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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나의 마시려는 잔 P1, P2 / 레이븐힐

LNCK 2014. 10. 2. 15:07

 

◈나의 마시려는  P1, P2               12:49~50, 마20:22          출처

 

Leonard Ravenhill 목사님의 설교 Are you willing to drink my cup? 를 녹취, 정리했습니다. 출처보기를 보세요!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20:22

 

1. 고난의 세례 와 성령의 세례.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우 근처에 가면,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기념하는 커다란 국가적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집은, 대나무와 나뭇잎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속의 그의 집을, 영국에 복원해 놓은 것입니다.

 

그 안에, 그가 죽은 방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수년을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볼품없는 침대 옆에서, 그는 늘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 방의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즉 저녁이나 새벽시간에,

동네 사람들은, 그가 손을 들고, 울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언제 이 세상의 죄가 치유되겠습니까?”

 

그는 포르투갈 노예 상인들에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그는 많은 놀라운 사역을 해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그는 자신의 겟세마네 동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었던, 자신만의 고난의 잔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그의 소중한 아내가 죽자, 그는 아내의 시신을 아프리카 정글에 묻었습니다.

아내가 낳은 아이가 죽자, 아내 옆에 아이를 묻었습니다.

또 다른 자녀도 죽었고, 그 아이도 정글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의 잔을 마신 후에, 그는 더욱 울며 전진했습니다.

그의 고난은, 그를 더욱 불붙게 하는, 기름으로 작용했습니다.

 

사실 마귀가, 그의 가족을 빼앗아가는 고난을 준 것은,

데이빗 리빙스턴의 선교적 열심을, 좌절/중단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리빙스턴은,

마귀가 빼앗으려고 한다. 마귀가 방해 하려고 한다하면서

더한 열심으로 그는 헌신했습니다.

 

그는 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밤마다, 그의 목소리가 정글에 퍼져 나가는 것을 들었습니다.

! 하나님, 언제 세상의 죄가 치유되겠습니까?”

 

지금 목회자들은, 교회에 사람들을 더 끌어 모으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버스를 이용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들이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서, 버스 대절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부흥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해산의 고통 후에, 임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잔을 마신 후에, 십자가에서 고난의 세례를 받은 후에

오순절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예가, 데이빗 리빙스턴입니다.

그가 고난의 잔을 마신 후에야,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누가복음12:49~50절 입니다.

나는 세상에다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저 레븐힐은, 지난 70년 동안 전 세계의 집회에 다녀보았습니다.

(보통 레오나르드 레이븐힐이라고 알려졌는데, 미국에서는 레너드 레븐힐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오순절 교파 집회, 감리교 집회 등 온갖 종류의 집회에 다녔습니다.

거기서 성령세례에 관한 설교는, 50번쯤 들은 것 같습니다.

 

해외뿐 아니라 미국에서 열리는 큰 집회들에 가도 성령세례에 관해 자주 말합니다.

그렇게 사도행전2장의 성령세례에 관한 말씀은 줄기차게 증거하면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가 있다

하신 눅12:50절을 가지고 한 설교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세례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는, ‘고난의 세례, 십자가의 세례도 있습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그렇게 성경에 2가지 세례가 나오는데,

먼저 고난의 잔, 십자가의 세례를 받아야

그 후에 성령의 세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부흥집회에서 행2장의 성령의 세례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눅12장의 십자가 고난의 세례를 통과하지 않은, 성령의 세례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2. 불도 2가지 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불을 이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하십니다.

이 불은 똑같은 불인데 성령의 불도 되지만, 동시에 심판의 불도 됩니다.

 

주님은 불을 던지시는데,

어떤 사람은 성령의 불, 그것을 받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심판의 불, 소멸하시는 불, 그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소멸하는 불'을 받았다가, 회개하고 '성령의 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판의 불, 소멸하는 불을 던지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의 주님그 한 면만 알고 있지요.

 

찰스 웨슬리는 사랑스러운 어린이 찬양을 작곡 했습니다.

친절하신 예수님 온유하시고 부드러워, 어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이런 찬송만 알아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온유하신 그리스도로만 알면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면을 모두 보아야 합니다.

온유하신 면과 아울러, 불을 던지시는, 두려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2장의 성령의 세례는, 앞서 겟세마네의 고난과, 골고다의 세례를 통과한 이후에

주어졌습니다.

 

, 주님이 고난의 세례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 성령의 세례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각자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고난의 세례를 먼저 받게 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을 먼저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세례를 받는, 마가요한의 다락방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불을 이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하십니다.

기독교의 상징 중 하나는 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불을 주러 오셨습니다.

여기서 불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따르는 자는, ‘성령의 불을 받게 되겠지만

주님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자는, ‘심판의 불을 받을 것입니다.

이래 저래, 우리는 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지, ‘소멸하는 불을 받으면 안 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둘 중에 한 개는, 반드시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소멸하는 불'을 받았다가, 회개하고 '성령의 불'을 받기도 합니다.

 

작은 불꽃이 차츰 피어나, 온 세상을 덮는다는 겁니다.

웨슬리가 1776년에 썼는데, 예언적인 시라고 생각합니다.

불은.. 점점 더 퍼지고 자라나며 더 강력해 집니다.

교회도 불처럼, 점점 더 확장되고 강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인 우리가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처럼 더 활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못할 때는, 심판의 불속에서 또한 활활 타게 될 것입니다.

이래 저래 우리는, 주님이 던지시는 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불이 쉽게 붙지 않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12:49~50

 

이 말씀에서, 주님은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느낍니다.

나는 아주 답답하다. 불을 보내는 것이 나의 사명인데,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지옥이 모든 권세를 동원해서, 내가 주려는 불을 끄려고 하고 있다.’

 

지옥의 불과, 성령의 불의 대결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불 위에 있었고, 그랬기에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대결은, 실제로 이렇게 나타납니다.

본문에 계속 이어지는 구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12:51

 

이사야서 8장에는 예수님이 기묘자,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성경 곳곳에는,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경을 균형있게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봅시다.

내가 평강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왔다.

 

아버지가 아들과, 어머니가 딸과,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52

 

 

마지막이 되면 모든 게 부패합니다.

삶이 방식이 부패하고, 가정이 부패합니다.

모든 것이 더욱 타락합니다. 가족이 깨지고, 관계가 병들고, 저주 받고 있습니다.

모든 잔인하고 악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있지만,

비통하게도 아주 희석되고, 타협된 형태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독교 안에서도, 분쟁과 대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던지시려는 불이, 이 땅에 활활 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답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0

 

이렇게 예수님이 던지신 불이, 이 땅에 불 붙지 않고,

도리어 집안 식구끼리 분쟁하게 되는 예가,

마태복음20장에도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열두 제자를 따로 곁에 불러 놓으시고,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그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요청했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국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왕국이 임하면, 그 두 제자가 예수님 좌편과 우편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20:22

 

지금 우리는 같은 사건인 누가12장과, 마태20장을 동시에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눅12장에서 이 불이 붙지 않아서, 내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셨는데,

20장에 보니까, 그 말씀 직전에,

두 제자가, 예수님 보좌의 좌우편 자리를 청탁하러 온 것입니다.

 

이런 문맥 가운데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12:49

 

예수님께서 불을 던지러 오셨는데, 그 불을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십자가를 거부하고, 예수님 좌우편에 출세할 궁리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12:50절의 예수님이 받으실 세례,

즉 애통함의 세례, 겟세마네의 세례, 골고다의 세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온 세상 어디에도

마가요한의 다락방(성령세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 전에, 골고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거꾸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락방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부흥집회가, 그렇게 행2장만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개인적 체험들만 말하는데, 그 체험은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그 불은, 2장의 성령의 불이기 이전에,

십자가에서, 우리 각자의 자아가 소멸되는 불인 것입니다.

 

나는 네가 타락한 너의 의지를 소멸시킬 불을 받길 원한다.

그 소멸의 불은, 너에게 능력과 힘과 생명을 주는, 성령의 불을 받게 해줄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불을 주기를 원한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를 지기까지는, 아직은 그 일이 이루어 질 수 없다.’

 

 

4. 고난의 불을 먼저 받은 사람들

 

예레미야는 고대 어느 선지자보다 많은 핍박을 겪었습니다.

선지자로 세워지자마자 핍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갈등 상황 가운데 죽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능력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불이 타고 있다라고 예레미야는 말했습니다.

 

5:14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 외에도, 예레미야가 41번이나, 불에 대해 말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갇혔지만, 그의 안에 타오른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서두에 데이빗 리빙스턴도, 고난의 불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을 더욱 성령의 불로 승화시켰듯이

예레미야도, 고난의 불을 통과하면서, 그는 더 뜨거운 성령의 불을 소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찬양가사가 있습니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아8:7

! 놀라운 이야기, 신비한 하나님, 나는 님의 것, 님은 나의 것...’

 

이불은 끌 수 없습니다.

지옥의 불도 꺼지지 않듯이, 성령의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역사적 과업을 이룬 사람 중에,

성령으로 거듭난 후, 2의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고 평안을 얻은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지 말해보십시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그들이 예수 안에서 완전한 평안을 가지기 전에,

언제나 자기 삶에 고통을 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 주님을 믿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했을 때, 그 후 그들은 부활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나는 밀물 썰물처럼 요동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성령충만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안하게 지내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많은 고난과 격동 가운데 갈등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구세군은 처음에 무일푼의 조직이었지만, 90년 안에 70개 국가로 퍼졌습니다.

윌리엄 부스가, 먼저 고난의 잔을 마셨고, 그 후에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영국을 떠나서 선교지로 갔습니다. 교수가 사직서를 내고 나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들은 윌리엄 부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기둥을 본 것만큼, 분명하게 하나님의 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 거기에 계셨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그들을 밤중에 거리로 나아가 찬양하며 행진하게 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정결케 하는 불을 보내소서! 보혈로 산 그 불을 보내소서!’

 

보세요, 지금 우리는 부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현 상태에서 불세례로 가려면, 먼저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고난의 잔을 마신 후에라야.. 성령의 세례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와 그 모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내가 받으려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마치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요?

 

오늘날 우리가, 정말 고난의 잔은 마시지 아니하고

뭔가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만 구하는 제자들같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성공을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장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지금처럼, 능력도, 기름부음도, 기적도 적게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가장 작게 일어납니다.

 

주일 아침 예배 후

하나님의 장엄하신 위엄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며

교회당을 조심스럽게 걸어 나온 적이 언제였습니까?

 

너는 네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얼마나 자주 그 말을, 기도하는 우리에게 하고 계실까.. 저는 궁금합니다.

 

저 레븐힐이 늘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수억의 눈이 나를 보고 있는 가운데

그날 하나님께서 내게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이 많았지만

 

네가 감당할 수 없을까봐 말하지 않았다는 말을

저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부흥에 관해 진지해질까요?

 

저는 이번 주에 얼마나 많은 스타 강사들이 올 것인지, 광고하는 두꺼운 소책자들을 받았습니다.

제게 와서 기도를 해달라는 요청인데, 호텔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그곳에 유명한 사람들이 올 것이고, 무언극을 가르치는 특별한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주에 2~3번 인형극을 가르치고, 무언극(판토마임)을 강의 하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무언극을 가르치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까?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이?

세상에 광대들이 많은데, 왜 그들을 교회로 끌어 들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진지하게 섬기지 않는데

왜 세상이 하나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 잔은 어떤 잔입니까?

그 한 요소는 배반입니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이, 위기가 오자 돌아섰습니다.

그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그 잔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잔 안에는 내적인 고통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영적인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잔을 마시고 싶으십니까? 그건 괴로움의 잔입니다.

나는 괴롭다그분은 말하셨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가야할 곳이 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성령이 오시지 못한다.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기 전에는 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분은 겟세마네의 고뇌를 통과하셨습니다.

 

그분은 외로움의 길을 통과했습니다. 그분은 그 잔을 마셨습니다.

이사야53:11에 의하면, 그분은 산고를 겪는다고 합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사람에게뿐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그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산고를 기꺼이 겪으시겠습니까?

 

오늘날 , 사람들은 고통 없는 오순절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순절 직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번영했습니까? 그런가요?

그들은 감옥에 갔습니다. 번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옥이었고, 고통과 결핍이었고, 박해였습니다.

 

그것은 가난의 잔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19절에서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많은 부유한 크리스천들이 하늘나라에는 파산되어 들어 갈 것입니다.

가난하게 거의 파산상태에서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나라에서는 아주 부유할 것입니다. 부자도 천국에 갑니다만, 그 문이 매우 좁습니다.

 

주님을 따르려 하면 가족 간에도 분열이 일어나서

아버지 어머니가 당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그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미덥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집안에서 쫓겨날 수 있으십니까?

 

이사야50:6은 말합니다.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되받아 칩니다.

누군가 우리를 찌르고, 경멸하고, 창피를 주고, 허위로 고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한번은, 멘체스터 근처의 올드햄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영국 그 지역의 큰 성결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집을 지나는데, 문이 열리고 한 노파가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터버너클 성결교회 목사님이시군요. 제가 그 교회에 종종 가서, 뒷좌석에 않고는 해요

그러시군요, 자매님,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너무 가난해 헌금도 못하는데, 뭐든 드리고 싶네요. 집으로 들어와 차 한잔 하실래요?”

저는 차를 즐겨 마십니다. 그래서 노파의 초대에 응해,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집은 고약한 냄새가 났고, 그 노파의 손톱은 더러웠습니다. (차 맛이 없었습니다)

부엌 싱크대는 더러운 접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접시위에 곰팡이 덮인 오래된 돼지고기가 붙어 있었습니다.

 

노파는 싱크대에 손을 넣어 잔을 하나 꺼냈습니다. 찻잎은 밖에 말려 놓았습니다.

제가 보니까, 말린 찻잎은 수많은 벌레가 붙어 있는 듯 마르고 더러웠습니다.

 

목사님, 차 한잔 대접해 드릴게요

좋습니다

 

그분이 차를 잔에 따랐는데, 색깔이 연탄처럼 검었습니다.

저는 블랙티를 싫어했습니다.

 

생우유 넣으세요?’

! 생우유가 집에 없는데..’

 

설탕 넣으세요?’

! 설탕도 마침 떨어졌는데..’

 

노파가 떨리는 손으로 들고 따르던 그 검은 찻물은

얼음처럼 차가왔습니다.

 

저는 잠시 주저했습니다.

찻잔을 쏟아버리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험받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파는 잔을 건넸습니다.

 

저는 쉽게 마시지 못하고, 받아들고만 있었습니다.

어서 마시세요!”

 

노파가 그 더러운 차를 내게 건네줄 때

제 마음은 멀리 겟세마네를 생각했습니다.

 

본문의 말씀, 내가 주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는 불순물과 불의의 쓰레기로 가득 찬, 그 십자가의 잔을

천사에게가 아니라

자기 외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였습니다. 그분은 죄악을 마시러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배신했을 때, 신경이 쇠약해졌을 때,

다가오는 대적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날 밤에

능력을 보이며 사역을 하셨던 그 수년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던, 시간을 추억했습니다.

그분은 물 위를 걸었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문둥병자를 고치셨고, 미친 자들을 치유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뭐가 다릅니까?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예수님이 마시신 잔을, 그 곁에서 기꺼이 같이 마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 고난의 잔도 마시지 못할 사람이라면, 자기 성경 지식을 너무 뽐내지 마십시오.

열두 제자들은 성경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조차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심판대에서 그 지식이 우리를 심판 할 것입니다.

 

제 서재는 작지만 많은 좋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들이 심판대 앞에서 나를 고발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제 마음이 외칩니다. ‘나는 고통 없는 오순절을 원한다.’

그건 마치 천원을 투자하고는, 수억원의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5. 결국 제자들은, 그 잔을 마셨습니다.

 

그 잔을 마실 수 있는가?”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멋모르고 그렇게 대답한 그들은, 결국 그 잔을 마셨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모두 십자가형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만해도, 가학적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설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낙담할 겁니다.”

 

자신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과는 작별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거듭나도 세상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도하는 목사도, 아마도 그들 가운데 가장 세속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리스도가 주시길 원하는 것을 받으려면, 진정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마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해산의 고통과 고난, 고독과 힘들게 지새운 밤이라는 대가 지불 없이

일어난 부흥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습니다.

 

1. 부흥이 없어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과

 

2. 부흥에는 커다란 대가 지불이 필요한데.. 그걸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이제는 기쁨이나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누릴 것 같다고 기대하는 순간에

갑자기 그 잔을 쓴잔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된 것 같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차단시켜 버리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초대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신세 타령을 잘 합니다.

내가 유학을 갔다 왔더라면.. 내가 로열 패밀리에 태어났더라면..

내가 젊어서 큰 교회에 청빙 되었더라면.. 내가 지금 큰 목사가 되었을 터인데..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난의 잔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엉뚱한 것 부러워하지 마시고, ‘고난의 잔을 받아 기꺼이 마시십시오!

예수님은 결코 여러분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6. 적용

 

제가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첫째 딸이었던 마르숄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그분은 85살에도 폭풍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나 마르숄은, 어느 날 벨기에 부뤠셀의 한 커다란 저택을 방문해서 며칠을 묶었습니다.

한 기독교인이 소유한 그 집은, 골동품과 귀중품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보니까 그 집에 아주 온화한 하녀가 있었는데,

그 하녀는 매일 아침 9시면, 빛나는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하녀에게 물었습니다.

지난 며칠 아침마다 식사를 하면서 아가씨를 봤어요.
그렇게 얼굴이 환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혹시 아침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나요?”

 

하녀가 말했습니다.

아뇨, 특별히 경건의 시간을 갖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아침 식사가 8시니, 5시부터 7시까지는 저택의 방방을 돌면서, 벽난로의 불을 피웁니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방 앞 화로 앞에 앉아서, 쌓인 재를 한쪽으로 치우고, 양동이에 담아요.

종이와 나무를 가져와 불을 붙여요. (사실 석탄이나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8시 아침식사가 시작되기 1-2분전 일을 끝낼 때까지, 12번 정도 불을 붙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불을 지필 때마다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불을 제 속에 지펴주세요. 헌신의 불을 제 속에 지펴주세요.”

 

윌리엄 부스의 딸 마르숄은, 21세에 파리로 가서 창녀들에게 복음을 선포해

그 나라를 뒤집어 놓았던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한 작은 하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화류계의 거물들과 점잖은 소르본느 대학의 최고 지성인들이, 마르숄의 설교를 들으러 왔었습니다.

그러나 마르숄은, 그 어떤 설교자보다, 그 하녀가 자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처녀는 불씨를 지피고, 숨을 불어 살려내어, 불이 타오르게 했습니다.

저택의 방방마다 불을 지필 때마다,

늘 그 불처럼, 자신의 마음에도 주님의 사랑의 불을, 기쁨의 불을,

평화의 불을, 긍휼의 불을 지펴 달라고..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불길을 지피는 사람이, 교회에 돌아오기만 한다면

미국은 6개월 안에 뒤집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만 논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굶고 있는데, 요리책만 주고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배가 부른가요?

책안에는 감자와 쇠고기 같은 음식이 있지만 약만 올리는 거죠.

 

언젠가 당신도 이곳에 와서 이런 소고기도 칠면조도 먹읍시다라고 말해주지만

그 불쌍한 사람은 현재 처절하게 배가 고픕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요리책은 주지만, 요리는 주지 못합니다.

 

보통 수준의 교회는, 매주 주일마다 메뉴판은 주지만, 음식은 절대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귀중한 신학개요를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교리를 외우고 있을 겁니다.

 

두 세 명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주님이 임하신다고 성경말씀을 인용하는 사람들에게

제 레븐힐이 묻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면 어떻게 죽은 예배를 드립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대각성에는 매우 값비싼 댓가 지불이 필요 합니다.

 

주님을 믿을 뿐더러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신앙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받기 전보다 교만해지는 것을 봅니다. 은사를 자랑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이 땅에서 누리는 영원한 삶 중에 가장 위엄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영은 거룩한 사람들을 만듭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거룩한 삶을 살기에 거룩한 부모가 됩니다.

 

질문을 하겠으니 답해 보세요 주님이 마신 그 잔을, 당신은 기꺼이 마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거쳐 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3:12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즉 순결하게 하려고 세우려고,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려고 변화시키려고

그분은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 다음 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문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그러니 인간이 기획하고 감독하고 있는 모든 것을 끊어 버립시다.

사람들은 레븐힐은 급진적이고, 권위 아래 있지 않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지난 50년 동안 권위도 없이 세상을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아셨고 저를 지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권위의 인정을 받고 활동했습니까?

 

세례 요한은 기사도 이적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그의 말은 불같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타올랐습니다.

제 마음에 불이 없다면 제가 하는 말이, 어떻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태우겠습니까?

 

저는 그 노파의 손에 들린 썩은 찻잎이 든 컵을 받지 않으려고 뒷걸음 칠 때,

노파가 강하게 말했습니다.

마시세요!”

 

하나님은 보이 스카우트를 훈련시키시지 않습니다. 군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누구든지 군에 복무를 하는 사람은, 자기를 군사로 모집한 상관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딤후2:4)

 

그 하녀는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무릎을 꿇고 성냥불을 켤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주님 제가 이 불을 지필 때마다 제 마음에 당신의 불을 지펴 주세요, 성령의 불을!

제가 이곳에서 일한지가 몇 년 되니, 아마 수 천 번 불을 지폈을 거예요

 

그 하녀는 많은 유명 인사들을 시중들러 식탁에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하녀는 새벽녘에 한적한 곳에서, 무거운 석탄을 날랐고 청소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부할 작업이었지만, 그 처녀는 그것을 성례의식으로 바꿨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이번 주에 당신에게 내가 받은 세례를 받겠는가?”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내 슬픔의 세례를 버림받음의 세례를 고통의 세례를 외로움의 세례를

어둠의 세례를 모든 것이 합해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아니면 빠져나갈 핑계를 찾을 건가요?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