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아1:1 영어번역, 출처
*원제목 Jesus our Bridegroom
Zac Poonen
▶아가서 1:1절,
‘솔로몬의 아가라’, 즉 ‘우아한 노래라’ 이렇게 아가서를 시작합니다. *아(雅) 아담, 맑은, 바르다, 우아한
이 말은, 아가서가, 신랑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노래도 섞여있지만, 전체적으로 ‘신랑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가서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성도들을 향해 부르시는
‘사랑의 노래’이지요.
우리 신부들이, 신랑을 사모하여 부르는 노래이기 이전에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아가서를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부르는 노래’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주님이, 우리 신부들을 향하여, 사랑의 노래를 부르신다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일4:19절에도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아가서와 일치하죠.
우리가 오늘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향하여, 주님이 먼저 사랑의 노래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주님을 믿고, 내가 사랑하기 이전에,
주님이 먼저 나를 선택,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사랑해주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신학적으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혹시 우리가 연약해서 지치거나 주저앉을 때가 있어도,
우리는 결코 실망하거나, 자신을 정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기 이전에,
주님이, 나로 하여금, 구원의 길로 가도록, 예정/선택/인도/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학을 ‘칼빈주의’라고 합니다.)
▶2:10~12절,
2장에서 신랑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10절,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신랑은, 어여쁜 신부를, 어디로 인도하는데요,
이것은 천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1절.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절.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위 구절은, 겨울,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까웠다는 뜻인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추수가 있고,
그것(추수, 가을)은 ‘주님의 재림’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마24:32.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즉, 신랑은, 신부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2:14절,
신랑은 계속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여기서 ‘바위’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비둘기는,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습니다.
즉 성도는, 예수님의 보호를 받고, 예수님 품에 안전히 거한다는 뜻입니다.
위 14절을 한 번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오.
신랑 예수님의, 신부 성도를 향한 사랑과 그 감정과, 그 돌보심은,
너무나 강렬하고, 열정적입니다.
우리가 위 14절을 진정 믿는다면,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내 삶의 불안감과, 미래의 불확실성은,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신랑 예수님 안에서요!
나는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처럼
은밀히 감취어져 (보호 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2: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포도원을 허무는 큰 짐승(큰 죄)은, 우리 눈에 쉽게 보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여우들이 몰래 포도원에 침입해서
포도열매들을 따 먹고, 포도밭을 망치는 것은, 참 난감합니다.
작은 짐승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본문은, 주님과 성도 사이의 관계를 비유하고 있지만,
2차적으로, 실제 우리 현실의 결혼 생활에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포도원’이 허물어지는 것은,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등, 큰 ‘죄악’들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일반의 보통 가정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여우들’
즉, 남편이나 아내가, 짜증을 잘 낸다든지, 함부로 고함을 지른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들입니다. 그런 ‘작은 여우’들을 잡아서,
그들이 당신의 영적/실제적 결혼생활을 망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당신의 결혼은, 마치 포도원과 같습니다.
부지런하고 현명한 농부처럼, 그 포도원을 잘 가꾸십시오.
영적으로, 성도가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은, 마치 포도원 가꾸기와 같습니다.
‘살인’이나 ‘간통’등, 그런 큰 죄를 짓는 성도는, 많지 않습니다.
성도가, 주님과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은, ‘작은 여우’들입니다.
즉 ‘정결치 못한 생각들’, ‘돈을 사랑함’, ‘용서하지 못하는 완고함’, ‘나태와 안일’ 등입니다.
그런 작은 여우/작은 죄악들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거나
주님의 임재를 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이런 ‘작은 여우’들을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아4:7절,
“나의 사랑 너는 (전부가)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4:7
아가서 4장에서, 신부를 정말 사랑하는 신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4장1절부터, 신부를 찬양하는, 신랑의 노래를.. 우리는 듣게 됩니다.
4: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신부도, 그런 신랑의 사랑 노래를 듣게 됩니다.
성도인 신부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는,
신랑으로부터 많은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어린 신자는, 기도로, 많이 ‘말하려’ 하지만,
성숙한 신자일수록, 기도로 많이 ‘들으려’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신부는, 신랑의 칭송의 노래를 듣는 것입니다.
신부는 점점 성숙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부가 성숙해 가면서, 신랑은 신부의 모든 면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사랑 너는 (전부가)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4:7
그러면서, 신랑은 신부에게 이렇게 초대합니다.
▶아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이것은, 하늘, 곧 천국에 가서 같이 살자는 초대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낮은 세상적 관점으로 보지 말아라.
나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서, 모든 것을 하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라.
거기서 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아무리 크고 중대한 일이라도,
그것은 작고, 별로 가치 없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서 보면, 정말 고층 큰 빌딩도 성냥갑처럼 작게 보이지요.
그런데 이 세상의 공중에는, 정말 정사, 권세, 공중권세(악령들)가 있지요.
본문에는, 그것을 ‘사자, 표범’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중’보다 더 높은 ‘천국’차원으로 올라가면,
주님과 함께요, 주님의 초청을 받아서요,
그런 공중권세, 악한 마귀의 영들을,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 마귀와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요.
그런데 우리 신랑은, 성숙된 신부들을 향하여,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공중’보다 더 높은 ‘천국’차원으로 올라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아4:12절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여기서 신랑은, 신부를, 특별히 ‘잠근 동산 locked garden’으로 부릅니다.
오직 신랑만을 위해서, 다른 모든 외부 접촉은, 일절 차단되어졌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신부는 그와 같습니다.
오직 신랑 되신 그 분께만 일편단심이지, 즉 ‘잠근 동산’이지,
다른 대상에게는, 일절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님과 관계에 있어서, 과연 그렇습니까? ‘잠근 동산’이십니까?
주님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개인 정원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 맞니?’
외국에 가면, 담벼락을 높이 쳐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곳이, 거기가, 그 집 마당인지, 일반 공터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어떤 주인은 그 집 경계선에 ‘private property(개인 소유지)’ 등의 푯말을 세워 놓습니다.
외부인이, 거기로 함부로 들어가면, 가택 침입이 되는 거죠. 도둑으로 오해받기도 하고요.
주님이 우리에게, 그런 ‘개인 동산 private garden’을 원하신다는 겁니다. *cf. 하렘
아무나 막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오직 주님만 소유하실 수 있는
그런 ‘잠근 동산’.. 오늘날로 치면 ‘private garden’보다 더 개인적이고, 은밀한!
우리 신부들이, 주님께, 그런 관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신부들에게도, 세상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눈을 외부로 돌려서, 좀 더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기만 하면,
지금 자기에게 필요한 물질보다, 더 많은 물질을 벌 수도 있고요..
또한 자기가 좀 더 유명하게 되거나, 좀 더 권세를 누릴 만한 길들이
자기 앞에 열려 있기도 합니다. 세상적 유혹의 문인 것이죠!
주님을 사랑하지만, 주님보다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기만 하면,
신부가 얻을 수 있는 물질, 권세, 인기, 명예 등, 세상적인 것들이
신부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자기를 데려가서 이용하고, 누려보라고..
손짓하고, 눈빛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정조가 있는 신부는, 그런 유혹에 일절 흔들리지 않습니다.
‘잠근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신랑 외에, 외부로는 일절 눈을 돌리지 않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부는, 세상과 양다리를 걸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전부가, 신랑이신 그리스도께만 속해 있는 ‘잠근 동산’입니다.
▶그런데 그런 ‘잠근 동산’과 같은 신자는, 오늘날 많지 않습니다.
주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며, 주님을 은밀하게 깊이 알고,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서.. 가르치는 신자는.. 많지 않습니다.
보통 성도/설교자가,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말씀을 깊이 있게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주님과 깊은, 친밀한 관계’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님과, 본문의 신부처럼, ‘잠근 동산’의 관계에 들어가면,
신랑이, 자기의 뜻을, 신부에게 나타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가까운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날에도요!
그리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도 그러셨듯이
그들의 눈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도 하십니다.
그냥 보통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이 있고,
주님이 그 눈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그 마음에, 말씀을 증거할 불을 붙여 주시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제 푸닌이,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몇 년 동안 가진 후에, 깨달은 사실입니다.
주님은 자기와 친밀한 제자들에게,
특별히 눈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그 마음에 뜨거운 열정의 불을, 붙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아5:2절,
내(신부)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그런데 신랑과 너무 가까워지다 보면, 또 신랑을 멀리하게 되는,
(너무 관계가 가까워지면, 서로 무례하게 되는 면이 있지요)
그런 날도 옵니다.
갑자기 어느 날 밤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의 음성을 듣습니다.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2
오늘날에도, 주님은, 갑자기 우리를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예기치 않은 시각에 부르시기도 하셨고요,
그것도 한밤중에요.
어린 사무엘을 부르실 때도, 한 밤 중에, 예기치 않은 시간에 부르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나, 사무엘은, 아주 반응을 잘 했습니다. 즉각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신부는, 좀 그렇지 못하네요...
▶5:3절
내(신부)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신부는 너무 게을러서, 옷을 입고, 문을 열어주러 나가기를 귀찮아 합니다.
그녀는, 발을 이미 씻었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신랑 문 열어주러 가다가,
자기 발에 흙이 묻을까봐 염려하며, 지체합니다.
신랑은, 안에서 지체되자, 스스로 문을 열어보려고, 문고리를 달그락 거려보았습니다.
5:4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결국 신부는, 마음을 바꾸고, 귀찮음을 극복하고,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신랑은 이미 집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가 하고 있는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
네가 열심히 읽는 책 좀 그만 내려놓고..
네가 몇 시간씩 하는 그 대화, 이제 좀 그만 하고..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갖자.
다른 일 다 내려놓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오직 나 혼자에게만 좀 집중해 다오.
우리 둘만 어디를 함께 걷자.”
그런데 보통 우리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저녁에.. 기도해야 되는데, 말씀 묵상해야 되는데..
‘주님, 잠시만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이 남아있어요.
15분만 기다려 주세요. 곧 끝나요. 그때 올게요.’
그래서 15분이나, 20분 후에, 우리가 주님을 만나러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미 떠나버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많은 신자들이 경험하는 바입니다.
주님은, 때로는 우리를 시험해 보기도 하시는데요..
우리가 정말, 책을 읽는 것이나, 친구와 만나 대화하는 것이나,
사역을 하는 것.. 이런 것들보다
주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일을, 우리가 더 소중하게 여기는지
우리를 시험해 보실 때도 있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의 교제를 제1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때는,
주님은, 곧 그 자리를 떠나버리실 때도 있습니다.
가장 소중하신 분이, 어쩌면 무시를 당하셨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 거죠.
당신은 정말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당신을 부르실 때 (주님이 당신을 부르신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당신이 하던 그 소중한(?) 일들을, 다 내려놓고, 다 던져버리고
오직 주님께 달려가서,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십시오.
나중에 지나 보십시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6:4~10
신랑은, 잠시 신부를 떠나기는 했지만,
6장에 가서, 신랑은 다시 신부를 사랑해 주십니다.
6: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5.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신랑이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든 신부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다’고 칭송해 주십니다.
많은 여자들 가운데서, 그 신부를 특별히 뽑았다고 하십니다. ↓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8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9
이것은 원래 ‘주님과 신부인 성도의 관계’를 뜻하지만,
우리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랑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매력적인 여자들이 무수히 많지만, 내 아내 같은 사람은 없도다!
내 눈에 보기에는, 우리 마눌이 최고다!’
주님이 바로, 우리 각자를 보시고, 그렇게 생각/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도 많고, 부유한 사람도 무수히 많지만,
또 잘난 사람, 위대한 사람들도 많지만,
주님의 신부인, 우리 성도 각자를 향하여
‘네가 무수한 여자들 중에서 단연 최고다!’ 라고 칭찬하기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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