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4

하늘 권세로 통치권을 회복하라

LNCK 2014. 12. 29. 17:02

◈하늘 권세로 통치권을 회복하라        시 2:8~9         아래 설교 녹취

 

https://www.youtube.com/watch?v=WriDFSL4o_I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통치권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제하고 통치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이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피조물들에 대한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은 신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거의 동등된 삶을 살도록 지으셨다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그 권세는, 거의 신적인 거예요.

그러니 하늘의 권세를 이어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거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도록. 영원히 살도록.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통치권,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다스려야 할 인간이 다스림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게 인간에게 이르는 비극이고 저주입니다.

 

다스려야 할 인간이 다스림 받는 존재가 된 거죠. 다스림을 받는 게 뭐에요,

노예가 됐다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큰 고통입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거죠.

인간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없어요. 왜 중독에 빠집니까?

자유가 없어서 그런 거죠. 인간에게 일어난 비극입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움을 얻게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잃어버린 통치권을 회복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은

완전히 우리의 삶에 잃어버린 통치권을 회복하는.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에게 온 모든 저주가 사라지고

부활 사건으로 최종적으로 사망의 종노릇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이 끓어 넘치는 역사가 시작된 거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다스림을 받고 끌려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저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이죠.

 

그래서 고린도서 5장 17절 말씀처럼

‘(모든) 이전 것은 다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왕 같은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의 소유된 백성이다. 왕적인 제사장이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신 사역입니다.

우리의 신분을 확인하고 주어진 권세를, 장롱에 넣어두지 말고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누구에게 맡기셨냐면, 세상의 왕들에게 맡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맡기셨어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던 권세가 우리에게도 임한 것입니다.

 

시편 2편은 메시아 시로 알려져있습니다. 8절과 9절에 보면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메시아의 통치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어요.

우리에게 유업을 약속하시고 유업은 열방입니다.

이제 그것을 하나님께 요구할 자격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유업, 유산, 상속을 해주신 게 너무 많다는 거예요.

야베스의 기도처럼,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처럼, 네 밟는 땅을 다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신분 위치 역할 주어진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고,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가 유업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옛날에 노예 생활을 했던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통치권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의해 끌려다니거나 환경에 눌린 자들로 살아가면 안 돼요.

생존 문제가 더 이상 우리를 끌고 가게 해서는 안 돼요.

 

이제 우리는 고난도 다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어떤 것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에

이제는 죽음의 문제까지도, 우리를 지배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거예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무릎을 꿇지 않고, 당당한 권세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피해의식에 빠져 살아가거나 자신의 운명을 자학하거나 우울하게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누구의 탓도 하면 안 돼요. 이웃 탓, 부모 탓, 다 그 연약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원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승리를 주셨고 승리를 누리도록 하시고

모든 특권과 재능과 능력을 다 주셨어요.

 

이제 우리는 다스리는 자, 하나님의 위임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고,

깨어지고 망가지고 원망하는 사람들을, 그 곳으로부터 끌어내도록 우리를 부르셨는데

우리가 같이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우리들은 세상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빌붙어 적당히 눈치보고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이 바뀌고 변화되고 세워지는 일에 부르셨다는 거예요.

 

그냥 부르시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가 믿음으로 가면 가기만 하면

여호수아서에서 말씀하신 게 뭡니까? 발로 밟기만 하면 주겠다는 겁니다.

취하라, 취하라 믿음으로 취하라. 오늘도 이 본문 속에 너희가 가면

내가 철창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질그릇 같이 깨뜨려버리시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엇을 통치, 다스려야 될 것인가를 몇 가지만

오늘 아침에 요약해서 말씀드립니다.

 

 

◑1. 이 세상의 문화에 굴복하지 말고 문화를 다스리고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세상 안에는 좋은 문화도 있지만 나쁜 문화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문화를 잘 보아야 되죠.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거스르고

악을 조장하는 문화를 거부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책이나 음악, 예술, 대중문화, 그 안에 숨어있는 어두움의 영역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은밀하게 숨어있었는데 이제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TV도 채널이 굉장히 많아졌죠. 이게 우리에게 많은 선택이 주어진 게 아니라

더 많은 섬세한 시청자로 살펴야 합니다.

 

세상은 아주 폭력적입니다. 선정적이고 음란하고 우울증과 자살을 부추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문화에 들어가면 짓눌리게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들도 영향을 아주 심각하게 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게 점점 연령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환경들에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치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능력들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영역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의 유행가 사조에 끌려 다닌다면 위험합니다.

유행에도 여러분, 세상의 유행에도 너무 민감하게 따라가면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환경들에 영향을 받으면 위험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얼마 있지 않아

그 땅의 문화에 젖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그 땅에 속화됩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죽자 급격하게 이스라엘의 신앙은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역자 중에 한 분이 TV를 보다가 이상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무당 복장을 하고 점을 치는 듯한 분위기로 사람들과 대담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화가 나서 학생들과 함께 저 프로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자고 그랬어요.

기도하고 얼마 안 있어서 최근에 종영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감사했다고 그러는데요.

그런 태도가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 그냥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그런 프로를 그냥 즐기고 엔조이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세상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프로들을 보면

우리 안에 통치권을 발휘하고 싶은 발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혼자 기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그 방송국에 그러한 것들의 잘못을 지적해주기도 하고.

이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문화의 흐름에 생각 없이 따라가면 안 돼요.

우리는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이지 끌려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도피적으로 살아가서도 안 됩니다. 세상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해운대 국제 영화제>를 곧 하죠.

이런 영화제가 있을 때 초대권을 받아 구경만 할 게 아니고,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유명한 음악 감독, 영화 감독, 그런 사람들이 나오도록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어요.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가 온 세상에 E.T 같은 영화, 영향력이 세계적이니다.

목사가 온 세계에 어떻게 돌아다니며 설교하겠어요.

그러나 영화 한 편이 주는 영향력은 온 세계적입니다.

 

E.T도 뉴에이지 무브먼트의 대표적인 영화거든요.

간교하게 우리의 사람들의 영혼 속에, 잘못된 진리를 퍼뜨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합니다.

 

요즘 한국에 영화 하나 뜨면 천만 관객 돌파하잖아요.

제가 설교를 죽도록 해도, 오천 명 이상은 못해요.

인터넷 좀 해봐야 얼마나 더 듣겠어요.

주일날 목사 한 사람이 해봐야 어떤 영향이겠어요.

 

불신자들이 또 듣나요. 신자들만 듣지.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문화에 대해 소극적으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방송 전문가들 피디들, 세상의 문화에 바꾸려는 관심을 가지고 극복해야 합니다.

 

▲정치인들 욕이나 할 게 아니라

타고난 정치인들이, 교육자들이, 고위 공무원들이 나와야 합니다.

 

돈을 벌고 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세상 안에 하나님의 통치를 이뤄갈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출세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조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 자리.

월급은 좀 작아도 “영향력”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통치권을 회복하는 겁니다. 더럽다고 피하면 세상은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이렇게 교회에만 모여 있다면, 성도들이 교회에만 있다면

하나님이 맡기신 세상은 누가 책임을 집니까.

 

돈을 적게 받아도, 내가 이 영역에서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마치 갈렙과 같은 사람입니다.

정말 험한 산지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가 ‘이 산지를 내게 주셨다’는 비전을 가지고 85세에 도전했던 그 갈렙의 태도.

그게 바로 통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도전하는 거죠. 어렵지만,

예수 믿는 사장 밑에서 편안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좋지만

불신자들이 가득한 곳에 들어가 믿음의 백성으로 빛을 드러내는 일이

바로 통치권을 발휘하는 자의 삶입니다.

 

▲이제 세상에 대해서 방관, 도피, 비난하는 태도가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 비전을 줘야 합니다.

 

어느 과에 가서 돈을 많이 버느냐,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물질주의적 사조에 따를 것이 아니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어떻게 펼쳐나갈지에 대한 일이 될 것인가에 대한

부모의 비전과 가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의 설교는 그 동안 우리가 들었던 영권을 회복한다면

사실 우리의 삶의 과정에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관한 문제죠.

 

◑2. 둘째, 우리가 통치권의 회복에 대해 살펴볼 때

(고난의) 환경을 지배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환경 가운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고난이라고 하는 문제,

인생은 고난투성이죠. 질병, 재난, 사고, 파산, 여러 가지 실패들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다루느냐가 행불행을 결정하죠.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춤을 추면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이 더 많을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죠.

무조건 건져내달라고, 해결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고난에 빠져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고난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고난에 붙잡혀 있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성경에 요셉이 대표적 사람입니다. 그는 고난에 파묻히지 않았어요.

모든 것에 절대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니 이 고난도

하나님이 다루시는 것 안에 내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현실적 고난 그 자체보다, 하나님을 더 응시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고난 속에 고난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난 속에 홀로 있으면 고난에 빠지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 고난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여러분 그리스도의 삶의 목적은 편안함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펼쳐지는 게 중요합니다.

 

고난은 있지만, 보람된 곳에 들어가 일을 하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세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요셉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했습니다.

고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요셉이 비로소

히브리 민족을 태동하게 하는 역사의 쓰임을 받습니다.

 

물론 애굽을 통치하고 애굽의 주변 나라들까지 기근에서 해방하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뭐냐면 요셉을 통하여 야곱 가문을

그 고난 가운데서 고센 땅으로 불러들이게 해서 히브리 민족을 일으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서 거대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가기 위한 출발점에

요셉을 부르시고 요셉이 그 고난을 당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안에 들어가 보니, 요셉이 다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고난에 뜻이 있,고 당할 만하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불평도 원망도 없고,

 

형들을 만났을 때에도 원한의 감정이 없는 것을 볼 때

그는 고난을 혼자서 당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당한 사람입니다.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환경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그 나라를 다스리도록, 그 자리를 맡긴 거예요.

 

그가 자기 고난의 환경을 다스려야, 하나님이 그를 쓰세요, 여러분.

내게 어떤 일이 닥쳐오든 하나님과 함께 다룰 줄 알고

그 사건과 고난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반드시 그 고난에 승리를 할 것이고,

그 고난 이후에 놀라운 역사들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오면, 그 고난 자체에 얼굴을 갖다 대고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 자꾸 원망을 해요.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왜 이게 왔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육을 육으로만 보면 안 풀린다’는 얘기를 그래서 합니다.

(육신적인 고난의 환경을, 육신적 시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풀립니다.)

 

높은 곳에서 보면, 오늘 내가 당하는 고난이, 다르게 보인다는 거예요.

영의 세계에서 육을 보면, 보인단 말이에요.

 

세상은 어차피 힘든 거잖아요. 근데 두 종류에요.

-의미 없는 고난으로 일생을 보내던지,

-의미 있는 고난을 겪을 것인가.

 

의미 있는 고난이라면, 그 고난에 맞서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 그게 고난의 환경을 다스리는 삶인 것이죠.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모든 일들, 어떤 것 하나도

다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통치 속에 승리 속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내가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의 눈을 열고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더 놀라운 일들을 이 고난을 통해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환경에 짓눌리지 말고, 고생으로 끝나지 말고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3. 세 번째, 물질을 다스려야 합니다.

 

▲아주 실제적인 문제죠. 사람들은 돈에 살고 죽습니다. 돈의 권세가 대단합니다.

대통령을 지냈던 분도, 돈의 위력 앞에 흔들리니까, 백성들의 존경을 못 받고 있는 거죠.

그 엄청난 권력의 자리에서도, 돈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 간에, 부부간에도 법정으로 가고 갈라지고 야단입니다.

얼마 전에도 해운대 동백섬 바로 앞에 차를 몰고 들어가 아내를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보험금을 노린 범행이었다고 해요. 남편이 어찌 그럴 수가 있어요.

 

요즘 돈의 위세, 권세 앞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물질의 힘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면

이 시대에 이미 영계 사람입니다. 영계 사람. 다른 세계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은 돈이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하는데

돈이 그냥 지금 내 수준에 알맞게 들어와 있다고 믿고 사셔도 돼요.

너무 한꺼번에 오면요, 그 돈의 무게에 눌려 죽습니다. 사고가 납니다.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 한참 후에 조사를 해보니까

제대로 사는 사람이 없더라는 거 여러분 보셨죠?

로또에 당첨됐는데 나중에 보니까 찾아가보니까 당첨됐던 그 사람들 다 망해버리고

감옥에 갔거나, 미쳤거나 그랬다는 거에요.

그런데도 살살 복권 사는 교인들이 있더라고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 진리입니다.

돈의 유혹, 만만한 게 아닙니다. 이것만 다루면 물권이죠,

물권. 물질권. 물권을 다스릴 수 있으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쓰실지 몰라요.

 

승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승리한 사람. 어떻게 이길 수 있죠?

핵심은 돈보다 더 큰 권세가 내게 주어져야 이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돈, 권세 그 파워보다 더 큰 파워가 아니면 못 이긴다는 거예요.

 

▲돈의 권세보다 큰 권세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은혜를 주셔야 가능한 거죠.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를 받기 전에는

돈의 파워를 걷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강력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냐면

가장 파워가 있는 돈을 이긴 것을 통하여 증명하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짜 받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돈을 꽉 붙잡고 있던 사람이

내어놓는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실제로. 그런 경험 많이 하잖아요.

은혜를 받으면 돈에 무장해제가 일어나요. 철옹성 같던 주머니가 열린단 말이에요.

 

구제를 하거나 헌금이 아주 좋은 훈련 중에 하나인데요. 돈을 다스리는 훈련이에요.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기본적인 의미가 있지만, 다른 면에서 접근하면

돈의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훈련이에요.

다시 말해 돈을 통치하는 훈련이에요. 돈의 힘에서 자유를 얻는 훈련이에요.

 

돈을 포기하는 거죠. 주머니에서 헌금을 내니까 포기하는 거죠.

내 돈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드림으로 포기하는 거예요.

 

욕심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반복적인 훈련. 이게 헌금하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그냥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돈의 힘과 치열하게 싸우는 영적 결투장이 헌금하는 일이에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헌금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우려면

물질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게 통치권을 행사하는 거예요.

아무나 포기 못합니다. 다루니까 포기하는 거죠.

 

▲내 소유를 나누고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 자체가, 물질을 통치하는 행위에요.

헌금을 내다가 다시 아까워서 못 내면 물질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거죠.

내가 통치 당하는 거죠.

 

내 돈이지만 내가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거죠.

돈의 힘에 눌려 있어서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물질을 내가 어느 정도 통치하는가 보려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돈을 써보세요. 얼마 정도까지 헌금을 해보았습니까.

얼마 정도 남을 도와보았습니까. 그 액수까지 내가 통치한 것입니다.

 

내가 만약 1억을 들였다면, 1억 정도까지를 내가 다스리는 권세를 사용한 겁니다.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못냈다 그러면 통치 못한 거예요.

그 액수 안에 내가 갇혀있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만약 내가 10억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 다음부터는 1억 정도의 액수로 시험에 들지 않아요. 넘어갔어요, 이미.

 

내가 다스리는 권세가 그만큼 늘어났기에

10억 안에서 내가 자유로움을 얻어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그 정도 드린 액수만큼

여러분께 ‘자유’라는 증명서를 발급해요.

눌리지 않아요, 그 부분에. 아깝지 않아요.

 

나는 헌금을 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 즐겁고

주님이 지금이라도 다 바치라고 하면 1원 한푼도 아끼지 않고

언제든지 바칠 수 있다면, 그는 돈을 완전히 통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영권이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파워를 가진 것과 맞짱을 떠서 이기면

영권이 있는 것입니다.

 

물권이죠. 오늘날. 돈의 권세. 다 넘어갔잖아요.

사람들은 몇 푼 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를 하고 살아갑니다.

 

영권은 물권을 지배할 때 비로소 확인됩니다.

물권을 이기지 못하면, 영권은 요원합니다. 돈에 끌려다녀야 합니다.

 

헌금은 그냥 헌금이 아닙니다. 남을 돕는 것, 그냥 돕는 게 아닙니다.

영권과 맞물려 있습니다.

물권의 목을 쳐야, 영적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굉장히 심각해진 것 같아요. 할렐루야.

여러분, 물권을 이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면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게 다 잡혀있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날마다 연습하세요. 남을 돕는 일에 자꾸 연습하셔야 해요.

물질을 다스리는 법! 돈을 가지고 있으면 뭐해요.

내가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를 못하면, 그 돈에 내가 매여 살고 있는데.

자유가 없는데, 늘 구속받는데.. 무슨 자유가 있겠어요? 지옥이에요.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고, 눈이 어두워지는 거예요.

감옥을 가고 그냥 죽는 줄 모르는 거예요. 지배를 당해 노예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물권을 다스리는 영권의 소유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삶의 현실의 치열한 싸움터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다스리는 권세, 내 영향력이 미치는 영토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4. 네 번째, 자기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여, 우리의 감정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병들어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여과 없이 터지면, 마치 용광로의 쇳물이 흘러나와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의 요동이 심한 사람이 있어요. 감정이 격동하는 사람들 감정의 노예죠.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릅니다.

 

요즘 ‘분노조절장애’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환경적 요소 등 많은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흉기죠.

그 흉기에 자기가 찔려 죽든지 다른 사람이 찔려 죽든지.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도 없고, 리더가 될 수도 없어요.

 

조울증, 우울증 같은 것도, 모두 감정을 다스리는 일에 실패했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자신의 삶에서 빠져나갑니다.

정작 자기가 살아야 할 인생을 살 수가 없어요.

 

▲우리 한국 사람에게 ‘화병’, 한국 사람에게만 있는 거예요.

한국 민족에 있는 어떤 기질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 이런 것들이 우리 자신을 얼마나 삶을 파괴하는지 몰라요.

여러분, 고급 자동차일수록 제어기능이 탁월합니다.

스피드만 자랑하다가 대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영적 고지로 올라갈수록 감정의 조절 능력이 탁월해야 합니다.

잠언서에 자주 강조하는 메시지죠. 16장 32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존경 받는 인물이 됩니다.

인생은 갈수록 엑셀레이터의 싸움이 아니고, 브레이크의 싸움입니다.

 

최첨단의 절제 시스템이 가동되면, 그는 삶의 고수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여기 있는 거죠. 감정의 조절 기능에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거나

자신의 감정을 한 번 여과하고 드러내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신적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성령의 통제 속에서 자신의 성품이 성령의 기질로 바꿔지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감정이 성령의 기질 안에서 잘 다듬어질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영향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죠.

 

감정을 성령 안에서 다스리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자신의 욕망과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4:23,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느니라.

신앙은 마음 다스리기에요. 가장 힘든 게 마음 다스리기 아닙니까.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가 주장하기 전에는,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어요.

결국 이것은 어디로 거슬러 가냐 하면, 욕망의 문제로 번져갑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욕망 앞에 무기력하죠.

인간은 욕망하는 것이 있으면, 손에 넣고 맙니다.

 

사람들이 모두 불행한 이유는, 욕망에 끌려가고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기에 그 욕망이 유한해요.

동물을 보세요, 충분한 음식과 공간과 번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끝이에요.

배가 채워지면 물러나요. 사자들 보세요, 먹을 만큼 배가 채워지면 그냥 떠나요.

여기 물고 저기 물고 달고 안 다녀요. 막 주머니 집어넣고 그러지 않아요.

 

사람들만 주머니가 있지, 동물은 주머니가 없어요. 캥거루 주머니가 있는데

새끼를 배려고 하는 것 밖에 없고, 욕망의 주머니가 없어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가지면 더 가지고 싶고 더 가졌으면 끝나야 하는데

더 더 가지고 싶고, 더 더 더 가지고 싶고.

그래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다 좀 더 병이잖아요. ‘리틀 모어 병’.

치명적인 병이죠 약이 없어요.

 

바울은 이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병.

 

여러분 욕망의 문제 다루지 못하면 망합니다.

욕망의 힘에 한번 끌려들면 노예가 되죠. 힘을 못씁니다.

 

욕망을 잠재우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이 웅덩이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오직 하나님밖에 없는데요. C. S 루이스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욕구가 너무 강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약한 것이 문제다.

세상에 쓰러져가는 일시적이고 덧없는 영화에 빠진 나머지

영원한 기쁨 대신 너무나 사소한 것에 쉽게 유혹을 받고 무너져 간다는 것이다.”

 

더 완전한 만족을 주는 게 있는데, 너무 빨리 얄팍한 것에 속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C. S 루이스가 얘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탐닉, 하나님에 대한 중독 이런 표현도 쓰죠.

 

다른 것을 탐닉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하나님께 탐닉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입맛을 다시고 세상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강력한 은혜를 받으면,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욕망을 제어하면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데

내가 욕망에 끌려다니면 세상을 다스릴 수 없어요.

 

거짓된 잘못된 망하게 하는 이 욕망을 다스리는 것.

그 다스리려고 하는 핵심이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회를 한 주간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듣고 집중해보세요.

은혜 받고 나면 옛날에 좋아보이던 게, 안 좋아보이게 되어 있어요.

좋아지면 은혜를 덜 받은 거예요.

 

갔는데 좋아지면 빨리 돌아와서 기도 더 해야 해요. 좋아지는 게 없어져요 여러분.

세상의 화려하고 막 눈독 들였던 게 전혀 없어져요. 거룩한 무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충만하니까. 내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충만하니까요.

 

이게 우리는 결사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 안 받고 한 주간 세상에 살다가 헬렐레, 해가지고 눈독을 하도 들여가지고...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가 다스려야 할 능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 몇 개만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통치하는 사람이라는 것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높은 곳에서 보아야 합니다.

한가운데 세상 가운데 빠져 있으면 안돼요. 높은 곳에서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해요.

통치자의 눈이죠.

 

진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다스리는 목적이 뭘까요 여러분. 마귀에게 빼앗겼던 것들을 되찾는 일입니다.

지금 마귀가 다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상한 유행과 풍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요즘 힐링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는데. 세상에서 힐링을 많이 얘기해요. 무슨 힐링이 있다고...

진짜 사람들에게 힐링이 필요한 시대라는 사실은 인식을 한 거예요.

 

그런데 진짜 힐링을 해야 될 곳에서 안하니까, 세상이 야단 법석을 떠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찾고 우리의 신분에 걸맞는 통치의 다스림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세상이 다스리는 거예요.

사탄이 다스리는 거예요. 악이 번성하는 거예요. 무질서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다스리는 목적이 뭐냐면,

마귀가 통치하는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마귀가 다 탈취했던 것을 빼앗아 오라는 겁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맡기셨다는 거예요.

 

세상에 맡기지 않았어요. 마귀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세상의 모든 만물과 족속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고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한다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다스림의 목적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방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의미는

온 땅 가운데 복음을 전가하므로 모든 족속이 주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업들이란 말이죠.

 

▲지금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영적으로 간파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것이 흐르고 있는지.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중보 기도자들입니다. 무너진 것들을 바라보아야 해요.

세상과 교계의 황폐한 것들을 바라보아야 해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중보 기도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세상과 세상의 통제에 밀려다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끌려 다니면 안 됩니다.

 

세상의 힘에 끌려다니면 비참해지는 것이죠.

세상이 우리에게 줄 것은 없어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들이 아닌 것들은

우리가 취하고 누릴 것들이 아닙니다.

 

진짜 줄 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줄 게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세상에 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을 다스려야 할 임무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세상은 무질서 속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영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권 회복이란 가지고 있는 영권을 묻어뒀던 것을 꺼내어서 사용하는 거예요.

사용하지 않으면 그게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돈도 여러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영권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이에요 그것 자체가 권세에요.

제가 전에도 얘기했잖아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어디가든지

눌릴 이유가 없어요.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신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라는 게 뭐에요?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늘의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이게 보통 권세입니까.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요 여러분. 이 믿음의 야성, 이것을 감추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삶의 문제가 왔을 때

그 믿음을 가지고 정면 돌파하는 거. 눌리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믿음을 사용하면 되는데 그냥 이게 여러분,

신자는요 별 거 아닌 거에 자존심 상하면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리 살면 안 되지.

열이 올라서 교회 와서 죽기 살기로 기도하고

문제를 걷어내고 돌파하고 이래야 되는데. 피하는 거예요. 고양이죠 고양이.

 

아무리 건드려도 그냥 꼬집고 그래도 엥 하면 고양이지.

사자는 그럴 수 없어요. 확 그어버린다는 거죠.

‘내가 질 줄 알아?’ 본성이 나오는 거예요.

 

우리 안에 믿음이 야성이 있는 사람은, 자존심 상하는데 죽는 얼굴 하고 있지 않아요.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의 야성이 있는데.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시는데, 앞에 가야 자동으로 열리는데..

벽인 줄 알고 멀리서 끙끙 앓고 있으면 안 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이미 임하셨다고 그러잖아요.

여러분. 성령 충만을 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설교했습니까?

진리에 생명을 거는 용기가 나온다고 했어요.

 

증인이 된다. 말투스. 순교자가 된다는 말이에요.

전도지 나눠주는 게 증인이 된다는 게 아니라

진리가 내 영혼을 관통하고 심장을 뒤집어 놓아서

 

이 진리가 내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어서

이 진리를 위해서 내가 살고 죽겠다는 결단과 용기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요 무서울 게 없어요 여러분.

 

이 땅은 진리의 싸움이라고 했잖아요. 많은 지식 나부랭이,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그걸로 생명을 걸 수가 없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지식과 지성이

우리의 삶에 생명을 걸 수 없게 비겁하게 만들죠.

그러나 진리는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을만한 생명을 걸만한

충분한 용기를 허락하는 거죠.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세상에 눌리고 끌려다녀서는 안돼요.

연약하게 사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너 내 자녀 맞냐?

 

여러분 이제 영의 세계에서 육의 세계를 통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환경에 주눅 들지 마세요. 세상에 밀리지 마세요.

직장을 다녀도 사장이 나를 먹여살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당신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고 다니세요. 그걸 느끼게 해주셔야 해요.

 

여러분. 이 사람이 들어온 이후로 이상하게 우리 직장이 되네. 뭐지?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기도하고 주님 앞에 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밀고 가면,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보셔야 됩니다.

 

자기 감정에 빠져 혹은 유혹에 어떤 상황에 떠밀려

자신의 삶을 방치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더 이상 떠밀려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통치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권세로 승리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를 다스리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다스림을 받으면 됩니다. 그 분의 노예만 되면 됩니다.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아버지의 권세가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 땅을 통치하는 역사를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를 짓누르고 환경을 다스리고 세상의 복음을 전하며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권세로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확신이 오면요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를 하세요.

선포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가 그런 것이죠.

나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면 세상을 바꾸는 자가 되는 것이죠.

 

▲이제 영권을 가진 자로 세상 안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짓누르던 것.

우리나라 지금 우울증 너무 많아요. 일평생 우울증으로 살아가는 분들 너무 많아요.

여러분 그게 다 마음이 눌려있기 때문입니다.

 

환경, 상황, 사건, 세상의 욕망에 떠밀리고

내가 나를 컨트롤 못하니까 다 일어나는 거예요. 왜 자살을 합니까.

이 환경이 짓누르는 것에 대해 꼼짝 못하고 포로로 살아가서 그렇습니다.

 

육체의 일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컨트롤 하시기 바랍니다. 감정을 컨트롤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이제 한가운데 들어가서

두려워 마세요. 왜 우물쭈물합니까. 그냥 온실 안에서 살려고만 합니까.

 

문제가 있으면 교회로 도피하지 말고

세상에 믿음을 가지고 강력하게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편하게 월급만 받고 사는 게 행복이 아니에요.

세상의 한가운데 들어가서 영향을 끼치고

예수 한 명도 믿지 않는 직장의 한가운데 들어가서 모든 사람이 예수 믿게 만드는

그래서 검은 돈이 부정거래가 왔다갔다하는 그런 자리에서

그런 것을 스톱시키고 악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정말 정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실이 축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러분, 빛이 소금이 얼마나 강력합니까.

조금만 있어도 강력하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다스리는.

빛은 세상의 어둠을 다스리는 거예요. 주눅들 게 없어요.

당당하게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야성이 살아나기 바랍니다. 기도의 권세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여러분의 심장을 관통해서

그 진리에 생명을 거는 용기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진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붙잡는 자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진리의 다스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날마다 살아가는 은혜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돈의 권세, 돈의 물권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말고

그 돈을 당당하게 다스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면

여러분을 통하여 그 물권을 주실 것이고

 

돈의 권세에 지배당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물권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껏 사용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승리하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J.H.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