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4

폴 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4-2강

LNCK 2014. 11. 5. 14:13


◈폴 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4-2강            롬3:11~19        인터넷에서 스크랩, 정리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1



여러분이 만약 미국에 와서, 어떤 미국인들에게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나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나는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사실은, 이들이 복음주의 교회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십일조도 냅니다.

저는 주일날 교회에 출석합니다. 저는 교회 갈 때, 넥타이도 매고 갑니다.’



그러나 진정 회개, 회심하지 않은 신자들은..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래 말씀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폴 목사님, 잠깐만요, 이 세상의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못 들어갈 수 있다고요?

 

-여러분, 회개하고 거듭나서, 참되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신자도 있지만,

-깨닫지 못해서, 외식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신자도 있습니다.



후자를 봅시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뭡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 주실 수 있는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건 세상 일반 종교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기복주의적 속성’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저 폴 워셔는,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축복과 번영’을 설교하는 것을 혐오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육적인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대거 끌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고, 축복과 번영만을 사랑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1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만, 잘못된 동기로 찾습니다.

그들에겐 새로운 직장이 필요합니다. 자기 가족을 도와줄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믿기로, 주일날이 일주일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는 가장 사악한 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사람들이 우상 섬기듯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매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마치 우상숭배 하듯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낸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속성(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거의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심지어 하나님이 아닌 것조차, 하나님으로 만들어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사님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속성 attribute of God 에 대해 설교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확실합니까? 그렇다면 꼭 기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저는 당신의 교회를 분리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분리된다니요? 우리는 모두 믿는 신자들입니다.

당신 폴 워셔 목사님 이, 하나님의 속성을 설교하면,

그게 어떻게, 교회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제가 하나님의 의와 거룩에 대해 설교한다면,

또한 제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설교한다면

여러분의 교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엄청 화를 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분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을, 절대로 믿거나, 예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 라고 말할 것입니다.

                  ※관련글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들은 매 주일마다 교회에 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은, 그들이 창조해낸 상상의 하나님일 뿐입니다.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치 자판기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가 ‘기도’를 집어넣으면, 그 자판기에서 무엇이든지 꺼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교회가 우상숭배자로 가득 찼습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무엇이 설교되고 있습니까,

어떠한 하나님이 그 교회 안에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말로 진실되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올바로 추구할 수 있을까요?



오직 한 가지 방식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여러분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써,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중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은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야.. 우리가 참되게 주님을 믿는 것이 가능합니다!





◑철저히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실상



그래서 자연인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여러분 ‘인간은 기본적으로 착하고 선하다’라는 것이

휴머니즘의 기본적 대헌장 아닙니까.



물론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은 면이 일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하나님은, 인간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다!’ 네, 타락한 형상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가, 바로 이 복음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정면으로, 인간의 선함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휴머니즘의 거짓을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13절에서

저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고,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약을 인용한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 입술과 혀가 문제인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깨끗한 것일까요? 오직 입술만 문제인가요?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엇을 말하든지 그것은 마음속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입술과 마음은 일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6장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대면했을 때,

‘나는 부정한 입술을 가졌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다.’

 

왜 그가 ‘나는 마음이 부정한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까?

왜냐하면 구약 성경은 ‘너의 말이 너의 마음을 나타낸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입술과 마음의 부패를, 둘 다 말하지만,

구약은, 입술만 부패했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곧 마음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롬3:14절 말씀을 보면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14절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밖으로 나가 길 모퉁이에 서 있다가,

첫 번째 만나는 사람과 툭 부딪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해보십시오. 그냥 양해해 주지 않습니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젊은 청년들 사이에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까.

젊은 청년들이 정말 더럽고 지저분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 내면을, 입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문화가, 점점 더 그들을 참된 기독교로부터 이탈하도록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점점 더 자제력을 잃고 있습니다.

젊을 때부터 그들은 괴물이 되고 있습니다.



▶로마서3: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여러분 이것을 믿지 않습니까? 그러면 역사를 공부해 보십시오.

여러분 역사 공부가 귀찮으면 신문을 읽어보십시오.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입니다.



파멸과 죽음,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역사 말입니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역사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태어나지 않은 셀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오늘날 낙태로 죽임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문화적으로 죽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폴 목사님, 맞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썩었습니다.

많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부자들이, 사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압적이고 전제적인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권세를 얻는다면, 여러분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역사가 증거하는 바, 대부분 자연인은 바로 이러한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적 타락 때문입니다. 



그럼 남의 얘기 말고,

여러분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십시오.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결혼생활이라도 말입니다. 여러분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습니까.

혐오하지 않습니까. 가정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를 보십시오. 주일학교를 다니는 아이 말입니다.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서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죄인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본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제가 신앙이 깊어질수록, 그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의 선물을 우리가 받도록,

정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야 될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를 죄로부터 멀리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조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정말 무시무시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 가볍게 사용합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심판의 날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심판의 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말입니다.



그 심판의 날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다는 것인지 기억합니까.

성경은 이런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위대한 군왕들이라도, 산과 바위가 무너져서, 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기들을 가리게 해 달라고, 피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숨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피하여 없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젠가는 서게 될, 최후의 심판대를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긴 복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기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대가 보입니다.

여러분이 아주 담력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복도를 걸어갈 때에,

세상을 삼킬 듯한 천사장이, 여러분을 스쳐 지나갑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용기와 만용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있을 때는, 담대하게 떠벌릴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나는 그 자리에 설 것이다. 나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라고요.



하나님을 참람되게 말하는 여러분,

심판의 날에 여러분은, 밀랍처럼 녹아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혼자, 자기 의를 의지한 채 그 앞에 선다면

여러분은 정죄를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곁에 서 주셔야 합니다)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수많은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서 정죄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많은 목자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강하다 평강하다!’며, 거짓 평강을 외쳐댔습니다.



▶로마서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 바울은 실례로 유대인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대인들은 우리 이방인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있었고, 거기서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유대인조차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최고의 더 최고의 사람조차도, 자기 의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이방인들은, 얼마나 더 실패할 것입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킴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의롭다 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바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절망에 처한 인간에게.. 도저히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유일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어해야할 메시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행상인처럼 팔려고 가져 오신다면, 여러분은 거절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만을 원하고 추구하십시오. 그 분만이 여러분에게 소중합니다.





◑구원 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노니..’ 3:23



▶자연인은, 죄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휴머니즘은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니, 인간은, 타락한 존재요, 원래부터가 멸망 받을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다시 로마서 1:21절을 봅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롬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현대 휴머니즘은, 인간을 아주 고상한 존재로 숭상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실상은.. 죄로 타락한, 아주 고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 이런 휴머니스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은,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원래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렇게 살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어떤 TV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그 프로그램 안에 4~5살 아이들이

마치 전문가처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그 교수에게 묻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훈련시켰습니까?’



교수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아이가 바이올린을 들어올릴 만한 힘을 가졌을 때,

우리는 그 어린 아이를 가운데 두고, 모든 중요한 사람들을 그 주위에 세웁니다.

선생님을 세웁니다. 부모를 세웁니다. 친척들을 세웁니다. 다른 학생들을 세웁니다.

그 아이 주변의 이런 여러 사람들을 주위에 세웁니다.



그 어린 아이가 우연히 줄을 건드려서 소리를 냈을 때에,

박수를 치며 축하해줍니다.

그 아이를 포옹하고 안아줍니다. ‘야, 정말 멋있구나.’ 라고 말해줍니다.



우리는 박수를 치고 찬양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칭찬과 격려의 힘 때문에 

그 아이들이 그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하는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그 아이가 악기를 사랑해야,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 중대한 사실은, 그 아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는 이것 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박수와 칭찬을 곧 잘 사용합니다. 우리 아이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엇인가 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들 자신이,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되게 하기 위해 말입니다.

그들은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찬양과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아이들이 그러한 성취에 이르지 못한다면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한 아이들은, 기쁨은 잠시요, 곧 스스로 비참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주 어린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가,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하는지

이 말씀에 다 나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보내는 대신

우리는 그들에게, 너 자신의 영광을 취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의 영광에 대해 지음 받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며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오직 이것만이 우리가 평강과 기쁨을 유지하기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무엇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인간의 가장 큰 최고의 욕망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세속적인 철학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합니다.

철학자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건,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어떤 운동선수가, 아주 운동을 잘한다고 그를 칭찬합니다. 축구 황제, 농구 황제 등요.

그런 인간이 칭찬을 받을 때는,

그 철학자들은, 어떤 도덕적 결함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는, 인간들은 (또는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경멸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주 잠시 동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또 한 가지 알 것은,

비이성적이고 미친 사람도, 자신이 하는 일이, 이성적이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제가 비 오는 날, 집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제게 뭐 하는지 물어봅니다. 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비이성적입니다. 다 의아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이유는 저의 집이 불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성적입니다. 자기나, 타인이나, 그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적은 사람은, 반드시 그가 하는 모든 행위에

어떤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진정으로 이성적인 자라면

그는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최고의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리 행동의 동기에, 더 큰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신다고 말하실 때에

이기적인 생각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가장 자비롭고 사랑스러운 행위입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저의 사랑을 여러분께 보여드린다고 생각해봅시다.

제가 예배가 끝난 이후에 예배당 뒤에 서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한 명씩 여러분이 저를 지나갑니다. 제가 사탕을 하나씩 나눠드립니다.



여러분은 놀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회 문밖을 나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발견하는 모든 사람들이 ‘폴 목사님께서 사탕을 주셨어요!’



오늘 밤에 TV에 나오는 리포터에게 말합니다.

그 앞에서 춤을 추면서 ‘폴 워셔 목사님이 내게 사탕을 주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건 정신 나간 짓입니다. 지금 기복주의 설교를 빗대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30년 이후에,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을 앞에 놓고

저의 사진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묻습니다.



저 분이 누구십니까?

그 할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 분이 내게 사탕을 주신 분이야.’

만약에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정신과 상담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심장이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병원에 가서, 저의 "심장"을 여러분께 주기로 결정합니다. (복음을 빗대어)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성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TV에다가 선전할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입니다.



30년 후에 제 사진을 끼워놓고 벽에 걸지도 모릅니다.

손자 손녀들이 묻습니다.

‘할아버지, 저 사진은 누구입니까?’

‘얘들아, 너희들이 여기 앉아있는 이유는 저 분 때문이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사랑은, 선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당신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선물로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선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무대 중앙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그의 피조물에게 당신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취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 자신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심판이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입니다.

가장 최고의 선물과 최고의 은혜는 당신 자신을 나타내주시고 계시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제가 강조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선물을 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과 이적과 방언 은사에 관한 컨퍼런스를 열면,

수만명이 가득 모입니다. 체육관을 꽉 채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컨퍼런스는, 백명도 채 모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기독교에 대한 저의 도전이고 기소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이로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면,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은혜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여러분이 죄인임을 깨닫는다면, 구원에 대한 아무런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에서부터 그분이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의 죄를 회개하시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오늘 저녁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에 24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