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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레아와 십자가 P1 / 허운석

LNCK 2014. 5. 12. 15:06

 

◈레아와 십자가 P1              창29:16~31                P        허운석 선교사 설교 녹취 

 

◑서론/ 내 육신적 성품이 탄로날 때, 끊임없이 인정하고 회개합시다.

   

▲오늘 낮 시간에, 돈은 다른 신이라고 했잖아요. 신이에요.

우리가 헌금할 때, 특별히 우리가 헌금하기 싫을 때,

우리가 하나님에게 물질을 드릴 때 이런 생각을 하셔야 해요.

 

‘돈은 내 신이 아님을 주님 앞에서 인정합니다. 이 돈은 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한테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 심정을 꺾어서, 깨뜨려서,

또한 내 속에 마귀적 본성을 깨뜨려서,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심정으로 드립니다.’ 하는 거예요.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물질과 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굉장히 어마 어마하게 깊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마귀를 선택할 것이냐.

마귀의 최고의 강력한 권세가 뭐냐 하면 돈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돈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배반해요.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봐야 해요.

‘내가 세상(돈)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못 떠나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쳐다보고 있어야 되요.

 

그 정체가 탄로 나서 정확하게 내 육신을 볼 때 까지 가서

주님에게 고백해야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우리는 아주 기쁨을 느껴야 되요.

‘이놈이 다시는 내 안에 숨을 수 없음을, 그 자리가 탄로 났으니까요!’

 

▲그러니까 내 마음이 들킬 때는 사단의 정체가 탄로 난 것이니까

쫓아낼 수 있는 것이잖아요.

 

안 들키면 문제지만, 들킨 것은 너무 감사한 거예요.

하나님이 왜 고통의 환경을 보내시고, 어려운 조건을 보내시고,

여러 문제를 내게 보내시냐 하면

‘내 문제가 탄로가 나라고!’

 

그런데 왜 감추려고 해요?

하나님은 사건을 보내시고 환경을 보내셔서,

내 마음의 정체를 폭로를 시키시려고 하는데,

왜 우리는 자꾸 그것을 가리려고 하느냐고요.

 

내가 어둠을 사랑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사랑해서

내가 자꾸 숨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 입니까.

내 속의 마귀적 성품을 철저하게 보호해서, 절대 떠나지 못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자꾸 숨기고, 자꾸 변명하고, 그러는 것이

마귀를 그렇게 보듬어주고, 절대 못 떠나게 하고,

제발 나를 망하게 해달라고 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겠어요.

오죽하면 그냥 암 병을 걸리게 하셨겠어요.

 

제가 육신의 암을 발견 했을 때 ‘하나님, 내 영적인 암 병은 무엇입니까?’

나는 정직하게 대면하길 원합니다. 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던지 간에

그 사건이 내 영적인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내 환경, 내 자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그것이 주님 앞에 내 모습이라는 것.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비참하고, 처참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고

너무 부끄럽지만.. 주 앞에 나가서 겸손하게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주님, 그 모습이 제 모습이 아닙니까?’

주님께 여쭈어 보면서, 내 영혼이 겸손해지기를 원해서 인정하기를 원해요.

정말 제 모습이더라고요.

 

그럴 때 주님께서, 저를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이번에는(이 집회 기간에서는) 그것이 드러나면 기뻐하시고 감사하시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고 인정할 때,

회복의 역사가 내 영혼과 내 육신과 내 가정과 내 교회에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제가 하루는 우연히 TV연속극을 보면서 놀라운 일을 발견해요.

연속극 보니까, 그걸 보면서 제가 회개할 것이 너무 많아요.

보면서 ‘저 나쁜 놈, 저 도둑놈’ 하는 것.

그게 다 우리와 닮아서 욕하는 거예요. 과거의 우리 모습이잖아요.

그러니 회개할 것이 얼마나 많아요. 주님 너무 감사하네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면

마귀를 품에 안아 나를 망하게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간청하는 것이라고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자꾸 변명하고, 숨기고,

그런 것은 모두 ‘마귀를 보호해주고, 제발 떠나지 마시고,

나와 내 자식을 망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우리 모습이잖아요.

세상에 그것을 인정만 하면 될 것을,

그냥 ‘주님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죽을 죄인입니다..’ 그러면 될 것을

예수님 얼마나 속이 터지실까요. 우리 때문에 너무나 괴로우셨을 거예요.

우리가 가급적 감추고, 부인하고, 숨기니까요.

 

 

◑본문 설명

 

▲자 이제 성경으로 들어갑시다. 창세기 29:16절부터 한 절 씩 읽겠습니다.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자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다.. 아마 시력이 안 좋았나봐요.

그 사람의 자존심을 가장 슬프게 하는,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결점이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라헬은 아주 곱고 아름다웠다.. 여기서 우리는 느낄 수 있겠죠.

얼마나 레아가 심각하게 고통스러웠던 사람이었는지요.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잖아요.

그런 모욕스러운 삶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이죠.

 

▲18절 읽겠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을 섬기리이다’

 

여기에서 아직까지 야곱은 자연인, 자기 안목의 자유.

자기의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아직까지

그 십자가를 상징하는 삶을 모르고 있는..

아직까지 육신의 정욕이, 매력적인 데에 이끌리는, 그러한 야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는 것, 좋은 것을 따라가는 그런 야곱을 우리가 볼 수 있겠지요.

 

▲19절,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 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독과 타향살이를 생각하시고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안위를 받으시는 것을 용납해주시는, 그러한 주님을 봅니다.

 

그러나 반드시 주님은, 거쳐 가야 할 것을, 거치게 하시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도 그 손을 벗어날 길이 없어요.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이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성품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의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잘 아시죠.

 

▲21절,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여기에서 보세요. 세상에 레아처럼 비참한 삶이 어디에 있어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억지로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잠자리를 속여서 했다는 것이,

그 수치스러움과 모욕감이라고 하는 것을 상상해보실 수 있겠어요?

이게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26절.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7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7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7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그것도 다른 집이 아니라 한 집에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 남편을 바라보는

그 레아를 한 번 여러분들이 생각해보세요.

 

31절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비위를 맞추어가면서

이때쯤 되면 나에게 축복을 주실 만도 한데, 하며 헛물 키시는 것 있으세요?

‘이쯤이면 축복도 주시고 자녀도 잘 되게 하실 만 할 텐데..’

하는 기대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이정도 내가 기도를 했는데, 헌금과 봉사를 했는데,

이 때 즈음이면 정확하게 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안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런 마음이 다 있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먼저 그 마음이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는) 죽음으로 넘겨져야 되요.

그래서 모든 것도 주님의 뜻대로 되어야지

내 뜻대로 되면, 결국 나는 내 영혼이 주님을 떠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바로 하나님의 응답(오복)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잖아요.

하나님께 응답받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많이 들으셨잖아요.

그렇다고 응답을 하지 말라고 하실 수도 없고...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십자가를 먼저 보내주시고

그 십자가에 의해서, 나의 자아의 깨어짐과 죽음을 통해

나의 무지와 나의 인간에 속한 모든 욕심과 탐심을 제거하신 후에

당신이 먼저 내 심령 가운데 왕으로 임하신 뒤에, 그 다음에 (오복을) 주시는 거예요.

 

그것은 견고한 응답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기도했을 때 문제가 더 온다.. 이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나를 먼저 변화시킨 후에 받을만한 것을 준비시킨 다음에, 다 주시려나보다..

 

그러니 먼저 그냥 감당도 하지 못할 안하무인 격이 될 터인데

‘내게 축복을 주시면 꿰차고 나가서 탕자처럼 이상한 짓을 할까봐서 안 주시는구나.’

그래서 얼른 눈치를 채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깨어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반갑지 않은 십자가를 주신 것,

이것을 통해서 주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럴 때 얼마나 주님께서 우리가 예쁘시겠어요. 너무나 감사하죠.

 

이와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그 십자가(내 자아의 죽음)를 상징하는 내용을,

본문의 레아를 통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것, 은혜 받는 것, 어떤 은사, 그런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신앙인들에게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라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자가는 많은 열매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고 했죠.

여기 보니까 레아의 십자가는, 많은 아들을 낳게 했어요.

 

그런데 은사와 은혜 안에 달콤함과 자기를 높이는 것.

그러니까 은사와 은혜는 자기를 높이는데 중점이 있어요.

낮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십자가 없는, 빠진) 은혜와 은사는 자기를 높이게 되어있어요.

 

사람들에게 자기를 높이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무섭잖아요.

라헬 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은사와 은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 진리로 돌아와야 되는

그래서 그도 신의 성품에 동참할 수 있는 열매를 맺고,

레아처럼, 자아의 죽음을 경험한 후에.. 비로소 그 축복인, 자녀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구했는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해요.

 

왜 우리는 은혜와 은사를 구했는가요? 그것은 내 욕심이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한 탕 해보겠다는 것 아니었어요?

 

‘내가 저 사람보다 났다는 것’

왜, 이런 것 있잖아요. 하나님이 나에게 은사를 주시면

‘봐, 하나님도 나를 인정하시잖아.’ 이렇게 자기 스스로 자기를 한껏 높이는 것.

그 엄청난 사단의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우리가 내 속에서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가운데

받은 은사, 축복 (라헬로 치면 아리따운 외모) 등을,

우리도 라헬처럼, 한 두 가지씩 가질 수 있는데..

그게 다, 레아가 아니라, 라헬의 길로, 결국 나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예수님을 믿게 하셔서

우리에게 처음에는 은혜를 주세요.

우리를 용서하세요. 이러나, 저러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에요.

 

그 때 우리는 그것(은혜, 사랑)만 달라고 해요. 그저 나한테 따지고 묻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으시냐’는 거예요.

 

우리가 심통 내고, 기쁘지 않고, 얼굴이 죽을 상하고 있는 것이 뭐예요?

‘왜 하나님이 그렇게 잔소리가 많고 따지는 것이 많냐 하는 거예요.

그저 당신은 복이나 주시지, 그저 내 필요한 것만 채워주시지..’

아주 못된 자식이죠. 십자가를 통과하지 못한 신자들이.. 이래요.

 

그래서 우리 새끼들이 만약 나한테 그러면

‘아 내가 그 꼬라지를 하나님께 하고 있구나’ 아주 100% 맞아요.

내 모습을, 거울로, 내 자녀를 통해 보여주시는 겁니다.

 

여러분들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행색을 보세요. 나와 똑같아요.

내가 육신으로는 안 했을지 몰라도, 내 속으로 다 했으니까, 우리는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안에 겸손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몸으로는 안 했어도, 내 마음은 다 했으니까요.

 

▲2006년도에 안식년 차 제가 한국에 나왔는데, 신학교 교정이 굉장히 넓어요.

그 교정을 이렇게 거닐며 하루는 기도를 하는데, 이런 내적 음성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몇 해 전에, 제가 기도 중에 환상으로 보았던 내용과 연결되는 것이었는데요..

먼저 몇 해 전에, 기도 중에 보았던 내용부터 말씀드릴게요.

 

자꾸 여러 날 동안에 홍수가 났는데, 제가 그 물살의 힘에 밀려서 떠밀려가는 거예요.

안간 힘을 써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그 물살이 셌습니다.

 

그래서 환상 후에 ‘주님 말씀을 주십시오’ 그랬더니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을 제게 주셨어요.

 

그러니까 에스겔이 1천척, 2천척 하다가,

나중에는 창일하는 물속에 빠지는 내용이, 거기에 나오지요.

그 말씀과 환상을 연결해 보니까,

‘이제 내가 큰 능력을 받으려나보다. 드디어!

그렇게 사모하던 능력을, 이제야 내게 주시려나보다.’

 

아주 이렇게 대단한 기대를 갖고서, 침을 삼키고,

그 능력을 받을 시기와 때를 노리고 있었죠.

 

그런 가운데, 2006년도에, 신학교 교정을 거니는데

주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얘야, 네가 이 땅에서 상을 받을래? 저 천국 내 나라에서 받을래?’

 

그래서 저는 ‘주님, 저는 구박을 하도 많이 받았으니까

이 땅에서 성공한 선교사, 그것도 괜찮잖아요.’

세상에 어떻게든지 이 세상에서 축복 받는 카드를 주님께 은근히 내밀어보려 했습니다.

 

‘주님 그래도 사람들 앞에 내 얼굴/체면 좀 세워주세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며, 체면 깎이는 삶을 내내 살아왔으니까,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좀 한 번만 나타내게 해주세요.’

 

그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그 수 십 년이 흘렀는데

이제는, 수 십 년 만에, 복을 좀 받아야.. 저도 좀 형편이 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이 땅에서 상을 받을래, 천국에서 받을래.’

 

그래서 제가 ‘주님, 이 땅에서 상 받는 것이 뭔데요?’ 그랬더니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거’래요.

 

너무 기가 막히는 거죠. 신경질이 났어요.

에스겔 47장의 환상과.. 그에 대한 내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과는 정 반대로 주님이 축복을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주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 사람들이 저에게 칭찬을 하면

그건 자기 입으로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선교사인데요..’

미국을 가도 위대하신 선교사님, 저기를 가도. 어떻게 하겠어요. 고민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 소리를 안 들어야 하는가. 칭찬을 받을 수 없는 방법이 뭐겠어요.

저는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물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하늘로 솟아 없어질 수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내가 듣고 싶어서 듣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랬더니

이제 열 받아서 ‘하나님 나라에서 상 받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데요?’

이런 말도 여쭈어보지 않은 채, 2006년도에 한국에 나와서

‘새롭게 하소서’ 방송에도 출연하고 그랬어요.

 

▲그러고 나서, 아마존에 돌아가는 비행기 타기 일주일 전에, 암을 발견 했습니다. 2006년경이죠.

그래서 비행 기 타야 하는 그 시간에 나는,

연세대 병원에 가서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죠.

그러고 나서 이제 투병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때 제가 너무나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어요.

하나님이 내 생명을 그 분의 생명 싸개 속에 쌓으시기 위해서

내 상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나에게 멸시와 낮아짐과 모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

그게 바로 투병 생활인 거예요. 폐암에 걸린 거예요.

 

(이게 천국에서 상을 받는 길로, 제가 인도된 것입니다.

이게 레아처럼, 세상에서 멸시를 받는 삶을 살도록.. 섭리된 것입니다.

이게 에스겔 환상의 창일하는 강처럼 제게 밀려와서, 제가 어떻게 손 써 보지도 못하고

그저 떠밀려 가게 된 것이지요.)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저를 모욕하기 시작했어요.

‘선교지에서 저 고생해 가면서, 저렇게 하나님께 충성을 했으면

축복을 해주시지 못할망정 왜 저렇게 몹쓸 병을 주셨을까!

그럴 것 같으면, 누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겠느냐.’ 이것이죠.

 

‘후치(제 영어 이름인 Ruth을, 브라질에서는 ‘후치’라고 부릅니다)

뭐 잘못한 게 있었으니까, 하나님께 매를 맞은 거지.’

대부분 원주민들이, 99%가, 그렇게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제가 암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으악’ 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브라질 목사님들이 저를 데려다가 설교를 안 시키는 거예요.

교인들 시험 들까봐요.

여러분들은 시험 안 들겠어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 했으면,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데

암수술 받고서, 허리가 이렇게 구부러져서 다니면, 그게 은혜가 되요, 안 되요?’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대부분은 다 시험에 들어요.

암에 걸린 저를 보고는..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잘 믿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지는 거에요. (그럴 수 있지요)

 

▲그래서 이제 어느 날 사람들이 저를 보고 그래요.

‘선교사님, 빨리 병에서 일어나셔서 일을 많이 하셔야죠.’

 

일 하다 망했는데.

일 하다가 두드려 맞고 주님의 질책의 대상이 돼서 이렇게 당하고 있거늘..

 

이제는 그런 (빨리 일어나서 일을 하라는) 소리가,

정말 저를 위해주는 말인지, 은근한 비난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께 기도로 일러바쳤어요.

‘저 사람들이, 제가 빨리 나아서, 저보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데요.

 

그랬더니 주님이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얘, 너는 아픈 것이, 일 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일한 것 보다, 네가 아픔으로써, 훨씬 일을 더 많이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슨 일을 많이 했습니까?’ 그랬더니

‘네가 아픈 것 때문에, 내 자녀들이 시험에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꼴이 다 탄로 났다’는 거예요. 아멘!

 

그 악하고, 독하고, 싸가지 없는 마음이.. 다 들통 났다는 거예요.

그들의 완악함을 들추어내는데, 제 질병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벌을 배로 줄 것이고

자기 죄성이 들킨 것을 회개 하면, 그들은 내 생명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냥 아픈 게 네 일이다.’는 겁니다.

 

왜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들쑤셔서, 그 죄악된 본성을

그 회개 안 하는 마음들을, 다 탄로 나게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시원해지신 것이죠.

주님의 역사는, 그렇게 비밀이시고 그렇게 신비스러우시고 그렇게 놀라워요.

주님의 섭리와 행하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말 신비입니다.

 

▲나도 주님 때문에, 아주 놀라서 너무 정신이 없어요.

그렇게 지혜로우시고, 얼마나 숨겨진 방식에서 일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때문에 여러분들 악한 마음이 드러났어요, 안 드러났어요?

드러났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아니 저 선교사님은 그렇게 신령하다며, 기도로 제 병 하나 못 고쳐?

왜 저렇게 다니는 거야. 믿음이 없나? 회개가 덜 되었을까?’

그런 비웃음의 말을 하고 지나가더라고요.

 

그런 비웃음을 당하면, 저도 또 옛 육신의 본성이 툭 튀어나와요.

저도 속으로 저를 비난하는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아주 죄로 지짐을 받아서 그래요. 불로 지지는 낙인 있잖아요.

우리 죄성이 그렇게 절망적이에요.

 

내 꼴도 이래서, 그렇게 모멸을 받으면서도

살면서, 제가, 다른 사람보고 손가락질을 하니 말이에요.

 

세상에 그러니 주님이 그렇게 잔인하게 고통스럽게 나 하나를 구원하시고자

그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러셨다는 게.. 실감이 나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죽음으로써, 우리의 옛 본성을 장사시키시는 거예요. 구제불능입니다.

아주 쓸만한 게 요만큼도 없어요.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러니 죽음으로 끝내시고, 장사지내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생명의 부활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잖아요.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이잖아요.

 

▲그런데도 조금 우리가 징계 받고, 연단과 훈련을 받을 때

‘예, 주님, 빨리 통과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제 성품을 변화시켜 주소서’

이러면 왕권을 받는데

세상에 이 입으로 다 망해요.. 그렇죠?

 

여러분들 은혜 받고 나면, (복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가 와요.

그래가지고 은혜 받고 나면 십자가가 와요.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그동안 기도하느라 고생했다고

더러운 것들을 긁어내주시려고

이제 보상해주시려고,

이제 신경질 나는 일만 허락하시는 거예요. (회개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내가 주님 위해 수고 좀 했다고..

그 쓰레기(내 옛 자아, 죄악된 본성) 치워주시겠다고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삶의 환란, 문제가 연속해서 오죠.

죄지은 사람들에게도 그게 오지만,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충성한 사람들에게도, 그게 온다니까요!

 

그럴 때 미련한 사람은.. 막 신경질 내는 것이고

좀 지혜로운 사람은

‘아이고, 주님께서 내 헌신에 보상 한답시고, 또 문제를 허락하셔서

내 쓰레기더미를 처리하시려고,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주여 이 쓰레기 내가 가지고 나갑니다.

 

주님, 저는 고물상이요, 만물상입니다. 이 쓰레기들을 다 가져가시옵소서.

그리고 주님이 이기신 생명을 내 안에 넣으셔서 나는 당신을 위해 살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