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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염려가 없어요 2 / 허운석

LNCK 2014. 5. 10. 09:51

◈사랑 안에 염려가 없어요 2           막3:3, 시37:25       인터넷설교녹취

 

▲주제를 미리 말씀드리면,

우리는 삶에 대해 염려가 많고, 문제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적 속성을

고스란히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들이

-이제 <물질>에 대해서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서 살게 되고,

-<인간관계>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온전히 십자가에서 죽지 못해서 나타나는 결과이고,

주님의 형상이 내 속에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삶의 문제가 끊임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고난을 통해 성숙하는 과정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적어도 내 신앙의 미숙함에서 오는,

-다시 말해서 내 자아가 아직 죽지 않음에서 오는..

그런 미숙한 문제들, 거기에서 오는 고난은, 우리가 해결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왜 주님이 내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느냐..’

내가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이요, 내가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주님이 되겠다는 것이잖아요.

 

그 주인을 박살을 내야, 진짜 주인이 오셔서

내 생을 열어주시고, 내게 힘이 되어주시는 것이잖아요...

 

이제 내게 있는 자아와 교만을 버리고 성숙하는데,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연부년 점점 더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시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모든 정황을, 자아가 (십자가에서) 깨어지는 기회로 삼으세요.

 

▲남자분들, 회사에 가서 상사가 뭐라고 하면,

그때 자기 얼굴을 찌푸리면, 그건 '나를 내쫓아 주시옵소서'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자기 상사가 괴롭히면,

보통은 ‘저 사람을 쫓아내 주시옵소서’ ..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상사가 괴롭히는데, 자기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러면서 ‘저 사람만 회사에서 쫓아내주시기를 간청하나이다’

라고 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성경적 원리는 이렇습니다.

상사가 자기에게 뭐라고 하면, 금방 자기 꼬리를 내리고

 

‘하나님이 저 상사를 통하여서, 나의 미련을 쪼개시려고 하나보다.

나를 똑바른 인간으로 만드시려는가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고치겠습니다.’

그러면 글쎄 사장님하고 친구가 되잖아요.

 

아니 세상에 그 간단한 것을, 그러니 마귀가 우리를 다 조종하는 거예요.

 

그냥 조금만 자기를 죽이면서

‘아 그러세요?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성경을 어디로 배웠나 몰라요. 성도들을 보면 꼭 그래요.

그냥 조금만 내려놓고, 한 마디만 겸손하게 하면, 만사가 형통한데 말이죠.

 

그 나의 강퍅한 자아를 깨뜨리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회사 상사를 통해서 나타나는데도..

그 상사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을 비춰주신 것이거든요..

 

내가 미처 내 모습을 못 보니까, 상사를 통해서, 내 실상을 보여주신 것이거든요..

여러분, 직장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당하실 때, 자아가 죽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배우자에게나, 자녀도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그 가족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내가 주님의 심령을 상하게 했구나.’ 표시가 나요, 안 나요? (나요)

 

내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으면,

그래서 가정에서 언제나 내 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면 (주님 중심이 아니라)

나머지 가족들이 다 스트레스를 받고서, 그게 그들의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거예요.

 

차라리 배우자가/ 부모가 밖에 오래 나가 있기를 바라고,

그 분이 집에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지지요.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 집안 가족의 안색을 보면서,

‘내가 주님을 경멸한 것’을 알아야 하는 거예요.

 

내가 주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게.. 그게 경멸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자녀가, 어디 가서 사고 쳐 보세요.

그게 부모 얼굴에 먹칠이요, 경멸한 것이잖아요.

 

세상에 입술로는 ‘주님!’ 그러면서

자기 자아는, 시퍼렇게 살아 있어요.

그러니 집안이 세워지겠어요? 난장판이 되죠.

그것이 뭐예요? 얼마나 우리가 미련한 거예요.

 

▶제가 옛날에, 젊었을 때,

아직 십자가에서 내 자아가 죽는 원리로 제가 살지 못했을 때,

우리 아이들 얼굴이 얼마나 상했던지.. 깡통 하나만 차면, 완전히 거지로 보일 인상들이었어요.

 

얼마나 얼굴이 초라하고.. 완전히 그렇게 초라한 얼굴이 될 수 없어요.

예수를 머리로만 알고, 제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으니까.. 자녀들까지 그렇게 된 거죠.

 

그런 제가 꾸려나가는, 우리 가정이.. 편안했겠어요?

저는 그러고 살면서, 교회 봉사하다가,

집에 돌아가서 남편 얼굴 쳐다보고, 애들을 쳐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거죠.

 

그런데 저는, 집에 돌아와서 한 술 더 뜨는 것이죠.

‘내가 이렇게 주의 일을 힘써서 하고 있는데

세상에 위로는 해주지 못할망정.. 가족들이 저를 도와주지 않으니..’

제가 뒤집어지는 거예요. 이게 마귀의 역사잖아요.

 

그러다가 제가 좀 십자가를 깨닫고 나서는,

교회 봉사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의 안색이 막 좋을 때가 있어요.

 

그것을 보면, 정확하게 내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는 거죠.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구나..

그래서 제가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하고 회개하는 거죠. 과거에는 애들을 잡았지만요,

그런 세월을 지내온 것 같아요.

 

남편의 굳은 얼굴을 쳐다보면서 ‘아, 주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는구나.’

또 내가 그런 짓(내 자아의 강화)을 했구나. 그래서 회개하고, 다시 돌이키고..

그런 가운데에서 가정이 점점 세워져 온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때요.

맨 날 쥐고 흔들고 내가 왕 같은 존재입니까?

내가 집에 들어가면 각자 식구들이 제 방으로 다 들어갑니까?

상대하기도 싫고 무서워서? 어떠세요?

 

▶제가 아마존에서 고양이를 키우는데,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너무 예뻐요.

고양이, 강아지, 거북이, 원숭이. 이런 것들이 다 아마존에서는 장난감들이죠.

 

그런데 제가 신학교 강의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우리 집 고양이들이 각자 도망가는 거예요.

사방팔방으로 다 뿌리치고 도망가고, 일단 숨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그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그렇구나. 우리 집안에 내가 나타나면, 우리 남편도 나를 피해버리고,

우리 자식들도 무서워 떨고.. 그게 나였구나!’

 

어느 날 ‘내가 진짜 율법적 왕 바리새인, 진짜 내가 무시무시한 인간이구나.’

제가 그것을 깨달은 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쩌다가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 됐을까’

너무 끔찍했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집에 들어가면 반겨주시나요?

여러분들의 가족들이, 그 섬세한 마음으로,

냉수 한 컵이라도, 정성스럽게, 마시라고 떠 옵니까?

 

그건 다 ‘대접한 대로 대접 받는’ 원리입니다.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어있느냐,

아니면 내 자아가, 십자가를 떠나서 펄펄 살아있느냐..

그 차이를, 가정에서, 가족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형통함이 왜 없냐하면.. 지혜가 없어서 그래요.

그 어떤 부드러움, 생명의 유연성,

그게 성령님의 지혜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지혜로, 그런 부드러움과 유연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 꼭 아셔야 되요.

지혜는 어디서 오느냐, 낮아짐에서 와요. 겸손함에서 지혜가 대동하는 거예요.

 

‘겸손의 지혜’..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 겸손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비싼 옷 입으려고 하는 것.. 그거 교만이고, 주님께 은총을 못 받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겸손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꼭 한 수준 높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 교만한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고,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삶이, 늘 메마르고 황량해지는 것입니다.

비싼 음식 날마다 외식하고 살면.. 행복할 것 같은데.. 행복하지가 않는 거예요.

주님의 은혜가 고갈되어서, 자기 교만으로 인해서, 그런 겁니다.

 

그래서 더 비싼 옷 사 입고, 더 비싼 음식 사 먹고..

그러다 보니.. 헌금하거나, 구제하는 데는 인색하게 되죠.

 

그게 ‘자아’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살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겸손의 지혜’에 형통이 있고, 존귀가 있고

여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물질을 나눠줘야, 물질이 풍성해집니다.

 

▶나는 여기 여러분이,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제가 말기암 환자인데 초라해요?

얼굴은 멀쩡하잖아요. 왜 그렇죠?

 

하나님이 제 삶의 여러 부분에 기름을 부으셔서 그래요.

하나님께서 제게, 부유의 기름도 부으셨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기름을 부으신 거예요.

 

왜, 늘 섬세하게 주님을 섬겨왔기 때문에.

모든 일에 주님을 순종하길 원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진짜 시편에 보면

‘우리는 왕의 아들이다, 왕의 딸들이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님을 높이면,

물질에 대해서도, 자아가 죽고, 주님을 높이면,

물질의 세계가 열려질 것이고..

 

인간관계 속에서도, 자아가 죽고..

이 모든 삶의 정황 속에서, 축복의 문들이 다 활짝 활짝 열려져야 되요.

내 자아가 죽을 때.. 그런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려지고, 축복의 근원들, 축복의 통로들과

여러분이 가까이 하셔야 되요.

 

안 되는 사람들은.. 꼭 안 되는 사람들, 꽉 막힌 사람들과 가까이 하죠.

그래서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더 못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 복의 근원’이 된 분들과 가까이 하면,

그냥 그 기름이 내게로도 흘러오는 거예요. 그 곁에 있으니까요. 너무 놀라운 거예요.

 

그래서 그 분들을 본 받아서,

우리도 물질을 온 곳에 심어야 되요. 희생해야 되요. 나누어줘야 해요.

 

자기는 조금 덜 입고, 덜 먹고.. 그래야 나눠줄 수 있어요.

자기는 입고 싶은 옷 다 입고, 먹고 싶은 음식 다 먹으면..

절대로 남들을 도와 줄 수 없어요.

 

남들을 도와주지 못하면,

더 물질에 쪼들리게 되죠.

하나님의 축복이 더 오지 않으니까요.

 

여러분들의 교회가 정말 기름부으심이 충만하시려면

여러분들이 많이 심으셔야 되요. 내가 조금 못 입으면 어때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복 받아서.. 더 부요해지는 게 났죠.

 

하나님은 달랑 하나만 주실 분이 아니에요.

존귀와 영광과 그런 것들을 많이 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힘써서 물질을 심으셔야 되요.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하기 싫거든요.

그래서 후손들까지도 복을 못 받는 거예요.

 

그러나 부모가 잘 심으면, 부모 세대뿐만 아니라,

후손들 세대에서도, 그 혜택과 갚음을 반드시 받아요.

 

시편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그것을 기억해요.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어요.

그래서 저도 젊었을 때, 아주 술을 엄청 먹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잘 하시는 일이 한 가지 있으셨어요.

나그네를 항상 사랑방에 두시고, 항상 손님 대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심은 것이죠.

자녀 세대인 내가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받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사고 싶은 것, 덜 사고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야 되요.

 

물질에 대한 염려를, 물질에 대한 탐욕을

십자가에 다 못 박으셔야 해요.

그리고 나눠주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물질이 더욱 풍성해 질 줄 믿습니다.

 

물질의 축복은, 절대 ‘산수’가 아닙니다.

산수/수학으로 계산하면..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물질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옵니다.

하나님이 감동 주시는 곳에, 믿음으로, 물질을 심으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여러분으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복, 이삭의 복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우리들이 늘 잘 해야 되요.

사실 그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내 육신이 찢어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뭘 나누어주려고 하면, 자꾸 속에서 들끓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성경에 ‘마른 손’이 있잖아요. 그게 인색하면서 병 드는 것 같아요. 막3:3

그게 우리 영적인 모습이잖아요.

 

헌금만 하려고 하면 오그라드는 손.

그러니까 우리가 헌금만 하려고 하면 속이 뒤집어지잖아요.

이게 발견되는 것이 너무 감사한 거예요. 할렐루야.

 

그 ‘마른 손’을 이기면, 주님께서 하늘의 창고를 여시는 거예요.

그러나 늘 ‘마른 손’으로 살다가는,

만사가 안 열어지는 거지요. 회개해야죠.

 

아 진짜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진심으로 섬기고

입히고 나누고 부지런히 봉사하고 그런 것을 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진리의 자유함을 얻어서 나는 다 자유롭고 십자가 알았어.

봉사 안 해도 돼!’ 그러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할 일을 안 하면 죄가 생겨요.

내 속에 있는 그 놈이 바로 알아요.

 

여러분 봉사 많이 하시고 헌금 많이 하세요.

그 결과 여러분들의 죄가 씻기고, 영원한 것으로

여러분들이 바뀜으로 얻게 되잖아요.

 

우리는 육신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받게 되잖아요.

거듭나면 아랫 샘과 윗 샘이 열리게 되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런데 여러분들 봉사 하다가, 부대끼면 그냥 막 신경질 나고 싸움이 나잖아요.

그런데 그게 좋은 거예요. 내 꼴이 발견이 되는 거니까 죄가 나오잖아요.

그러니 회개 할 기회가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봉사한 결과, 헌금한 결과, 나를 좀 안 알아준다고.

헌금 하면 얼마나 남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좀 알아주길 바라요. ‘내가 이렇게 헌금 했는데..’

그렇게 광고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 낙심하면 안 되고, 기뻐하세요.

뭐 지금 발각된 게 아니라

어쩌다가 이게 탄로 난 것이고, 옛적부터 그런 것이잖아요.

이제 조금 드러났을 뿐인데, 장차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더 큰 것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짜 해결하고 싶으신 것을 해결해주시는 거예요.

 

▲마치는 말

이제 원리는 여러분들이 다 발견을 했어요.

원죄에 대해서. 이제 물질에 대해서 두려운 모든 것에 대해서

그것은 주님께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 속에서.

 

왜 주님이 내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느냐.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내가 주님이 되겠다는 것이잖아요.

 

그 주인을 박살을 내야 진짜 주인이 오셔서 내 생을 열어주시고

내게 힘이 되어주시는 것이잖아요. 이제 내게 있는 자아와 교만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