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되다 마11:6, 히10:35~36 출처보기, 대강 번역
The Blessedness of the Unoffended by T. Austin-Sparks in 1959.
◑세상에, 세례요한이 실족할 뻔 하다니..
마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우리가 요절로 외워야 할 구절은, 6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주셨던 말씀인데요,
2가지 내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다 보면 실족할 일이 많다는 것과
-그래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들 축복하기를 원하고, 축복 받기를 원하는데,
본문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방식은, 아주 특이합니다.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실족하다’는 말은.. 발을 헛디뎌 넘어진다는 뜻이죠.
헬라어는 ‘스칸달리조’인데,
‘시험에 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다’라는 뜻입니다.
아직 완전히 넘어진 상태는 아니고,
간당간당하게, 흔들리는 상태입니다.
참고로, 같은 단어(실족, 스칸달리조)가 쓰인 몇몇 구절을 찾아보면,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마5:29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요16:1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스칸달론) 것이요..’ 고전1:23
(그 외도 여러 구절들이 있습니다. 신앙 여정에 실족할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걸려 넘어지기 쉬운’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세례요한 같은 분도, 걸려 넘어질 뻔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도
‘걸려 넘어질 뻔 하는’ 복음이었습니다. 고전1:23↑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합리적이고, 너무 이성적인..
전혀 걸려 넘어질 게 없는 복음을 전하고 있지는 않나요?
걸려 넘어질 뻔한 것들은, 이리 저리 다 제거해 버리고,
다 쉽게 수용하고, 잘 납득할만한 것들만 골라서 전하다 보니까,
복음의 변질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복음을 따르는 것은
‘걸려 넘어지기 쉬운’ 길입니다.
미끄러지듯 달리는 잘 닦인 길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실 이 설교를 전한 오스틴 스팍스도,
20세기 초 영국의 굉장한 ‘말씀 사역자’였는데,
심한 질병으로 크게 고생했습니다. 실족할 뻔 했던 것이지요.
주님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는데.. 주님은 그에게 ‘질병의 가시’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쉽게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좋은 일/행복한 일만 가득 많이 생길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많이들 실족합니다.
‘내가 주님을 믿는데.. 왜 이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11:6
▲‘실족’과 비슷한 말로 ‘시험’(페이라조)이 있습니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trial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러니까 간당간당 하는 것이지요.
아직 완전히 빠져 버린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져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상태입니다.
영어로 trial 로 번역했는데,
try(시험)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를 툭툭 친다(시험한다)는 것이지요.
넘어질 뻔한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실족할까/말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여러 가지’로.. 가지가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종합선물세트처럼!
예수 믿는 현실이, 리얼리티가 ..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냥 무슨 설교처럼 순풍에 돛 단 듯.. 잔잔한 수면 위를 즐기며 항해하지 않습니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trial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기쁘게 여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험을 이길 때,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이.. 고생만 실컷 했지요. 언제 기쁩니까?
사시나 행시에 합격했을 때.. 무지 기쁘지요.
그래서 시험을 만나는 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만나야.. 자기 믿음의 실력이 증명되니까요!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또 짜증 냅니다.
이제부터는 약1:2절을 암송하면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한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은 어떤 꾸지람도, 비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간당간당 했지만, 아직 완전히 넘어진 것은 아니었거든요.
잠시 의심하는 것은, 죄가 아닌 것입니다.
세례요한 입장에서는, 사실 실족 할만 하지요.
하나님의 인도대로 철저히 순종했는데.. 결과는 투옥이었습니다.
그가 투옥되면.. 그의 사역은 타격을 입지 않겠습니까.
그의 명성도.. 어쩌면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래도 암울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실족할만 하지요!
‘세례요한, 당신은 과거에 나를 메시야로 지목하지 않았소?’
‘사람들에게 나를 전도한 사람이, 실족하다니.. 쯧쯧’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 스팍스는, 성경에 세례요한의 실족을 다룬 본문이 기록된 사실이
(성경에 안 쓸 수도 있잖아요)
우리 인간은, 그렇게 실족하기 쉬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목적도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들도 조심하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약1:2절의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처럼,
예수님도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하는 시험은.. 괴로운 것이지만
그 실족을 이긴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 문제로 실족하는 일이 있으십니까?
주님의 섭리에 의심이 들어서, 간당간당 하십니까?
그 시험에 지면.. 좌천되겠지만
그 시험에 이기면.. 승진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고, 실족하는 일을 만나서 간당간당 하는 것을,
무조건 다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승진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걸 이기고 승리하면 ‘복됩니다.’ 마11:6
◑실족하지 않았던 엘리사
▲그럼 진짜로, 시험을 이기고 승리해서, 복을 받은 사람의 예를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엘리사 선지자입니다.
스승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를 데리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을 줍니다.
길갈에서 → 벧엘로 → 여리고로 → 요단으로,
쉽게 말해서 뺑뺑이를 돌립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엘리사야, 빨리 단념하고, 나를 떠나라’는 시험입니다.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마다, 엘리야는
‘너는 여기 머물러라. 더 이상 나를 따르지 말라’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엘리사 입장에서 보면, 이건 완전 소외감이요, 버림받는 기분이었겠지요.
‘너는 더 이상 내게 필요 없다. 나를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엘리사 같았으면 당장
‘좋습니다. 포기할게요!’ 하며 버럭 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 인해 실족할 뻔 했었고, 그게 3번 이상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엘리사만 그렇습니까?
오늘날 우리들도, 주님을 따르는 길에 있어서,
정말 포기하고 싶고, 돌아서고 싶은, 다시 말해 ‘실족’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주님도, 내가 주님의 나라에 필요치 않으신가 봅니다.
나라는 존재는, 주님의 사역에, 아무 존재 가치가 없으신가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섬기는 내가
병들 때도 있고, 궁핍할 때도 있고, 여러 문제로 곤란할 때도 있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주님은 묵묵부답 이시니까요.
▲물론 엘리야는, 엘리사를 골탕 먹이려고, 그렇게 시험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엘리사가 감당해야할 사명이, 크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시험과 아울러 훈련을 시킨 것이지요.
엘리사의 영적인 근력을 길러주는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시험에서 낙방했다면, 엘리사는, 그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겠지요.
그러나 시험/훈련에서 인내하며 합격한 엘리사는,
엘리야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귀한 사명을 감당해 내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실족의 위기나, 시험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인내하고, 통과한 사람은, 승진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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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히10:35~36절
▲이와 관련해서, 히브리서의 한 구절 말씀과 연결해서 봅니다.
히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것은, ‘담대함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족하지 않는 것은, ‘담대하게 말씀을 계속 전파’하는 것입니다.
보통 영어성경에 confidence(확신)을 버리지 말라고 번역했는데,
RSV 성경은 boldness(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글 개역은, boldness(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번역했네요.
여기서 ‘담대함’(헬. 파르레시아)은 ‘거침없이 말한다’는 뜻인데,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설교했을 때,
바로 그 담대함과 같은 말입니다.
행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지금 정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된지 얼마 안 있어.. 입니다.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나사렛 예수 파’에 대해 심상치 않았던 위험한 시절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들과 당국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말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거침이 없었던지
‘너희가 살인한 (못 박은) 자다!’ 라고까지 표현했던 것입니다.
사실 실족한 사람의 특징은, 일단 ‘설교의 담대함’을 잃어버립니다.
설교할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고, 설교하기가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했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것은,
담대함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의 담대함! 복음전파의 담대함!
얼마나 담대한가 하면,
행4장의 베드로와 요한처럼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히10: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이 말씀을, 히브리서 전체 정황에서 보면, (야고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들은 기독교 신앙 때문에, 많이 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인내하며 견뎠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도 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기도 하면서.. 인내했습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도.. 어려운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은, 더 증가했습니다.
마치 옥에 갇힌 세례요한처럼, 의심이 한 가지 두 가지씩 틈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정황에서 ‘복음 전파, 말씀 선포’에 맥이 점점 빠지게 되는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이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실족 – 말씀전파’를 연결 지어 살피고 있습니다.
실족한 사람은.. 말씀 전파의 힘이 약해진다는 말이고,
실족을 이긴 사람은.. 담대하게 계속 말씀을 전파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도 마찬가지로, 시험을 이긴 자에게,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히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실족할 상황속에도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듯이(마11:6),
-엘리야가 인내해서, 복을 받았듯이
-담대하게 계속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약속’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내 후에’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요3:16절을 믿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후에 정말 ‘실족하고, 시험에 들만한 일이’ 그것도 계속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내하고, 담대한 사람, 실족치 않은 사람만
승진되고, 복을 받고, 약속을 받을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만,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서, 그 승리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이제는 천국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진동하지 않는’ 튼튼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니까요!
좁은 길, 좁은 문처럼.. 길이 좁고 협착해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시험 드는 일이 많고, 실족할 뻔 하고, 인내 없이는
그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입술로 ‘예수를 믿는다’고만 말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그 풍성, 그 행복, 그 안식의 복을 못 누리고요..
문제는, 그렇게 살다가는.. 영원한 천국에도 못 이른다는 것입니다.
지금 천국에 못 들어간 자는 (현재 천국 생활을 못하는 자는), 나중에도 못 들어갑니다.
▲마치는 말/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그는 주님께 잊혀진 듯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께 은혜를 받고 승승장구하는데,
자기는 주님께서 기억하시거나, 쳐다보지도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럴 입장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를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는 말씀을
전달해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상급은.. 천국에 가서나 판가름 나는 것이지요.
아마 세례요한은, 자기 사역 말고도,
주님으로 인하여 투옥당하고, 순교한 일로 인해..
자기의 그 이전 사역보다, 더 큰 어마어마한 상급을, 영원히 받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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