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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글 / 기다림과 준비

LNCK 2014. 11. 9. 20:23

  

묵상글 / 기다림과 준비         12:39~48                     가톨릭 글 스크랩

 

 

인자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12:39~48

 

 

준비와 기다림. 이 둘은 형제지간 쯤 됩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이며,

기다리는 사람은,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항상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잘 쳐서 빨리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기다림,

처녀 총각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는 기다림,

가장은 직장의 승진을 기다리고,

상인들은 빨리 시장경기가 풀려서 장사가 잘 되기를 기다리겠죠.

 

특히 노인들은 편안한 죽음과 그 이후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행복을 기다릴 겁니다.

그런데 노인이 아니라도, 젊은이, 어린이 등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됩니다.

 

내가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면.. 준비할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주님과 만남을 준비한다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1. 기다림이 행복입니다.

 

너희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 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승사자를 기다린다든지

심판관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겠지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주 행복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여,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자기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사람은

사람은 없고 일만 있으며,

사랑이 없이 일 더미 속에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만남이 있을 때 행복한 것이고,

그럴 때 Happy ending이 되지요.

기다리고 기다려도 님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슬픔이고 불행입니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기다림은

몸은 비록 지금 떨어져 있어도

마음 안에 그 존재가 충만하게 현재하고 마음 설레게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다림은 부재의 확인이요

그래서 크나큰 슬픔입니다.

만남의 기쁨만큼 못 만나는 슬픔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만남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요 보람을 주는데,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인은

기다리는 종의 그 충성스러움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고

고마운 마음이 넘쳐서 성찬을 마련하시고 시중까지 드십니다.

 

주인이 기다리는 종에 대하여 이토록 고마워하시고

성찬까지 마련하고 시중까지 들어주심은 역설적이게도

주인님을 기다리는 종들이 많지 않다는 역설이겠지요.

 

멀리 갈 것 없이, 저를 보면 알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그렇게 기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 주님이 와 계신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무튼 저조차도 주님 오심을 그리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비유를 통해서 볼 때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기다림을 기다리시고,

기다리는 우리의 그 사랑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며,

우리의 기다림을 너무도 고마워하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주님은 정말로 우리가 기다릴 만한 분이십니다.

 

 

2. 준비하는 행복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12:35-38

 

한 번은 제가 환청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할 때였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래서 그 자매가 매일 거의 일정한 시간에 전화를 저에게 했었습니다.

 

전화가 올 시간이 되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정신은 온통 전화 벨 소리에 쏠려 있었습니다.

 

한 번은 땀을 흘려 샤워를 바로 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샤워를 했습니다.

 

그러나 물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려 거의 비누를 칠한 상태로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울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것이 기다리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환청까지도 들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깨어있으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해 혼

인 잔치에 갔다가 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혼인잔치는 언제 끝날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뜻은 언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더라도

죄 없는 상태에 있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살라는 뜻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기다리다 혹 잠이 들 수 있지만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바로 달려 나갈 수 있을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즉시 연인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자세처럼요!

 

그러나 어떤 종이 주인을 기다리는데 그 주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종이 주인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릴 수 있을까요? 오히려 주인이 없으니

본인이 주인 노릇을 하느라 주인이 더디 오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대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 주인이 무서워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사랑하여 마치 신랑이 오는 것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거의 안달하며

그 분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다.

 

사랑해야 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잘 기다릴 수 있고, 부모가 자녀를 잘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심판자로서 기다리기를 원하시지 않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맞이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정말 마치 애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인이 아니라 마치 종처럼 사랑해 주실 것도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은 그 얼마나 달콤합니까?

기다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기다림이 행복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알면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은 설레임이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소풍 가기 전 날 잠을 이루지 못한 것 등을 기억해보면

이것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소풍 가는 날보다 그 전 날이 더 기대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성탄절보다 성탄 이브가 더 즐거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만나는 날이 이 소풍 전날이나 성탄절 이브처럼

기다리는 날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 성직자의 아버지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날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신 모습입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의미 있는 날 주님께 가고 싶은 소망대로 그 날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한 인생을 주님께 바치며 사셨기 때문에 주님께 당당히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산 사람들은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여 수고한 것을 반드시 갚아주실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월급날만 기다린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월급을 타시는 날이면 초코파이 한 박스를 사오셨습니다.

 

동네에 가게가 없을 때라, 초코파이는 우리에게 가장 맛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아시기에, 아버지도 우리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사오던지 양에 상관없이 우리 형제들은 단숨에 끝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여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산 사람에게 올 것은

당신의 사랑과 보답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에서 이것을 느끼기 때문에 주님을 더 기다립니다.

어쩌면 죽음을 더 기다립니다.

 

열심히 삽시다. 주님께서 무서운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띠를 매고 우리에게 시중들 준비를 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미사를 도와주러 오신 한 자매님께서 식사가 끝나자마자

"빨리 집으로 가야한다"고 일어나셨습니다.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면 좋을텐데... 무슨 일이냐?"고 여쭸더니

"집에 영감님이 계셔서, 점심 준비를 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세가 꽤 지긋하신 분이셨기에 제가 농담조로

"영감님한테 전화하셔서 오늘 점심은 짜장면 시켜 드시라고 하셔요.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자매님은 펄쩍 뛰시면서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영감님 점심준비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시는 자매님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아 보였습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루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릴 남편을 생각하며

정성껏 그리고 진지한 모습으로 맛갈진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처럼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태어날 아기에게 필요한 유아용품들을 목록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하는 산모의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분문 말씀의 키워드는 "준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준비되어있다는 말처럼 가슴 흐뭇하고 뿌듯한 일은 다시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매사에 충실하다는 것, 그래서 삶에 여유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끔씩 한 선배 신부님의 충고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도들 앞에 서지 마십시오."

 

가끔씩 저도 삶에 쫓기다보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준비된 상태로, 성도님들 앞에 서는 것은.. 주님 앞에 서는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지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성도들 앞에 서는 것은.. 주님 앞에, 준비 없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3. 신앙은 기다림인데, 내 최선의 준비(노력)도 필요합니다.

 

"형제 여러분,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6:12-18

 

몸부림치던 그 10년이,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수행자가 10년 동안이나 기도에 전념해보려고 노력했었지만 허사였습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육체적인 욕망들을 어쩔 수 없어 숱하게도 넘어지고

또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지요.

 

계속 따라다니는 끈질긴 유혹으로 인해, 그의 영적 생활은 퇴보일로를 걷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0년이나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영적 진보를 이루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참담했던 수행자는 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녹초가 되었구나. 나 자신이 이렇듯 파괴된 마당에

이제 수도사의 삶을 접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수도사가 막 세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떠나려할 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네가 몸부림치던 그 10년이 바로 너의 영광이 되었다.

그러니 네 자리로 돌아가거라. 이제 내가 온갖 성가신 생각에서 너를 해방시켜주리라."

 

육적인 욕망을 버리고 영적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 그분의 각별한 은총에 힘입어야 이룰 수 있는 일이지요.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라는 권고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요청일수도 있습니다.

 

그 욕망이 주는 유혹이나 매력은 참으로 달콤하고 큰 것이어서

한번 맛들인 사람은 살을 깎는 노력이나 결단력 없이는 헤어나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리를 보다 완전한 인간,

보다 영적인 인간에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수도 생활을 통해, 완전함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몸부림치는 과정은..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10: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아들아, 나는 여기에서 네가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렸느니라.

네가 끝까지 육체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냈으니 이제부터 내가 영원히 너를 지켜주겠다."

 

본당 청년 중 한 명이 음악대학 졸업 연주회를 한다고 해서

본당의 청년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4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이는 시간, 그러다보니 몸짓만 봐도

온갖 정성을 다 쏟아서 연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정성을 다하는 그 모습에 저 역시도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저도 모르게 잠들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난 저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자세를 추슬러 주위를 보았어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꽤 많더군요.

, 무대에서 졸업 연주회를 하는 학생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연주 소리를 제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저처럼 졸거나, 또 휴대전화로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이 딴 짓만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연주자나 나와야 조금 관심을 갖고 듣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연주자의 연주가 끝나면,

우르르 밖으로 나가는 이상한 현상까지도 볼 수 있었지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는 모든 관객들이 잘 들어주기를 원하겠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 제대로 듣는 사람은 정말로 몇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 연주자와 관객의 모습이

주님과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남기십니다.

그 메시지를 보고서 당신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계속 딴 짓 하기에 바쁩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만 가지고 있고,

주님께 대한 관심은 겉으로만 조금 보일 뿐, 정작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 모습에 주님께서는 충실한 종이라고 하면서, 과연 우리를 받아주실까요?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오신다는 주님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무조건 주님의 자비에만 맡기기에는

우리들의 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물론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노력은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방학의 시작은 신나는 일이었지만,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밀린 숙제를 하느라.. 제일 괴로운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일기장이었습니다.

일기를 꼬박꼬박 잘 써야 하는데

한 달 동안 밀린 일기를 하루 만에 다 쓰려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밤새도록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쓰다가, 자다가.. 한 기억이 납니다.

 

마치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베짱이의 모습이 제 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앙은 기다림이고, 늘 깨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초등학교 어린아이처럼

방학 내내 밀린 일기를, “하루만에 다 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가 아닌데.. 말입니다.

 

밀린 일기를 하루만에 다 쓸 수도 없습니다.

내 신앙이 어린아이인지, 어른인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예수님은 매일 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언제 오십니까?

예수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매순간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사건 그리고 모든 자연을 통해서도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은 미사, 기도, 성경묵상, 전례,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매일매일 나에게 다가오시며 나와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준비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다가오시지만, 우리는 매일 못 알아봅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사랑을 고백하시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짝사랑하시게 방치합니다.

우리가 준비되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깨어 기도하십시오. 깨어 살아가십시오. 잠자고 있는 영혼은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묶여 있는 영혼은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깨어서 자유롭게 되는 만큼, 나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제발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매일매일 기도하셨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기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많은 걸 받은 사람이고 많은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깨어 기도해야 다른 양들도 깨어 기도하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가장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도 만나지 못한 예수님을 누구에게 만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내 앞에 계신 예수님도 못 알아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무어라 하겠습니까? 졸려서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변명하겠습니까?

, 통탄할 일입니다. 깨어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