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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와 십자가 P2 / 허운석

LNCK 2014. 5. 12. 16:48

 

◈레아와 십자가 P2                창29:16~31          P1             인터넷설교 녹취

 

▲레아는, ‘십자가의 삶을 상징하는 여인’이라고 그랬죠.

그 여인은 많은 자녀를 얻었어요.

 

그러면 무엇을 상징한다고 그랬어요?

십자가는 많은 열매를 얻는다..는 진리입니다.

 

레아의 삶은, 고통 속에 자아가 부서지는 십자가의 삶이었지만,

많은 믿음의 자손(열매)을 낳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예수님의 조상인 유다를 낳는.. 놀라운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우리에게 보내실 때

즉 어려움, 괴로움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왔을 때,

그것을 반가워해야 하겠습니까, 물리쳐야 하겠습니까?

 

‘마귀야, 물러가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아니죠, 그 고난과 불행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을 느껴야 하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말로 열매를 맺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 되요.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통해서 자아가 깨어진.. 레아를 통해서 오셨잖아요,

자기 외모를 뽐 낸, 외모의 복과 은사를 많이 받은 라헬이 아니라요.

 

▲그런데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우리가 한 번 각자 점검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다 세상에게 기대하는 게 있어요. 바라는 게 있어요.

남편에게나.. 자식에게나.. 하나님에게나..

 

왜냐하면 우리는, 레아와 같이 멸시를 많이 받기 때문에요.

하나님이 택한 우리는 부요한 자도 많지 않고, 지식이 많은 자들도 아니에요.

 

‘세상에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심을 드러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셨잖아요.

 

그래서 우리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기대가 있는지 몰라요.

결핍이 많으니까, 기대가 많은 거고,

또 사람의 원래 종교적 본성이, 뭔가 복을 바라고 하나님(또는 각자의 신)을 믿는 거잖아요.

 

그래서 교인들도 늘..

‘내가 이제 이 정도 수준이 되었으면.. 복을 받아서, 내 삶이 뭔가 풀리지 않겠나.

이 정도가 되면 목사님이 알아주지 않겠는가.

내 동역자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이쯤 되면, 응답해주시지 않겠는가..’ 라고 헛물을 켭니다.

 

그 헛된 세상적 기대치가 있는지, 각자 자신을 한 번 확인해 봅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은.. 맞지만

뭔가 오복을 달라고 하고, 자기 야망을 이루어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레아의 초창기 인생.. 그걸 우리 신자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레아가 멸시받고, 천대받고, 되는 일이 없어요.

 

내가 남편에게 그저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는데,

아들을 낳아주면.. 이제 그가 나를 사랑하겠지.. 하고 기대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 불쌍하니까 아들 르우벤을 주었어요.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고개를 들고 이제 뽐내는 것을 한 번 보세요. 레아 속에 있는 모습을 한 번 보세요.

그게 바로 내 모습이잖아요. 이 여인의 행동이 곧 나의 행동이잖아요.

 

이제는 뭔가 될 것처럼, 꼬였던 것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셋째 레위(연합)를 낳고 나서까지도, 남편이 자기와 ‘연합’을 안 해주는 겁니다.

 

더 꼬이고, 풀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은 되지 않고, 더 큰 고통과 오열과 반복이,

레아처럼, 내 삶 가운데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에게 조금만 응답 받고 조금만 남보다 나아지면

우쭐거리고 꼴이 말이 아닌 상황으로 가는 것, 우리는 알잖아요.

남보다 조금 더 잘 살고 더 가지면 항상 우쭐대는 우리.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죽음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 바깥에서 영원히 썩어서 죽을 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 여인이 아주 헛물을 켰어요.

‘이제는 내가 내 동생보다 먼저 자식을 낳아주었으니, 내 남편이 나를 인정해 주겠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남편이 이 정도 내가 시집을 와서 고통을 당했으면, 나를 알아 줄 것도 같은데..?’

‘목사님이, 내가 이 정도로 교회에 헌신했으면, 나를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이미 경험해 보셨겠지만, 절대로 싹이 안 보입니다.

(이 절망감을, 이 시간에 우리가 한 번 검토해보자는 거예요.)

 

그랬더니 뭐 여전히 무시하는 거예요.

야곱은, 여전히 레아의 가치를 인정해주지도 않고

레아는, 도저히 존중 받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냥 지니고 있어요.

 

여러분들의 상사와, 일터와, 가정에서

‘내가 이 정도로 기도하고, 이 정도 인내심을 보였으면

그대가 나를 좀 인정 할 때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인정하지 않는 거야?’

 

그 때 내 속마음에서 불만과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요, 안 나와요? 나오죠.

내 자아의 충만, 거기서 나오는 분노가 막 들끓잖아요.

그래서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입에서 거친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거죠.

 

우리는 그 때에 얼른 십자가로 달려가야 되겠죠.

‘주님, 이것을 뽑아 주시옵소서.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소서.

주께서 내 육신을 장사 지내주시고, 새 생명으로 내가 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가 간청을 드려야 하는 거예요. 날마다 죽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레아는, 하나님께 간청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제 자기를 조금씩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자녀를 계속 생산케 해 주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편은, 자기를 인정을 안 해 주잖아요.

 

32절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살펴 주신다)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고통스러울 때 응답 하시죠. ‘권고’해 주십니다.

이 응답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안위를 받을 수가 없어요. 견딜 수 없어요.

 

그래서 주님께서, 아직까지도 육신에 속한 자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응답해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여자가 헛물키는 게 나오잖아요.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니 우리 생각을, 기대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해요.

 

여러분들은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면 안 돼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레아가 유다를 낳게 하시기까지, 그가 거쳐가야 할 과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니까, 사람에게 시비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 마음 속에, 주위 사람들에게 시비하는 것이 있습니까? 바라는 것 있습니까?

그냥 하나님이, 나의 성품을 연단하시기 위해서,

유다를 낳기 까지 나를 성숙시키시는 과정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33절.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다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듣다)이라 하였도다’

 

레아는, 이제 풀이 좀 꺾인 것 같아요. 이제 김샜어요.

남편이 퍽이나 내 생각대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풀이 죽었어요.

 

▲34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레아가 대제사장의 반열인 아론의 반열, 그 조상인 레위를 낳은 것이잖아요.

 

어마어마한 영광스러운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아직까지도 주님이 온전히 그에게 임하여 오지 않는 모습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레아가, 아들을 셋 이나 낳아주었으면,

‘이제는 나하고 연합할 것이다’ 그랬는데

여전히 야곱이 연합해 주지 않잖아요.

 

‘이놈의 사장님이, 내 남편이,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내 자식이

내 수고를 인정할 때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안 할까?’

 

아직까지도 십자가(내 자아의 죽음)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내가 덜 여물었어요. 아직까지 덜 해결되었어요.

 

▲그랬을 때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고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던지, 인정해주던지/ 그렇지 않던지,

아무런 상관없이.. 이제는 하나님 한 분이시면 오케이.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만으로 족합니다.

 

레아가, 드디어, 십자가에서 자기 자아의 죽음을 체험하고,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 레아에게, 하나님은 유다를 주십니다.

그래서 레아는, 유다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조상을 낳는,

영광스러운 믿음의 조상의 계보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요, 말은 쉽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게 오래 걸려요.

이론은 다 아는데, 실제로 삶으로는.. 40~50년이 걸릴지도 몰라요.

(광야 히브리 백성들도 40년을 헤맸잖아요.) 빨리 갈수록 좋겠죠.

 

그래서, 이 십자가, 내 자아의 죽음이, 내 힘으로는 안 되는데..

하나님이 환경을 조성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떠한 새로운 어려운 환경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반드시 주님께서 무엇인가 나를 체크하고 계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되요.

 

이때 100점 맞는 것이 뭐예요?

‘주님 제 꼬라지가 이렇습니다.’ 이게 100점 맞는 것이잖아요.

 

문제가 생겼을 때, 변명하지 않고

‘주님 제가 그렇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입니다.

제가 이렇게 화를 내고 저 사람을 죽이고 싶고

아주 이 지구 전체를 가루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런 울분과 분노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우리 속에 그것을 발견해야 해요.

 

아주 진짜 악한 놈들이 TV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것을 볼 때, 여러분들이 화가 나요, 안 나요?

그게 ‘살인의 영’이잖아요. 얼마나 놀라운 거예요.

그때 ‘주여, 내 속에 살인의 영이 있습니다. 저를 용서, 치료하여 주소서’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는 자, 어여쁨을 받는 자.

당신의 보혈로 내 죄를 찾지 않으시고, 그저 예쁘다고 사랑 받는 여인들이 되잖아요. 아멘?

 

▲그런데 여러분들이 문제가 생겨 봐요. 여러분들의 속에서 뭐가 튀어나오나.

아직까지 문제가 안 드러나서, 내가 선하고 괜찮은 것 같아 보이는 거예요.

 

아직까지 그렇게 심각한 일을 안 당해봐서 그렇지..

정말 심각한 일을 당해 보면,

내 속에 히틀러보다 더 무시무시한 잔인함이, 내 속에 있는 본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 때에 우리는,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죽으실 수밖에 없는

그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떤 죄가 여러분들 속에서 나타나던지

그 뿌리를 보셔야 해요.

내 뿌리가 원래 아담이잖아요. 나는 거기에서 태어난 생명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생명이잖아요.

이제는 원뿌리가 바뀐 것이죠.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는 지금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죽을 때 까지 그 모습(옛 자아)을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 내 본모습(옛 자아)을 본다고 해서, 싫어할 이유가 없어요.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요.

‘아담의 복된 죄여 그대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모셔왔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네요.)

 

이것은 비밀스러운 말이죠. 세상에, 아담이 죄를 안 지었으면

복 되신 우리 주님께서 그 아름다우신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만났겠어요.

그 꽃 중에 꽃이고 아름다운 것 중에 아름다우신,

그 겸손하신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제는, 여러분들의 심각한 모습을 본다고 해도

절망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이 죄와 잘못으로 인해서

나는 주님의 더 깊은 사랑으로 빨려 들어갈 테니까요. 할렐루야.

 

라헬은 은사와 은혜에 속한 사람들,

십자가 없이, 자기를 단장하는 사람들의 상징이에요.

 

하나님을 단장해드리는 게 아니라, 자기만을 단장하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모든 행동을 다 하는 사람들이에요.

 

라헬은 자녀를 얻지 못했어요. 당분간.

그래서 이 여인이 신경질이 나서 누구를 끌어다가 자녀를 낳았어요?

자기 종(빌하)을 데려다가 했어요.

 

그래서 십자가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자꾸만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요.

그래가지고 자기 이름을 내세우려고. 그래서 교회에서도 자꾸 엉뚱한 일을 꾸며요.

 

자기 집안에서부터 십자가의 삶을 안 살고, 자기 자아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육신의 의지를 강화시키고, (제 고집대로만 하고)

그냥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이.. 라헬들이 주로 하는 일이에요.

 

어디 회장, 어디 이사 .. 하면서

그냥 내 이름이 날리는 대로,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이런 설교를 하면 맞아 죽어요. 얼마나 서울의 교회에 멋진 여성들이 많아요.

제가 이런 설교 하면, 짤리는 날이에요. 그런데 강하고 담대하게 설교해야 해요.

정말 이것은 무시무시한 일이에요. 아주 제가 얼마나 욕도 많이 먹는지 몰라요.

 

제가 이런 설교를 하면,

‘지가 믿음이 좋으면, 자기 암병이나 고치지, 왜 쓸데없는 설교를 하는 거야?’

이렇게 반발하고 나오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마귀가 하나님을 떠나게 해서

내 중심화 시켜서

나를 미화시키고 포장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 얼굴을 내세우는,

그게 누구에요?

 

내 속의 마귀적 성품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자기를 앞세워서 영광을 받으려고,

그래서 하나님한테 맞아 죽게 하려고.. 역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종을 통해서라도,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뭔가 자꾸 나의 위신을 세우려고, 일을 만들어가는 것, 일을 꾸미는 것을

자아가 죽지 않은 라헬이, 즉 깨어지지 않은 성도가 자꾸 하는 일인 거예요.

우리가 이 유혹에 빠지면 안 돼요.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아마존에서 너무나 기도를 많이 한 나머지, 원한에 사무쳤어요.

왜냐하면, 엄청나게 많이 기도했는데,

기도 응답을 많이 못 받아서.. 주님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제 마음이 낙심 되어서, 기쁨이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주님을 싫어하고 있었던 거예요.

 

말로는 내가 “주님 미워, 주님 싫어” 이런 말은 직접적으로 안 했지만,

내 기쁨이 사라진 것은, 주님이, 내 뜻대로 안 해주셨기 때문에

내 마음이 삐져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막 죽고 싶고)

그게 오래 지속되니까, 사단이 내 인생에 들어와서, 제게 똥을 싸버린 것이죠.

 

그러니 인생에 파탄이 나지 않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협력하셔서 선을 이루셔서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주님을 섬기고 주님과 연애할 수 있는

그러한 은밀한 장소로 나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 질병을 통해서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자꾸 의기소침해지고, 즐거움이 없어지고, 기쁨이 없어질 때는

그게 사실은, 주님께 여러분이 삐지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상태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입으로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대들고 계신 겁니다...

 

그게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중대한 이유입니다.

그게 아직, 자기 자아가, 강력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거든요.

 

우리는, 어떤 내 마음에 안 드는 처지를 당하셨든지..

어떤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나든지..

항상 이렇게 고백하고, 실제로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네, 주님이 언제나 옳으십니다.

네, 주님의 판단이 항상 의로우시고, 주님의 행하심은 언제나 정답이십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할머니들이 (레아, 룻, 다말, 라합, 밧세바 등)

모두 다 십자가의 상징을 띄고 있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자기 자아가 다 못 박혀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은 다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에게 바치기를 즐거워했던 의인들이에요.

 

자기의 자존심, 이런 것 다 십자가에 못 박았던 조상들이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자존심 못 버리셨는지요?

 

기도하시겠습니다.

얼마나 십자가를 지는 삶이 영광스러운지

말씀을 통하여 보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십자가의 열매는, 결국은 자기 인생에, 예수님을 모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레아처럼 십자가를 감당함을 통해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내 삶 가운데 모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고 치욕스럽고 모멸감이 가득하지만,

십자가를 진 그 자리에는,

결국에는 생명의 역사, 부활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내 성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고,

내 십자가를 통해서,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또한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뜻을 이루는데 사용한 라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종을 통해서라도)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자아가 죽지 않은’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분별했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분별의 영을 허락해 주셔서,

우리가 십자가를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많은 영적인 자녀를 낳는, 레아와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되게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