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중심으로 돌아갑시다 갈5:24, 6:14 14.06.08설교 스크랩, 녹취, 출처
◑서론/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오늘 설교는 내용은 쉬운데 좀 순종하기는 어려운 그런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을 확인해보는 그런 작업이 되겠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있긴 한데, 과연 믿고 있는가?’ 그걸 확인해야합니다.
우리 신앙이 세월이 흐르다 보면 변질이 됩니다.
변질이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형식은 있는데 내용이 없어집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좋은 용어들 많이 쓰잖아요. 대단한 용어들 막 쓰는 거예요.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고, 그냥 습관적으로 막 쓰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신앙적 지식이 쌓이는 것과 신앙의 실력을 갖추는 것은 다른 것이죠,
교회를 오래 다니다보면, 신앙적 지식은 많지만
그 지식이 실질적으로 내 삶에 작동이 되고 있는가요?
또 그런 신앙을 내가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는 것이 분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믿는 줄 알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 보면, 실제 생활에서는 믿음이 증명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믿는 줄 알았는데, 안 믿고 있었던 거예요.
사실 그런 것들을 계속 점검해야합니다.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집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고.. 그러다가 지진 한 번 나면, 어떻게 지었는지 표가 나잖아요.
배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는데
거친 파도가 한번 쳐보면, 아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게 진짜냐,
혹시 가짜 신앙을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고 다니고 있지 않는가.
이런 부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 그래서, 우리 신앙의 가장 중심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이 뭐냐?
지금 우리가 이것을 들여다보고자 하는데요.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 한가운데에 뭐가 있는가 하면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다양한 좋은 말씀들이 있지만
특히 잠언서, 전도서에는, 우리 일상에 도움이 되는 지혜로운 말씀이 참 많이 있지만,
아무리 그런 말씀을 많이 알아도
십자가를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신앙의 변두리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되는 거죠.
우리 신앙의 중심은 언제나 십자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얘기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한가운데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믿어야 된다.’ 여기서
그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더 압축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복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와 부활이라는 것이, 두 개가 합쳐서 복음이지만
결국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부활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핵심적인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 같은 사람은 굉장히 위대한 인생을 살았죠.
그가 붙들었던 메시지는 사실 산상수훈 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은 참 주옥같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을 붙들면
삶의 굉장히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가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선한 삶은
도덕과 윤리는 되지만, 영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믿음의 노른자에는
결국은 십자가라고 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라도
십자가로 돌아가면 길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 신앙생활의 정 중앙에 십자가 가 있어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십자가 사건은
2천 년 전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도 여전히 우리 삶의 기준이 되고
또 그것은 하나의 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 실제의 삶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삶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신앙은, 어떤 케케묵은 옛적 교리가 아니고
어떤 과거의 사건으로 끝난 게 아니고
2천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되는
우리의 삶에 원리가 되는, 우리의 삶을 승리케 하는
핵심적인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날마다 십자가를 붙잡아야 되고, 십자가를 노래해야 되고,
십자가를 자랑해야 되고, 십자가를 사랑해야 되고, 십자가를 놓치지 않아야 되는 거죠.
▲이제 얼마 전에 우리가 525(매년 5월 25일에 열리는 부산 경남지역 구국연합성회)를 지냈습니다만
525를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자’ 했을 때
회개는 결국 돌아가자 라는 것이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곳 이 어디냐..
우리 신앙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돌아가고, 십자가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 십자가의 신앙으로 살았고, 이 십자가에 생명을 걸었어요.
우리 믿음의 모든 선조들을, 그 인생을 다 바치게 만들었고
그 인생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순교적 삶을 살게 만들었던 힘이 어디 있었느냐
결국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에너지 동력 살게 만드는 그런 모든 힘이
바로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모른다는 것은, 신앙을 아직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십자가를 모른다면, 기독교에 진입이 안 된 겁니다. 입문이 안 된 겁니다.
아무쪼록 이 십자가가 우리의 중심에 놓여있고
십자가 안에서 여러분의 신앙이 꽃피우고 열매 맺는 역사가 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 십자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신앙, 이게 우리의 과제에요.
자 어떻게 하면 십자가로 돌아가는가요?
마16: 24절 말씀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려고 하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부인 self-denial 이라는 말은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여러분들 보시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정 반대에요.
일평생 우리가 하는 노력이 뭡니까? 세상에 자기를 실현하는 거죠.
즉, 자기를 극대화 하고, 자기를 성취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모든 한가운데 들어가면 자기 정욕적입니다.
모든 힘을 쏟아 부어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멋지게 만들고,
자기를 강화 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죠.
세상은 사람들이 모두가 힘을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공부하는 이유, 돈 버는 이유 뭘까요? 힘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왜 힘을 가지려고 하죠?
그 힘을 가지고 자신의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은 힘이 곧 행복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상태를 꿈꾸는 거죠.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성공, 그 성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도구화 합니다.
그래서 이 성공의 길에 가고자 하는 수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는
뭐가 일어나죠? 경쟁이 붙는 거죠.
여러분 이 사회를 경쟁 사회라고 말합니다. 왜 경쟁을 합니까?
끊임없이 높아지고자 하는 나의 성공을 위해서
수없는 사람과의 경쟁을 이겨내야,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러죠.
그래서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 내 몰립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경쟁합니다.
입시철이 되면 대단한 경쟁이 벌어지죠. 이 경쟁의 압박감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어버리는 아이들이 해마다 많이 생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 부산에서는, 반에서 3% 내에 들지 않으면, 서울의 유수한 대학 가기가 어렵죠.
3%만 들어가는 겁니다. 97%는 들어갈 수 없어요. 이게 치열한 경쟁입니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만 만족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다 배제되는 이 경쟁 구조는 개인주의를 심화하게 되죠.
이 경쟁사회 구조는 개인주의화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갈수록 개인주의가 깊어지면 뭐가 찾아옵니까? 외로움이 깊어집니다.
외로움이 심해지니까, 우울증 환자가 많아집니다.
우울증이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죠. 더 치열해집니다.
모든 것을 걸고 성공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그 몸부림을 치고 모든 것을 다 걸고 생사를 걸고
그 자리에 올랐는데 과연 행복할까요? 아뇨, 행복하지 않아요!
오늘날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겉으로 보면
외형적으로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이 열려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환경입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낮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성공의 자리에 드높아지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그 자리에 갔는데,
그곳에 가 보았더니, 내가 찾는 게 없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서, 우리가 얻어야 될 결론이 뭐냐 하면
이 치열한 경쟁 사회, 나의 성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도구화 하는
심지어 하나님마저 도구화 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
설령 운 좋게 성공해도, 그 안에는, 우리가 찾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이라는 거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합니다.
신앙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관의 압력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는데, 십자가의 길을 노래는 하는데,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의 방식을 살아간다면
도대체 십자가는 어디에 필요한 것입니까?
십자가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 철저히 개인주의화 되고, 철저히 경쟁하고, 철저히 다른 사람을 도구화해서
나의 성공을 추구하는 길에서, 우리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남을 불행하게 해도 괜찮은 그런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유보하고/ 포기할 수 있는
이게 바로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의미가 뭡니까?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인데,
그 안에는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여러분 이게 십자가의 정신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다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기 욕망이 끼어들면
그 섬김과 사역마저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마저도 끌어당기고 (이용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도구화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관계는 깨어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보여준 메시지들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탐욕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도구화 하고,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 주는 원리는 뭐냐?
우리가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기독교는 사실 기독교의 진리 자체가 역설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과 정 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칙이죠. 세상은 정 반대의 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차 하는 순간에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고 따라가기가 매우 쉽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진리는, 세상과 다른 것이죠.
그래서 마16:25절에 보니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경쟁을 통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면 경쟁해야 되죠.
그러나 신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죠.
믿음이 없을 때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갈 때, 불안함이 있습니다.
치열한 세상 속에 함께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 같고
때로는 이 사회에 부적응 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 여러분 인류에 예수 그리스도 만큼
오늘 역사 속에 영향력을 가지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을 따라가는 길만이, 가장 복된 인생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삶에 불이익이 오고, 손해가 오고, 우리의 삶이 실패될 것 같은 착각이 올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길을, 십자가의 길을 분명히 따라간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남을 위해 죽고자 하면,
하나님이 내가 죽은 그 자리에서 부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을 죽이고 나만 살고자 하면, 비참해 집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믿는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은 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잘 죽는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잘 죽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잘 죽으면, 그것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죽는 게 어떤 것입니까?
산상수훈에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 뭡니까?
오른뺨을 때리면, 나는 그 사람의 오른뺨 과 왼뺨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오리를 가는 것도 쉽지 않는데, 십리를 가주라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저주하면, 같이 저주를 쏟아 붇지 말고, 그를 축복해주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길입니다. 자아가 죽는 길이에요.
아래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 이게 죽는 길입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누가 나를 무시하면, 자존심을 세우려고 핏대를 올리지 않고
조용히 죽어지는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왜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뭐냐 하면
너무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혀 다른 게 없다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면, 우리도 돈을 좋아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면, 우리도 경쟁하고, 세상 사람보다 더 무섭게 경쟁하고,
믿는다고 하는데 믿음의 실체를 확인할 수 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십자가 복음을 정말 믿는다면,
세상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을 훨씬 더 능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 바동바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어려워지고 위험스러운 이유가 뭡니까?
실제로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다 해도
신자로 사는 우리만이라도, 정말 십자가의 정신을 살려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희생적 삶을 살아가는 일에
우리가 굉장히 인색하고, 부족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성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현세적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리사회 전체가 ‘나만 살면 된다.’ 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있는데
신자로서 우리의 삶이, 예외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
▲지금 여러분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구원파의 심각성이 무엇입니까.
이름에서도 '구원파'는 구원을 강조합니다. 구원을 강조하는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심각한 것은 나만 구원을 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 구원 외에, 다른 사람의 구원에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구원받았으면 그 구원받은 것을 강조하고,
극단적 개인주의적 구원론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은, 내팽겨 쳐버립니다.
죽던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강조하는데 극단적 이기주의입니다. 개인주의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적인 의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만의 구원을 얻고 나만 좋으면 그뿐인 신앙생활!
여러분 이단들의 모습들이 이런 모습들이지만
오늘 우리의 신앙 안에 연약한 이런 문제들이 없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구원파만 욕할게 아니고, 사실 우리의 신앙 안에도
우리 개인의 구원만을 강조하고, 나만 구원받고, 나만 천국가면 되는
아주 신앙이 사적인 신앙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구원과, 구원의 확신과, 구원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지만
그 구원이 개인의 구원으로만 있진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킹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개념은
굉장히 넓은 개념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끊임없이 전도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공동체 의식이 없고,
나만 구원을 얻고, 나만 행복하면 그뿐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세상을 즐기는 일에 몰두하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그저 개인적인 축복만을 비는 그곳에는
그런 기복 주의적 신앙에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철저히 개인의 축복/ 현세적인 축복/ 오늘 이 땅에서의 만사형통/
물질적인 번영의 신을 구하는 그곳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도구화 하고, 기도라고 하는 것을 도구화 하고,
내 목적을 성취하고, 내가 잘 먹고 잘사는 일에 모든 것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그 속에,
그 개인주의적인 구원은, 결국은 다른 사람이 배제돼 있는 겁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회심만, 개신교가 많이 강조했지만,
회심의 과정이 진정한 회심이라면, 회심을 한 그 회심이
가정과 사회와 직장의 모든 영역 속에서, 그 회심의 증거들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 (길어서, 쉬어가는 지점) ..................
◑십자가는 극단적인 길
▲여러분 이 설교의 서두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십자가를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것을 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입니다.
어쩌면 이 십자가의 길을 내가 살고자 선택한다면,
꽤 예수를 잘 믿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마저도
내 곁에서 나를 조롱할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위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붙잡아야 될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게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십자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선에는 이 십자가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왜 내가 꼭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
확신이 오지 않으면, 이 길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기를 결단한다면,
굉장히 미련하고 굉장히 바보스러운 아주 미친 짓과 같은 그런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이 길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라는 이 확신을 갖고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신자는 매일매일, 이전에 살던 삶의 방식과 결별을 선언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아가 죽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의 자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날마다 높아지고자 하기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갈라디아서 2:20절은 우리가 날마다 외우고 또 외우고
선포하고 고백해야 될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고, 우리 일상속에서 매일 매일 고백하고 경험되어져야 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여러분 이것이 매일 매일 우리의 삶에서 고백되어져야합니다.
여러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는 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우리의 삶이 일 상속에서 고백되고 경험되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다, 이 십자가의 의미는
결국에는 신자가 제물 되는 삶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제물은 자기 자신을 위해 죽는 게 아닙니다. 양을 제물로 바친다. 라고 할 때
이 제물은, 양 자체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여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좀 잘못하면 욕하고 비판하고 돌을 던지고.. 이런걸 잘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가 누군가에게 손가락질하는 건 잘합니다.
‘저 인간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 세월호 사건도 일어날 때 희생양을 찾습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내가 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욕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 이상의 삶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배신을 당하시고, 홀로 묵묵히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정말 억울하다고 하면 예수님만큼 억울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죄인과 같이 되시고, 완전한 중죄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죄인으로 몰고 채찍질 하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정말 참고 참아도 마지막 말이 그럴 것 같습니다.
‘억울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과 같이 되셔서 그 희생의 제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자존심이 상해도 견딜 수 없어합니다.
조금만 억울한 누명을 덮어씌워도 그냥 참지를 못하죠.
'내 명예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은 남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획득합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담보하고, 자신의 삶을 극대화 합니다.
약한 자를 억압하고, 힘의 논리로 살아가는 것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은, 나의 희생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삶입니다.
나의 힘을 이용해서, 더 많은 힘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자신의 영광에 있지 않고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그것만이 주님이 우리에게 걸어가라고 말씀하신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속에서 잘 적응하고, 원만하고 둥글둥글하게 사는 걸 말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급진적인 것을 말합니다. 혁명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세상 속에서, 염려와 근심과 분노와 그런 불행감에 빠집니까?
바울이 갈라디아서 6:14절에 그런 말씀을 합니다.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다.’
바울의 굉장히 유명한 고백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의 것들이 더 이상 나를 옭아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염려하거나, 그것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따르는 그길 외에, 모든 것은 주변적이기 때문에
내 세상의 모든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내가 유명해지고 /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존심이 짓밟히고,
어떻게 하는 것은 전혀 내 삶의 주제가 아니고
내 삶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게 내 삶의 주제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유명해지고 어떻게 되고
내 자존심이 짓밟히고, 전혀 상관없이
그것이 내 삶의 주제가 아니고, 주변적인 것이 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드러내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기 때문에,
내 삶의 어떤 것도 나를 이제 묶을 수 없고, 제한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승리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면
이 십자가의 원리로 살아갈 때, 그 승리가 우리에게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부활을 여는 승리의 지점입니다.
여러분 그토록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불편합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길일 수 있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신앙이 왜곡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하나님마저도, 도구화해서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 더 멋있고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나의 극대화 내 자랑을 쌓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용하고 신앙을 도구화 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이용했을 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 담보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원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나의 희생을 통하여,
누군가를 복되게 하는 그 인생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여러분 우리의 가정 속에 이 십자가의 원리가 회복되면,
이것은 먼 교리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 십자가로 오늘 살기만 한다면,
우리의 인생에/ 가정에/ 모든 기업에/ 직장 속에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원리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이 승리를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승리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영광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 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영광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가정안에 갈등도 어떻게 일어납니까. 부부가 왜 대립을 합니까?
내 상대의 희생을 통하여 내 행복을 추구하면, 그곳에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 희생을 통하여 아내를 남편의 행복을 추구할 때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분이 십자가에 길을 가져오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나의 성공과 기업의 번창을 위하여, 직원들을 도구화 하는 동안
그 안에는 진정한 십자가가 없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내가 더 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직원들을 도구화 한다면
그 안에는 십자가의 정신이 없고, 십자가 가 없기 때문에
부활도 다시 사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그 기업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직원으로서의 십자가의 원리는
직장 속에서 나의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오히려
그 기업을 살려내고자 하는 정신!
기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을 도구화하고, 그 희생 위에 내가 돈을 벌고
나 혼자 탐욕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십자가의 원리를 실천할 때
그 기업은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단순히 먼 추상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자존심이 구겨지고 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그 자리에서 10년, 20년.. 아무도 박수를 쳐 주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때,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그 이후에 주어지는 영광은
하나님의 편에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변질 될 때가 많아요,
끊임없이 자기 부인의 길을, 걷기보다 자기를 극대화하고
자기를 들어내는 일에 모든 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그 길은, 그리스도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
내가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드러날 때
어떻게 저 사람 속에서 자존심이 구겨지고, 저렇게 어려울 때에도
저렇게 궂은 일을 묵묵히 아무 대가 없이 저렇게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 비밀을 알고 보니,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사람의 삶에 중심에 있는 것이고,
그런 희생의 자리에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활의 영광 승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그 십자가 이후에 주어지는 영광 영광을
승리 승리를 반드시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삶의 표본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걸어가셨는가를 자세히 보고, 그분의 뒤를 따라가면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위대한 인생을 사셨던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그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천대를 받고
정말 미친 짓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마감을 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의 영광이 주어졌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속에 끊임없이 세상의 방식대로 경쟁하여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고 희생을 통하여, 성공하는 나의 성공을 추구하는
이 세상의 원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철저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 삶을 철저히 부인하고
때로는 내가 무너지고 자존심이 깨어지고 망가지고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멸시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게 될 때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영광의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십자가로 돌아가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삶에, 내가 그 십자가를 붙들기 전에 하늘의 영광을 꿈꾸지 마시고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 끊임없이 죽고 또 죽으면 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낮아지고 또 낮아질 때 하나님이 높아주실 줄 믿습니다.
싸움에서 내가 지고 또 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역설, 파라독스. 이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하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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