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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 Wilkerson

LNCK 2014. 9. 12. 13:23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고전2:4                             출처보기

 

Demonstration of the Spirit and of Power  by David Wilkerson

 

 

 

 

하루는 제 윌커슨 목사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한,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오래 생각한 구절이 있습니다.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저는 젊은 시절에도, 이 구절에 매료되어서,

이 구절을 붙잡고, 오래 계속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메시지를 전할 때,

정말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하게 하소서!

정말 오순절에 성령이 나타났던 것처럼, 제가 설교하는 동안에

교회 문지방이 흔들리게 하시고, 성도들이 그 성령의 능력에 압도당하여

대거 강단 앞으로 나와서 무릎 꿇고, 엎드리게 하소서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날, 고개를 갸우뚱 한 것은,

바울이 편지의 서두 2:4절에서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설교한다고 원했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그리고 고린도후서를 끝까지 읽어보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그가 설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비록 편지/문어체이기는 하나,

정말 문지방이 흔들거리거나, 사람들이 압도당하여 엎드리는 듯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고린도전후서가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고린도전서에는, 교회의 문제들만 그득 나와 있습니다.

교회에 육적이 신자들이 있고, 분쟁, 결혼과 이혼의 문제, 구제, 과부 돌보기 등

어떤 실제적 현안에 대해서 바울이 편지하고 있지,

 

그들을 향하여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천둥과 우레처럼설교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의 그 편지를 읽고서 성령에 압도되어 쓰러지는일도,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편지의 서두에

바울이, 인간의 설득력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자기가 설교한다는 내용은.. 허풍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자기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자기 설득력으로 할까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심히 두려워하고 떨었다고까지 말하는데요.. 고전2:3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문제 제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가 말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라는 것은

(물론 오순절적인 그런 능력의 나타남도 되겠지만, 지금 여기 고린도전서에서는 그게 아니라)

 

자기가 약할 때, 강해짐으로서 나타나는 .. 성령의 나타남

자기가 여러 핍박과 환란을 당하지만 계속 버티고 순종하는데서 나오는 .. 성령의 능력

이라는 것입니다.

 

 

1. 먼저는, 진정 복음으로 내면이 변화된 사람에게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표적이 나타나면 좋지만, 그것이 근본적 본질은 아니라,

성령 사역의 본질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변화시키셔서, 그리스도를 본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죄인 중의 괴수이었으나,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셨고,

그래서 나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은, 아직 내적인 전쟁이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죄와 정욕과의 내적 싸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한 새 사람이 된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사는 자가 된 근본 이유였습니다.

 

자기 옛사람의 속성을 따라 살지 않고,

새사람을 입은,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그것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전7장에서, 바울은 결혼과 독신에 대해 권면합니다.

그는 40절에서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정말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바울 자신이,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난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 의견/자기 생각을 말해도.. 그건 성령의 능력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죄에 절어서 살고 있고, 스트레스 가운데, 절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뭔가 답을 얻으려 하지만, 그들 인생 문제에

정확한 답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철학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무슨 자기계발 서적을 사서 읽기도 하지만,

그게 자기의 답답하고 메마른 인생에.. 시원한 해갈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답이 있습니다.

정말 자기 주위에, 정말 바울처럼, 진정 거듭난 사람이 있으면,

자기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소욕대로 사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있으면,

 

그가 한 마디 던져주는 말, 그가 한 마디 상담해 주는 말은,

그 표류하는 인생에게, 큰 해답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입니다.

 

물론 대부분 표류하는 인생은, 그의 말을 해답으로 여길 능력을 상실해 있지만요,

그래도 간혹, 잠시라도 귀가 열려서, 자기 주변의 진정한 크리스천의 말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란

진정 거듭나서, 계속적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그 자체에서

바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문지방이 흔들거리거나,

사람이 그 능력에 압도되어 쓰러지지 않더라도요.

 

2. 세상의 구경거리로 사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전4:9절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구경거리’(theatron)라는 헬라어는, 야외극장theater, 또는 광장의 무대를 뜻합니다.

관객은.. 세상 모든 사람들입니다.

위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 신자를, 검투사 같은 사형수로 무대 위에 올려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쳐다보고, 구경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무대 위의 연기자에게 대본이 있고, 역할이 있는데요,

그건 그리스도로 인해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4: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고전4:10

 

4:9절은 더 심하게 표현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사실 사도바울은, 구경거리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극심한 환란을 겪었고, 핍박을 받았으며,

살 소망이 다 끊어지고, 마치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고후1:9

물론 모든 신자가 다 사도바울처럼 고난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신자는 각자 자기가 겪는 고유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신자를 이런 고난 가운데 내 모실까요?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실까요?

 

그건 성화의 목적도 있겠고, 세상을 버리고 떠나라는 목적도 있겠고,

세상을 전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고, 그 외 여러 선한 목적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 필요하고, 꼭 겪어야 할 과정이기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각자 신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란,

고린도전후서에 보면, 무슨 문지방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쓰러지는 능력은 없었지만,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극심한 고난을 참고 인내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건 마치 원형경기장의 사형수나, 포로 행렬의 포로처럼

사람들보기에 조롱과 웃음꺼리, 구경거리가 될 때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고요, 가끔은 그렇지요)

그래도 그 길을 꿋꿋이 포기하지 않고 가게 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고전2;14절에서 바울이 말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신자가 억만장자가 되든지, 크게 유명인사가 되어서,

세상에 보여주기 원합니다. ‘여러분도 믿고서, 나처럼 되세요!’

그런데 그건 우리 소원이고요, 성경은 조금 다르게 보여줍니다.

 

욥을 보십시오. 본문의 구경거리를 보십시오. 또한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세상에 자랑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길을 불평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내고, 걸어가는 그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 되는 셈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구경거리를 보고서 웃고 조롱하지만, 나중에 크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크게 성공하는 모습으로서, 세상에 구경거리를 보여주기 원하지만,

성경적 방식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핍박받고, 고난을 당하지만

꿋꿋이 견디고 인내하는 그 모습을 구경거리, 하나님은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면, 구경거리가 되는 성도에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필요한데,

만약 그게 없으면 구경거리가 되기 싫어서, 도망갈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말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있어서,

기꺼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감당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사탄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집을 울타리로 보호해 주신 까닭 아닙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욥을 다 벌거벗기셨습니다.

세상에, 또한 친구들 앞에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지요.

 

그러나 욥이 끝까지, 신앙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신실했을 때

구경거리는 큰 간증거리가 되었고, ‘증인의 삶이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복음은 넘쳐나는데, ‘복음의 증인은 찾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자기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경거리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복음을 실제 자기 삶으로 살아내는, 증인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만.. 그 길을 순종해서 가게 될 것입니다.

 

3. 대본(성경) 대로 사는 능력입니다.

 

고전4: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대본이 있습니다.

즉 성도에게는, 주어진 대본이 있는데, 바로 성경입니다.

 

위 성경구절이, 이 세상이란 무대에서, ‘구경거리로서 살아가야할 신자들이

연출해 내어야 할 대본이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세상 사람들은, ‘관객의 역할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는데, 참 잘 해냅니다.

 

그들은 관객이 되어서, 크리스천들이, 세상이란 무대에서

위 말씀 그대로, 잘 살아내는지.. 늘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고, 또 비판합니다.

 

자기는 믿음도 없으면서도,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는지/안 사는지

그것은 기가막히게 잘 분변해 냅니다. ‘관객의 역할은 잘 감당합니다.

 

마치는 말

바울이 고린도전서2:4절에서 말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Demonstration (Manifestation) of the Spirit and of Power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것을 사도행전적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고린도전서를 쭈욱 읽어보니까

사도행전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위에서 언급한 대로

-거듭난 신자로서, 변화된 크리스천으로 사는 능력

-고난과 핍박 속에 구경거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능력

-성경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는 삶을 사는 능력

이런 것들이, 고린도전후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모든 크리스천이, 그런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 같은 삶, 사도바울과 같은 삶으로.. 계속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감동 받고, 전도 받는 것은 아니고,

고난 가운데 꿋꿋이 인내하며 살아가는

예수님 같은 삶, 사도바울과 같은 삶을 보고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전도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20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오늘 나의 삶에, 나타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