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4

신앙은 교리 지식이 아니라 삶

LNCK 2014. 6. 15. 20:30

◈신앙은 교리 지식이 아니라 삶          롬14:13-23            정낙원 목사 로마서77강, 출처

*원제목 / 하나님 나라 가치로 사는 것

 

 

 

 

▶본문 롬14:13절에, 그런즉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서로 상처가 되고

 

부딪힐만한 것들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 바울이 교회에 바라는 심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서로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고착화 되면 편견이 됩니다.

 

편견은 결국 분리를 낳게 됩니다.

 

 

 

물론 복음과 비 복음은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만 해요.

 

 

 

하지만 로마서 12장 이후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이 아니고

 

복음을 감당하는 수준의 차이로 나타나는 갈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안식일을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 라는 식의 신앙적 양심의 문제들이에요.

 

 

 

어떤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이나 날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고,

 

어떤 사람은 자유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자유치 못한 것이 옳으냐 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로 서로 다투지 말고 이해하고 용납하라는 겁니다.

 

그러한 것으로 형제간에 싸울 문제가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보면 큰 싸움에는 강한데, 의외로 작은 싸움에 약해요.

 

진리 문제에는 강한데, 그 진리를 적용하고 사는 데에는 무기력해요.

 

 

 

쉬운 말로 적을 때려잡는 데는 출중한데

 

정작 형제들끼리 알콩 달콩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일에는 낙제점이에요.

 

 

 

이게 신앙의 역리 현상이에요.

 

마귀가 자꾸만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놓치게 하고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는 것으로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먹고 배부름을 얻을 생명과로부터는 눈을 가리고

 

먹으면 죽을 선악과를 놓고 싸우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악과 문제를 가지고 백날 싸워도 소용이 없어요.

 

그건 이겨도 진 싸움이에요.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를 묻기 전에

 

생명과를 먹었느냐를 묻고 있어요.

 

생명과를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그러므로 생명과를 먹지 않고서는 선악과를 먹었네 안 먹었네 백날 싸워도

 

공중에 대고 헛발질 하는 것과 같아요.

 

 

 

지금 로마교회가 이 싸움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바울은 야~ 그딴 것 가지고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건 신앙생활의 본질이 아니란 겁니다.

 

신앙의 본질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쉬운 말로 교리(옳고 그름)적인 것으로 다투지 말라는 겁니다.

 

실천이 배제된 옳고 그름으로 다투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너희는 이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교리를 지나온 사람들 아니냐!

 

그런데도 아직까지 교리(옳고 그름)적인 것으로 싸우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의 마음으로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싸움을 하여야지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라는 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냐!

 

그럼 그리스도인으로 서로 화평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살아가야지

 

아직도 ‘너 그리스도인 맞아/ 안 맞아?’ 라는 식으로 싸우면 어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리(옳고 그름)를 간과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교회 안에는 그 교리(옳고 그름)를 삶 속에서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에는

 

성도 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하면서

 

마치 어린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듯이 참고 포용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세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합니까?

 

 

 

교리를 잘 안다고 하는 자들에게 하고 있어요.

 

쉬운 말로 너희는 처음부터 어른이 되었느냐!

 

아니지 않느냐!

 

 

 

너희도 다 어린아이로 시작하여서 장성한 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설령 분별없는 행동을 하여도

 

조금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선악과 적인 것을 가지고

 

싸우지 말라는 겁니다.

 

 

 

정작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들은 생명과 적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린 옳고 그름이라는 선악과에 매몰되어서

 

엉뚱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미혹하고 있는 겁니다.

 

마귀는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하지를 못해요.

 

하지만 마귀는, 우리의 구원에 즐거움과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요.

 

놓치게 한단 말입니다.

 

 

 

어떻게 빼앗는가 하면, 비본질적인 것으로 싸움박질 하게 만들어서 빼앗아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려야 하는데

 

엉뚱한 것으로 싸우게 하여서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을 갖게 하여서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식물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식물이란 율법적 신앙을 말해요.

 

즉 먹고 마시는 것과 날과 달을 지키는 것이에요.

 

 

 

이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것은 해도

 

의가 되지 않고, 안한다고 해서 불의가 되지도 않아요.

 

 

 

이건 각자 신앙의 차이에요.

 

신앙을 담아 내는 그릇의 문제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차이성으로 인하여

 

한 교회 안에서 서로 다투고 싸워서 원수가 되어서 얼굴을 붉히고

 

시험에 들어서 급기야 교회를 떠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고, 초대교회로부터 늘 있어 왔었어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나 날과 달을 지키는 것들인 식물의 문제로 싸우지 말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우리는 교리는 해박한데!

 

그 교리를 담아낼 그릇이 빈약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리를 아는 것이 법이 되어서, 사람을 죽이는 칼로 사용되어지고 있어요.

 

요즘말로 살려야 할 복음을 가지고,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중요한 말을 합니다.

 

교리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이 말을 잘 이해하세요.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교리를 알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교리는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

 

그 교리를 알아서 구원을 얻어 내라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걸 놓치지 마세요.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한 싸움은 없어요.

 

 

 

그것은 예수님이 홀로 담당 하시는 것이에요.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노력해서 따 내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의미로 우리가 교리를 안다고 해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홀로 이루신 구원을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 받은 자로서 감사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그 은혜의 풍성함 안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싸움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이후에는 계속하여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로 주신 구원에 감사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왜 그러느냐?

 

 

 

우리가 싸울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운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 헛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제발 헛 싸움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을, 은혜 아래로 옮겨 놓고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

 

너희가 이러한 은혜를 입고 산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교리에요.

 

 

 

교리를 알면 감사가 나와야 해요.

 

야~! 우리가 대단한 은혜를 입었구나!

 

내가 엄청난 축복을 받았구나!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그 구원에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리라는 복음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이상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 울산목양교회 성도들아!

 

엉뚱한 것으로 싸우지 말고, 한 성령 안에서 평화롭게 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성경적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마치 수능시험 준비하는 고 3 수험생들처럼

 

머리 싸매고 성경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설교 많이 듣는 것이 신앙인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 ‘나는 어떤 목사 설교 듣고 있어요!’ 라고 해요.

 

 

 

그러면서 그나마 예전에 조금 하던 교회 일들도 다 놓았어요.

 

교회도 안가고, 봉사도 안하고, 연보도 안하고, 기도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 해요.

 

 

 

오로지 설교 듣는데요.

 

마치 안하는 것이, 복음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아니에요.

 

 

 

그건 밥만 잔뜩 먹고 집구석에서 빈둥거리고 노는 것과 같아요.

 

이런 자들을 식충이라고 하고 암적 존재라고 해요.

 

 

 

제가 아는 어떤 인간은 나이가 40 넘었는데

 

주둥이로는 복음 복음 하면서 80 노모에게 얹혀서 아무 일도 안하고

 

놈팽이처럼 늙은 어머니 등골 빼먹고 사는 인간이 있어요.

 

말로는 청산유수에요.

 

 

 

이게 모두가 복음을 자기 게으름을 합리화 하고

 

사욕을 좇는데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 복음 아는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나요?

 

아무리 설교 많이 들으면 뭣합니까?

 

 

 

그 설교가 자기 안에서 생명의 능력이 되어서, 삶으로 나타나지를 않는데!

 

이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니 머리로 아는 것은 많은데 마음은 냉골인 겁니다.

 

까칠해서 다가 갈수가 없어요.

 

 

 

입만 열면 자기만 옳다고 하면서 남을 헐뜯고

 

비판과 정죄로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고 있어요.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고 말아요.

 

이건 마귀만 좋게 하는 어부지리에요.

 

 

 

어부지리(漁父之利)란, 조개하고 물새가 서로 싸우다가

 

조개가 물새 주둥이를 물고 입을 닫아 버리자, 물새는 날아가지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마침 지나가는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고사에요.

 

 

 

우리가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어요.

 

교회 안에서 서로 잘났다고 싸우며

 

예수가 주신 화목이 깨어지면 마귀만 좋게 하는 거에요.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에요.

 

즉 구약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신약의 교회사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해 오셨는지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삶 속에서 체득해 가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를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속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먼 하늘에 뒷방 영감처럼 에헴~! 하고 자리 보존하고 계신 것이 아니고

 

실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하면서 함께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신약 성경으로 주신 것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성도들 가운데 오셔서, 함께 동거동락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심이 신앙생활이에요.

 

 

 

신앙생활이란? 용서 받은 자로 사는(not 지식)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종이든 자유자든,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많이 배운 자이든 못 배운 자이든,

 

모두가 부르심을 입었고

 

동일하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 같은 분량의 용서를 받은 자들입니다.

 

 

 

누군 큰 용서를 받았고, 누군 작은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에요.

 

누군 큰 은혜를 입었고, 누군 작은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에요.

 

 

 

다 같은 용서와 은혜를 받았어요.

 

다만 그것을 깨닫는 차이일 뿐이에요.

 

 

 

많이 깨닫는 사람은 많이 감사하면서 누리고 살 것이며,

 

적게 깨닫는 자는 적게 감사하고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동일하게 부르심을 입고 동일한 용서를 받은 자임에도

 

각자 신앙생활 하는 차이와 조건으로 서로 옳으니 그르니 판단하고 싸우고 있어요.

 

 

 

교회 안에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된 우리로 살지 못하고

 

너와 나 각자로 살고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린 그만큼 은혜의 풍성함으로 살지 못하고 있어요.

 

 

 

은혜 안에서도 법으로 살고 있어요.

 

야고보서가 말하듯이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신분으로 사람 간에 차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 한 마디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념이란 말입니다.

 

 

 

신앙의 관념은 죽은 것이에요...

 

 

 

 

 

◑야고보서 2장을 봅시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을, 몸과 영혼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쉬운 말로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담겨지지 않는 그릇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그릇이라고 한다면, 행함은 내용이에요.

 

 

 

그래서 야고보서는 죽은 자들은 움직이지 않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약2:22절을 보세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을 한다고 하지요.

 

이를 사역동사라고 해요.

 

 

 

그리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다는 것을 증거 한다고 하지요.

 

누구의 행함이라고 합니까?

 

그의 행함이지요.

 

 

 

그가 누구인가요?

 

믿음이에요.

 

 

 

믿음을 의인화 하면 예수님이에요.

 

그러니까 믿음(예수님)이 살아서, 우리 안에서 어떤 행함을 유발시킨다는 말입니다.

 

 

 

누가 어떤 행함을 하면

 

아! 믿음이 저 사람 속에서 일을 하고 있구나! 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을 하여서

 

그 믿음이 온전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뭔가요?

 

눈에 보이는가요?

 

아니면 손에 잡히는가요?

 

 

 

믿음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만질 수 있나요?

 

없어요.

 

 

 

믿음은 추상 명사에요.

 

분명히 있기는 한데 정형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살아서 일을 해요.

 

이걸 행함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어떤 일을 일으키는 능력이란 말입니다.

 

즉 믿음이 원인이 되어서 어떤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걸 사역(使役) 동사(動詞) 라고 해요. ‘교리/ 지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일을 하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타나고, 또한 사람과의 관계로 나타나요.

 

 

 

하나님 앞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의(義)를 힘입고 나아가는 것으로 나타나요.

 

이걸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하나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사람에게 나타나면

 

섬기고 베풀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보듬고 안아주고 감싸는 모습으로 나타나요.

 

이걸 이웃 사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우리 몸으로 당신의 뜻을 펼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반드시 성경적 지식의 내용을

 

삶으로 표현이 되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세요.

 

이건 완전하게 온전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고

 

이러한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두 구조 즉 교리와 삶으로 되어 있는 것도 다 이와 같습니다.

 

야고보서 식으로 말하면 교리가 믿음이라고 한다면 삶은 행함입니다.

 

                                                                    *관련글/ 신앙의 씨줄과 날줄

 

이 둘이 함께 일을 해요.

 

이 둘이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함을 수레의 두 바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둘 중에 하나라도 결여되면 그건 온전한 신앙이 아니에요.

 

그런 신앙은 없어요.

 

 

 

예수가 그 속에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예수가 일으킨 행함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 행함을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금지 할 수 있는 법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건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행함을 강요하거나 가르칠 문제가 아니에요.

 

강요나 가르쳐서 나오는 행함은 종교에요.

 

 

 

그러나 예수 믿음은 종교가 아니고 신앙이에요.

 

신앙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행함은 금지 할 수가 없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안 나온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보고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귀신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없고 귀신이 그 속에 있으니까 말로만 믿음 믿음하지

 

그 믿음이 품고 있는 내용들을, 삶으로 풀어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니에요.

 

삶으로 사는 것이에요.

 

 

 

삶이 없는 것은 외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당시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교회를 일컬어 한마디로 정의하기를

 

“이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12장 이후에 계속하여서

 

성도가 교회 안에서 행하여야 하는 일들을 말하고 있는 것은

 

 

 

너희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말해온 믿음이라는 교리를 올바로 알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머릿속에 지식으로 쌓여 있는 것이 아니고

 

손과 발의 움직임으로 행동화 되어서

 

삶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출처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