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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

LNCK 2015. 2. 25. 10:01

보아도 보지 못하고들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        히3:7~12,  마13:14~17            

2014 신년집회 3   김용의 선교사

 

영적인 실제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면 그 답답함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3장 14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복음을 받고 누리게 된 복된 지금 세대

 

비극 중에 참 비극을 14~15절에 말씀합니다.

듣기는 들어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영적인 소경영적인 귀머거리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복되도다보고 듣는 자여.

보고 들을 수 있는 자가 정말 복되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17절에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보고 싶어도 듣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맞습니다여러분우리 한국 교회 복음 들어오기 이전에 130년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우린 지금 기가 막힌 복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십자가의 복음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완성된 복음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성령의 시대에주님께서 복음의 진리를,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깨닫게 해주시는 이 역사를,

그 (구약시대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그게 허락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완성된 복음에,

진리의 성령이 이 복음을 우리가 듣고 깨닫도록

주님께서 기가 막힌 시대. 그것도 우리 말로 된 성경을 가지고

진리의 성령님 역사하시는, 이 기가 막힌 복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것 참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 가운데 정말 감격하고 감사해야 할 복은

우리가 이전에 구약 시대에 신자들이, 그렇게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해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것을

지금 이렇게 맘껏 누리고 들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아멘.

 

 

광야같은 인생길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문제 없습니다.

 

그럼 구약 시대에 실제로 일어났던,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듣고 싶어도 듣지 못했던 이 일이 어떤 비극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구약 시대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팔로 홍해를 건너고

하나님의 큰 기적의 순례길을 행진했던사십 년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광야 40애굽에서 400년 종살이 하다가 건져냄을 받아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 땅으로 가기까지 이 중간 40년을

그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고 지나온 거 아시죠?

 

이 사건은, 우리를 무서운 권세 아래 신음 고통하던 우리를, 주님이 건져내셔서

인생길 믿음의 여정의 길을 쭉 인도하신 다음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을

애굽에서부터 가나안까지의 노정으로, 역사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통해서

영적 순례의 길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서구약 성경 중에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주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광야 40년은 눈으로 볼 때

예레미야 2장 6절에 보면 그 광야가 어떤 광야인지 말해주는데

그 광야는 사막과 구덩이의 땅이고

사람이 통행하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않는 땅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거칠고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음이 분명합니다외적 조건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만약 혼자 길 잃은 미아처럼 내던져졌다면 비참한 죽음이죠.

그런데 이 광야 40년은, 우리의 인생길처럼, 하나님이 없다 그러면

다 해봐야 50보 100보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잠깐 죽을 날을 앞에 정해놓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길

다해봐야 정말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이 틀림없습니다.

인생은 고단하고, 고난을 위해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그리고 허망합니다나면 죽을 때가 있는 것.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게 인생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없는 인생을 논한다면그렇게 거친 광야길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 길이며, 광야의 길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길도 홀로 방황하느냐아니면 주님과 함께 동행하느냐에 따라서

하늘과 땅이 다른 것처럼천국과 지옥만큼이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냐 아니냐가

우리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는 것입니다.

 

광야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이 광야 40년동안 주님이 함께 하셨으니

그러므로 믿음과 경외심의 눈으로 보면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고

눈으로 보되 똑같은 사물을 보는데, 깨닫고 보는 눈이 있는가 하면

전혀 깨닫지 못하고 보긴 보는데, 무슨 의미인지 도대체 알아먹지 못하는..

 

눈은 떴으나 사실은 소경 같은,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를 경외하는 믿음의 눈으로 보기만 하면

광야 40년 노정은 정말 신바람 나는 노정인 것입니다.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죠거기에 기적이 하루도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먼저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길도 없고 지도도 없는데 구름기둥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시니까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구름이 머물면 멈추면 되는 겁니다.

 

구름이 몇날 몇일이던 있으면 거기서 머물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뜨면 가서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날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잘못 가면 큰일나는 그런 불안한 길이 아니라눈 감고도 따라가기만 하면

생명의 길이고 승리의 길이고 완전한 길인 그 길을주님이 직접 인도하셨다 이 말이요아멘.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여러분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지 않습니까.

거기 지리를 잘 알고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만약 내 가이드가 되어줬다 그러면

여러분 걱정 안하고 영어 한 마디 못해도걱정하지 아니하고 온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저는 오직 한국말만 잘합니다그 교육부 혜택을 많이 못 받아서 영어를 잘 못해요.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순회 선교단이라는 단체에다 저를 박아놓으시고

그리고 선교하라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라고 했으니

전 세계가 한국말 말씀을 얼마나 듣겠어요.

 

한국말은한국 공항을 떠나는 순간부터 통하지 않아요.

근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닌데

한국에서 돌아다니면서 한국말 할 수 있는 거로 감사하고 이런 일 없잖아요.

 

근데 진짜 한국말 할 수 있는거한국말로 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고마운 건

국경만 넘어가보면 금방 알아요외국어 하나도 못하는 저는 전 세계 돌아다니면서

6개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돌아다녀야 된다는 건

여러분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일이 생겨요.

 

나는 한번도 나 혼자 여행을 마음대로 숙소도 나가본 적이 없어요.

그럼 그 국민도 어려워지고 나도 어려워져요내가 길을 잃으면!

 

그래서 숙소에 꼼짝없이 박혀 있다가나와서 밥먹고,

떠들라(설교하라)하면 떠들고

마치면 가서 숙소에 눕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가 물건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창고에다 입고했다가필요하면 꺼냈다가 출고했다가또 입고했다가 이러더라고요.

가서 할 일이 또 있어야죠.

 

그래서 내 옆에는 늘 나 아닌 누군가가 있어야 돼요안 그럼 문제가 생기니까요.

약간 쪽팔리는 일이고 속상하긴 해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가이드(광야 같은 세상의 비유에서 하나님)가 있는 거예요.

 

제가 가는 곳마다 공항 도착하자마자 시작해서 다시 공항으로 올 때까지

철저하게 붙어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가이드가 있으니까 외국어 못 해도 괜찮은 거에요.

 

더군다나 완전하신 하나님이이스라엘 백성들 40년 노정에 광야길이라도 문제가 없어요.

길이나 지도가 없어도 주님이 인도하시면 되니까요아멘.

 

주 안에 있는 나의 길딴 크심이 있으랴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한 번도 못 가본 우리의 인생길내 길 가본 놈 아무도 없어요.

내 길은, 혼자 가야 돼요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길을 걸어가는데 기억해야 될 건

2014년 새해가 아무리 험하고 어려워도

여러분 그 길에 주님이 함께 가시면 할렐루야입니다아멘.

 

광야 노정길이 그랬단 말입니다하루도 기적 없는 날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들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매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성막.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겁니다.

 

성막이 움직일 때에는 구름기둥이 떠오르고 밤에는 진을 딱 갖추면

거기에 불기둥이 성막 위에 임하여서, 그 춥고 어두운 광야에 밝은 불기둥을 두시고

하나님 임재의 표현을 그대로 보여주시니 두려울 것 전혀 없었어요. 아멘.

 

그리고 만나와 생수를 주시니, 묵은 거 주신 적 없이

그냥 매일 아침마다 신선한 만나를 매일 주시고, 주님께서 지하 암반수 생수를

늘 주시지 않습니까.

 

반석을 깨뜨려 생수를 주시고, 거기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기적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니, 부족함 전혀 없었어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주님의 크신 은혜라할렐루야.

주님의 이 은혜로 부족함 없도록 해준 여기 광야를 믿음으로 걸어가면

믿음으로 본 광야 40년은

다른 곳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가장 멋진 승리의 행진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었고기적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기적으로 만나 얻어 먹고그저 지하 암반수 그냥 때마다 마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구름 기둥 불 기둥 다 보호받고 인도받으면서도

40년 내내 불평과 원망으로 죽을 고생하는 것처럼

인생을 오만상 찌푸리고 악을 쓰다가

 

그 땅에서 차곡차곡 불신앙으로 엎어져 죽은 사람들이

그 엄청난 기적을 맞고 나온 사람들 중에

애굽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고

기적에 파묻혀 살면서도 불평과 원망하다가.. 눈에 뵈지 않는 거예요,

 

기적의 떡을 먹으면서도 불평하는 거예요.

생수를 마시면서도 원망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거예요.

 

하나님과 기적의 동행을 하면서도날마다 기쁨 감사 전혀 없이

보긴 보지만 알지 못하고,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생들!

광야에 엎드려 죽어간 60만이 넘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과 경외심의 눈이 없었고

불신과 탐욕의 눈으로 그 광야길을 바라보니

불평과 원망과 불행의 주인공이 되어

몸부림치고 악을 쓰다가 죽은 비참한 땅이, 바로 광야 40년 노정이었습니다.

 

돌아갈 길은 없는데, 40년간 하나님의 종이 되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가이드하고 종이 되고.

누가 종이고 주인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마치 자신들이 혹사당하는 노예처럼 걸핏하면 우리를 왜 이리 끌고가냐

왜 이렇게 험한 길에 보내냐이게 뭐냐이렇게 악을 쓰면서 끌려다니는 심정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잠언 15장 19절에 보면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아멘똑같은 조건, 똑같은 길을 가도 게으른 영혼!

이 게으른 영혼의 탐욕에 젖은 길은

날마다 가시울타리를 헤치고 가는 것처럼 어렵다 이 말입니다.

 

똑같은 길을 가도 감사로 충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길을 가도 어렵고 인상쓰고 원망과 불평으로 칠갑을 하는

이런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이 말입니다.

 

똑같은 광야 노정을 가는데 여호수와 갈렙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길을 가면서도노예처럼 죽지 못해 질질 끌려다니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가다가 엎드려 죽은불신앙으로 죽은 이 사람들에게는

그 광야 길은 가시밭길이었고,

정직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시온의 대로처럼 뻥 뚫린 길이었습니다아멘.

 

이렇게 분명히 보고 들려주어도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고

그렇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의 섭리로 보살핌을 얻으면서도

그토록 주님의 세세한 안내를 받으면서도..

 

그게 들리지 않는 것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병은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고

우리의 마음의 문제믿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은 그저 렌즈처럼 사물을 확인하는 기능만이 아니고

사람의 눈은 카메라 렌즈와 다릅니다.

 

마음의 창이라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걸 봐도 전혀 다르게 깨닫고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사람의 귀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히브리서 3장 7절부터 12절은 광야길 노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그러니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병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불신의 악심이라고 주님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단단하게 굳어져 있는지

얼마나 악독하게 미혹되어 있는지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게 아니면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아니하는 이 마음,

이런 완악한 마음을 가졌다고.. 여기 주님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바로 구약 시대의 보긴 보아도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했던 비극의 주인공들을

여기 예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신약 시대에도 동일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도동일하게 구약의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거기서 하나님을 불신하다 엎드려 죽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직접 육신이 되어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도 끝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신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눈에 비늘이 벗겨져서십자가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한테 속았는고 하니놀랍게도 나한테 속고 살았어요.

나한테 제일 원수는 신랑 그 놈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입니다내가 죽어야 예수 삽니다할렐루야.

 

주님이 이 놀라운 복음으로 이 역설적인 복음으로 초대하는 게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십자가가 중심인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끌어안고 연구하고 별 짓을 다해도

여러분 이것 없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온전히 참여하고

그 분의 부활의 생명이 나의 전부가 되어지는 십자가 부활이

나에게 실제가 된 적이 없는 한 수건이 벗겨본 적이 없고

눈의 비늘이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미쳐서 예수를 핍박하고 돌아다닐 때

정오의 빛보다 더한 주님을 만날 때 상징적으로 눈이 확 가버렸습니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면서주님이 다시 그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실 때

그는 주님을 만났던 밤의 세계의 회심 사건을 보통 그냥 개심했다,

마음의 중심을 바꿨다핍박하던 자와 친구가 되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 내가 산 것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것이라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사신다는 걸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아니다나는 죽었다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나는 바뀔 존재가 아니다변화될 존재가 아니다고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죽음에 넘겨질 것 밖에는 다른 가치가 없다아멘입니까.

 

이 복음의 진리를 십자가에서 부딪쳐 본 적 없는 사람이

여기 담겨진 하나님의 사랑 구구절절 강이 되어 흘러오는 이 엄청난 생수의 강에

아무리 빠져들어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딱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막힌 담을 허물어버리시고이 막힌 관을 뚫어버리시고

우리에게 실제가 되는 그 유일한 능력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안다는 말은 성경의 복음을 만났다는 말은

내가 바로 십자가에 관해서 연구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믿음으로 화답하여 주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주님의 부활이 나의 복음이 되는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그 다음에

 

모든 성경 안에 영적인 세계니 진리의 세계니 하는 모든 얘기는

사실 이 진리의 확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초가 아니고 이것은 기독교의 전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이 복음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큰 지도와 능력이 담겨져 있는 게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장 22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멘어줍잖은 인간들은 유대인 즉 모태신앙들은 표적을 구하고

자기의 영적 만족을 추구하는 표적을 구하고

아예 안 믿는 개념없는 이방인들은 자기의 지식을 구하지만

 

우린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선에서 그들이 바뀌지 않습니다,

알아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식하고 거역스러워 보이지만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길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고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할렐루야.

 

그러니 복음은 누구를 설득해서 이걸 믿게 하려면 설득해서 믿게 하려면

모태신앙이라서 못 받아들이고이방인은 이방인이라서 못 알아먹고,

이 복음은 인기있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고 주님의 영생이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인기를 따라 전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명쾌하고 통쾌하게 능력으로 역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복음답게 전하는 것이요,

 

십자가의 복음이야말로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이것은 그리스도를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성령께서 이 진리를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니고

그래서 이 일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고성령의 진리의 영이 되셔서

우리에게 요한복음 16장 8절에 성령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해주시리라.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영이 되신 성령이 말씀해주실 때

우리는 드디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 실제가 되고

듣고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할렐루야.

 

 

내가 다시 복음 앞으로!

 

주님께서 이 놀라운 영광의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누구라도 어린 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한 방편으로 예배해놓으신 게 십자가로

우리를 초대하신 것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어지리라할렐루야.

 

언제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앞으로 나아가보면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내 신념 안에 살아서 실제가 되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주체가 되어서 이 말씀을 이끌어가시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서

우리로 하여금 변호인이 아니라증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아멘.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저와 여러분께 살아계신 주님 앞으로 초대하신 은혜는

다른 데로 방향 없이 불러내지 않습니다.

 

어디서 만나자고 하시는고 하니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서성막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성막 시대이기에 성막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있고 피의 제사가 드려지고 있어

거룩한 하나님과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죄인이 심판 받지 아니하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성막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막은 모두가 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막의 기구들 제도,

모든 성직들이 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할렐루야.

 

성령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주님과 만나려면 먼저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냥 믿었다 치고있다 치고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주님의 이 복음은 주님께서 더 큰 은사요가장 좋은 길을 주시는 이 사랑,

완전한 사랑 안에 내가 거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완전한 길,

완전한 능력에 참여하려 하면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마련해놓으신 주님을

죄인이 심판 없이 만날 수 있는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눈을 열어서 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빈 손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들고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주여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무 공로 없는 죄인으로 영원히 심판 받아 죽임 당할 죄인의 모습으로 나아가서

숨김없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바라보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께서 이제는 끝났다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는

주님의 선언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판이 끝난 그 자리에서 그 확신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야

예수님은 나를 돕는 도우미가 아니라나 죽고 예수가 나의 전부가 되시는 말 그대로

영접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분이 나의 전부가 되시도록

그 분 나의 생명 실제 주인이 되시면우리 안에 주님께서 살아계시니

믿음의 삶거듭난 삶주님과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삶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이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예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이후에 계속되는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실제가 된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인데

오늘 이 밤에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어주시는 일은

2천년 전 역사적 객관적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의 생일이 실제 있었던 것처럼그 실제보다 더 분명한 건

주님이 여러분의 이름표를 달고 내가 되어서

내 대신 죽은 십자가의 이름이 실제였던 것처럼

 

여러분 믿음 안에서 나 자신에 대한 죽음이 언제 실제였는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셔야 합니다그냥 지식적 동의 말고 말입니다.

내가 더 이상은 고집부리고 내가 버티고 변명할 것이 없도록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변명 말고

내가 존재적으로 악을 사랑하고존재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나의 비참한 실존을 정말이구나난 진짜 소망 없구나,

이런 사실이 털썩 여러분의 무릎을 꺾을 때까지

진리 앞에 죽으시고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한 절망이 일어나야만

빈 손으로 하나님 은혜만 바라보시고, ‘이제 죽을 일 밖에 없는데

심판 받을 일 밖에 없는데 주여 나 어떡하면 좋아주여 나 어떡하면 좋아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하나님 앞에

 

이제는 심판을 기다릴 일 밖에 없는 나의 운명을 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다리는 바로 이 자리에 나아갈 때

우리는 복음이 우리 안에 이루어놓으신 일을

비로소 우리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아멘.

 

타이핑 : J.H.O