 골라 줄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요한1서 2:16절에 보면 세 가지가 나오잖아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이 나옵니다.

 

 

 

이 세 가지 죄가, 우리에게서 계속해서 올라와요.

 

육신의 정욕, 그 다음에 안목의 정욕. 눈으로 얼마나 많이 죄를 지어요.

 

이런 것으로 내 배우자를 찾으니까, 정상적인 배우자를 만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런 정욕이 없는, 이 정욕이 줄어든 부모나,

 

그 윗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거예요. 진짜로 이게 삶의 지혜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똑똑해도 못 골라요. 자기가 평생 살 사람을 못 골라요.

 

왜, 내가 그 사람을 보는데 어떻게 보느냐. 안목의 정욕으로 봐요.

 

아 섹시하네, 저 남자 건강하게 보이네. 이렇게 봐요.

 

육신의 정욕으로는 아 돈 많네, 좋은 대학 나왔네. 이런 것으로 본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와 결혼해서 살아가지고,

 

평생에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이런 지혜들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신다는 거예요. 하여튼 우리 모든 분들이

 

정말 다 자기 생명의 구원을 다 이루는 그런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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